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81
제 881화
진천희는 그렇게 마을을 바라보더니 주변의 돌이나 잡초를 치웠다.
그런 진천희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형. 무덤 관리해요?”
“응. 마을 묘지가 될 테니까 그냥 풍수만 조금 만져주는 거야. 천우야, 잘 왔다. 온 김에 저기 나무 하나 뽑아서 옮겨 줘라.”
“네. 아, 자르지 말고 뽑아요?”
“힘들 것 같으면 그냥 잘라도 돼.”
천우는 고개를 젓더니 나무 밑동을 붙잡았다.
“뭐 다행히 큰 나무는 아니니까요.”
우득-
그 순간 천우는 힘만으로 나무를 뿌리째 뽑아냈다.
생각보다 깊게 들어간 나무라서 진천희는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너 힘 세구나?”
“어디 가서 부족하단 소리는 안 들어요.”
“그건 저쪽에 도로 심고.”
진천희가 손으로 가리키자 천우는 ‘여기요?’, ‘이쪽?’ 이렇게 물어보더니 바로 도로 파묻는다. 진천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참 신기해. 이 세계 나무들은 생명력이 다르단 말이지. 지구였으면…… ‘뭐야? 뿌리 상했잖아? 나 죽을래.’ 하더니 콱하고 죽는 놈들인데.’
여기는 무슨 ‘뭐? 산사태? 기록적인 가뭄이 왔어? 거친 세상 나도 만만치 않지!’ 하면서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그래 놓고 연구실에서 각 잡고 키우려는 순간, 귀신같이 죽는다.
기록적인 가뭄을 견뎌놓고 물 잘 주고, 햇빛 잘 쐬는 아주 그냥 뽀송뽀송한 공간 속에서 ‘호오, 뭡니까. 휴먼. 방금 습도가 0.1 올랐군요.’ 하더니 그냥 죽어버린다.
천우도 방금 나무 하나 뽑아다가 심어 놓고 신경도 안 쓴다.
무림 별은 널린 게 나무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러다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좀 있으면 저 자리에 나무 세 그루가 태어날 텐데.
진천희는 그렇게 천우를 이용해서 무덤가를 전부 정리했다.
“다 했다.”
탁탁탁-
진천희는 손을 털었다.
“이런 건 다른 사람 못 시켜요?”
“풍수사한테 돈 주고 시킬 수도 있긴 한데……. 아무래도 첫 마을이잖아. 내 손으로 하고 싶었어.”
“파종하는 것도 구경하고요?”
“하하하, 겸사겸사지.”
아래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적당한 자리를 잡고는 새참을 먹고 있었다.
농사는 밥심이다.
그건 지구 별이나 강호 별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천우는 형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전부터 궁금해했던 것을 물었다.
“진짜로 무덤 자리를 잘 잡으면 복이 와요?”
“글쎄다…….”
말꼬리를 흐린다.
의외였다.
지금도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기 위해 풍수사를 고용해 빨간색을 대문 앞에 놓을지, 변소 위치는 어디가 좋은지 상의하지 않던가.
그리고 제갈세가는 전통적으로 풍수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곳이고.
진천희가 말했다.
“애초에 복이 뭘까? 건강한 거? 풍수에 집안이 청결해야 복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건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집이 깨끗하면 사람 기분도 좋아지니 더러운 집보다야 싸울 일이 자연히 줄 거고.”
“그렇겠죠.”
“그걸 복이라면 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거라면 재복……? 돈은 돈을 낳잖아. 비싼 풍수사를 들일 정도의 재력이면 이미 부자 아닌가? 가난한 양민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권문세가 자식이 부자가 되는 게 훨씬 더 쉬운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
“사람들이 풍수에 바라는 ‘가내평안 무병장수’의 정체는 결국 이런 거야.”
집 깨끗하게 잘 쓰고, 부서진 곳 있으면 바로 고치고.
창문 어디로 낼지, 방을 어디에 둘지는 주변 기후 보면서 정하고.
풍수의 정점.
제갈세가 후계자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말이었다.
“그러면 형은 왜 무덤을 정리하는 거예요?”
“기분 좋으라고.”
“네?”
고작 기분?
기분 때문에 이 고생을 한다고?
진천희가 말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추억을 맞이하러 오는 곳이잖아. 우리 할머니 잘 지내나, 우리 할아버지 잘 지내시나. 물론…… 돌아가신 분이 진짜 맞이하진 않지.”
“그러면요?”
“추억이 맞으러 오는 거야. 할머니와의 기억, 할아버지와의 기억, 엄마, 아빠와 나누었던 기억. 그 기억을 보러 오는 거야.”
“그래서 형은 그걸 위해 하는 거예요?”
“그래. 추억도 말이야. 자주 닦아줘야 반짝반짝 예뻐지기 마련이거든. 할머니, 할아버지랑 있을 때가 마냥 좋기만 했겠어? 싫은 날도 있었겠지.”
“그걸 벗겨내는 작업이군요.”
“응. 지나간 일이니까 좋은 것만 기억하자고.”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새하얀 검신의 칼을 꺼냈다.
그것은 형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준 검이자.
강호인들이 일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거론하는 칼이었다.
빙정검.
그것을 마치 발도하듯 쥐더니 순식간에 뽑아냈다.
스컹!
칼을 평소보다 낮게 뽑았다는 것은 천우도 보았다.
허나, 검기가 발출되는 광경은 제아무리 눈이 좋은 천우도 보지 못했다.
잡초가 순식간에 잘려 나간다.
어이없는 벌초다.
진천희가 말했다.
“냉기가 스며서 지금 벤 잡초들도 다 죽을 거야. 이 자리에 사람 시켜서 잔디 깔아야지.”
“형, 지금 빙정검으로 벌초한 거예요?”
천우가 어이없다는 듯 묻자 진천희가 말했다.
“응.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묘비는 미리 옮겨놨다? 애초에 나무를 꽂아놓은 거라 원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더만.”
세월에 죄다 삭아버렸다.
뭔가 글자를 새겨놨다고 해도 이제는 알아볼 수도 없다.
“그게 문제가 아니……. 아니 그것도 문제지만요.”
“그러면 뭐가 문제인데?”
무림지보로 벌초한 거?
현경의 적을 상대로 무학을 발출하던 절세 명검으로 잡초 베고 있는 거?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천우는 참았다.
‘그래. 형은 현경의 적을 상대하는 것과 작은 마을 묘지 벌초해주는 게 똑같은 무게인 거지.’
강호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짓이긴 하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형이 이름 없는 무덤들에 천일취를 뿌려주고 있는 모습이 성스러워서.
추억 때문에 하는 것뿐이라는 사람치고는 그 옆모습이.
그 주변의 공기가.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냥 그뿐.
그렇게 술을 뿌리고 가볍게 향 하나를 꽂고 잠시 기다린다.
절은 하지 않는다.
그냥 묵념을 조금 할 뿐.
“저 사람들은 이제 다른 마을을 보겠네요.”
“응.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들어온 사람들은 생판 남이니까.”
한 마을이 끝났고, 한 마을이 시작되었다.
진천희는 그 자취를 느낀다.
천우가 말했다.
“어떤 곳은 금혈방에 빚 있는 사람들이 한 마을 전부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농업 단지, 뭐 그런 거 아닐까.”
“고용돼서 파견된 형태라고 듣긴 했어요. 빚을 다 갚으면 이 마을에 정착해도 되고 떠나도 되고 자유라더라고요. 월봉도 꼬박꼬박 주고 집도 제공하니까 마다할 필요는 없죠.”
“다른 사파들처럼 쥐어짜면 수익이 더 크게 나올 거라는 걸 현이가 모르진 않을 텐데. 알면서도 많이 양보했구나.”
그 말에 천우가 웃었다.
“그렇죠. 사실 객잔보다는 수익이 떨어질 걸 각오하더라고요. 그래도 뭐. 이미 투자한 처지니까 어쩔 수 없대요.”
“그렇구나. 뭐, 나도 어디까지나 식량 확보하려고 하는 거지. 지상낙원 이룩하자고 하는 게 아니야.”
“…….”
그 말에 천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잘 구분해야 해요. 나는 사업을 사고 있는 거야. 사업가라고? 나도 손해 봤으면 하다 말았지.”
“나라에서 하는 사업이요?”
“으음, 아니라는 소리는 못 하겠네.”
시작을 따지자면 골드&실버가 맡긴 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거니까.
“그리고 환자 이송 같은 건 손해라면서요.”
“그래도 배달은 이득이니까 비슷해.”
천우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마지못해 납득했다.
이윽고 진천희가 물었다.
“그나저나 이거 도와주려고 온 거야?”
“아, 맞다. 형 스승님께서 전해주라고 해서 왔어요. 여기 오면 형이 있을 거라고 전갈받아서.”
“음?”
과연 스승님이다. 무덤 정리하러 갈 걸 꿰뚫어 보신 건가?
천우가 말했다.
“유 총관이 드디어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아.”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드디어 밀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 * *
의각으로 돌아오자마자 유호를 찾았다.
“아, 내총관님은 지금 바쁘셔서…….”
이렇게 오래 외유한 것도 오랜만이다. 거기다 지금은 한창 일이 많을 때니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
진천희는 결국 밤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좋아.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요리라도 할까.”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데 이것만 한 게 없다.
그리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데도 이만한 게 없고.
진천희는 여우에게 줄 천일취를 꺼냈다.
오랜만에 제사상 플레이트나 선보일 계획이다.
그렇게 일을 다 끝낸 야밤.
유호는 그제야 진천희가 자신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만사 제치고 달려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군.’
전각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의각 구석에 있는 전각으로, 의원들이 갈 일도 환자들이 찾을 일도 없는 곳이다.
밤은 어두웠으나 백린의각은 구석구석 등을 올려 빛을 밝힌다.
급환이 생기면 의원들이 자다 말고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외진 전각도 마찬가지.
길게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대나무 숲을 한참 걸으니 그곳에는 탁자가 휘어질 정도로 수많은 음식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오, 왔어. 유호?”
그리 말하며 육회를 탁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계란을 까서 바로 버무린다.
“이건 오래 두면 비려지니까. 오자마자 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여기에 배와 깨, 양념까지 얹어서 유호에게 건넨다.
식탁 위에 있는 건 모두 유호 취향 음식들.
그리고 술은 천일취.
빌어먹게도 유호가 가장 좋아하게 된 술이었다.
“크헤헤헷.”
진천희는 본인도 어색한지 이상한 웃음을 짓다가 기둥에 세워둔 칠은금을 꺼낸다.
미리 챙겨온 것을 보니 역시 뭔가 만지작거릴 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색해지면 뭔가 만지작거리는 건 이 녀석 습관이니까.
딩-
맑은 음이 별이 되어 정자 안을 채운다.
“뭡니까.”
“어……. 고마워서. 나 팔 잘릴 뻔한 거 구해줬잖아.”
“제가 없었으면 받아들이셨을 겁니까?”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진담일까?
유호는 생각한다.
설령 진담이라고 해도 거절한 것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긴 하다.
그런 녀석이니까.
디리링-
“듣고 싶은 음악 있어?”
“아주 요란하게 준비하셨군요.”
“어쩔 수 없잖아. 유호가 돈이나 명예 같은 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디링-
이런 것밖에 없으니까.
일부러 현을 튕겨서 말소리를 감춘다.
“됐습니다. 이걸로 퉁 치죠.”
“어? 그럴 리가.”
“그러면 한동안 더 대접하든가. 성이 찰 때까지.”
“어어…….”
디딩, 딩, 딩-
그렇게 현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음을 토해낸다.
첫 음이 묵직하게 울리다가 다음, 다음으로 이어진다.
빗방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유호는 내 팔 대신 뭘 바친 거야?”
“토용.”
“응, 알아. 여우 토용. 하지만 고작 흙 인형으로 팔 한쪽을 대신할 리가 없잖아.”
“…….”
유호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천일취로 목을 축일 뿐.
“말해 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