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47
제 847화
철산은 그렇게 돌아갔다.
진천희는 철산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천기순행자, 혈선교, 심지어 삼존까지.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고 있지만 어쩐지 누구 하나 양민의 목숨은 그리 신경 쓰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그랬다.
세계가 멸망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 전 단계인 혼세도 비슷하겠지.
결국 멸망하면 다 죽는 거 아닌가.
‘양쪽 모두 멸망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어 보이고.’
삼존의 성격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존인 천마님은 마찬가지.
그녀는 살아있는 마(魔) 아닌가.
중원을 숱하게 피로 물들인 자가 이제 와서 생명 존중, 인권 보호…… 뭐 그런 걸 들고 올 리가.
그렇게 정자로 돌아가는데 낯익은 인영이 보였다.
“엇, 스승님?”
“재미있는 상황이로구나. 희야.”
‘기척도 없이? 대체 언제부터 지켜보신 거지?’
진천희가 놀라서 숨을 삼키는데 스승님은 마치 그의 마음속을 읽고라도 있는 듯 답했다.
“이곳은 내가 직접 구축한 진법이 있는 곳이지 않으냐? 내 기척 하나 지우는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오오! 역시 우리 스승님.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스승님, 다 들으셨어요?”
“그렇단다. 곤륜산의 존재는 이 스승도 알고 있었지만……. 양산박과 팔선도는 처음 듣는구나. 후후.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다니. 즐겁지 않으냐?”
스승님의 입가에 미소가 머무른다.
반면 진천희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담겨 있었다.
“저는 좀 무섭습니다.”
“그러냐? 하긴, 너는 많은 것들을 지키려는 자이니 무서울 테지.”
“스승님은요?”
“나는 한 사람만 지키면 된단다. 정확히는 육체가 아닌 정신.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지.”
그리 말하며 차분히 제자를 내려다본다.
진천희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래서 스승님. 팔선도의 동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단 받아야지. 그렇지 않다면 저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지 않으냐. 숨겨진 흑막들, 세력들.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저들과 손을 잡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게다.”
“말뿐인 동맹이라도 하는 게 좋다는 건가요.”
“이미 네 안에서 답이 나왔을 텐데 망설이는 이유지.”
맞았다.
진정한 의미의 동맹은 아니다.
서로 신뢰를 가지고 있는 관계도 아니고.
그게 최선이라는 것은 진천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택이 어렵다.
아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죽는 사람이 많아질까 봐.
그 중압감이 의원을 둔하게 만든다.
“정답은 없단다. 희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할 뿐이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올라온 곳이 너무 높아서 경치에 눈을 빼앗기고 마는군요.”
“네 녀석은 올라갈수록 보이는 풍경 모두를 지키려는 놈이니 더욱 그렇겠지.”
탁-
제갈린이 부채를 접었다.
“그래서 어찌할 것이냐?”
“…….”
진천희의 푸른 눈이 빛났다.
* * *
팔선도.
그들과 백린의각이 동맹을 맺기로 했고, 철산은 알았다는 전갈을 보냈다.
이후.
팔선도에 속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진천희를 초대한다고 말하고서 노점 마차를 끌고 사라졌다.
그렇게 별거 아닌 듯했지만 큰 사건 하나가 지나고.
진천희는 평온하고 안온한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 천우 잘한다!”
“형이…… 더 잘하고 계시잖습니까!”
천우는 진지하고 굳은 얼굴로 좌측 손바닥을 펼쳐냈다.
무당파의 절학 태극면장!
동시에 우측의 손은 수도를 세워 휘둘렀다.
무당파의 또 다른 절학인 태청산수!
동시에 서로 다른 절학이 양손에서 쏟아진다. 그야말로 양의신공이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모습!
그러나.
그에 맞서며 칭찬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진천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천희의 한쪽 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고, 다른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었으니까.
휘리리릭!
채찍은 마치 살아 있는 촉수 혹은 교활한 뱀처럼 춤을 추었다.
동시에 부채를 활짝 펼쳤다가 순식간에 접으면서 내공을 담아 무거운 일격을 가해온다.
서로 다른 초식이 더욱 어지럽게 얽혀 들어간다.
그 화려한 변화에 천우는 뇌수가 타들어 갈 것만 같다.
상대의 공격을 이성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워서 본능적으로 방어 초식을 사용해 막아내는 게 전부일 정도!
“셋째 형도 독하네~”
그리고 그 대련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
사마현은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구슬땀을 흘리며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었다.
진천희가 특별히 만든 데드리프트 기구!
애초에 데드리프트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진천희는 이 운동이 어떻게 신체에 좋은지만 말하고서는 사마현에게 시켰다.
사마현에게는 질 좋은 근육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나?
게다가 화경의 고수에 이른 사마현을 위해서 데드리프트에 올라가는 금속의 무게 역시 어마어마했다.
일전 천 근을 복부에 올린 채로 브릿지 푸시업을 하던 것에 비해서도 더욱 무거운 무게.
이것이 요새 세 명의 오전 일과였다.
대련 혹은 외공 수련. 그리고 수련이 끝나면 땀을 씻어내기 위해서 온천욕을 하러 간다.
그 이후에는 각자 할 일을 한다.
사마현은 유가밀공을 비롯한 자신이 생각하는 무공을 수련하고, 천우는 천룡공을 수련 중에 있었다.
진천희는 목욕 후 옷을 갈아입고서는 바로 의각의 진료를 보러 간다.
스승인 제갈린이 돌아와 있기에 이제 서류 작업이 아닌 의원으로서의 업무를 보기 시작한 것.
수술도 하고 연구각도 들르고 유호에게 가끔 멱살도 잡히고.
저녁에는 모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잡담을 나눈다.
‘두 녀석이 의각에 와있으니 즐겁다.’
하륜이도 왔으면 좋겠지만.
삼존 중의 하나인 마존 역시 움직이게 되었으니 여하륜도 더욱 바빠질 터.
‘천마가 알아서 등선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소교주들은 어떻게 해야 천마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정상적인 인계가 아니라 직접 그 손에 피를 묻히려는 소교주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삼존이 과연 죽일 수 있는 존재이긴 할까?
이윽고 진천희는 고개를 젓는다.
평안하고, 평안한 일상.
몇 없는 이런 귀한 시간에 걱정을 사서 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그리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잘 지내고 있겠지.’
진천희는 고민하다가 하륜이에게 쓴 장문의 안부 서신과 선물을 포장해서 마교의 위장 분타에 보냈다.
매운맛을 담은 빨간 별사탕.
붉은빛이 마치 밤하늘 천살성과 닮았다.
부디 이 맛이 전해지기를.
048. 진주언가’s 사망 유희
사마혜, 사마현, 무월, 천우, 가월, 진천희, 쟈시까지.
이 일곱 사람은 오랜만에 모여서 식사를 했다.
특히 쟈시는 원래도 중원어를 잘 알고 있었는데 의각 사람들과 친해지니 거의 현지인 수준으로 유창하다.
“요즘 점 봐달라는 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소.”
의각 유일의 샤먼이란 그런 법이다.
새외에서 온 사람.
그것도 온몸에 문신이 있는 주술사라면 보통 어딜 가나 꺼리기 마련인데, 의각은 점 봐달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워낙 기이한 자들이 많다 보니 다들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모양.
애초에 소각주부터가 제정신이 아니지 않나.
다들 적응한 거지.
진천희가 물었다.
“쟈시는 점 잘 봐요?”
“그다지. 하지만 기어이 봐달라고 하더군.”
“다들 미래가 궁금한 거죠.”
그리 말하며 혜아는 취기 없는 복숭아술을 꺼냈다.
알코올 없는 그냥 단술이다.
진천희는 처음 한 모금 삼키고 ‘쥬시쿨? 쥬시쿨이 중원에 왜 있어?’라고 말할 정도.
천우가 형 밑에서 수련하면서 양조장을 빌려 틈틈이 만들었는데 어째 지구 고향의 맛이 났다.
진천희는 고향의 향수가 느껴지자 행복해졌다.
그러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떡볶이를 만들었다.
치즈까지 얹어서 만든 떡볶이는 복숭아 감주와 딱 맞았다.
‘역시 한국 고추가 아니라서 그런가. 그 맛이 안 나는데?’
이상했다.
동네 떡볶이집도 결국 중국산 고춧가루 쓰지 않던가.
국산 쓰는 분식집 거의 못 봤는데?
중국과 중원은 역시 다른 곳인 걸까. 역시 행성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지 싶었다.
그 맛이 안 나서 눈물을 흘리던 찰나.
사마현이 비장의 백색 가루를 들고 왔다.
마법의 가루.
MSG.
중원에서 MSG를 발명하고도 객잔 망한 분이 금혈방에 있다고 했던가.
거기서 공수해 온 마법의 가루를 넣으니 좀 더 그 맛이 났다.
고춧가루가 다르니 여전히 좀 맛이 다르긴 하다.
그래도 마라와 춘장, MSG를 이용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떡볶이가 나왔다.
중원식 떡볶이!
어묵은 심지어 도미살을 튀겨서 만든 어묵!
면은 생면이다!
‘하, 죽어도 그때의 쌈마이한 맛은 안 나는구나.’
재료가 좋으니 결국 돈 부은 고급진 맛이 나버렸다.
그래도 천우가 만든 쿨피ㅅ… 아니 복숭아 감주가 있어서 행복하다.
“점은 보통 무슨 점을 많이 봐요?”
사마혜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본다. 쟈시가 답했다.
“연애운.”
“쿨럭!”
진천희가 말했다.
“우리 의각에서 연애를 할 시간이 있다고요? 대단한데.”
눈에서 푸른빛을 뿜는 악랄한 고용주를 향해 쟈시가 말했다.
“워워, 진정하게. 사람의 마음이란 게 마음대로 되던가. 그리고 바쁘더라도 연애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지.”
“그렇군요.”
“그다음이 아들, 딸 장가 운 많이 보고. 의외로 금전운은 안 보더군.”
사마혜가 말했다.
“우리 의각 돈은 많이 주니까요. 젊을 때 십몇 년 빡세게 벌고 귀향하면 그걸로 평생 먹고살고 남으니까.”
가월이 말했다.
“아아, 그래서 상의원 달고 좀 있다가 고향 있는 분타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는 거구나?”
“완전히 놀면 또 집에서 안 좋아하잖아. 농사일하기 싫으면 뭐라도 해야지.”
이런 농촌 사회에서 구성원 하나가 놀기 쉽지 않다.
설령 돈 많이 번 물주라고 하더라도 부모님 눈치에 소일거리라도 하기 마련.
그래서 분타 의방으로 옮기지.
사마혜가 말했다.
“물론 고향을 바꿔 보고 싶어서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백린의각 연구당은 단순히 약뿐만 아니라 작두펌프 같은 기묘한 물건도 제작하고 연구한다.
이곳에서 신문물을 배워 와서 고향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의원도 있다.
“너도 월봉 떼다가 항주에 글방 열었지?”
가월의 말에 사마혜가 얼굴을 붉혔다.
“돈 많이 벌어 뭐에 쓰겠어. 헤헤헷!”
사마혜도 항주에 자신처럼 가난한 애들을 위해 글방을 열었다.
서원이 아니라 글방인 것은 유교보다는 산술 같은 학문을 좀 더 가르치기 때문.
장원 급제가 목적이 아니라 의각이나 상단, 세가에 취직하는 게 목적인 곳이다.
어찌 보면 그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없는 애들이 십 년, 이십 년 과거 준비를 하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타고나길 뛰어난 머리가 있으면 모르겠다.
허나, 대다수는 동네에서 똘똘하다는 소리 듣는 수준.
물론 그것도 대단하지만 과거 시험에 붙는 건 차원이 다르지.
지방에서 열리는 향시조차도 얼마나 많은 낙방자들이 있던가.
옛날 고시 골목이 생각났다.
고시 공부 뒷바라지하다가 많이들 허리가 휘어졌다.
‘여기라도 다를 건 없지.’
행복이라는 게 꼭 입신양명해야만 오는 게 아니다.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이지.
그나저나 사마혜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을 줄이야.
진천희도 뭔가 도울 게 없는지 물어보니 사마혜가 웃었다.
“백환후 애들이 와서 글방 도와주고 있거든요. 괜찮아요.”
어떤 선의는 또 다른 선의를 낳는다.
인간의 좋은 점이다.
진천희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내가 의원이 된 이유를 이제 다른 이들도 느끼게 되겠구나.’
그때 유호가 기척을 냈다.
들어오라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소각주님, 사절이 왔습니다.”
“사절?”
“진주언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진주언가면 강시공?
‘오오오! 무슨 일이래?’
강시.
고작 두 글자에 가슴이 뛰었다.
진천희 눈이 꼬마전구처럼 빛나자 그 모습을 유호가 빤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