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8
제 88화
열 개의 장침 중, 단 하나도 진천희에게 닿지 못하자 비검은 혀를 찼다.
시선이라도 분산시켰으니 내빼자는 속셈 같았다.
그 순간, 놈의 눈앞에서 진천희의 신형이 다시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일 장(掌)이 놈의 관자놀이를 타격했다.
짜악!
십보신창까지 갈 것도 없었다.
그저 가벼운 출수다.
그 한 방에 놈의 두개골이 울렸다.
‘달팽이관만 조금 뒤흔들어 줘도 사람은 휘청이지.’
장에 풍기(風氣)를 조금 담아 귀에 꽂아 줬을 뿐이었다.
놈이 휘청이자마자 진천희는 기다렸다는 듯 놈의 팔을 붙잡아 뒤로 꺾었다.
우드득-
“끄아아악!”
부러뜨리지는 않았다. 그저 팔을 붙잡아 탈골시켰을 뿐이었다.
그저 관절에서 뼈가 분리된 것만으로도 인간은 큰 고통을 느낀다.
“움직이지 마세요. 괜히 체중 실었다가는 후유증 남으니까.”
“…….”
비검이 망설이자 이번에는 다른 쪽 팔을 뽑았다.
우드드득-
“으아아악! 그만, 그만!”
졸지에 보고 있던 개방도들은 마음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전투 중에 다치는 일이야 많다.
검에 베이거나 몽둥이로 골절이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소백룡은 뭔가 이상했다. 침착하게 양팔을 붙잡아 뽑아 버리는 기행을 보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거죠?”
“…….”
“착하네. 예의를 아는 분이셔.”
비검이 공손해지자 진천희는 천진하게 미소 지었다.
진천희가 비검의 발목을 붙잡아 꺾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더욱 공손해졌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개방도들이 답했다.
“소백룡의 목숨을 취하고자 했으니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죽여도 된다는 거예요?”
“소백룡 마음대로죠.”
그 말에 진천희는 새삼 강호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비검이 말했다.
“공자님,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뭐, 그래도 제가 의원인데 죽일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도 그렇고…….”
진천희는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혈을 짚어 한동안 단전을 막을 테니 뱃일 좀 해 주시죠?”
“뱃일 말씀이십니까?”
“장강을 건너려면 노잡이가 필요하잖아요.”
진천희는 화사하게 웃었다.
“체력도 좋으시니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계속 노를 저어 주세요.”
가장 힘든 직업을 꼽으라면 광부와 노잡이가 꼭 꼽힌다.
오죽하면 하려는 사람이 없어 빚 때문에 팔려 온 이들을 사서 시킬 정도였다.
아무리 체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노잡이 한 달만 하면 허리가 나간다.
그만큼 가혹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공도 없이 노를 저으라니.
진천희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쓰러지셔도 제가 고칠 수 있으니까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래. 사지 멀쩡한 젊은이 아닌가. 이 정도면 근성도 고칠 수 있고, 근육도 키우고 일석이조지.’
어쩌다가 이런 나쁜 길로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나이 아닌가.
다만 진천희 기준의 근성 고치기와 보통 사람의 근성 고치기 수준이 조금 다른 게 문제였다.
‘후, 그래. 이게 바로 강호의 은혜 아닐까. 벌써 은혜를 베풀기 시작하다니. 역시 나다, 역시 나야. 백린의선의 수제자에 걸맞은 행보다.’
어차피 이런 잡범 몇이 오든 진천희에게 검 끝도 닿지 않았다.
만나는 놈들 족족 노잡이로 쓰면 그거야말로 생산적인 일 아닐까.
진천희는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노잡……이…….”
개방도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비검을 바라보았다.
‘분명 소백룡이 가고자 하는 곳은 중간에 장강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이 시기에는 바람 방향도 안 맞아 더욱 노잡이들에게는 지옥이었다.
그렇게 진천희의 노잡이 노예 일 호가 배정되었다.
* * *
진천희는 다친 개방도들을 간단하게 치료해 주고는 영견 객잔으로 향했다.
가는 방향 내내 왠지 피부가 따끔따끔했다.
비검이 뿌렸던 살기와는 달랐으나 조금 더 끈적한 느낌이었다.
‘누가 꼭 지켜보고 있는 기분인걸?’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견 객잔에 도착해 진천희는 개방도들에게 비검을 넘겼다.
혈도를 짚인 비검은 한동안 무공을 쓰는 게 불가능했다.
“신공으로 혈을 짚은 거라 스승님과 저 외에는 풀 수 없을 거예요. 다른 의원을 찾아가 무리해서 풀려 했다가는 아마 평생 사람 구실 못 하게 될 겁니다.”
진천희는 차분하게 비검에게 지금 상태를 설명했다.
“저는 의원이니 고문을 하거나 죽일 생각은 없어요. 그저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했다는 것을 보여 주시면 그때 풀어 드리죠. 그때까지 노잡이를 하시면 됩니다.”
비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만 잘 저으면 풀어 준다는 거니 그에게 있어서는 이만한 제안도 없었다.
왜인지 개방도들이 자기를 자꾸만 애잔한 표정으로 바라본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이분을 선두에서 젓게 하세요.”
물살을 직접적으로 헤치는 곳이자 방향을 트는 곳이다. 가장 힘든 자리를 뜻했다.
“선두…… 알겠습니다. 가장 앞줄에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개방도들의 안타까운 표정은 더욱 커져 갔다.
그걸 모르는 비검은 이렇게 말했다.
“배를 저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젓는 거요?”
“어… 그건 우리가 알아서 잘 가르쳐 줄 터이니 걱정 말게. 다른 자리도 문제지만 앞자리면…… 정말…… 정말 바짝 배워야 할 걸세.”
“……?”
고개를 갸우뚱하는 비검의 뒤통수를 개방도들이 끌고 갔다.
진천희의 치료를 받은 이들이었다. 일을 허투루 처리할 생각은 없었다.
‘좋아. 오늘도 선행을 했다.’
진천희는 그대로 영견 객잔에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니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딱 봐도 허리에 칼을 찬 게 강호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고급진 옷을 입은 서생도 보였다.
점소이들이 빠르게 오가며 주문을 받았고 주방에서 밀려오는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그때 처음 보는 남녀가 진천희를 향해 왔다.
“처음 뵙겠소이다. 혹시 백린의각의 소백룡 진천희 소협이시오?”
둘 다 포권을 하며 몸을 숙였는데, 남성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어라? 누구지?’
딱 봐도 두 명 다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것으로 보였다.
그뿐이 아니다. 의복 역시 고급스러웠고 허리에 찬 칼 역시 명검으로 보였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행동거지와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제법 명문대파의 사람들 같았다.
진천희 역시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가 백린의각의 진천희가 맞습니다만, 두 분은 어디의 누구십니까?”
“천하에 위명이 자자한 의선의 제자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나는 남궁세가의 남궁운이라는 사람이오. 강호의 친구들은 나를 창룡검이라고 부른다오.”
‘창룡검 남궁운? 아하. 나중에 제왕검으로 불리고 천하 삼 검 중 한 명으로 불린다는 그 인간?’
진천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남궁운을 보았다. 그사이, 여성 쪽이 입을 마저 열었다.
“저,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연입니다.”
‘남궁운의 동생 남궁연!’
약간 말을 더듬은 여성, 남궁연은 작은 체구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고양이와 닮았고, 남궁운은 큰 체구에 처진 눈,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대형견을 닮았다.
그런 둘을 보면서 진천희는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진천희는 두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제왕검 남궁운.
안휘성의 패자로 군림하는 남궁세가는 원래부터 검의 명가로 군림해 왔는데, 쾌검과 중검 모두 고강하기로 유명했다.
논객들이 천하제일검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무림의 한 축으로 대대로 뛰어난 검수들을 배출해 왔다.
그중 남궁운은 남궁세가의 모든 비전을 익힌 총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천하 삼 대 고수가 되어 정파 무림의 한 축에 서게 된다.
또한 훗날 무림맹 맹주이기도 했다.
동생인 남궁연을 끔찍하게 예뻐하기로 유명한데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던 남궁연은 그런 남궁운을 무척이나 잘 따르곤 했다.
말을 더듬는 이유에 관해서 책에 언급된 바는 없었지만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운이 사망한 후, 남궁연이 자기 자신을 크게 책망하기를 한 달.
마치 다른 사람처럼 돌변한다.
말더듬이라고 어릴 때부터 놀림받던 남궁연은 그 자리에 없었다.
과묵하고 냉혹한 검수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칼로써 남궁세가를 다시 규합해 오빠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다면 그 원수는 누구일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원수는 바로 주인공이다.
천마 여하륜.
그가 남궁운과 생사결을 벌인 후 남궁운을 죽인다.
당시 여하륜도 남궁운과의 혈투에서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격전을 벌였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그만큼 작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강한 상대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를 알고 오신 듯한데 무슨 일이이신지 궁금하군요.”
진천희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침착하게 답했다.
이 둘이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유람차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제법 재미난 소식을 들었지 뭐요? 그러다가 그 소문의 주인공이 눈앞에 있으니 한번 이야기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나선 것이오. 어떠시오? 괜찮다면 소백룡을 대접하고 싶은데…….”
‘소설 속에서나 보던 걸 직접 들으니 되게 기분이 이상하네…….’
진천희는 남궁운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소함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 현대 지구인일 적에 어디 이런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나 있었나?
무협의 세계인 이 화 제국 땅에 도착한 이후에도 사실 의각 내에서만 지냈다 보니, 말로만 듣던 이런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접을 해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지요. 그나저나 말을 놓으시죠. 제가 더 어리니 말을 높여 주시면 조금 불편합니다.”
“그래도 되겠나?”
“물론이죠.”
“하하하. 소형제가 참 시원시원하군그래.”
남궁운이 대협스럽게 웃는다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진천희는 둘의 안내에 따라 작은 별실에 들어갔다.
그는 몇 가지 요리를 시키고는 말했다.
“진 형제. 여기는 소룡포가 아주 일품이니 한번 먹어 보게. 거기다가 돼지고기는 동파육이든 회과육이든 전부 주방장이 자신하는 요리지.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더 시키게나. 아니면 다른 거 먹고 싶은 게 있나? 연이는 뭘 고를 거니?”
그 말에 남궁연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 저는 면 요리면 뭐든 좋습…….”
“인사는 잘 해 놓고 또 낯을 가리는구나. 연습한 대로 하면 되지 않겠니.”
남궁연은 대답 대신 남궁운의 옆구리를 꽉 꼬집었다.
“아야아야. 오라버니 죽는다. 이렇게 말은 좀 느려도 손은 천하제일인 동생이라니까. 특기가 꼬집기. 아야야야!”
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봤던 무화, 무월 남매와는 또 다른 형태의 사이좋은 남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