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84
제 884화
유 총관은 오늘도 바쁘다.
제갈린을 보좌하며 의각의 여러 가지 대소사(大小事)에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더해서 연구당도 돌봐야 했다.
이제 와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연구당을 돌본다는 것은 의학 지식이 그만큼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랬다.
사실 유 총관은 제갈린과 진천희 그리고 사 대 당주에 비견할 정도의 의원이 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연구만 하는 게 아니다.
유호는 간호당의 당주.
강호의 간호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유호도 할 수 있다.
고양이 손, 아니 여우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
있을 유(有).
여우 호(狐).
유호.
우리의 ‘여우 있음’(feat. 有狐)은 이름을 이따위로 지어서 일복이 터진 건가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백린의각에 ‘여우 있음’은 공기처럼 늘 존재했다.
우리의 여우는 화학적인 지식을 습득했으며, 균체와 약학의 원리도 알게 되었다.
인간 새끼들은 신선들이 먹는다는 복숭아, 즉 선도(仙桃)도 못 먹어서 백 년 못 살고 뒤질 것들이다.
그런 자들을 오래 살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지식들이 필요했다.
‘하, 그냥 한 놈 죽여서 간 꺼내서 공양하면 안 되나.’
유호가 보기에 인간이란 늘 서로 죽고 죽이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유호는 인간을 먹는다.
요즘은 도련놈 때문에 강제 단식 중이지만 과거에는 인간을 잘 먹었다.
유호에게 있어서 강호란 닭들의 피 튀기는 살육장 같은 것이었다.
서로 죽고 죽일 바에는 그냥 내 입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유호의 마음.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류를 볼 때 드는 생각이었다.
-역시 유호야. 우리 노ㅇ……가 아니라 만능 간호사!
병아리가 한 마리 와서 그를 부려 먹기 시작했다.
이 닭들이 오래 살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래 봐야 강호라는 살육장이 바뀌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오랜 계약 때문은 아니지만, 오랜 계약……자와 관련이 있는 이가 원하니 들어주기로 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랠 수 있으면 된 것이니까.
그게 진짜 유호의 속마음.
‘그때는 이 정도로 부려 먹을 줄 몰랐지만.’
고작해야 병아리.
이제는 잊혀진 아주 오래전 과거, 그에게 소원을 비는 자들은 보통 누구를 죽여 달라거나, 누구를 살려달라고 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자들도 있었다.
개미가 소원을 빈다면 하늘에서 사탕이 떨어지게 해달라고 빌겠지.
인간도 마찬가지.
필멸자의 소원이란 대개 그런 것들이니까.
허나, 병아리가 부탁했던 것은 달랐다.
일단 스승님을 살리게 도와달라.
그건 당연한 소원이고 유호도 보은의 의미로 꼭 제갈린을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급한 불을 끄고 난 후, 진짜 소원.
-전문적인 의료 양성 체계를 만들어 우리 함께 인류 발전에 공헌하자!
‘…….’
누구도 그에게 그러한 소원을 빈 일이 없었다.
유호는 과거 몰락했지만 그래도 ‘존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소원의 진실성을 판별할 수 있다.
오늘 점심으로 뭘 먹고 싶은지 비는 것과 내 딸을 낫게 해달라는 소원이 같을 수는 없지 않나.
‘아아, 소원에서 순수한 집념이 느껴진다.’
정말로 강하게 바라고 있었다.
이 새끼는.
진짜로 전문적인 의료 양성 체계를 만들고 싶었다.
차라리 어느 새외 동화처럼 ‘소원을 백 가지로 늘려줘.’가 낫겠다.
허나, 이놈은 절박하게, 아주 진실되게, 그리고 순수하게.
진짜 의료 기관을 만들어서 인류 보건을 증진시키려 하고 있다.
‘양민이 걱정되면 다른 무인들처럼 흑도들을 물리치든가!’
그의 말에 진천희는 답했다.
‘그건 다른 강호인들도 하고 있어. 유호, 나는 나밖에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을 돕고 싶어.’
박애.
아니 그것을 박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인이 칼로써 협(俠)을 이룬다면 의원은 환자를 구함으로써 협(俠)을 이루고 싶어. 칼을 든 것은 똑같잖아? 의원도 의원의 칼을 드니까.’
정신을 차려 보니 그놈을 살리려고 인과율 상대로 사기까지 쳐버렸다.
이젠 무르지도 못한다.
‘그래도 요즘은 옛날보다야 좀 편해졌지만…….’
무월.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 쓸 만하다고 생각한 인간이었다.
지금은 유호도 제법 인정할 만한 인재로 성장했다.
도련놈의 말을 따서 ‘안드로이드 강인공지능 무월’로 재탄생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안드로이드 강인공지능’이라는 게 뭔지는 유호도 몰랐지만 어쩐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좋은 뜻은 아니겠지.
‘그래. 확실한 건…… 따분하지는 않군.’
긴 시간을 살아가는 불멸자.
특히 자신 같은 ‘몰락한 존재’들에게 있어 심심함은 가장 위험한 독이다.
무색무취하며 결코 거부할 수도 없고.
내성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 자에게 무료함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결국 참지 못하고 미치거나, 식욕에 돌아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높은 존재에게 먹힐 짓을 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악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그저 따분하지 않기 위해서.
결국 인간과 달리 권력도 돈도 필요 없는 존재이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적옥을 하는 것과 같다.
진천희가 하는 막장 주사위 말판 놀이.
아무리 막장이라 재미있다고는 해도,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건 고문이니까.
열 바퀴, 백 바퀴, 천 바퀴, 만 바퀴.
빙글빙글 같은 구간을 돈다.
끝나지 않는 게임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게 그와 같은 존재들을 좀먹게 만든다.
진천희가 그에게 가져온 것은 생전 본 적 없는 말판이다.
그건 좀 따분하지 않다.
‘대신 고단하군.’
그 같은 존재에게 피로라는 감각을 느끼게 만든 진천희 놈은 제정신이 아닌 새끼다.
이걸 이야기하니 제갈린이.
-잘되었군. 유호. 그 또한 살아있는 감각이 아닌가. 자네 같은 존재들이 그리 느낄 리 없는 감각 말일세. 역시 우리 희가 대단하군.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한다.
마지막에 제 제자 칭찬하는 걸 보니 양심이 없다.
원래도 없는 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없을 줄이야.
그렇게 유호는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걷고 있다.
한 손에 쟁반을 들고.
제갈린이 마실 차를 가져가기 위해서.
지난번에 상의원에게 차 심부름을 시켰는데 겁을 먹고 개판을 냈다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제 공기만으로도 필멸자들은 위압을 느끼는 경지까지 갔으니.’
현경에서 반 발자국, 반의반 발자국, 반의반의 반 발자국.
제갈린은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다.
하지만 천재적인 재능은 그에게 끊임없이 무학을 속삭이고.
요사이는 일부러 칼 한 번 쥐지 않았는데 결국 공기가 그의 의념에 답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편안한 공기로 만들기 위해 다시 억지로 의념을 조절하지만.
그 순간은 천하의 제갈린도 잠깐 방심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예민한 청각은 어떤 소리를 포착했다.
휘이이익!
그것은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
바람 소리 같지만, 반복적인 그 소리는 어떤 인물이 경쾌하게 내달릴 때 나는 소리다.
그에 반해서 발을 땅에 딛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는다.
경신보법이 경지에 이른 자만이 이런 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 의각에서 저런 소리가 나도록 뛰어다닐 인물은 하나뿐이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유호오오오오오!”
저 멀리. 유호에게서 한숨이 나오게 만든 이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유호의 눈은 본래도 반쯤 감겨 있으나, 지금은 더욱 눈이 가늘어진다.
짜증.
‘이건……. 나에게 뭔가를 시키려는 수작인데?’
“찾았다, 유호! 유호오오오오! 우리 다섯째 보자아아아!”
유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커지고 만다.
“이 미친 도련놈아! 무슨 헛소리를 내뱉는 겁니까!”
잘 숨기고 있는 꼬리가 튀어나와 바싹 곤두설 뻔했다.
그의 수행이 얕았다면 분명 들통났을 것!
그러나저러나.
진천희는 눈을 파랗게 빛내며 달려와서는 유호 앞에 선다.
“아니. 헛소리가 아니고. 우리 새 아이를 가질 때가 됐잖아? 연구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과 별개로 새로 만들 게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이게 참 중요한 거야.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러고는 뭐라 뭐라 엄청나게 길게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그 새파랗게 변한 눈동자에 열의가 가득 차오른 상태로 반짝거린다.
먼 옛날이라면…….
‘저 눈을 뽑아서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텐데.’
천일취 탓이다.
술이 독해서 아직도 취기가 남아 있나 보다.
“일단 주인님께 차를 드려야 하니 다음에 이야기하시죠.”
“다음에 할 거 뭐 있어? 지금 가면서 계속 이야기해 줄게. 유당불내증이라는 건데 이게 젖을 소화하지 못하게 만드니까…….”
무어라 마구 떠들어 댄다.
두서없는 말은 아니다.
듣다 보면 그 목소리 때문에 묘하게 흥겨운 데다, 내용도 귀에 쏙쏙 들어와 즉시 이해가 되었다.
이래서 이 도련놈이 강의를 하면 상의원, 하의원 할 것 없이 모두 집중해서 듣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걸 어떻게 치료한다는 겁니까?”
“두유를 먹이면 돼. 이거면 어린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어린아이를 살린다.
태어나자마자 곧 죽었어야 할 아이들을 살린다.
‘그게 얼마나 많은 천기를 흐트러트리는 건지 알고 있을까?’
천기와 운명. 세계의 흐름적 관점에서.
유호의 하나뿐인 신관이 말하는 유당불내증.
그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천형(天刑)이라는 것을 타고난 것과 다름이 없다.
태어나서 곧 죽어야만 하는 아기.
그렇게 정해진 운명.
구음절맥인 제갈린 한 명이 살아난 것만으로도 천기가 크게 뒤흔들렸거늘.
거기다 죽을병에 걸린 수많은 양민들을 살림으로써 천기가 더욱 파괴되었거늘.
그 상태에서… 한 명도 아닌, 다수의 아이들을 살린다라…….
‘기가 막히는군.’
유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웃겼다.
이 많은 일을 겪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천기를 박살 내고 있는 중이다.
“어? 웃어? 유호! 해 주는 거구나! 역시 유호야!”
유호의 미소 짓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미친 인간… 조금 웃어주었다고 해줄 줄 안 겁니까?”
그리 말하며 걸어간다.
제갈린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도 쫓아와서는 두유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떠들어 댔다.
주인인 제갈린은 무심한 얼굴로 서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끔찍이 아끼는 애제자가 왔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호오, 우리 유 총관이 아침부터 희에게 시달리는군그래.”
남의 일이라고 막 말한다.
“스승님, 저 두유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유 총관을 빌려달라는 거구나. 그래.”
유호. 유 총관은 생각했다.
또 야근이네.
* * *
콩.
어찌 보면 쌀만큼이나 인류와 함께해 온 놈이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불교와 함께 널리 애용되고 있다.
일단 두부!
식물인데도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거기에 메주를 만들어 간장과 된장도 만들고, 청국장도 만들고, 일본은 낫토가 유명하다.
건두부는 마라탕의 단골손님이고.
연두부?
간장에 참기름 조로록 끼얹어 먹으면 아침 식사로 뚝딱이다.
그리고 그런 콩을 삶은 다음 갈아 물처럼 만들어 먹는 것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콩국이라는 음식 되시겠다.
콩국 맛있지 않나?
국수 말아서 얼음 동동 띄워 먹으면 여름에 그만이던데.
다른 나라는 콩국 없더라고.
이 때문에 두유 역시 한국 고유의 음식이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사실 두유를 최초로 먹었던 나라는 역사적으로 불분명하다고 들었다.
애초에 인류는 기원전부터 콩을 갈아왔으니까.
1940년대.
홍콩에서 세계 최초로 현대식 두유를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식음료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으로 고통받는 신생아들을 살리기 위해 두유가 최초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의 두유는 무엇인가?
‘베지밀(Vegemil)이지.’
꽤 미담인 이야기다.
정식품의 창립자인 정재원 대표는 본래 소아과 의사였다고 한다.
당시에 원인불명의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제법 많았고.
그는 아기들의 사망 원인을 연구하다가 결국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고.
아이가 모유에 함유된 유당 성분을 소화하지 못해서 아사한 것.
때문에 그는 모유를 대체할 식품을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베지밀의 원형.
이후 그는 유당불내증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서 정식품을 창립, 후에 아예 대량생산까지 시작하여 우리가 아는 베지밀이 되었단다.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두유.
당시 삐딱한 진천희 교수는 ‘말만 들으면 미담인데 그래도 많이 벌었겠지?’ 하며 베지밀B를 쪽쪽 빨아먹고는 했다.
A는 안 달아서 안 마시고, B는 달아서 좋아하니까.
옛날에는 아침에 우유를 먹어도 멀쩡했는데, 나이 드니 바로 탈이 나기 시작해서 두유로 교체했다.
그리고 지금.
그 두유를 꺼낼 때가 되었다.
‘천형(天刑). 한번 극복해볼까?’
두유를 만드는 원리 자체는 쉽다.
다만 비누도 안 쓰고 온갖 병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유당불내증이라는 체질을 진단하는 것.
두유를 대량생산하고 보급하는 것.
거기다 상하지 않게 하려면 멸균 처리는 어찌해야 할지.
그런 것들이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다.
하지만 지금의 백린군이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