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5
제 85화
준비 동작 없이 하는 기본 출수.
콰아아앙!
나무가 산탄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단순히 부러뜨린 게 아닌 내부에서 터뜨렸을 때 나오는 충격.
내가중기를 완벽하게 다루어 적의 몸속에 밀어 넣을 수 있음을 뜻했다.
절정 고수의 증거였다.
‘가능해. 이 정도면 가능하다.’
상단전까지 뚫린 기맥을 따라 내공이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듯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즉, 더는 형태에 구애받지 않게 된 셈이다.
“좋아. 이다음은 그분께 신세를 져 볼까.”
주왕 전하.
진천희에게 신세를 졌다 말씀하셨던 그분이다.
문제는 단 하나, 뵙기 전에 뭔가 입긴 해야 하는데 알몸으로 가서 옷을 살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 * *
진천희는 백린의각과 연이 있는 산 아래 마을이 아닌, 좀 더 먼 곳에 있는 마을까지 경공으로 내달렸다.
어느 마을이 백린의각과 연이 있고, 또 어느 마을이 다른 의각과 연이 있는지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래 봬도 백린의각의 소각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을에 알몸으로 들어서니, 문지기가 창으로 진천희를 막았다.
그러고는 알몸인 진천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혀를 쯧쯧 찼다.
“어디 산적에게 뜯기기라도 했나.”
진천희는 개방에서 만든 가짜 호패를 꺼내서 문지기에게 건넸다.
“천견(天犬)?”
개 견 자다. 성까지 합치니 하늘 개.
‘설개 누님, 장난이 너무하십니다.’
호패는 획수가 적을수록 위조하기 유리하다며 획수를 줄이고 줄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들어가게. 거 얼굴도 잘생긴 양반이…… 쯧쯧쯧.”
개방 방주, 설개 누님의 말대로 큰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진천희는 얼굴을 붉히며 그대로 포목점으로 향했다.
“어맛!”
“뜨헉!”
잘생긴 미청년의 알몸은 훌륭한 주목거리가 되었다.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수 없었다.
‘죽어야지. 내가 만년화리 잡고 나서 죽어야지.’
진천희는 자살을 결심하며 포목점 안으로 들어갔다.
“옷 좀 주십시오.”
“쯧쯧쯧, 요즘 산채 놈들은 참 악랄하군. 아주 속곳까지 싹 가져갔네그려. 옷 살 전냥은 어디서 빌리긴 했소?”
다행히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산채에 뜯긴 불쌍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이 근방 산채 놈들이 악랄하다는 뜻이었지만 지금의 진천희에게는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다.
돈을 꺼내서 값을 치르고, 진천희는 옷을 갈아입었다.
“네. 부탁드립니다.”
“거 그래도 얼굴이 반반하여 때리진 않은 모양이니 다행이오. 처맞고 골병으로 가는 것보다 속곳까지 싹 털려 버리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소?”
위로까지 해 주신다.
“……감사합니다.”
진천희는 그렇게 옷을 구했다.
푸른빛의 청포 덕분에 청수한 인상에 귀티까지 났다.
포목점 점원들이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과거 운룡표국에서 선물받은 북해 산호 장식을 꺼내 머리에 꽂았다.
“몰라보겠구먼. 허허허.”
“좋은 옷을 꺼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아니네. 작년에 일 떠난 내 아들 같아서 좋았네. 거기다 나야 뭐 제값 받고 옷 팔았으니 된 거 아닌가. 옷이 주인을 만났군그래.”
점주의 말에 점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공자님 진짜 잘생기셨네요.”
“평생 본 손님들 중에서 공자님이 제일 멋져요.”
진천희는 눈꺼풀을 접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 동네 정말 인심이 좋구나.’
원래부터 빼어났던 원판에 환골탈태까지 이루어진 미모가 환하게 빛났다.
혼이 나갈 것 같은 아름다움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
반면 진천희는 생각했다.
알몸이어도 내쫓기는커녕 동정을 해 주니 참 좋은 곳이라고.
진천희는 깊게 포권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좋은 물건을 팔아 준 포목점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옷을 갖춰 입은 진천희는 그대로 개방을 찾았다.
“거 귀티 나는 공자님께서 이 거지굴에는 무슨 일이시오?”
허리에 세 개의 매듭이 있는 거지, 즉 삼걸개가 진천희를 맞이하러 왔다.
‘타구봉을 휘두르면서 냅다 호통을 칠 줄 알았는데 한 번은 물어보네.’
진천희는 대답 대신 패를 하나 꺼냈다.
천견(天犬).
가짜 호패다.
“이걸 대체 왜…….”
“주왕야님께 서신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표사인 줄 아시오? 내 참. 그리고 호패는 무슨…….”
삼걸개는 호패를 한참 보다가 뭔가 미심쩍은 걸 발견했는지 손이 굳었다.
“잠시, 잠시만…….”
그는 움막으로 호패를 들고 들어갔다. 안에서는 호통 치는 소리가 울렸다.
“설마 방주님께서……!”
이윽고 눈에 피멍이 든 삼걸개가 움막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서신을 주십시오. 이 거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로 전해 드리겠습니다요.”
무엇에 쓰려는 건지, 진천희가 누구인지도 묻지 않았다.
그저 이 위조 호패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을 뿐.
진천희는 생각했다.
‘개방 기강이 생각보다 단단하구나.’
선대 방주께서 설견의 뒤통수를 딱 소리 나게 때리며 넌 아직 개방을 짊어지기에는 멀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진천희는 미리 준비한 서신을 건넸다.
삼걸개는 깊게 허리를 숙였다.
“이틀 안에 도착할 겁니다. 그동안 귀인께서는 좋은 곳에서 쉬시지요. 안내하겠습니다요.”
진천희는 개방에서 마련한 객잔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장 크고 깔끔한 방이었다. 할 일도 없어서 아픈 개방도 몇을 치료하니, 대접이 더욱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 의원은 귀하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누군가가 객잔에서 진천희를 찾았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키가 훤칠한 사내가 서 있었다.
평상복을 입고 있었으나 등이 곧고 걸음걸이가 씩씩한 것이 아무리 봐도 무인 같았다.
“혹시 천견 공자가 여기 있소?”
“접니다.”
그는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보자기 꾸러미를 건넸다.
“은밀히 전하라 지시하셨소. 조심히 들고 가시오.”
이미 이 과정이 은밀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천희는 이 사람이 절대 도산검림에서 칼밥 먹어 온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관아에서 녹을 먹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울 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는 개방 소속의 객잔이라는 것 정도.
진천희는 잠자코 포권을 했다.
‘스승님이 누워 계셔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짓도 며칠 더 하면 백 프로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호가 스승님의 눈과 귀를 잘 가리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객실로 돌아가 보자기 꾸러미를 여니 마패가 들어 있었다.
역참을 이용할 수 있는 마패다.
자유롭게 말을 빌려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셈이었다.
그리고 짧은 서신도 들어 있었다.
붉은 비단 위로 먹빛 한자가 호쾌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어디 한번 마음껏 놀아 보거라.
짧은 한 줄.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긴 한데 조금 무서운걸.”
마패의 무게가 어쩐지 천 근처럼 무거웠다.
* * *
보통 무림에서 개방은 그 방도의 수가 십만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진천희는 지존천마에서 개방도의 숫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을 읽은 적 있었다.
-천마라 하였소? 그대가 방주님을 죽인 걸 모두가 알게 되었소. 개방도 이십만 명이 지켜볼 것이오!
물론 이 미래는 빗나갔다. 진천희가 방주님을 살렸으니까.
여하튼 그 구절에 따르면 화 제국의 중원 개방도의 숫자는 십만이 아니라 이십만 명 정도 되는 모양이다.
강호에서 이 정도 숫자를 가진 조직은 단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하제일의 대방파가 바로 개방인 것이다.
그러나 개방이 천하를 지배할 정도는 아니다. 개방 소속의 거지가 이십만 명에 가깝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강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이들의 수는 일 할, 이만 명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공이라는 것은 고행이 필요한 것으로, 거지들 중에서 그걸 견뎌 가며 배울 수 있는 이들은 극히 적다.
애초에 무공을 배울 정도의 근골과 정신이면 보통은 다른 일이라도 찾지 거지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 할도 많이 쳐준 숫자.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개방도가 되겠다고 거지가 되는 이들보다 어찌저찌 살다가 망해서 거지가 되는 이들이 개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보통의 문파라면 어린아이 시절부터 무공을 교육받고, 문파의 정체성 역시 같이 교육받아서 문파에 매이게 된다.
그러나 개방은 노인도 가입하고, 중장년층도 가입한다. 그러다 보니 난잡하기 그지없어서 생각보다 통일성이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방도의 수가 이십만 명에 가까울 정도의 규모이기에 정사를 막론하고 누구도 적으로 두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다.
그런 개방의 방주를 구해 준 은혜라는 건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천희가 개방에 도움을 요청한 순간부터 아주 중요한 명령 하나가 내려왔다.
진천희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진천희의 요청을 모두 들어줄 것.
이런 명령을 내린 건 이유가 있었다.
관아의 관리들을 통해 진천희의 정보가 퍼진 것을 개방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딱히 어딘가에 매수가 되었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먹물을 먹는 관리 입장에서야 이러한 일이 무림에 어떤 파급을 줄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진천희의 행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뭐? 그 녀석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언제 의각을 나온 거야?”
“진정해라.”
“아니, 백린의선이 그렇게 붙잡고 안 놔주던데 그걸 뚫고 어떻게 나온 건지 도통 모르겠네.”
“크크크, 본디 제자란 그런 법이니라. 마음대로 크질 않지.”
그렇게 말하며 전대 방주 일걸은 자신의 제자이자 현직 방주인 설견을 바라보았다.
“영감, 거 그렇게 자꾸 남하고 비교하면 삐뚤어진다는 거 모르시오?”
설견이 툴툴거리자 일걸은 턱을 쓸었다.
“왜, 그 아이가 신경 쓰이나?”
“진천희 본인은 모를지 모르겠으나 이미 폭풍의 핵이잖소. 하오문의 은원도 어찌 될지 모르는 터에…….”
진천희는 두 가지를 남겼다.
첫째로 하오문도를 치료했다.
결코 치료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매독을 후유증도 없이 깔끔하게 치료해 낸 것은 전인미답의 경지였다.
둘째로는 하오문의 고(蠱)를 밝혀내 분타에 혈겁을 만들어 냈다.
주왕야의 분노는 쉬이 식지를 않았고 그 과정에서 하오문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분타주들과 문도들이 사망했다.
“크크크, 그런 거란다. 미친개야. 방귀는 지가 뀌어 놓고 걸리니까 성을 내는 격이지.”
“하지만 영감이 더 잘 알잖소. 사파의 생리란…….”
“그래. 세간의 상식으로는 가를 수 없는 법이지.”
“…….”
설견은 생각에 잠겼다. 먼저 입을 뗀 건 일걸 노사였다.
“주왕야에게 역참 이용 권한도 얻은 녀석이다. 아마 바쁘게 움직이겠지. 목적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쫓아가는 것도 어려울 게야. 그건 우리도 하오문도 마찬가지일 게다.”
결과가 어찌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