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79
제 879화
‘주왕께서 내 말에 몰입하고 계시는군.’
이래서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하다.
예산 하나 타내는 것도, 이미 물밑에서 서로 침 발라놔서 나 들어갈 자리 없다고는 해도.
이렇게 기깔 나게 한번 비벼주면 나중에라도 돌아보더라.
진천희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특히 인구가 적은 시골 마을의 운명이 이렇죠.”
작은 마을은 관아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 필연적으로 행정 공백이 생기고.
관군도 안 오는 곳은 자연스럽게 강호인 목이 빳빳해지기 마련.
‘그래서 시골 마을은 강호인이 무관을 열면 엄청 환영하지.’
무관이라도 생겨서 자신들을 지켜주면 그것만 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수련 목적으로 산야에 움막을 짓고 가끔 마을에 내려오는 은거기인이면 모를까.
돈을 벌어 먹고사는 게 목적인 무관이면 작은 마을은 피하지.
‘거기가 고향이면 또 다르겠지만.’
설명을 끝낸 후, 진천희가 말했다.
“물류 교류지를 만들면 경공이 뛰어난 무인들이 계속해서 오가게 될 겁니다. 그리되면 그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순찰이 될 거고요.”
“호오? 이번에 시작한 배달 사업 말인가.”
“네.”
“가르쳐 주는 건 검이나 창이 아니라 경공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대를 봐서 못 이길 거 같으면 도망이라도 빨리 쳐서 주변에 알리면 되니까요. 기본적으로 강호인은 싸우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죽음 그 자체는 두려워하는데요.”
“전투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배우지.”
“네. 무섭더라도 그것을 억누르며 싸워나가는 것이 도(道)에 이르는 길이며 협(俠)이라고 배우지요. 물론 그 협이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긴 합니다만.”
“그래. 하지만 싸우지 않고 일단 동료를 불러오는 자가 있다면 확실히 성가시다 느끼겠군.”
“네. 물론 저희 쪽 강호인이 배달하다 말고 달려가서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고 올 수도 있긴 하지만요.”
“…….”
주왕야는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그것은 그자의 협의지심이 시킨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냉정하다.
주왕야는 황가의 사람이지만 강호인에 가까운 면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일생 동안 무(武)를 다듬어왔기 때문이겠지.
그 목적이 강호인과는 사뭇 다르다고는 해도, 그 여정만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과거 그녀는 창 하나로 될 때까지 산을 밀었으니까.
진천희가 입을 열었다.
“일단 그렇다 할지라도 도망쳐서 집하지에 이야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리고 집하지 쪽에는 중의원 이상 의원이 한 명은 있도록 하려고요.”
“하의원은 안 쓰나? 인건비로 보면 가장 쌀 텐데.”
하의원, 그들은 막 의각에 들어온 아이들로.
아직 보호자들(feat.상의원/중의원)의 보호가 필요하다.
닭벼슬 달 때까지(상의원)는 아니어도 솜털은 벗겨야(중의원) 뭘 써먹지 않겠나.
“그 아이들은 의원이 아닙니다.”
“하의원이? 의원이 아니면 뭔데?”
“말하는 의각 감자입니다. 걔들 진짜 의원 만들려면 한참 굴려야 해요. 저대로 바로 쓰면 돌팔이 됩니다요.”
미친 소리 같지만 왜인지 설득력이 있었다.
‘감자가 말을 한다고?’
어쨌거나 하의원을 바로 실전 투입하면 안 되나 보다.
그렇게 진천희는 실무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주왕인 자신은 어디까지나 배경이고 얼굴마담 같은 존재.
대답하는 것은 유랑후다.
솔직히 실무는 귀찮다.
그냥 풍류를 즐기고 싶지만 어째 진천희 이놈은 자신이 놀게 놔두질 않으니, 원.
‘내가 만두 때문에 참는다.’
숙성하는 데 한 달은 걸린다고 하던가.
원래는 그냥 구워 먹는 용으로 쓴다고, 이걸로 만두를 만드는 건 사치스러운 짓이라고 못 박아 말했다.
그런데 뭐 어떤가.
사치야말로 주왕이 가장 좋아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듣다가 주왕이 문득 물었다.
“총괄별가로 일해 보는 건 어때?”
‘그건 또 뭔데?’
못 들어 본 직책이다.
진천희가 갸우뚱하자 유랑후가 웃으며 설명한다.
“별가들의 우두머리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른 별가들을 총합해서 지휘하는… 사실 별가들을 왕야께서 관리하셔야 하는데, 그것을 떠넘기시려고 만드신 직책이지만. 아직은 공석입니다.”
우와……. 나빴다.
생각해보면 황제 자리도 일하기 싫으셔서 떠넘긴 거 아닌가.
‘그래. 대신 싸움은 겁나 잘하시니까.’
지난번 숙신족과의 전투는 그녀가 없었으면 이미 전선이 무너졌고 북쪽 영토 일부를 잃고도 남았을 터다.
한 뼘도 안 주고 버틴 건 모두 주왕야 덕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뭐 우리가 같이 고생한 덕도 있지만.’
군신(軍神)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군의 사기가 크게 바뀐다.
모두가 군신과 함께 진격하며, 뒤를 보지 않고 싸워나갔다.
그것만은 그녀 외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그런 인간이 평화가 오자 배나 긁으며 만두 쪄달라고 하고 있다.
심지어 더 놀려고 잔머리까지 굴리고 앉아 있다.
진천희는 사회생활 미소를 지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제 능력으로는 이미 백린군 일도 감당하기 벅차…….”
이런저런 예법이 담긴 미사여구를 줄줄 읊으니 주왕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역시 죽어도 안 받는구만. 다른 사람들은 못 먹어서 안달인 직책인데.”
아, 고만 좀 시켜 먹으라고요. 양심 있습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결론적으로는 강소성 안의 집과 땅이 없는 빈민들이 백린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보내주기로 했다.
강제 이동이 아닌, 자원자만 받는 방식이라고 해도 상당한 숫자가 될 걸로 다들 예상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진한 법이지. 사람이 부족하여 뭐 하기 힘들진 않을 거야.”
왕야께서 게으르긴 하나 통찰력은 확실히 있으시다.
남경은 대도시니까 당연히 빈민이 많고, 저 아래쪽 소주(蘇州)도 남경만큼은 아니더라도 잘 발달한 곳은 빈민이 모여 살아간다.
그 외에도 장강 하류에 있는 항구도시들도 마찬가지.
특히 항구도시는 굳이 산업혁명 때까지 갈 것도 없다.
나무배에 돛 달고 다닐 적에도 가난한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니까.
“신속하게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유랑후가 목련처럼 미소 짓는다.
지금은 주왕야보다 이쪽이 더 든든하다.
* * *
유삼은 유가의 셋째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고.
물려받은 게 없이 태어난 유삼도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려나.
그도, 그의 이웃도 모두 처음 응애~ 할 때부터 빚쟁이가 함께했고, 관에 들어갈 때도 빚쟁이가 독촉하러 올 거니까.
그냥 그게 당연했다.
날 때부터 이미 운명이 정해지는 법이니까.
그게 빈민들의 운명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백린의각에서 정기적으로 빈민들을 위한 치료소를 열어 아내가 병에서 벗어났다는 점일까?
대가는 쑥 한 소쿠리.
천천히 완납하면 된다고 하나, 그날 바로 캐서 건네주었다.
그건 모두 마찬가지.
빈민으로 태어난 자들은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첫 종이 울리기 전에 일을 하러 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일에 매달리다가 땅거미가 질 즈음에 자러 간다.
이상하게도 그러고 사는데도 돈은 모이지 않는다.
허나 어쩔 수 있나?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는 넷을 낳았지만, 그중 둘은 죽어 이제는 남은 둘이라도 건사해야만 한다.
“그런데 백린군에서 소작농을 모집한다고?”
“그렇다고 하네.”
“소작농이면 평생 땅은 파도 은전 한 닢 못 보는 일 아닌가. 결국 내 땅이 아니니까.”
“그래도 백린군 아닌가. 듣기로는 일정 기간 동안 땅을 경작해서 일구면 그 땅을 준다고 하네. 그러니까…… 가불? 가불인 셈이지.”
진천희는 ‘리스다! 땅도 정수기마냥 리스하는 거다! 크헤헤헷!’하며 악덕 지주처럼 외쳤다.
실무자들도 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감으로 때려 맞혔다.
“신청은 어디로 가면 되나?”
“관아로 가면 하급 관리들이 명단에 적어줄 걸세.”
그렇지 않아도 주변을 보니 포졸들이 목청껏 백린군 경작 사업에 대해 외치고 있다.
벽에 방을 붙여놓는다고 해도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렇게 소리로 알리는 수밖에.
‘하긴. 우리도 백린군에 가고 싶었지.’
괜찮은 곳이라는 소문은 들었다.
가면 굶어 죽을 걱정 없다고.
하지만 이사라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거기다 이미 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자신이 갈 자리가 있을지도 의문이었으니까.
그냥, 하는 것 하며 살아가는 일상.
유삼에게 변화가 생겼다.
“잠깐, 잠깐만!”
혹시라도 선착순으로 자를세라 잽싸게 명단에 이름을 적고 나왔다.
그건 맞는 선택이었다.
그의 뒤로 줄을 서라는 관리들에 말에 모두가 줄을 섰고.
그 줄은 관아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지경이었으니까.
* * *
‘이야. 권력 만세다. 이러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지.’
진천희는 성도인 남경에서 만두를 요리 중이다.
고기 숙성은 멀었기에 숙성육을 꺼내 요리하지는 않는다.
대신 몇 가지 제갈세가에 전해져오는 만두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만두라는 건 진짜… 진짜…….
“와, 형. 진짜 손 많이 가네요.”
잔손질이 반이다.
아니, 잔손질이 90%는 되는 것 같다.
고기를 죽처럼 갈아서 만든다는 게 쉬운 게 아니고.
거기에 육즙을 살리기 위해 비법 소스와 냉동 숙성 과정까지 합치니 어마어마하다.
“응. 장난 아니지. 이것 때문에 객잔에 사람 엄청 쓰고 있다. 새벽마다 전쟁이야.”
“용케 시간 맞춰서 내오네요.”
“응. 일단 만들어 두고 있다가 주문 오면 그때 조립해서 찜통에 넣고 쪄버리면 되니까……. 그렇게 해도 계속 모자란 판국이지.”
그래도 이쪽은 주왕과 그의 가족들만 챙겨 주면 되니 그거 하나 다행이다.
“참 소백 공주께서 선물을 보냈는데 열어 보셨어요?”
“응. 흰 꽃을 조각한 장신구더라고. 감사한 마음에 서신에 글자 꽉꽉 채워서 답장드리고. 답례 선물은 고민이다. 보통 황가분께 드리는 답례품으로는 난이나 국화가 새겨진 벼루나 붓이 좋긴 한데.”
연애 감정 따위는 1도 없는 무언가.
형의 연애 세포는 죽어서 이미 흔적기관밖에 남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던 사마현은 생각했다.
‘아, 그래서 혜아가 약속된 지옥길이라고 불렀지~’
연구당, 부술당.
물론 평소 관심이 있어 들어가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 심장이 뛰는 게 꼭 학문일 필요는 없지 않나.
저기 눈앞의 소각주의 미모에 심장이 뛰어서 들어갈 수도 있는 법이고.
그렇게 심장이 뛰면 내가 소각주한테 뛰는 게 아니라 부술당, 또는 연구당 때문에 뛰는 거다, 하고 착각해서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독버섯처럼 사람을 꼬셔서 연구당이나 부술당에 집어넣고는 밥을 먹인다고 했다.
미친 듯이 먹인다고 했다.
단둘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한가한 기회를 틈타 집무실로 들어가면 반갑게 맞아준다.
마침 한가하니 먹으라고.
뭔가 만들어 놨다고.
그리고 그렇게 앉혀 놓고 먹인다.
요즘 너무 살쪄서 속상하다고 하면 운동을 시킨다.
그렇게 체중도 늘고, 근육도 늘고, 의원인데 흉근부터 복근까지 아주 그냥 장성한 강호인 같은 몸이 되어간다고.
‘소백 공주님도 마음고생이 크시겠구만.’
형의 격식 가득한 서신과 다시 격식 가득한 답례품을 보고 또다시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실 터.
그럼에도 포기가 안 되는 게 사람 마음이려나.
“아, 그래. 그러면 일단 이번 식사는 만두를 흰 꽃 모양으로 빚어서 보내드려야겠다. 새우 살을 잘 가공하면 흰 꽃 장식처럼 보이거든.”
‘그래. 이런 면 때문에 포기가 안 되지.’
사람 참 미치게 만드는 데 선수다.
소백 공주께서 저 만두를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맛있게는 드실 거다.
‘먹다가 통곡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