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77
제 877화
“그다음은 불. 강호인과 강호인이 충돌하면 필시 불이 나는 게 문제야. 흑도가 불을 지르든, 아니면 촛대가 엎어지면서 불이 나든. 그렇게 불이 나면 가난한 집은 싹 타버리지. 애초에 짚과 나무로 만드니까.”
가난이란 예전 사극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사극, 고전극은 가난한 사람을 비추지 않는다.
사료 역시 대부분은 있는 사람의 집과 있는 사람의 옷이 가장 많이 남는다.
간간이 풍속화가 남긴 하나, 그 또한 진짜 가난을 담기는 어렵다.
작은 마을에 모두가 제대로 된 집을 짓고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그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사이좋은 마을 광경을 떠올리기 쉽지만, 인간이라는 게 그리 마냥 착하진 않다.
그 작은 마을 안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나뉘더라.
백 명 겨우 사는 작은 마을에도 계층이 공고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한 집에서 살아가고, 부자인 사람들은 계속 대대로 부자인 집에서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인 사람들의 소작농을 하는 것.
그렇게 부자는 대대손손 소작농과 그의 자식들을 부려 먹으며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평생 뼈 빠지게 일을 하다가 죽는다.
그리고 불은 꼭 가난한 집에 붙더라.
부잣집 같은 재료로 집을 짓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커진 불은 가난한 집을 전부 삼키고는 나름대로 화재 대책을 한 돌과 기와로 이루어진 부잣집 장원도 같이 태워버린다.
그게 바로 불탄 마을.
강호의 신룡들이 자주 싸우는 배경이시다.
보통 강호인들은 거기까지는 신경 안 쓴다.
눈앞의 흑도, 또는 백도를 죽이는 데 신경을 집중하시지.
흑도는 방금 낸 불로 백도 대협의 움직임을 제한시켰다는 것에 만족하고.
백도의 대협님은 양민을 괴롭히는 모옷된 흑도를 죽이는 데 집중하지, 화재 구민까지는 신경을 안 쓰신다.
근데 더 엿 같은 게 뭔지 아나?
‘관아도 신경을 안 씀.’
윗놈들에게 어떻게든 잘 감춰서 자리나 보전하려고 바쁘다.
‘……구역마다 화재도 생각해서 집 배치해야겠다. 담벼락은 무조건 돌로 하고 나무는 금지.’
일종의 계획도시, 아니 계획 마을 도면을 차곡차곡 얹어가기 시작했다.
‘강호인들은 객잔 중심으로 움직이니까 객잔은 양민 거주지에서 먼 곳에 세우고 그쪽에 상업도 할 수 있게 해두어야겠네.’
‘표국은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 필연적으로 표국은 늘 마찰이 많아. 하지만 물류는 중요해. 미곡을 운반하려면 표국도 필요할 거야.’
‘하수도 정화 시설은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
‘소똥과 인분, 낙엽, 볏짚 등을 죄다 비료로 가공하려면. 집하지를 만들어야 해. 냄새가 심할 텐데 어디에 배치해야 위생적이려나.’
작은 진천희들이 일제히 저마다 조잘거리며 마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현원전단신공을 익힌 후. 이렇게 한 번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 편리하네.’
가끔은 기존의 자신이라면 결코 상상도 하지 못할 발상을 꺼내오기도 해서 편하다.
양의심공과 함께하니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그렇게 순식간에 대농지 하나가 완성되었다.
물론 이게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건 이제 진행하면서 계속 수정해야겠지.’
‘하지만 그만한 인력이 없는데.’
‘지금 백린군의 실업률은 엄청 낮지 않나?’
‘무인들이 있어. 걔들은 백수 많아.’
‘걔들이 삽 들고 토목을 할 리는 없잖아. 배달은 경신법 때문에 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렇다고 토목까지 무공을 미끼로 애들 불러들이는 것도 쉽지 않을걸?’
‘토목에 효율적인 무공을 창안하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
‘경공처럼 좀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형태의 무공이었으면 좋겠는데.’
‘결국 무공은 칼과 같은 거야. 누군가는 그걸로 사냥을 해서 사람을 살리지만, 또 누군가는 그걸로 사람을 찔러 죽이니까.’
‘……그만.’
진천희가 명령하자 조잘거리는 소리가 일제히 멈춘다.
“주왕야를 보러 가야겠다.”
쓸 수 있는 인맥이 있는데 혼자 고민하는 것도 아깝지.
* * *
경공 수련도 할 겸.
세 의형제는 주왕부까지 전부 달리고 있다.
아우우우우!!
페이스 메이커는 황구다.
그런 황구 머리 위에는 뇌진이 무슨 배의 선수상처럼 앉아서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하, 뇌진 또 기분만 내내.”
“날기는 귀찮고 맞바람은 쐬고 싶을 때 황구 머리 위가 최고의 선택이긴 해요.”
“그래. 인생은 뇌진처럼 살아야지~”
사마현은 그렇게 삶의 교훈(?) 하나를 얻어갔다.
문득 진천희는 사마현이 생각보다 뒤처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천희는 그의 발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현이 너, 신공절학급 경신보법은 모르나 보네?”
“배운 적이 있어야지~ 황금신공은 경신보법은 약하거든. 가끔은 잡기술로 배운 토형보가 더 낫다 싶을 때도 많아.”
그 말에 천우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걸로 여태 생존했다고?”
“아이고, 천우 형님~ 형님께서는 뼈무당파 권제님 직계 제자셔서 숨만 쉬어도 무당파의 신공절학을 떠먹여 주겠지만요, 사파는 그런 거 없습니다요~”
‘신기하긴 하네. 현이가 그동안 고작 그 정도 경공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암살도 결국 황금신공이나 토형보로 해결해 왔다는 건데 그런데도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왔다는 건 결국.
‘현이가 천재는 천재구나.’
솔직히 많이 놀랐다.
“나야 현원전단신공의 특혜를 받아서 유사 천재(?)가 되었지만 현이는 그런 것도 없이 본인의 노력으로 저기까지 올라간 거잖아. 현아. 진짜 대단하다.”
그 말에 두 아우는 미친놈 보듯 형을 바라보았다.
“유사 천재는 또 뭐고 천재는 뭐예요. 형?”
“그냥 같은 소리 아냐?”
“아니, 나는 천재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진짜가 아니지. 진짜는 스승님 같은 분이시지.”
“형은 대체 뭐가 문제에요?”
“결국 그게 그거잖아.”
두 아우가 참다 못하고 결국 진실의 소리를 뱉었다.
미친 듯이 경공을 달리고 있다 보니 결국 성깔 나왔다.
“일단 휴식!”
진천희가 중간에 멈춰 섰다.
사마현은 제법 헉헉거리고, 천우도 그 몸에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어느 쪽이 더 지쳤냐 하면…….
‘역시 사마현 쪽이려나.’
그에 반해.
진천희는 지친 기색이 없다.
내공의 정순함과 양 때문도 있지만, 제갈세가의 독문 신공절학의 경신보법인 천기미리보를 대성했기 때문!
여기에 힘들다 싶으면 삼재보법까지 섞어가며 뛰니.
단거리, 장거리 양쪽 모두 빛을 발하게 되었다.
‘물론 황구 산책으로 다져진 덕이 크지.’
황구는 평소에는 동네 개들과 함께 산을 달리는 정도로 설렁설렁 산책하지만, 주인과 각 잡고 하는 산책은 지평선 끝까지 달려줘야 성에 찬다.
그 짓을 하다 보면 탈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천우는 경신보법 수련 좀 더 해야겠다.”
“그래야겠네요.”
“그리고 현이 너는…… 새로운 거 배우자.”
“내가 배울 만한 게 있긴 해?”
“있지. 천리신보 아니면 현극태보. 현극태보는 근접전 전용이라는 느낌이지만……. 도움 될 테니 둘 다 배워. 지금 상황에서는 천리신보가 확실히 도움이 될 거고.”
“오홍~? 형. 모르는 게 대체 뭐야? 걸어 다니는 무공 비고 아니야?”
“너도 황궁 비고 몇 번 들어가서 죽어라고 읽기만 하면 나 정도는 할 수 있어.”
진천희의 말에 천우와 사마현 둘 다 질린 표정을 짓는다.
‘가가, 읽는다고 그걸 다 외울 수 있으면 이 고생을 하며 살겠사옵니까~?’
‘형……. 우리는 강호인이에요. 학사가 아니고.’
아우들 속도 모르는 진천희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자. 그러면 구결 불러 준다?”
“지금? 당장?”
“응. 지금. 당장.”
진천희가 속눈썹을 내리깔고는 화사하게 웃었다.
사마현은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 라잇. 문제없어. 하자고.”
항주의 뒷골목에서 동생들을 보살피며 살았던 사마현.
오랜만에 그 독기를 다시 끄집어낼 때다.
* * *
‘하나의 호흡에 정(精)을 담으며, 일보에 천 리가 실리니. 몸은 바람처럼 가벼우며, 움직임은 구름보다 자유롭도다.’
입천장에 혀를 대고, 입은 다물고 있으나, 입술은 아주 작게 열려 숨을 내뱉는다.
코로 숨을 들이쉬며 내기가 움직이고, 동시에 두 다리는 천지를 횡단하는 용마처럼 내달렸다.
사마현은 땀을 흘리고 있었음에도.
부딪혀 오는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그간 경험하지 못한 속도 때문인지 모를 시원함에 마음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빠르다.
몸이 가볍다.
움직임 때문에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흘러내리지만.
그것마저 시원한 쾌감을 만들었다.
이것이 형 진천희가 보는 풍경과 감각일까.
왕왕!
황구가 즐겁다는 듯이 달린다.
이런 기분 때문에 개가 달리는 걸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잘한다. 우리 현이! 잘하네!”
보통 사람이라면 구결을 외우고 몸에 익히는 것에만 최소 한 달은 넘게 걸렸을 터.
거기다 나름대로 신공절학에 속하는 경공이니 기초부터 세 달은 닦아야 겨우 몇 걸음 뗄 수 있다.
그러나 화경이라는 절대 고수의 경지에 올랐으며, 천재과에 속하는 사마현은 불과 하루 만에 무공 구결을 전부 암기하고, 그것만으로도 삼 성의 경지까지 터득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 하늘이 내린 악당……이라는 건가.’
그만한 거악(巨惡)이 되려면 보통 재능으로는 안 된다.
언젠가 천마 여하륜을 대적하여 무찔러지는 게 정해진 운명이라고는 해도.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 많은 살겁들을 손에 묻혀야 하지 않나.
그의 적은 정사마 할 것 없이 어디에나 있었다.
모두가 그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살아 있으려면, 그럼에도 악행을 저지르며 앞으로 나아가려면.
‘보통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하겠지.’
진천희는 생각했다.
‘기가 차는군.’
신공절학들이 강대한 위력을 가졌지만, 강대한 만큼 복잡하고 어렵다.
‘고작 토형보 하나 눈짐작으로 배워서 현경을 상대로 싸웠던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재능이네.’
진천희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사마현이 말했다.
“스승이 좋아서 그런 겁니다요~”
천우도 함께 달리며 말했다.
“아, 맞아요. 형. 배달용 경신법 전수받을 때도 느꼈는데 형은 이상할 정도로 잘 가르쳐요. 형 정도의 무공 고수면 보통 천재과라 남 가르치는 거 잘 못하거든요.”
권제님도 그랬다.
과거 제자를 많이 두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분이 남 가르치는 걸 잘하시는 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우, 너희들이 잘 배워서 그렇지.”
허나 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사마현이 배우는 데 재능이 있다면. 진천희는 가르치는 데에 재능이 있었다.
아니,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전생에서부터 있어 온 무언가가 아닐까.
그렇다.
그는 교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숱한 삐약이들을 가르치고, 걔들을 꼬시며 살아오지 않았나.
아무리 밥을 잘 준다고 해도 삐약이들이 고되고, 돈 안 되고, 사망 위험도 있고, 그럼에도 보람이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과를 선택할 리가 없다.
그 과의 매력을 알리려면 일단 잘 가르쳐야 하지 않던가.
‘그래서 매력을 한번 맛보고 나야 살살 꼬셔지지.’
교수 진천희는 그리 생각했다.
그 재능이 강호에서도 통해 수많은 삐약이들이 백린의각 부술당으로 뛰어들었지 않던가.
물론, 여기는 지구 별과 달리 돈이나 대우, 명예가 비할 바가 아닌 곳이라 더 꼬시기 쉽다.
‘대신 분노한 환자한테 죽을 위험은 좀 있지만.’
눈 뜨고도 칼 맞는 건, 양민도 똑같다 보니 다들 별생각 없어 보였다.
덕분에 두 아우들은 진천희가 어떻게 밑에서 세는 게 더 빠른 비인기과로 매해 괜찮은 삐약이들을 필요 인원 딱 맞춰 땡겨 오는지, 그 솜씨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는 신이었다.
가르치는 데에 신.
엄할 때는 엄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그는 학문 그 자체를 재미있게 가르친다.
‘그러고 보니 지구가 그립구나. 다들 잘 지내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덕분에 사마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안정적이 되기 시작했다.
“와, 형. 이거 점점 장난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