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88
제 888화
“거기다 뭍과 물, 둘 다 오갈 수 있는 형태지. 그래도 물에서 헤엄치기를 더 잘하는 것 같더구나.”
스승님은 그리 말하더니 먹을 손끝에 묻히더니 곧바로 형태를 그렸다.
그냥 단순히 그 모습을 흉내 낸 것뿐인데도 그 모습이 섬세하기 그지없어 거장의 그림과도 같았다.
“강호에는 제법 소문이 나 있단다. 그놈들은 배만 습격하는 게 아니라 바닷가에 자리한 어촌도 습격하고 있으니까. 다만 내륙으로 갈수록 괴담 취급을 하고 있지.”
사진도 영상 촬영도 없는 시대는 보통 이렇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물고기 머리 인간이 사람을 습격하다니.
진천희 자신도 못 믿을 이야기니까.
‘관아 반응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단체로 아편 빨다가 집단 환각으로 돌아버렸나 생각부터 할 터.
스승님이 말을 이었다.
“아직은 그래도 잘 막아내고 있다 하지만, 피해가 언제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단다. 더구나…….”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은 제가 보았던 락샤샤나 용린인처럼 ‘길러내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
제자의 눈이 날 선 푸른빛을 내뿜는다.
“거기까지 바로 짚어내다니. 빠르구나.”
제갈린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진천희는 락샤샤의 산란 연못을 떠올렸다.
제갈린이 말을 이었다.
“공손세가에서는 오륜회 전체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이에 응해야 하지.”
오륜회는 백린의각과 공손세가, 남궁세가, 보타문, 하오문. 거기에 진주언가까지 끼어 있는 거대 조직.
그 외에도 오륜회에 가입한 중소 문파가 또 스물다섯이 존재한다. 명실상부 무림맹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세력인 셈이다.
물론 아직은 무림맹의 규모가 오륜회보다 더욱 크지만, 그것도 흐지부지 끝난 정사대전 이전의 이야기다.
진천희는 스승님의 말을 받아친다.
탁.
“공손세가의 해상 무역과 운룡표국의 사업은 현재 오륜회 내의 다른 문파들과 전부 이권이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스승이 백돌을 놓으면, 그것을 따라 흑돌이 놓인다.
포석과 포석이 맞물리면서 곧바로 계책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즉,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도와야 하는 상황이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타닥-
다음 질문.
제자가 곧바로 답했다.
“요녕성에서 산동, 강소, 절강, 복건 등으로 가장 빠르게 가는 것은 해로지요. 육로는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 반대로 강소에서 요녕으로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 원활한 교역을 위해서는 해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 바로 맞추었다.”
“그렇다면 조사는 어디까지 이루어져 있는 상황입니까?”
내 상황을 알았으니 이제 적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에서도 강조하는 항목.
병법서라면 개나 소나 다 말하는 만큼 아주 기초 중의 기초지만, 대부분의 책사들은 건너뛰는 일이 많이 있다.
허나, 제갈세가의 작은 천재는 일을 착수함에 있어 기본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
제갈린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우선……. 괴어인과 연관이 있는 놈들은 스스로를 해룡방이라 칭하더구나.”
“해룡방이라. 거창하네요.”
청년의 목소리에 노기가 머무른 것은.
스승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에 펼쳐놓은 서신들과 죽간들 때문.
해룡방이 저지른 양민의 학살 흔적들, 그 보고서의 글자가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그걸 보는 순간, 잠시나마 꿈꾸었던 러브&피스 같은 말랑한 온정은 물 건너갔다.
남은 건 강호의 적자생존뿐.
“너는 산동성 청도(靑島)항으로 가서 조사를 시작하거라. 그쪽에서 괴어인들이 자주 목격되었다고 하니, 그쪽에서 그들의 근거지를 탐문 하면 될 게야.”
청도.
산동성의 항구 도시 중 하나. 그리고,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했다.
“오륜회의 다른 정예들은 어떻게 움직이실 겁니까.”
‘다른 정예’를 움직인다.
이다음, 제자는 바로 스승님이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해냈다.
제갈린은 생각한다.
‘잘 컸군.’
그래도 스승의 다음 심계를 짐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온 것이다.
“절강성의 주산군도부터 시작하여 섬이라는 섬은 전부 뒤질 것이다. 관군에게 뇌물이라도 먹여서 움직이게 해야겠지.”
관아는 쓸모없지만 관군은 쓸모 있다.
물론 ‘수색’에 한정했을 때만.
직접 전투는 강호인이 해야 한다.
“협(俠)을 이루기 위해 뇌물을 먹여야 하는 게 웃기군요.”
“관무불침은 관의 게으름을 상징하니, 그 또한 강호지.”
“그게 관례군요.”
“그래. 황제가 바뀌고, 국호가 바뀌고, 오호십육국으로 찢어진다 하더라도 ‘관례’는 늘 남아있단다. 그런 그들에게 전통이 더 가깝겠느냐, 황궁이 더 가깝겠느냐.”
웃기게도, 이 강호 월드에서 관무불침은 제아무리 절대자라도 함부로 뒤틀지 못하는 율법 같은 것.
이 세계에 ‘무공’이라는 가정용 토마호크, 가정용 탱크, 가정용 생화학 가스탄이 존재하는 한에는 계속될 터였다.
백린군이야 원래부터 백린의각의 영역인 데다가, 그래도 손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면적이니 어찌저찌 가능한 것.
천하를 두고 생각하면 강호의 본질 자체가 변하는 법이 없으니.
스승님께서 말을 이었다.
“또한 내 예감이지만 청도 쪽에서 실마리가 나올 가능성이 클 것 같구나.”
단순히 예감일까?
아니면 진천희는 모르는 어떤 계산을 통해 내리신 결론일까.
허나, 제자는 묻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녀오겠습니다.”
나아갈 뿐이다.
단 한 줌의 망념도 없이.
* * *
진천희가 백린의각을 나서고 있던 그 시각.
무림맹의 비처에서 한 여인이 서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무림맹 총군사 독고선.
첩보 조직에서 온 서신을 쭉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륜회 전체가 부산스럽군. 해적 토벌을 하기 위해서인가.’
해적에는 혈선교도 포함되어 있다고 써 있었다.
거기까지 읽은 독고선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륜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단순 토벌이 목적일까. 해상을 장악하고 세력을 더 확장시키기 위한 것도 당연히 있을 터.’
그게 아마 두 번째 목표.
허나 하나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륜회주 제갈린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그 속내를 짐작하기 위해 독고선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부채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옆의 종을 들어 흔든다.
따끈따끈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액체가 담긴 대접을 들고 잘 훈련된 하인이 들어온다.
금호두유.
그것도 꿀을 잔뜩 넣은 특제다.
후룩.
대접을 들고 마치 말술을 마시듯이 두유를 마시던 그녀는, 다시금 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사대전……. 이것도 오륜회주 당신의 계산속에 있었던 거였지.’
누구도 이익을 보지 못하고 손해만 보았던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득을 본 것은 오륜회뿐.
정사대전 자체를 오륜회가 뒤에서 조종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일 정도였다.
‘무엇을 꾸미는 거지?’
흰색 기린 같은 아름답지만 두려운 사내. 그를 떠올리며 총군사 독고선은 고민에 빠졌다.
책사의 밤이 깊어만 갔다.
* * *
같은 시간 북궁산산.
사악한 뇌.
사뇌라는 별호를 가진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아아, 망할 혈린광살…….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건가. 저번 정사대전 때 피해도 다 떨치지 못했는데…….”
망할 놈의 금혈방이 떨어져 나간 게 너무 타격이 컸다.
‘지금 사도련이라고는 해도……. 마교 쪽 인물들이 삼분지 일인데…….’
마교의 첩자가 문파에 떼거지로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미 북궁산산이 직접 조사하여 알게 된 사실이다.
저래 보여도 화투로 책사 자리를 딴 게 아니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을 내쫓지 않은 건 다른 게 아니다.
‘금혈방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인간적으로.’
이 상황에서 저들을 전부 내쳐버리면 말라가던 자금이 더욱 말라가게 될 터.
강호가 칼의 논리라 하지만 이런 집단은 결국 돈의 논리로 돌아가지 않던가.
거기다 마교 놈들도 무슨 생각인지 사도련에 협력하고 있는 상황.
정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는 기묘한 밀월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책상에 머리를 쾅쾅 부딪치며 생각에 잠겼다.
무림맹의 책사, 독고선과는 정반대의 모습.
우아하게 부채를 만지작거릴 기품 같은 건 없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대놓고 힘을 합칠 수 없나?”
강호사에 사파와 마교가 담합하여 정파를 치는 일이야 으레 있어 오지 않았나.
이전에는 정파를 치는 것은 아니나, 어찌 되었건 사도련의 보전이 필요했다.
허나, 허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도련주.
술제. 그 꼬장꼬장한 할배 아닌가.
‘쓰읍……. 이딴 걸 책략이라고 썼냐고 또 개쪽 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의견을 내는 건 책사로서의 일 아닌가.
사뇌는 고민하다가 빠르게 종이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두 거대 집단의 참모들과 책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제갈린은 제자, 진천희를 내보내고 이름 없는 산중에 있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네.”
제갈린은 산봉우리의 꼭대기 위에 서 있다.
오만하고, 서늘한 그의 눈동자는 저 아래 땅을 지긋이 내려다본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
그곳에는 불길이 마치 태양의 코로나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기괴하게도 불이 동그란 원형으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원 밖으로는 열기가 전혀 번지지 않고 있었다.
그 안의 원형 공간만이 뜨겁게 타오르며 모든 것을 용납지 않을 뿐.
흡사 칼로 그린 것 같은 기묘한 공간을 제갈린은 태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원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비명 소리가 울린다.
인간의 성대에서는 결코 나지 않을 그 기괴한 소리는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어쩔 수 없지요. 신관이 되어버렸으니.”
“그것도 하나뿐인 신관이지. 인간을 싫어하는 자네가 여기서 더 늘릴 생각이 있을 리도 없고. 애초에 그런 자격이 있는 존재도 많지 않을 거고.”
“…….”
유호는 답하지 않는다.
둘은 비명 소리를 들으며 한참 불길 안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유호였다.
“그리 보내도 되겠습니까? 진주언가 때처럼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만.”
“내 최근 천기를 보기 시작했다네.”
“네?”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냐는 유호의 반문에 제갈린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본시 제갈가의 일족은 천문과 지리에도 능통하지. 개파조사나 다름없는 제갈량께서는 동남풍도 일으키시지 않았던가?”
개소리일까? 진짜일까.
어쩌면 농일 수도 있겠다.
이 사내는 필요하다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자이며,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자이니까.
“그거야 그랬습니다만.”
유호는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흩어진 천기라지만…… 그 흩어진 조각에서도 알 수 있는 게 있더군그래.”
“그런 게 보이십니까?”
“미래는 알지 못하게 되었지만 현세를 본다면 놈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은 할 수 있지. 그리고…… 희 녀석은 어차피 바다로 한 번은 가게 되어 있네. 그걸 그 녀석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을 테지.”
진담이군.
유호는 생각했다.
원래라면 필멸자에게 불가능한 일이라지만, 어쩌면 저 인간이라면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하늘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도 어쩌면 그것 덕분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어째서입니까?”
“저울질이네.”
“저울질이요?”
제갈린은 불꽃을 한참 바라본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이 멀 정도의 밝기인데도 그는 눈 하나 깜빡이는 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끔은 그가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제갈린이 말을 이었다.
“그래. 그 녀석이 그리 아끼는 의동생이나… 의각원들이 다수 죽어 마음이 다치는 것과 녀석의 신체 일부가 조금 없어지는 것. 어느 쪽이 그 녀석에게 더 고통일까……. 저울질을 하는 게지.”
“……주인님 참 또라이 같으십니다.”
다른 이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즉각 목을 칠 터.
허나 제갈린은 웃으며 답했다.
“하하핫. 그거 칭찬이로군. 어쨌든 이제 슬슬 본격적인 막이 오를 걸세. 놈들도 나를 보았고, 어지간히 두드려 맞았으니……. 슬슬 크게 움직이려고 하겠지.”
“그렇군요.”
비명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제갈린이 말했다.
“슬슬 저 안에 있는 것들도 다 죽었겠군.”
유호가 한참 응시하다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요. 예상 이상으로 생명이 질기군요.”
“음? 그런가. 그렇다는 것은 ‘그쪽’도 우리가 모르는 대응을 했다는 것이니.”
강한 적을 앞에 두고.
기묘하게도 제갈린은 즐거워 보였다.
괴물.
수많은 강호인들이 그를 부르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