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46
제 846화
그렇게 후원, 대나무 숲 정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소리를 먹고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막는다.
“백린의각은 이런 곳이 은밀하지요.”
“방에서 대화해도 좋았을 텐데 이곳에 데려온다는 것은 여차하면 도주라도 할 생각이라 그런 건가.”
“아니요. 그냥 바람 쐬고 싶어서.”
진천희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답했다.
“…….”
“…….”
진짜로 바람 쐬고 싶어서 나왔다.
노괴님들 다들 한잔씩 걸치시느라 술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기도 하고.
연회를 끝냈지만, 사실 안 끝났다.
어르신들이 밤새 술을 더 퍼마시겠다고 하시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모처럼의 연회인데 술 먹지 말라는 소리는 차마 못 해서 그냥 나왔다.
“그나저나 과연 명불허전 제갈가의 만두더군. 대대로 이어져오는 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네.”
“과찬이십니다.”
진천희는 예를 표해 정중히 답했다.
‘역시 제갈세가의 만두 비법을 노리고 온 건가? 절대 그건 안 되는데. 이놈.’
이윽고 철산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이길 것이네.”
“얼마든지. 대신 위생을 좀 더 신경 쓰신다면 도전을 받아들여드리지요.”
그놈의 손맛.
진천희의 말이 재미있었는지 철산은 와하하하 호탕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천기가 거의 부서진 것을 알고 있나?”
이건 진천희도 예상 못 한 한마디.
이놈, 평범한 만두 장인은 아니었는가.
진천희의 눈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천기순행. 철산 대협이 그곳에 속해 있는 거였군요.”
철산은 씨익 웃었다.
“천기순행의 하나. 팔선의 한 명인 종리권의 계파를 이어가고 있는 종리철산이라고 하지.”
“종리철산!”
무협 소설 중에 주인공이 탈각하여 선계까지 올라가면 보통 가장 먼저 만나는 게 무당파의 장삼봉 어르신.
장삼봉 어르신을 투선으로 만나서 한 수 겨루고, 그다음 자주 보는 게 팔선 중의 하나인 종리권.
보통 종리권은 투선 쪽으로 등장하는 일은 별로 없다.
도교 팔선.
유명한 여덟 신선들.
그중 종리권은 뚱뚱하고 파초선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의 후계가 있을 줄은 몰랐다.
“종리세가……하고는 관계가 없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대협의 성씨는 강호에 알려지지 않긴 했습니다만…….”
종리세가.
강호 팔 대 세가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세력을 보유한 세가였다.
그리고 그들은 팔선 종리권의 직계라고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괴력혈봉 철산의 경우.
그의 성은 철(撤)씨로 알려져 있다.
즉, 종리씨인 것을 숨기고 다녔다는 의미!
“그쪽이 방계일세. 적통은 내 쪽이지.”
가문의 비사, 뭐 그런 건가?
진천희가 빤히 바라보자 철산이 말했다.
“복잡한 사정이 있으니 묻지 말게나.”
그래 뭐, 있나 보다.
“그러면 정체를 숨기시려고 요리를 하시는 겁니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신선이신 종리권 조사님은 식신으로도 유명하시지. 그래서 그분의 진전을 제대로 잇기 위해서는 요리를 수행해야 하네.”
그런 비밀이?
“그래서 천기순행에서 저에게 무슨 볼일이시죠? 그렇지 않아도 일전에 또 천기순행에서 암살을 하겠다고 찾아오셨었는데 말이죠.”
그랬다.
정의로운 도둑이 되어 탐관오리를 징죄하고, 이천 명의 살수가 날아와 살수대첩을 일으켰을 때.
그놈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 관아에 인계하던 그 당시.
천기순행의 노도인이 암살자로 찾아왔었다.
사마현에 의해서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천기순행은 마치 무림맹 같은 연맹일세. 그 내부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지. 그리고 천기순행에 속한 이들은 이제 전부 각자 서로의 신념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네.”
‘연맹체가 쪼개졌다는 뜻인가……? 그래도 위협적인 자들이지.’
저들의 수가 몇인지, 저들이 가진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저들이 천기순행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이유조차도 모른다.
혈선교와 대적하는 자들이라고는 하지만, 혈선교에 대해서 진천희가 아는 바가 거의 없듯이.
저들 역시 그 정체는 비밀에 휩싸여 있다.
“이미 천기는 완전히 흩어졌네. 지금은 순천(順天)이 아닌 혼천(混天)의 세계가 된 것이지. 그 결과…….”
진천희는 상대의 말을 기다린다.
“삼존이 움직일 것이네. 또한 은거해 있던 천기순행의 수행자들과 혈선교의 간부들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며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어 혼천도래(混天到來)의 상황이 펼쳐질 터. 때문에 그대가 어떤 인물인지 확인하러 온 것이네.”
“무엇을 위해서 확인하려는 겁니까?”
“손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서로에게 무기를 겨눌 것인가. 그를 확인하려는 것이네.”
동맹이냐 적대냐.
그것을 확인하고자 이곳에 왔다는 말.
‘만두는 눈속임이었나…….’
“물론 그것과 별개로, 만두 대결은 내 진심이었네. 하지만 이 정도로 실망하지 않아! 만두를 만들면서 무수히 많은 패배를 겪었지만 이윽고 극복하여 이겨냈으니까. 제갈세가의 만두 역시 반드시 내가 넘어 보일 것이야!”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투혼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진천희는 멍하니 바라본다.
‘아니. 이 인간 이 부분에서 왜 이렇게 진심인데?’
하지만 진천희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요리인으로서의 혼이 불탄다.
“그렇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미식의 길은 깊다.
“그런데 종리 대협.”
“철산이라고 부르게.”
“예. 철산 대협. 대협이 물론 절대 고수이긴 합니다만… 저희와 동맹을 논하기에는 세력이 없지 않습니까? 식객이나 저희 의각의 가신이 되신다면 모를까…….”
“아까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이지만, 천기순행에도 여러 가지 계파가 존재하네. 그리고 나는 팔선도(八仙圖)에 속해 있지.”
‘팔선도(八仙圖)? 맨 마지막 글자가 그림을 뜻하는 도 자(圖)……. 세력명이 팔선의 그림이야? 특이하네…….’
“그래서 그 팔선도를 대표해서 오셨다……. 이 말씀이시군요? 혹시 팔선도에는 팔선의 후계자들이 모여 있는 겁니까?”
“바로 그렇네. 우리 외에도 여러 세력이 있지. 곤륜산 그리고 양산박, 그 외에도 여러 곳이 존재해.”
곤륜산. 양산박.
진천희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
중국 사 대 기서.
봉신방, 수호지, 서유기, 삼국지.
혹자는 여기에서 수호지나 봉신방을 빼고서 금병매를 넣기도 한다.
왜 그런가 하니…….
금병매는 끝내주는 성인 야설이라서… 언급이 안 되는 때도 있다.
아무튼 그런 사 대 기서 중 하나인 봉신방에는 곤륜산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신선들의 집단으로, 봉신방에서 대전쟁을 수행하는 자들.
이 곤륜산이라는 이름은 특정 지역을 뜻하는 이름이면서, 동시에 세력의 명칭이기도 하다.
곤륜산은 도교의 신선들이 거하는 성산이라는 신화가 있는데, 그곳의 신선들이 모여서 싸우는 이야기가 봉신방, 혹은 봉신연의라고 부르는 이야기인 것.
그런 신화에서 따온 것인지, 현실에도 곤륜산맥이라는 실제 지명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세의 강호 문파이자 도교 문파인 곤륜파가 바로 이 곤륜산맥에 자리를 잡은 채로 자신들이 그 전설상의 집단인 ‘곤륜산’의 후예라고 자처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전설상의 신선들의 세력인 곤륜산을 자처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곤륜파와 무슨 관계일까?
아예 관계가 없는 건가?
아니면 비밀스러운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긴, 혈선교 놈들도 보면 봉신방의 금오도 같은 느낌을 주니까. 애초에 십천군이라는 게 금오도의 절교 계파고…….’
진천희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다음 집단으로 생각을 이어나갔다.
양산박!
사 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에 보면 양산박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다만 곤륜산 쪽과 다르게 이쪽은 신선은 아니다.
그럼에도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긴 하지만.
무협 소설에 따라서는 녹림의 시조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존천마에서는 원전 쪽을 따라가는 것 같다.
‘서유기 쪽의 집단도 혹시 있는 거 아냐?’
사 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
서유기는 그 유명한 손오공이 나오고, 삼국지야 말해 봤자 입이 아프지.
진천희는 무협 소설에서 보통 곤륜파가 어떤 식으로 등장하는지 떠올렸다.
그리고 진천희 자신이 발을 디디고 선 이 이세계에서 곤륜파는 어떤지도.
‘그러고 보니… 곤륜파. 정파임이 분명하지만 무림맹에 속해 있지는 않아. 그리고 대외적인 활동도 대단히 뜸하고. 애초에 화 제국에서도 변방 끄트머리 쪽 지역인 곤륜산맥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거라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진천희는 저들이 대체 무엇을 하는 자들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앞의 인물에게 다시 집중했다.
“금시초문이군요. 제 견문이 보잘것없어서 그런 듯합니다.”
“하하하, 겸손도 대단하시군. 자네라면 이미 내 몇 마디 말만으로도 단서를 잡기 시작했을 텐데?”
양산박과 곤륜산.
그것도 천기순행에 속해 있는 집단이다.
평범한 이들일 리가 없다.
“우리들은 속세의 일에는 관여치 않으니까. 이권 분쟁 같은 일 따위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니 사람들이 우리를 알 리가 없지.”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못할 게 뭔가? 나만 해도 강호에서 십 년간 만두를 만들어 팔면서 돌아다녔지만, 강호에서 괴인 취급이나 받을 뿐 속세의 흐름에 영향을 준 적이 없다네.”
하긴 그랬다.
괴력혈봉 철산.
이자가 강호의 고수이긴 하지만, 과거 비동 사건이나 이후의 굵직한 강호사의 사건들에 개입한 적은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천기순행이라 말했던 낭인왕도 마찬가지.
다들 강호에 존재하지만, 큰 흐름에는 관여치 않았다.
“말이 길어졌군. 그래서 자네를 찾아온 것은 동맹을 제안하기 위해서네.”
진천희는 가만히 철산을 응시한다.
“동맹……입니까?”
“그렇네. 천기가 이미 깨어진 마당에 세상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대와 손을 잡는 게 낫다는 게 우리 생각이니까.”
“다른 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한다고 합니까?”
“양산박은 지켜보며 혈선교와만 싸우겠다고 하더군. 곤륜산은 그대를 제거하고 싶어 하고.”
별로 놀랍지 않다.
이미 이 목에 걸린 은원만 몇이던가.
누구 하나 죽이질 않았는데 원한만 쌓여 간다는 게 퍽 억울하면서도, 이 또한 강호의 이치라고 생각하니 또 덤덤하다.
“흐음…….”
“하루아침에 결정할 일은 아니겠지. 고민해 보시게나.”
철산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그런 그의 등에 대고 진천희가 급히 말했다.
“잠깐!”
“호오.”
벌써 결정을 내린 걸까?
기대감을 담아 돌아보니 진천희가 주섬주섬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이건 무엇이지?”
“휴대용 손 소독제입니다.”
“…….”
“이건 비누고요.”
“…….”
“깨끗한 수건도 준비했습니다.”
“…….”
“제가 이겼으니 앞으로는 요리 전에 꼭 손을 씻으십시오.”
“……방금 우리 인간계의 생사가 걸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자네 목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아니, 위생에 미친 겐가. 고작 손 씻는 것 따위를 말하려고.”
기가 차서 씨근대는 철산에게 진천희가 답했다.
“고작 손 씻는 게 아닙니다. 가끔씩 불결한 식당 하나 때문에 손님 열 명, 스무 명이 한꺼번에 의방에 실려 올 때도 많아요. 가난한 양민은 그냥 집에서 앓으려고 할 테니 더 많겠죠.”
“나는 그런 일은 없네.”
“단언하실 일이 아닙니다. 암흑 요리사. 빛의 요리사가 되십시오.”
‘손 안 씻고 요리하는 모든 숙수를 암흑 요리사라 부를 겐가. 이 미친놈은.’
허나 진천희의 눈빛은 한없이 맑고 깨끗했다.
“그런 거 한번 터지면 의방에 누울 자리도 없어집니다. 동네 의원 살려준다 생각하시고 손 잘 씻으십시오.”
음식 하나 잘못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
현대는 약도 많고, 여차하면 수액이라도 놔서 버티지만 이런 곳은 답이 없다.
의원의 사정까지는 모르는 철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내 뭐……. 좀 더 신경 쓰지.”
그 말에 그제야 환하게 웃는다.
이 사내가 웃는 미소에 마치 봄이 피는 것만 같은 환각이 보일 정도.
“감사합니다!”
“어째 자네는 천하보다 내가 손 씻는 게 더 중요한 듯하군.”
“그래서 강호에서는 일광이라 하지요.”
의원 속은 의원밖에 모른다.
특히 환자는 밀려오는데 손이 모자라서 미칠 것 같을 때, 그 절박함을 모른다.
숙수인 철산은 그런 진천희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 사람에게 만두보다 중요한 것이 뭔지는 확실히 알 것 같긴 했다.
‘역시 활인인가.’
요리하기 전에는 꼭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겠다.
‘하지만 역시 말을 섞을수록 좀 미친놈 같긴 하군.’
일광은 일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