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28
제 828화
늘 무정해야 하는 강호인과 갓난아이 돌보기는 어찌 보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 느낌인데 천우는 그걸 둘 다 능숙하게 하고 있었다.
아기 역시 방금 천우가 보여 준 솜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사마현이 말했다.
“우리 아기 고객님도 만족하시대.”
“그래. 그래 보인다. 천우야.”
진천희는 약간의 감동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거구의 몸뚱이가 보여 준 육아 스킬은 대단한 것이었다.
천우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누구를 찾아온 거야?”
“이곳에 정석영이라는 분이 살고 계시다고 들었거든요. 복숭아술의 장인이시라고.”
사마현이 말했다.
“정석영…이라면 정가장주의 이름이네.”
“오, 생각해 보니 정가장주의 집안이 대대로 무당파 속가제자였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닿는구나.”
문득 사마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호의 정보를 다루면서 인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천우가 말했다.
“이 아기는 정석영이라는 분의 증손자예요.”
“증손자? 손자도 아니고?”
진천희의 말에 천우가 뺨을 긁적였다.
“네, 그러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꽤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정석영의 아들은 무당파에서 속가제자로서 수련한 자로, 그 무위는 아비인 정석영보다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강호에 나갔다가 은원에 휘말려 사망했다.
그리고 정석영의 손자.
손자 역시 무당파에서 무공을 수련했다고 했다.
아비를 따라 제법 강했다고.
표국에서 일을 했는데 녹림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단다.
그야말로 끔찍한 강호의 이야기.
하나, 흔한 강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아이는……?”
“표사 일을 하다가 강호에서 눈이 맞은 여인이 있다더라고요. 그 여인이 무당파로 아이를 데리고 찾아왔었는데…. 음…. 얼마 지나지 않아 병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무정한 이야기였다.
“…….”
방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와르르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이가 책 무더기를 쏟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천우가 달려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애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이렇게 안타까워할 시간도 없더라고요.”
“그래. 화경의 고수인 네가 그리 말할 정도면 말 다 했지.”
새삼 부모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천우가 아이를 다시 무릎에 앉혀 놓고 둥기둥기 놀아 주었다.
“사실 이런 경우 본문에서 직계 제자로 받는 게 관례인데. 인명록을 찾아보니 여기에 혈족이 있다고 해서요. 혈족이 있으면, 일단 혈족에게 물어보는 것도 관례예요.”
“그래서 네가 직접 온 거야?”
“네. 저도 이제 제자를 받을 때가 되어서…. 만약 이곳의 혈족이 외면한다면 제 제자가 될 거예요. 물론 정식은 아니고 임시 형태지만요. 문의 규칙상 구배지례(九拜之禮)를 하여 사제의 연을 맺는 건 좀 더 커서 하는 거고요.”
‘무당파는 꽤 합리적으로 돌아가는구나.’
문파에 따라서는 그냥 어릴 때부터 키우면 강제로 그 사람이 스승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무당파는 그런 건 없었다.
‘하긴. 사람을 가려 전수한다는 게 무당파의 법도이니.’
아이가 스승을 선택하듯, 스승도 아이를 선택한다.
인성이 바르지 못한 아이에게 무공을 전수할 수 없는 법이니까.
‘아마 이런 게 무당파가 여태 무당파로서 강호 거목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겠지.’
진천희가 말했다.
“그래도 놀랍다. 네가 벌써 제자를 받을 시기라니. 이럴 수가. 천우가 애 아빠가 된다니.”
“아니, 형. 애 아빠라뇨. 스승과 제자가 부자(父子) 관계로 비유되지만 제가 배 아파서 낳은 건 아니라고요.”
사마현도 한마디 덧붙였다.
“형도 이상한 데서 놀라네~ 형도 제자 있잖아. 가월이었던가?”
“그쪽은 제자라기보다는 수강생에 가까운 느낌이지, 직계 제자도 아니고 제갈세가의 무공을 전수하는 것도 아니니까.”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나도 금혈방에서 몇 명 가르치긴 하니까. 거기에 비하면 천우 형 쪽이 훨씬 무겁긴 하다.”
천우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 말씀하셔도. 정식 사제 관계는 아닙니다.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도 어린애들이고요.”
“천우가 잘 컸구나.”
진천희는 혼자서 다시 감회에 젖었다.
그도 그랬다.
자신이 살린 아이가 이렇게 장성하여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전수한다는 것은 의원에게 남다른 감회를 주니까.
사마현이 말했다.
“그나저나~ 정가장주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이유가 나타나 주었네? 역시 그 할배 죽을 때는 아닌 모양이야.”
천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무슨 이야기예요?”
“그게 말이지…….”
진천희는 그동안의 일을 천우에게 설명했다.
“끼아!”
그동안 아기는 다시 천우의 무릎을 빠져나와 다시 방구석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 * *
정가장에 아이를 안고 다시 향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진 노인이 맞이하러 나왔다.
“무슨 일로 다시 오신 겁니까. 장주님께서는 외인의 출입을 금하셨습니다만.”
진 노인은 그러면서도 천우와 아기를 번갈아 본다.
외안에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가 아기를 안고 있으니 기이하게 볼 만하다.
그러더니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눈치로 보아하니 천우가 무당파인 것을 알아본 모양이다.
하기야.
삼대가 무당파의 속가제자인 정가장에서 일해 온 사람이다.
그간 무당파의 사람이 이곳에 들르지 않았을 리가 없고, 당연히 그도 무당파의 도복을 알아볼 것이다.
게다가.
천우의 외양에 대해서는 강호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니, 못 알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입을 다문다.
저것은 무당파인 천우를 알아봤음에도 못 본 척하겠다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아이고, 우리도 안 받을 셈이시구나.’
아무래도 그때 대화 이후에 죽을 마음을 아예 굳히신 모양이었다.
가끔 이런 환자들이 있다.
난치성 질병에 걸렸고, 어떠한 이유로 삶의 의지를 잃었을 때.
자결은 조상묘에 욕을 보이는 것이니 차마 그리할 수는 없을 때 이렇게 두문불출을 한다.
그렇게 되면 농경 사회다 보니 일가친척들이 다 찾아가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제발 기운 차리시라고 통곡을 하고.
뭘 모르는 다섯 살 아기도 엉엉 울면서 앙상한 노인 정강이를 끌어안는다.
그러면 노인은 그제야 힘을 낸다.
참 이상한 일이지.
집에 재산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강호의 명망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가득 차 있는데.
결국 인간은 힘을 잃고 절망한다.
그리고 그 절망에서 꺼내 주는 것은 어김없이 이런 어린것이지.
젊은 시절에는 몰랐으나, 이제 두 번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랫동안 삶을 관조하다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제발 정가장주도 힘을 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일단 만나야 하지 않나.
진천희가 말했다.
“백린의각 의원도 만나지 않는다 하십니까?”
“예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단단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 들이면 목을 치겠다고.”
“그랬다가는 다음 이 대문을 넘는 건 장주님의 시체일 겁니다. 그래도 좋으십니까?”
진천희는 강하게 말했다.
진 노인은 결심한 듯 입을 한일자로 다문다.
“…장주님의 명이십니다.”
그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달착지근한 향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이 향은 진천희뿐만 아니라 사마현과 천우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술 냄새인데? 이거 복숭아 술단지라도 깬 건가?”
사마현의 말에 진천희가 되물었다.
“중증 소갈 환자시면서, 혹시 술이라도 드시고 계시는 겁니까?”
“네. 의원님께서 나가신 이후로 작심하셨는지 그동안 만들어 온 술들을 계속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위험하다.
젊은 나이면 모를까. 나이도 많으신 노인네가 당뇨도 심하면서 작정하고 술을 마신다?
제아무리 타고나길 건체로 태어났다고는 하나, 그냥 죽겠다는 뜻.
“장주님께서는 치료받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의원님께서도 강요는 하지 않는다 하셨잖습니까. 흑전의각 사람들처럼 강제로 납치해서 치료하는 일은 백린의각의 길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
진천희의 눈에 순간 절망이 깃든다.
부풀어 오르는 절망을 천우와 사마현이 본다.
형은 너무 많은 환자를 치료했고, 너무 많은 형태의 죽음을 봐 왔다.
차라리 어리고 순진한 하의원이라면 좀 더 강하게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지(無智)하기에 강한 것.
아직 길이 안 든 신발과도 같은 강함이었다. 하지만 진천희는 달랐다.
이미 숱하게 험지를 걸어 낡은 신발.
주인의 발에 물집도 굳은살도 입히지 않지만 대신 낡아 버린 신발이었다.
어떤 일이든 책임을 지며 말의 무게를 직시한다.
그게 어른이고, 노인이었다.
그때 사마현이 입을 열었다.
“그건 의원의 길이고요~ 이쪽은 다른데?”
그리 말하며 천우에게 눈짓을 한다. 천우는 곧바로 사마현의 눈길을 받아 말했다.
“저는 무당파의 천우라고 합니다.”
“무당파! 천우 도장이셨군요. 무명은 장주님께 많이 들었습니다.”
진 노인이 그제야 알은척을 했지만, 몹시 건조한 행동이었다.
장주의 명을 지킬 생각이 가득한 모양이다.
“형은 의원으로서 왔을지 몰라도, 저는 문(門)의 일로 들렀습니다. 그러니……!”
허락 같은 것을 구하지 않는다.
천우가 한 손으로 아기를 품에 안고, 다른 한 손을 부드럽게 내밀었다.
마치 구름이 유유히 움직이는 듯 신이한 움직임!
그리고. 그 손바닥이 대문에 가 닿았다.
무당절학
태극면장
퉁-
처음에는 작은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믿을 수 없는 모습이다.
쩌어어억!
나무로 만든 대문 전체로 금이 번져 나가고, 그것은 이윽고 조각나 흩어져 버렸다.
그냥 힘으로 부순 것이 아닌 무당파의 절학으로 때린 것은 같은 문도인 정가장에게 표하는 일종의 예의였다.
정가장의 거대하고 오래된 대문이 천우의 손에 날아갔다.
뻥 뚫린 대문에 새로운 바람이 밀려왔다.
천우가 말했다.
“뭐 해요. 형. 가요.”
“어?”
진천희가 놀라서 천우를 바라본다.
그동안 그가 의원으로서 결코 해 오지 않았던 일을 동생들은 너무나도 쉽게 한다.
젊은 신발들이었다.
자신이 상처 입고 타인도 상처 입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 노야가 급히 말했다.
“아, 안 됩니다! 장주님께서……!”
그 순간 사마현이 진 노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에이~ 어르신도 장주님 걱정되시면서 왜 그래요? 이런 것은 못 이기는 척 넘어가자고요~”
천우가 진천희에게 손을 내민다.
“형……!”
그 기세에 놀란 걸까.
대문이 박살 나도 울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울어 젖히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진 노야와 진천희의 정신이 돌아왔다.
오래된 신발은 그제야 앞으로 나갈 때임을 깨닫는다.
“가자. 그래!”
진천희는 천우의 손을 잡았다. 천우는 빠르게 달려간다.
절세 보법을 익힌 두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달려가고.
정가장주가 술독을 부수고 있는 곳까지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