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31
제 831화
진천희가 말했다.
“연구당 만든 놈들끼리 이름 정해 보라고 했는데 아직도 못 정하고 있어요.”
“쯧쯧쯧. 올해 안에는 해결해야 할 텐데 이거.”
“그냥 대충 짓지. 또. 뭐.”
상의원 으르신들이 한마디씩 한다.
“소각주님이 맨땅에 돈 붓는다고 욕하던 상의원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 소리 안 하잖아요.”
“이거 가지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뭐. 수익이 그닥이긴 해도. 꼭 필요한 거긴 하니까. 특히 노인 소갈에는요.”
그 말에 진천희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알아줘서 고맙네요.”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지. 혼자서 살아가도 되는 세상에서 왜 굳이 뭔가를 하려고 하는지.
그래도 이 손이 닿는 곳 정도까지는 내가 지킬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해야겠다. 그러니.
스승님을 살리고 싶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페니실린.
백린신단.
그렇게 스승님을 고치기 위해 하나하나 나아간 후, 그다음은 그렇게 만든 설비로 다음 단계를,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갔다.
‘만약 스승님을 살리는 게 아니었다면 나도 여기까지는 못 왔겠지.’
어찌 보면 광기일지도 모르겠다.
고독한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해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저렇게 자라서 팔짱 끼고 소각주에게 한마디씩 참견을 던지고 있지 않나.
“거참! 나 혼혈 안 짚었소! 원래 의원들은 이렇게 잡담이 많소?!”
정가장주가 버럭 화를 냈다.
“아프기 전에 긴장을 푸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거참. 내 긴장이오. 아니면 댁들 긴장이오?”
노장답게 정곡을 찌른다.
웃기는 말이지만 아직도 부술이 무섭다.
잘못하면 사람이 죽는 일이 무섭다.
아마 평생 무서울 거고 그리 이 작업이 편안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이 벌모세수도 마찬가지.
젊은 사람에게 하는 게 아닌, 나이 든 사람에게 하는 일이니 두려웠다.
진천희가 물었다.
“정말로 혼혈을 짚지 않으실 겁니까?”
“필요 없소.”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진짜 괜찮은 겁니까?”
“당연하지.”
노인은 망설이지 않는다.
지독한 고통이 올 수 있는데도 떨지 않았다. 소갈, 당뇨.
이 세상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당뇨는 없다.
하지만 싸워 나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니던가.
“좋습니다. 그러면…….”
진천희가 눈짓을 하자 상의원들이 각자의 자리로 간다.
한 명은 진맥을 통해 노인의 용태를 볼 것이고, 다른 한 명은 진천희가 하는 대법을 보조할 것이며.
또 다른 한 명은 견학…은 아니고 대법 중에 도와야 하기 때문에 잠시 대기한다.
“그러면 시작합니다.”
진천희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장침을 들었다.
노인은 진천희의 푸른 눈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의원의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이 와중에도 흔들림 없는 모습이 마치 푸른 벽옥과 같다고.
* * *
벌모세수가 이어진다.
노인은 신음 하나 지르지 않고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이가 상할까 봐 재갈이라도 물릴 생각이었는데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인이 읊은 것은.
“도란 공(空)하여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고, 깊고 낮아 만물의 위에서나 맑음에도 무언가 있도다. 도란…….”
노자(老子) 도덕경의 한 구절.
그는 도덕경을 읊으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 무당파의 가르침이겠구나.’
무당파에서는 무공을 익히며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대해 배운다.
태극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꽤 다양한 소양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노인의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낀다.
진천희가 상의원을 보자 상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진천희는 계속해서 대법을 이어 나간다.
“가장 좋은 것은 물이다. 물은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는 법이 없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가르침이군요.”
“크윽, 술을 빚는 것도 마찬가지오.”
“언젠가 다시 빚으실 복숭아주가 기대됩니다.”
“내 완치만 되면 백린의각에 궤짝으로 보내도록 하겠소.”
“그거 기대되네요.”
마침내.
노인의 몸에서 시커먼 덩어리들이 혈도 근처 땀샘을 따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발에 안 들어가게 하세요.”
발에 있던 검은 궤양은 진천희가 이미 처리했다.
하지만 그곳에 다시 노폐물이 들어가면 곤란해진다.
이미 위에 한 번 드레싱을 해 놨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았다.
“아이고, 벌써 일해야 하네.”
대기하고 있던 남은 상의원이 지친 몸을 이끌고 닦아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간호당 중의원을 시킬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소각주의 의술을 견식할 기회를 놓치긴 싫으니까.
“부술만 잘하실 줄 알았는데 이런 대법도 곧잘 하시는군요.”
“스승님께 엄청나게 머리가 깨졌거든요.”
의원들이 놀란 것은 이뿐만 아니었다.
‘손이 쉬지를 않는군.’
‘모든 혈도의 상태를 눈을 감고도 파악하고 있어.’
단순히 혈도의 위치를 외우는 것 정도는 하의원 되기 전에 이미 다 하는 일.
하지만 지금 그는 그것을 아예 뛰어넘어 실시간으로 노인의 몸 상태를 봐 가며 대법을 하고 있었다.
‘환자에게 아플 거라고 경고했지만 예상한 것보다는 경감된 상태로 받고 있다. 왜지?’
‘본인의 오행진기를 사용해 환자의 혈도에 진기를 불어넣으면서 침을 꽂아 넣고 있으니.’
‘이건 침구당주님만이 가능한 경지 아닌가.’
‘부술당주가 어찌하여 침구당주님이나 쓸 수 있는 경지를…….’
각 당의 당주가 되려면 다른 상의원들과는 차별된 의술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접합부술.
팔다리를 접합하는 부술은 부술당 당주 진천희와 백린의선 제갈린.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상의원만이 가능하다.
그걸 익히기 위해서는 평생을 갈아야 가능한 일.
마찬가지로 같은 벌모세수도 각 혈도에 오행진기를 불어넣으며 하는 방식은, 그것도 노인을 상대로라면.
원래는 침구당주님과 마찬가지로 의각주인 제갈린. 소수의 상의원만이 가능한 일.
각주님이야 애초에 이 의각을 만든 사람인 불세출의 천재라고는 하나, 소각주는 부술당이라는 확고한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엇보다 젊지 않나.
‘각주님이 소각주님을 후계로 정할 만하구나.’
너무나도 쉽게 해 나가는 것을 보며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이거 다 하고 나면 배 엄청 고플 거예요.”
“크윽…. 이번에도 적게 먹어야 하나?”
“식사 제한 안 해도 돼요. 술 마시지 말고, 튀긴 것만 피해서 드세요. 벌모세수 직후에는 오히려 안 먹으면 기력이 없어서 위험해요. 아, 제가 요리해 드릴까요? 저 한 솜씨 하는데.”
“일광 요리가 일절이라 들었는데…. 크으… 내 호강하겠군.”
“아까는 벽안신의라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일광이라 하시네. 거, 아프다고 너무하시다.”
진천희는 농담을 걸며 계속해서 대법을 이어 나간다.
상의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농담을 할 수 있는 기력이 있다는 게 더 놀랍군.’
‘끝나고 요리도 하신다고?’
‘체력이 남아도나?’
상의원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 * *
그렇게 지옥 같았던 벌모세수가 끝이 났다.
장주는 탈진한 상태로 하인이 시켜 주는 목욕을 받고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러다 음식 냄새에 눈이 떠졌는데 어쩐지 몸이 아주 가뿐했다.
다리의 감각도 평소와 다르게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벽안신의로구나. 명의도 여기까지 오면 답이 없다 할 정도인데…….’
노인 소갈의 무서운 점이 그것이다.
노인이 무공을 수련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같은 자세를 취해도 뼛골부터 신음을 하는 게 늙은 몸뚱이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했다.
‘재능이 없어 운기를 해도 덕을 볼 일이 없긴 하지만…….’
기를 느끼는 것조차 다른 이들에 비해 배는 더 걸렸다.
운기조식을 하면 개운하다 다들 말하지만 그는 그런 게 없었다.
그의 내공은 너무 적었고, 너무 느렸다.
타고나기를 둔재로 타고난 셈.
주천 자체가 제대로 된 일이 손에 꼽는다.
거기다 운기조식을 그만둔 지도 이미 수년이 지나지 않았던가.
‘그래도 어쩌면….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르지.’
천하신의에게 벌모세수를 받았지 않나.
‘어쩌면 이 늙은 단전이 한 번은 응해 줄지도.’
그는 깊게 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희망은 있는가, 희망은 있는가.
이윽고 말라붙은 단전이 천천히, 하지만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팽이처럼 꾸물꾸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내력이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구나. 움직여! 아직 움직이는구나!’
노인은 벽안신의에게 감사를 드렸다.
기적.
어떤 말로도 할 수 없는 기적이었으니까.
‘아직, 그래. 그래. 나도 아직은 쓸 만하지. 그래!’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린 속도다.
다른 이가 보면 이게 무슨 운기조식이냐고 물을 만큼 느리고 느린 속도.
하지만 제대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노인은 기쁘고 기뻐서 눈가에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나라고 꼭 죽으리라는 법은 없지. 암! 아직 아이한테 술 담그는 법도 못 가르쳐 주었는데.’
그날, 거목에 복숭아꽃이 피었다.
결코 다시는 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늙은 나무의 보잘것없는 꽃이었다.
하나 작아도 꽃은 꽃이었다.
작은 열매라도 좋았다.
거기에 싹을 틔울 수만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희열에 차서 운기조식을 했다.
보잘것없는 꽃이라도 쉽게 져서는 안 되기에.
* * *
대주천을 마쳤다.
남들보다 느린 속도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단전에서 시작된 내공이 한 바퀴 돌았다는 것.
그 희열을 드디어 칠순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정가장주는 조심조심 일어나 마당으로 향했다.
태극권.
아주 기본적인 권법.
주름진 손이 태극을 만들고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자 좁쌀만 한 내공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주천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증거였다.
여기에 태극권과 같이 익히는 태극기공.
무당파의 기본적인 무공이지만, 이것만 제대로 익혀도 강호에서는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장주는 천천히 태극권 이십사식(二十四式)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치고, 그것을 반복하며 태극기공을 운기했다.
역시 둔재는 둔재.
그리고 이제는 늙은 둔재.
고작 그것만으로 죽을 것처럼 땀이 나고 있다.
“허허…. 젊었을 적에는 하루 종일 하고도 지치지 않았거늘.”
그는 물끄러미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주천을 이루어서 행복했던 기분도 잠시.
무정한 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주천을 한 번 했다고 소갈이 낫지는 않는다. 외공을 연마하든 기공을 연마하든 더 많이 움직여야 하고, 더 많이 운기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은 그 절반도 어려워 허덕이고 있지 않나.
보잘것없는 복숭아꽃.
작은 씨앗이라도 만들고 싶지만 현실이 얼마나 참혹한지 깨닫고 만다.
“이 둔한 재능으로 언제 수련을 다 하고…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꼬….”
그때 진 노야가 왔다.
“의원님이 진료를 보러 오셨습니다.”
“어서 뫼시게나.”
* * *
“아이고 어르신! 벌써 무리하시면 큰일 나요!”
진천희가 달려와서 정가장주를 부축했다.
“아이참, 성격도 급하시네. 에이, 모르겠다. 나도 인사 생략하고 급하게 꺼냅니다.”
그러고는 보따리를 확 풀어서 내용물을 보여 준다.
단약.
그것도 금색 단약이었다.
“이게 무엇이오?”
“영약입니다. 으음. 엄연히 말해 준영약이죠. 영약에는 조금 모자라도 내공 증진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아니, 이 귀한 것을… 어찌하여…….”
“어르신의 복숭아술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리 말하며 뒤에 있는 사내를 턱짓했다.
사마현이었다.
“돈 많이 벌어 이런 데 쓰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술은 혜아가 먼저 받는다.
그것이 조건.
그 모습에 노인의 눈이 커진다.
그랬다. 시든 거목을 다시 살리는 방법이 있었다.
적절한 퇴비와 물.
진천희가 미소 지었다.
“아쿠쿠, 운이 좋으셨습니다. 원래라면 제가 지옥의 양생공 수련을 시켜드릴 생각이었는데 이걸로 덜 지옥이 되겠군요.”
그리고 끈기 있는 노력.
그것은 나무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내가 다시 살 수 있겠소?”
“무슨 소리십니까? 그러기 위해 제가 왔는데. 지옥 훈련이 좀 덜 지옥이 돼서 서운하신 겁니까?”
노인은 그 말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보잘것없는 복숭아꽃.
이 꽃을 위해 매달린 사람만 벌써 세 명이다.
하나는 천하제일 신의, 또 하나는 무당파의 권왕, 다른 한 명은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준영약을 떡하니 내려놓고는 술 달라 조르는 놈.
‘말년에 엄청난 경험을 하고 있구나.’
이런데도 피지 않으면 죽은 가족들을 어찌 본단 말인가.
“아바! 바바바!”
핏덩이 증손주 놈도 할아버지를 응원하고 있지 않나.
“살고 싶소. 이런 몸뚱이지만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살고 싶소. 그러니 의원님, 뭐든 하겠소. 뭐든 할 테니. 뭐든, 제발, 뭐든 시켜 주시오!”
나이? 체면? 자존심 따위는 버렸다.
늙은 거목에 제발, 제발 봄이여.
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