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95
제 895화
후욱!
진천희의 몸에서부터 기운이 일어나 등을 통해 뒤에 서 있는 천우와 사마현의 등으로 향했다.
세 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기운이 연결된다.
오행신공을 익혔기에 천우와 사마현의 진기와 교류하고, 그것을 이을 수 있다.
이로써 세 명의 내공이 마치 하나처럼 이어져 상생상극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사마현의 손에 황금빛 광채가 일어나는 운무가 생겨난다.
반대로, 천우의 두 손에 서린 기운에서 백금색의 광채가 뻗어나왔다.
그리고 진천희의 두 손에는 흑색과 백색의 기운이 맴돌며 그 크기를 부풀리고 있었다.
세 명의 기운이 서로 뒤섞이고 있는 현상!
본래라면 주화입마에 이르러야 할 일이지만, 진천희가 진의 중심이 되어 둘의 기운을 원활하게 뒤섞고 있다.
이것 역시.
천지 만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오행신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죽여!
그리고 동시에 괴어인들이 사방에서 덮쳐 왔다.
그들의 삼지창에 서린 기운이 파괴적인 성향을 띤다.
수십이나 되는 괴어인들의 공격은 분명 아무리 이 세 명이 절대 고수라고 해도 얕볼 수 없는 위력.
사방에서 창기(槍氣)가 파도처럼 밀어닥친다.
날카로운 기운의 해일!
그것은 이미 합격진에 가까운 것이었고, 위력적이고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그때다.
팟.
천우의 양손이 태극을 그려낸다.
그 힘이 천우에게로 향한 괴어인들의 공격을 그대로 흩어 버리며 무위로 되돌린다.
사마현의 두 손은 마치 천 개로 늘어난 것처럼 분열한다.
그 손은 일일이 창기의 파도를 후려쳐 파쇄했다.
그리고 진천희.
그의 손에 들린 빙정검은 극음지기를 줄기줄기 내뿜으며 세계를 일(一)자로 내려그었다.
쩌억!
파도 같던 창의 기운들이 반으로 갈라져 산산이 조각나 거품처럼 사그라든다.
그 궤적에 있는 괴어인들의 창대가 잘려 나가고, 그들의 몸에 일(一)자 형태의 상처가 나며 피 분수가 쏟아졌다.
어떤 이는 몸이 반쯤 잘렸으며, 어떤 이는 손발이 잘려 나가 땅에 떨어졌다.
믿을 수 없는 일검!
그러나.
괴어인들의 대장.
스스로를 타하파라고 칭한 자는 자신의 창으로 그 일격을 막아내고 굳건히 서 있었다.
-기린의 제자. 역시 강하다. 후퇴. 물러서라.
타하파의 몸 전체에서 강맹한 기운이 일어나 그의 전신을 휘감는다.
그것은 그야말로 호신강기와 같은 것!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 무공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다른 이질적인 힘에 가깝다.
그런 타하파가 일보를 내디뎠다.
펑!
그가 만든 잔상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더니 단번에 진천희 앞으로 도달해 삼지창을 찌른다.
이형환위!
반면, 진천희의 검은 침착하게 마주 뻗어나갔다.
그러고는 상대의 삼지창 가장 가운데 창날과 가볍게 맞부딪쳤다.
카그그극!
부드러움으로 상대의 창날을 흔든다.
그리고 그대로 걷어내려는 순간 삼지창이 마치 파도처럼 흔들리며 더욱 깊이 들어온다.
오히려 진천희의 검이 비켜나가고, 빈틈을 드러난 것은 진천희 자신!
‘신묘한 창술이군. 하지만!’
진천희는 순식간에 검을 놓았다.
강호인이 칼을 놓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검을 목숨줄처럼 쥐지 않던가.
반면 눈앞의 사내는 그걸 가차 없이 놓아버리니 타하파의 눈이 커진다.
허나, 그 당황의 틈새를 진천희가 무자비하게 파고든다.
두 손을 활짝 펼치고 뒤집으며 내뻗는다.
십단금!
퍼퍼퍼펑!
타하파가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큰 부상은 없는 듯하다.
-인간. 이렇게 강한 자. 존재? 너. 다시 볼 것. 기린의 제자.
그리고 그는 미련 없이 뒤로 물러서며 바다로 연결된 수로로 뛰어들었다.
어느샌가 괴어인들도 그들의 동료들과 함께 수로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풍덩!
“하…. 잽싼 녀석들이네~”
“저런 존재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참 놀랍네요, 형.”
“그러게 말이다.”
해무가 천천히 흩어진다.
부서진 대로(大路)와 약간의 핏자국만이 방금 전의 흉험했던 전투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
저들 괴어인들은 동족의 시체까지도 전부 챙겨 사라졌다.
마치 한겨울의 끔찍한 악몽을 꾸고 깨어난 기분이었다.
“일이 쉽지는 않겠는걸.”
“일단 형가장이 저들과 한통속인 건 구 할쯤은 맞지 않을까 싶은데. 안 그래, 형?”
“그렇긴 하지만 증거는 없으니까 좀 애매한걸. 게다가 무당파 속가제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축복을 내려주고 인간을 대가로 받는다는 말이 신경 쓰이는데요, 형.”
천우의 말에 진천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인신 공양이겠지.”
담진 왕국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숙신족 때도 있었던 일이고.
자신의 영생불사를 위해서 타인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킬 수 있는 게 인간이니까.
거기다 괴어인 자체가 사람을 먹고 사신다고 하니 더욱 위험하다.
‘모든 인간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지.’
선인이 있다면, 악인도 있다.
반대로 악인이 대부분인가 싶을 때도, 선인이 식빵 건포도처럼 박혀 있기도 했다.
그것이 사람.
그렇기 때문에 의원은 사람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지구에서도 가끔 이런 힘든 곳 도망쳐서 인기 많은 성형이나 피부과나 개원할까 싶다가도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고 그랬지.’
인간이면서 괴어인들에게 협조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인기과로 도망치게 만드는 원인이다.
인간 그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자들이니까.
‘부술 그 자체도 어렵지만, 사실 더 힘든 건 사람이지.’
모든 일이 그러지 않나.
서비스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무직을 해도 일보다 사람이 힘들고, 기술직도 장난 아니지.
이런 감정은 어딜 가나 똑같다.
진천희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사람 그 자체에 환멸이 밀려올 때는 이렇게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 도움이 된다.
“일단 그러면 인간족 스파이를 찾아야겠네.”
종(種)과 종(種)의 싸움.
어찌 보면 담진 왕국이나 북해빙궁 때보다 차라리 본질은 낫다.
먹이사슬의 투쟁.
대자연 VS 인간인 셈이니까.
사마현이 말했다.
“형. 어쩌면 이 지역의 대다수가 저놈들의 하수인일 수도 있다구?”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 * *
괴어인과 한바탕하고 나니, 해는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사방에 깔렸다.
청도는 나름대로 관광 도시이면서 무역 도시이기도 해서, 밤이라고 해도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와, 아까 싸움이 거짓말 같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보이다니.”
“괴어인이 사용한 결계가 그만큼 대단한 거지.”
가게들은 등불을 내걸었고, 높은 전각은 그 처마 끝에 등불을 달아 놓았다.
말 그대로 불야성(不夜城).
‘어원으로 따지면 과거 송나라 때 경제 상황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를 뜻하던가.’
경제가 얼마나 풍족한지 시장이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단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다고.
여기도 마찬가지.
바다는 이 도시의 경제 원천이자, 그 자체로도 축복이다.
수많은 중간 상인들이 오가고, 평범한 양민부터 누군가의 심부름을 받은 하인들까지 오간다.
진주언가처럼 질서정연한 모습은 없다.
욕설을 하고, 침을 뱉고, 노상방뇨도 하고, 술을 마시고.
비린내와 악취 사이로 누군가가 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린다.
흡사 인간으로 만든 진흙 구덩이 같다.
혼돈 가득한 거리를 지나 의형제는 자신들이 머무르는 별채에 도착했다.
다만 별채 안으로 먼저 들어간 것은 천우와 진천희 둘뿐.
사마현은 청루 쪽으로 향했다가 잠시 후에 돌아왔다.
“역시, 형이 의심하던 것이 맞았나 봐.”
사마현은 거기서 받은 밀서를 빠르게 읽고는 가볍게 불태웠다.
“역시?”
“응. 전부… 외형이 변했다고 하더라고. 해선방에서는 낫기 위해 육체가 환골탈태와 비슷하게 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사마현은 거기까지 말하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기다가 말을 이었다.
“이 넓은 강호에 그런 비약이 있을 수도 있지. 더 말도 안 되는 약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런 대단한 약이 있다면 내 귀에도 들어왔어야 정상 아닌가? 이렇게 안 퍼졌다고?”
사마현의 말에 천우가 하나 남은 눈을 가늘게 뜬다.
“막내 네 말은 결국 수상한 약이다, 이거지?”
“그렇지~ 그 괴어인 놈들이 축복이니 뭔지 했잖아? 그게 그런 것일 수 있지. 약을 먹으면 괴어인같이 변한다거나? 그네들 입장에서는 그게 축복일 수 있지.”
진천희는 사마현의 말에 머리를 싸맸다.
용린인과 락샤샤 건이 생각났다.
북해빙궁의 용린인의 경우에는 실험체 같은 느낌이었다.
전염병에 걸려 사망 직전인 이들을 개조해서 용린인으로 바꾸는 식이었으니까.
개조되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이긴 했다. 종족이 바뀌는 건 아니었으니까.
락샤샤는 아예 락샤샤라는 종족이 사람을 먹어치우고 본인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이미 인간이라는 부분은 먹혀서 사라졌다고는 해도 자아는 인간 그 자체.
만약 의지만 강하다면 밤에 광폭해지는 부분도 제어가 가능하다.
어찌 되었건 당사자들은 결국 기억이 전해지는 한 나는 ‘나’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
물론 그게 더욱 사람을 고뇌하게 만들지만 그건 뭐 둘째 치고.
그런데 이번 해선방 쪽은 좀 더 달랐다.
외형이 변했다는 것은 분명 락샤샤 때처럼 종족 자체가 변이되는 것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락샤샤 때와는 좀 다르지.
‘다른 종족에게 먹히는 것도 아니고. 부작용도 조금 얼굴이 물고기에 가까워지는 수준이라… 어찌 보면 변신 히어로와 다름없긴 한데……. 그 대가로 인신공양을 해야 한다는 게 문제네.’
여기서 문제.
과연 저 형가장주는 인신공양에 관여했을까? 안 했을까?
모르고 먹었으면 죄가 없다고 봐야 할까? 알고 먹었으면 죄가 있다고 봐야 할까?
진천희는 결정을 내렸다.
“다들 몸 상태는 어때?”
“내공은 팔 할 정도 남았어요. 만전이니 괜찮아요, 형.”
“나도 동감.”
방금 전 제법 사나운 격전을 치렀음에도, 둘 다 팔팔하다.
의각 지옥 훈련의 성과다.
‘음, 내가 봐도 잘 굴렸군.’
보석을 깎아내듯 동생들의 몸뚱이를 하나하나 깎아낸 보람이 있다.
덕분에 이 정도 내구력을 갖추게 되었지.
‘원래는 혈사에 휘말려도 도망칠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을 키워준 거긴 한데……. 다들 말도 안 되게 성장하긴 했네.’
도망을 잘 치는 수준이 아니라 반대로 다 쥐어패 버리고, 혈사 일으킨 흉수를 지옥 끝까지 쫓아갈 체력이 완성되었다.
“좋아. 그러면… 바로 해선방으로 가자.”
“놈들한테 공격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가자는 거구나? 흐음. 역으로 뒤통수를 치는 전략이네~ 마음에 들어.”
보통이라면 제아무리 고수라 하더라도 삼 일은 족히 정양해야 할 싸움이었다.
단순히 내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공의 문제라 해도 그랬다.
그렇게 내공을 펑펑 소진해댔으니 보통이면 집에서 쉬어야 한다.
보통이면.
“그러면 바로 가죠.”
천우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예전에 천우에게 주었던 복면과 야행복!
“형. 그거 꺼내는 폼이 자연스럽다?”
“그래. 너랑 형이랑 다니다 보니 꼭 필요할 거 같아서 챙기고 있어. 이제는 없으면 허전해.”
가슴에 야행복을 품고 다니는 정파라니.
‘내가 애를 잘못 물들인 건가?’
권제님, 천우는 잘 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