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90
제 890화
사마현이 말했다.
“거간소에서는 별의별 인력을 다 거래하거든. 다른 객잔 점소이 취직에서부터 소작농 일거리도 있고, 호위무사를 구하거나, 숙수가 재취업하거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하인이 필요하다거나, 무공 교습, 글 선생, 청탁을 위한 자리 주선까지…….”
천우가 어이없어 물었다.
“글 선생? 거간소가 그런 일도 했어?”
천우 자신도 과거 거간소에서 잠깐 일을 했지만 글 선생은 본 일이 없다.
“형은 아무래도 강호인만 가는 거간소를 가니까 자세한 양민 사정은 모르실 겁니다~”
“그렇군.”
천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희가 말했다.
“대충은 알 것 같다. 무슨 소리인지. 각지에서 일하는 양민 고용인들이 가져오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있는 거구나?”
“응. 역시 형이네. 그것도 있고 돈도 잘 벌려. 비록 양민들의 거간소라고 해도 결국 유통업이고, 소개소잖아? 잘 벌리지~ 영향력도 생기고.”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이 청루각도 엄청 벌고 있겠더라.”
대화하면서 곁눈질로 보고 들어왔는데, 7층 전각의 아주 으리으리한 곳이었다.
그때 세 사람을 향해 위병이 달려왔다.
‘점소이가 아닌 무장을 한 위병이라.’
이제야 금혈방 무복을 알아본 모양.
“금혈방에서 오셨습니까?”
사마현이 기다렸다는 듯 패를 꺼내 들었다.
“금혈방 감찰관인 아무개입니다. 여기서 며칠간 머무르고 싶은데 지점장님을 뵐 수 있을까요? 미리 전언은 가 있을 겁니다.”
사파이다 보니 이런 감찰도 가명을 쓰는 일도 많다.
자칫 잘못 감찰했다가 원한을 사서 칼에 찔려 죽을 일이 많기 때문.
신상을 찾아 가족을 잡고 협박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감찰도 인피면구를 쓰고 오는 일이 꽤 된다고.
그래서! 감찰패가 중요하다.
위병은 꼼곰하게 금혈방 감찰패를 들여다보더니 위조가 아닌 진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파도 문양의 세공은 금혈방의 장인이 아니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지요. 알겠습니다. 일단 따라오시겠습니까.”
[파도 문양 세공?]진천희가 사마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혈방 소속의 극소수의 장인만이 표면에 파도 문양을 만들 수 있거든. 이건 세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담금질하는 과정에서 만들 수 있는 문양이야. 위조가 거의 불가능하지.]신기하다.
예전에 칼 만드는 다큐에서 봤던 것 같은데 여기서도 그게 가능한 장인들이 있는 모양이다.
진천희 일행은 위병을 따라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전각은 총 일곱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 층마다 넓이도 상당히 넓다.
세 사람은 그중 오 층으로 안내되었다.
적당한 크기의 방이나 들어가자마자 새외에서나 쓰는 값비싼 향기가 났다.
거기에 붉은 비단 주렴에 산호를 깎아 만든 조각, 천장은 학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음각되어 있다.
‘와, 돈 엄청 들였겠네.’
거기에 경치는 어떤가?
넓은 창을 여니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발아래로 지평선까지 기와집 지붕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진천희가 입을 열었다.
“전각 주변에 별채가 많네.”
“별채는 숙박하는 손님들용이야. 가끔 새벽에 예인이 연주를 하기도 하고. 그걸 즐기기 위한 풍류객들이 아예 숙박까지 하면서 기다리는 거지.”
엄청나다.
“비싸지?”
“응. 비싸. 그리고 유명한 예인이 오는 날의 별채는 거진 집 반 채 날리는 날이야.”
전설(?)처럼 한 시진에 집 한 채는 아니어도 일박 이일에 집 절반을 날린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치.
“엄청난 부자들이 오겠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엄청난 부자는 아니어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이곳의 밤을 누리고 싶다고 오는 강호인도 있어.”
“풍류 광인이구나.”
“그런 셈이지.”
과거 음악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어디 장터에서 공연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자발적으로 원하는 시간대에 음악을 듣고 싶은 거라면.
연주자들을 초대해야 하거나 본인이 공연장을 가야 하니 결국 돈이 문제다.
‘하긴 인류사에서 예술이란 늘 그랬지.’
돈이 있는 자들이 예술가를 후원하고, 예술가들은 그 돈 있는 자들을 위해 곡을 짓거나 그림을 남겼다.
개중에는 길거리 공연이나 풍속화를 그려 팔기도 했지만, 인쇄술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는 시대에서 결국 대세는 돈 있는 자들의 것이다.
‘현대도 뮤지컬이나 오페라도 각 잡고 파면 돈 많이 든다고 들었어.’
예전에 진천희 맡은 환자분들 중에 명이 얼마 안 남은 분이 계셨다.
현대 과학으로는 도무지 그분을 구명할 수 없었고.
남은 시간은 대략 반년 정도 추정.
그분은 남은 목숨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시다가 매일매일 연극을 보셨다고 했다.
오페라도 보시고, 뮤지컬도 보시고.
영화는 거의 안 보셨다.
왜 그런가 여쭈니까 하시는 말이.
‘영화는 모든 게 똑같이 반복되잖아요. 하지만 연극은 그 순간밖에 없으니까요. 그 공기도, 그 소리도, 그 억양도, 사소한 실수조차도 지나가면 다시 볼 수 없으니까.’
‘사람 인생이랑 꼭 똑같지 않나요? 우리는 사실 하루가 반복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닌 거야.’
‘사실은 매일 살고, 매일 죽는 거지.’
‘그게 인생이었던 거야.’
그분은 예상했던 반년을 훌쩍 지나 일 년이나 더 살다 돌아가셨다.
아무리 공연을 좋아해도 전 재산을 다 털 수 있나?
티켓값으로 그게 다 되나? 했는데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알차게 다 써먹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답하셨다.
…그런 환자가 있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하루 만에 집 한 채를 털든 반 채를 털든, 그 무인에게는 그 하룻밤이 그럴 가치가 있는 거겠지.”
“호오, 의외네. 형 성격에 ‘너무 아깝다. 그 돈이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지 않아?’라고 할 줄 알았는데.”
사마현은 형의 꼬장꼬장한 목소리를 흉내 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사람마다 가치는 다르다.
그 환자분은 참아왔던 취미를 실컷 하시고는 거동이 불편해지신 이후에 잠시 집에 머물러 계시다가.
어느 날, 까무룩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들었다.
가족들은 차라리 호상이라고 울면서 웃었단다.
어차피 유산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알차게 다 쓰고 갔다고 웃으며 투덜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유산 대신 함께 공연을 보러 다닌 기억만은 영원히 남아있어서.
이제 그 사람을 생각하면 공연의 그 공기가 먼저 생각날 정도라고 했다.
어두우면서도 약간 밀도 있는 특유의 냄새가.
마침, 어디선가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건 연습이군.’
소절 하나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틀린 부분을 점검하고. 다시 현을 퉁기고, 이번에는 빠르게 퉁겼다가.
그다음에는 느리게 퉁겨보기도 하면서 어느 쪽이 느낌이 더 좋은지 스스로 비교하고 있다.
청루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곳은 예인들의 전쟁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사이.
인기척이 느껴졌다.
청도 지점장이 두 명의 호위 무사와 함께 나타난 것.
셋 다 여성으로, 두 명의 호위 무사는 키가 무척이나 커서 팔 척은 될 법했고 가운데에 있는 지점장은 반대로 무척이나 체구가 작았는데.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았다.
대신 손가락 마디, 특히 엄지와 약지에 굳은살이 깊게 박였고, 휘어진 손톱 모양 역시 한때 금을 탔던 흔적이 보였다.
“금혈방 감찰관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지점장 월령화라고 합니다.”
월령화.
예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예명이다.
손끝 굳은살부터 예명까지, 그녀가 예인 출신으로 지점장까지 올랐다는 뜻.
보통 노력이 아닐 터였다.
사마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포권했다.
“금혈방의 아무개라고 합니다.”
대놓고 가명을 뱉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런 일에 익숙한지 다음으로 넘어간다.
“정기 감찰 시기는 아닌 것으로 아는데……. 갑작스럽군요.”
그보다는 감찰이 귀찮은 기색이다.
“특별 감사죠. 사실 감사라기보다는… 최근 해안선에서 나타나는 것들에 대한 조사차 온 것입니다만.”
진천희는 다른 의미로 놀란다.
‘현이 억양이 완전히 다른 사람 같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연극 톤도 아니고 말투 한 번으로 그냥 다른 사람으로 변했으니까.
지점장이 말했다.
“괴어인 말이군요.”
“네. 제가 속한 금혈방과 본방이 속한 다섯 계파.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다섯 수레바퀴들 모두가 이번 일에 관심이 있으신 것. 알고 계시겠지요.”
다섯 수레바퀴면 오륜회를 비유하는 것이리라.
“그렇죠. 허나, 아직 보고를 올리기 전인데 이쪽으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사마현이 명랑하게 답했다.
“호오, 그 말씀은 여기에 뭔가가 있긴 하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좋네요. 좋아요. 아, 참고로 별도의 정보책이 있어 이곳을 콕 집은 것은 아니랍니다?”
문득 진천희는 이 말투가 백천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현은 백천군을 본 일이 없음에도.
‘연기마저도 닮았다는 것은… 결국 뿌리는 같다는 건가.’
그리고 사마현이 먼저 이야기한 것은 지점장의 의심을 없애기 위한 한마디였다.
‘지점장은 하오문이 별도의 정보 조직을 청도에 만들어 놓은 건지 의심하는 중인가 보군. 그럴 경우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으니까.’
그저 한마디의 대화만으로 진천희와 사마현은 속내를 꿰뚫었다.
천우는……. 모르겠다.
그냥 웃고 있으니까.
설령 안다고 해도 모르는 척할 놈이기도 하고.
사마현이 말했다.
“이런저런 소거법과 그간 모은 정보의 조합으로 이쪽에 괴어인들의 끄나풀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조사차 온 건데…… 지점장님이 얻으신 정보는 무엇인지요?”
네가 무엇을 의심하는지 알고 있다, 허나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을 사마현은 돌려서 말했다.
만약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곤란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
지점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 정리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별채로 안내할 테니……. 그쪽에서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 * *
다음 날 밤.
지점장에게 보고서를 받고, 진천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반면 사마현은 보고서를 읽고 나서 미친놈처럼 웃고 있다.
천우는 보고서를 다 읽고, 다른 서책도 받아 읽고 있었다.
무당파에서 따로 천우에게 보내준 서책이었다.
셋 다 편안한 자세로 반쯤 누워 있다.
주변에 보는 눈도 없고, 이런 곳에서 계속 긴장을 해봐야 체력 낭비임을 알고 있으니까.
사마현이 말했다.
“이거 옛날 버섯 생각나는데?”
“버섯?”
천우가 묻자 사마현이 답했다.
“아, 천우 형은 모르겠구나? 큰형과 나의 추. 억. 을.”
“어……. 현아. 오해하기 전에 말하겠는데 사람 몸에서 버섯이 돋아나는 것을 보통은 악몽이라고 회상하지, 추억이라고 회상하지 않아요.”
진천희의 말에도 사마현은 꿋꿋이 추억이라 주장했다.
그래도 천우에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마현이 천우에게 설명하는 동안 진천희는 보고서를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으음, 지점장이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수상한 일은 세 가지인가.’
우선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던 이 지역 토호 중 셋, 그리고 불치병까지는 아니어도 중병을 앓고 있어 위험했던 부호 가족 여덟.
모두가 완쾌했다.
다만, 성격 폭급해지고 몇몇은 식성이 바뀌었단다.
예전에는 나물 요리를 무척 즐겨 먹었는데 요즘은 고기를 그렇게 찾는다고.
원래부터 고기 좋아하던 사람은 그냥 그대로 고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고로 고자가 되었던 오 대 독자가 성 기능을 되찾고 그 부인이 임신했다고 하고.
천우가 문득 물었다.
“저게 만약 혈선교의 사이한 것이라면 정력 증진, 고작 그런 걸 대가로 한다고요? 죽어가는 목숨을 살리면 모를까.”
“아, 천우 형~ 형은 도사라 몰라서 그러는데 부자 놈들은 목숨만큼이나 정력을 중요시한다고. 그치, 형?”
문득 진천희는 의각에 비싼 돈 싸 들고 와서 밤에 구실 좀 하게 해달라며 비는 몇몇 부호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색마의 불알을 분쇄하여 물리적 고자로 만들었던 한 영물도.
“음. 그게. 일단 나도 이해는 잘 안 가는데. 그래도 어…. 젊을 때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 그… 늙으면 절박해질 수도 있대. 굳이 밤에 정력을 쓸 일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자면 또 돈이랑 시간은 썩어날 정도로 많으니까. 그걸로도 해결이 안 되면 미치는 거지.”
후욱, 후욱, 할 수 있는 설명은 다 했어.
‘더 이상은 나도 몰라. 나도 그런 부호가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부자는 맞지만, 아무튼!
시간이 많아서 뭐, 한가해 본 적은 없지 않나.
그리고 애초에 자신도 그런 쪽 세포는 이미 죽어 흔적기관만 남은 모태 솔로이고.
전생에서도 나이만 먹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어른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집에 들어가면 딸, 아들 대신 옛날 로봇 피규어가 맞이해주던 인생이었으니까.
‘이런 거 모으는 거 부끄러워서 밖에는 차마 대놓고 내색은 못 하지만.’
진천희 어릴 적에는 남자가 커서도 이런 장난감들을 모으는 게 큰 흠이었고.
TV에는 철없는 삼촌이 늘 이렇게 애들 장난감으로 놀고 할머니에게 등을 철썩 맞는 장면이 나온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그러는 건 주책 같아 보여서 밖에는 잘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았다.
진천희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석에는 강철 인간 한정 디오라마랑 별의 전쟁에 나오는 초록 난쟁이가 서 있고 비싼 광선검 모형도 벽에 걸어 놨다.
TV는 큰 걸 샀는데 큰 화면에서 게임 하고 싶어서 그랬다.
‘결국 할 시간이 없지만.’
나중에는 그거 할 체력도 없더라.
그랬다.
불혹이 넘어도, 사람들이 교수라 불러도.
알맹이는 그냥 애어른.
사실 이런 건 모르는 게 더 많다.
차라리 레고로 데스스타를 설계도 없이 만드는 게 더 쉬우리라.
진땀을 빼며 설명하는 형에게 천우가 물었다.
“네? 고작 그걸로 혈선교에 영혼을 판다고요?”
도사의 순진한 질문에 진천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