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43
제 843화
그렇게 의각에 돌아가서 짐을 풀고 집무실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와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스, 스, 스승님 오셨어요!”
온몸이 밀가루 범벅이다.
보아하니 만두 대결에서 이기려고 수행 중인 모양.
제갈린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희야, 오는 길에 백린현을 보니 사방이 만두 천지더구나.”
“아, 만두 대결을 하기로 했거든요. 이 불초 제자가 그만 세가의 명예를 걸고 만두 대결을 승낙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미 얼굴에는 ‘내가 지는 순간 제갈세가에 큰 폐를 끼치게 될 텐데. 어쩌지?’ 하며 전전긍긍하는 기색이 보였다.
“호오. 그렇구나. 만두 대결? 그래. 제갈세가가 만두에서 지면 안 되지.”
꿀꺽-
진천희가 목울대로 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제자의 부담이 세 배는 늘어나는 소리였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본인이 만두 대결을 말아먹고 공명 선생의 위패에 석고대죄 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 모양이다.
원래 그런 놈이다.
제갈린은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제자의 표정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구나.”
“그, 그게 어찌 된 거냐면…….”
진천희는 밀가루도 털 생각 못 하고 스승님께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설명을 끝내고 나자 진천희의 표정은 울상이 되었다.
역시나 자신의 행동 때문에 세가의 명예가 개박살이 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모양.
제갈린이 말했다.
“그렇군. 알겠다. 수행에 매진하거라.”
“네, 넵!”
“이럴 시간이 없지 않느냐.”
“네, 그, 그렇군요. 스승님. 불초 제자는 어서 만두를 빚고 오겠습니다.”
다시 진천희가 달려 나간다.
와당탕탕탕!
경공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놈이 구르듯 달려 나가는 것을 제갈린은 즐겁게 감상하고는 부채로 잠시 얼굴을 가린다.
“…….”
“거, 너무 웃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말년에 제자 하나를 둬서 별꼴을 다 구경하는군. 알아서 재롱 잔치도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뭐겠나.”
“만두 만들다 체하겠습니다. 저놈.”
“그것도 재미지.”
성격 나쁜 스승은 오랜만에 기뻐졌다.
그럴 만도 했다.
얼마 전 제갈린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괴이(怪異)들을 보았다.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인류가 어떻게 싸워야 할지 끊임없이 계산해야 했다.
피, 살점, 죽음.
누군가의 살점이 불타는 냄새와 독에 절어 외치는 아우성들.
그리고 인간의 지혜를 시험하는 어둡고 깊은 광기.
과거 혈린이었을 때가 떠오르는 행보 아닌가.
그 여정 끝.
집에 돌아오니 제자가 알아서 최고의 선물을 스승에게 주고 있었다.
“한동안 만두는 배 터지게 먹겠군그래. 곤란하군.”
“좋으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
제갈린은 답하지 않는다.
그저 부채로 얼굴을 가릴 뿐.
그만큼 그는 기뻤다.
이런 모습이 유호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기만 하다.
진천희가 오기 전과 온 후의 제갈린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자니 독고중후가 들어왔다.
“각주, 잘 다녀오셨습니까.”
“무사히 일을 잘 마치고 왔습니다. 무력당주.”
“보고할 것이 있어 들어왔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제갈린이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허나. 무력당주는 여전히 서서 그 자리를 지켰다.
감히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뜻.
겉으로는 매번 은퇴시켜 달라 조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우직한 사내였다.
제갈린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독고중후가 그제야 말했다.
“전대 걸왕이 오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신다고요? 호오, 혹시 아프신 곳이라도……?”
“그건 아닙니다. 백린의각과의 교류를 위해 온다는 것이 명분이고 실상은…….”
“만두겠군요. 하긴, 예전부터 천하에 크다는 잔칫집은 다 가서 만두를 쓸어 담아 오시긴 했죠.”
“사도련의 술제께서도 오신다고 합니다. 표면적인 목적은 금혈방 소방주와의 교류이고…….”
“……그쪽도 만두군요.”
“네. 아무래도 과거 소각주님의 요리를 맛보신 적이 있으신지라 꼭 오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놈 밥이 중독적이긴 하죠.”
“네. 아무래도……. 그 기묘한 음식은 소각주님만이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과거 진천희에게 밥을 얻어먹은 자들이 그 음식을 재현해 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그 맛 그대로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지 않았던가.
“허허, 참.”
제갈린의 웃음에 무력당주 독고중후가 말을 이었다.
“정사대전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들 그리 자유분방한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강호 아니겠습니까.”
제갈린의 말에 무력당주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요. 그래서 그동안 혈채는 얼마나 받아내셨습니까?”
“글쎄요. 이제 절반 정도 받아낸 것 같습니다.”
절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허나, 다른 이도 아니고 제갈린이 말하였으니 정말로 딱 절반이리라고 독고중후는 생각한다.
문득 안대 밑의 눈이 아파왔다.
그때 그를 지키기 위해 눈 한쪽을 내준 이후로 이렇게 가끔씩 눈 속이 찌릿찌릿 당겨왔다.
“계속하실 겁니까? 혈채를 받아내는 일 말입니다.”
“그건 저도 모르겠군요. 상황을 봐야겠죠.”
“…….”
강호는 그리 말한다.
혈린광살이 백린의선이 되면서 옛일은 잊었다고.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제갈린은 은원을 잊지 않았다.
다만 그게 얼마나 덧없는지 깨달았을 뿐.
제갈이라는 성이 붙는 순간, 직계뿐만 아니라 방계까지, 핏덩이인 갓난아이까지 찾아내 죽이던 그 시절을 잊지 않는다.
고작 세 살 아이도 제갈이라는 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목이 잘려 죽었다.
어린 제갈린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만 했던 마을도 있었다.
돌아온 제갈린은 불타는 마을을 한참을, 아주 한참을 바라보았다.
추적자 때문에 나무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제갈린이 분노하며 밖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어린 제갈린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불타는 마을에 불이 다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이미 죽은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겠나.
그저 생명이 있었던 그 자취가 다 꺼져갈 때까지 어린 제갈린은 몸을 웅크리고 추적자들이 포기할 때를 기다렸다.
어려도 제갈은 제갈이라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간 것 같다며,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라며 추적자들은 욕을 했다.
꼬마 제갈린은 그냥 그 욕을 들었다.
저자들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스무 명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화전 마을.
관아에 기록도 안 되는, 그야말로 세금이 가혹하여 피해 온 양민들의 마지막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거기가 불탔을 때 어린 제갈린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런 선한 사람도 휩쓸려 죽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했으니까.
하지만 가슴으로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슴으로 알게 된 것이 그때였다.
‘하루만 더 머물고 가고 싶었지. 하루만 더.’
그 풍경이 좋아서, 그 사람들이 좋아서, 몸이 너무 아파서, 도망자 생활까지 겹치니 병이 더 악화되어서.
조금만 더 있자, 조금만, 더 있자.
어린아이가 응석을 부린 결과가 이것이었다.
불타는 마을.
토끼라도 잡아 밥값은 하고 가려고 했다.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제갈린은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불탄 마을이 재만 남을 때까지 어린 제갈린은 그 광경을 끝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양민들의 마지막 곡식 씨앗까지 다 타고 나서야 제갈린은 그제야 현실을 인정했다.
추적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연후에, 그제야 제갈린은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불탄 잔해를 치우고 사람들의 시신을 끌어냈다.
장례까지는 치를 수 없었다. 다시 도망가야 했으니까.
이렇게 묻어주는 것만으로도 추적자들이 다시 돌아와 제갈린의 자취를 찾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들을 묻어주어야 했으니까.
그때 키가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소원.
마을 사람들 주검을 끌고 가기가 너무 힘들었으니까.
제갈린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 나날들을.
그들이 한때 무림 공적이라 칭하며 누명을 씌워 제갈세가의 씨앗은 한 톨도 남겨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나날들을.
사파만 그 짓을 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를 백도라 칭하던 정파까지도 그 짓에 가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동시에 그의 아비인 가주가 자신을 가지고 했던 실험들도 용서치 않았다.
아버지는 무언가에 쫓기듯 실험하고 있었다.
친아들까지 희생시켜 이루어야 할 실험.
죽은 아버지가 결국 무엇에 쫓기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여전히, 여전히.
세상에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자국들이 있다.
그중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핏자국이다.
그 분노를 이해하고 있는 독고중후가 말했다.
“그래도 제자를 들이고 살 만한 것 같으니 이 늙은이가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저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즉답.
독고중후도 구태여 반박은 하지 않는다.
눈앞의 제갈린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이 맞았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소리 소문 없이 멸문하는 세가들이 그때의 그, 세 살 아이까지 찾아내 죽여 왔던 그 세가들 중 하나였던 게 마음에 걸릴 뿐.
증거는 없다.
멸문한 사유들 대부분이 본인 욕심에 본인이 빠져 멍청하게 자멸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왠지 걱정은 되었다.
“……가주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요. 그러면 소신은 이만 나가고자 합니다.”
“그러시지요.”
주군의 명이 떨어지자 독고중후가 서재 밖으로 나간다.
드르륵-
문이 닫히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유호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군요. 천목당(天目堂)을 만든 후 운영이 원활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천목(天目).
하늘의 눈.
일종의 백린의각 산하 정보기관이다.
그것을 무력당주가 겸하고 있다.
제갈린은 부채를 탁 접었다.
“저분이 없었던들 지금 내가 살아 있지도 못했겠지.”
“은인을 이렇게 부려 먹어도 되는 겁니까?”
“무얼. 저분도 좋아서 저러는 것일세.”
정말 그럴까?
자신이 아무리 인간에 대해 잘 모른다 하여도 만성피로가 뭔지는 알고 있다.
과로로 사람을 굴리면서 뻔뻔하게 이것은 쌍방합의다 주장하고 있는 악덕 상사를 유호는 질린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나저나 우리 희의 만두에 관심이 다들 많군그래.”
“그건 그렇지요. 강호에 피 대신 요리로 회자되는 일은 드무니까요.”
“그렇지. 그러니 기왕 이렇게 된 것. 판을 제대로 만드는 게 더 즐겁지 않겠나?”
그리 말하는 제갈린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 * *
한 달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드디어, 그 문제의 만두 대결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허! 왕씨! 대체 이 먼 길을 어찌 온 건가?”
“말과 경공으로 왔지 어찌 왔겠나. 소문 듣자마자 출발했네.”
식도락 강호인들은 죄다 집결했고, 돈 좀 있다는 파락호들은 표사들을 고용해 백린현으로 왔다.
“껄껄껄. 심 학사, 오셨는가?”
“만 학사도 왔구만. 장 학사는?”
“그 친구는 이미 자리까지 잡아 놨다네.”
진천희에게 일광이라는 별호를 지은 세 호사가들도 와서 이 강호 최대의 식객 이벤트에 참전했다.
“백린군은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길이 참 깨끗하더구만.”
“길만 깨끗한가. 도둑놈들도 확실히 줄었지.”
“사파들이 죽을 맛이라고 하던데 진짜인 모양이군.”
백린군의 치안은 다른 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덕분에 시간이 남는 양민들도 잠시 일을 멈추고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오, 슬슬 우리를 알아보는 무인들도 있구만.”
몇몇 무인들이 학사들에게 눈인사를 했다.
이 학사들이 지은 별호가 강호에서 유명해지기 때문.
기왕 괜찮은 별호를 얻기 위해서는 이 호사가들에게 잘 보일수록 좋다.
그리고 이 호사가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인물이 바로 일광.
이번에도 무슨 일을 칠지 궁금해했다.
“이번에 일광이 패배하면 무슨 별호를 붙일지 이미 정했다네.”
“호오, 심 학사, 아주 그냥 독하구려.”
“독할 것까지야. 이런 게 또 우리 같은 호사가들의 사는 낙 아니겠나.”
“허허허허. 그것도 그러네. 거기다 상대는 천하제일 숙수 대회 우승자이네. 일광도 쉽지 않겠지.”
“어디로 가면 되나?”
“야외 특별 요리장이네. 구경꾼이 많아서 결국 밖으로 나왔네. 표를 사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먼저 간 장 학사가 우리 것까지 사왔다네.”
“다행이군. 다행이야.”
문득 사람들이 대나무 꼬치에 튀김만두를 잔뜩 꽂아서 들고 가는 게 보였다.
심지어 그중에는 꼴뚜기로 보이는 놈 속에 새우와 고기를 잔뜩 채워 파는 것들도 보인다.
꿀꺽-
간장 향에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