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99
제 899화
-아내가 아프다. 이번에 물고기를 많이 잡지 않으면 약값을 댈 수 없다. 제발 풍어(豐漁)가 되기를.
-멀리서 태풍이 온다. 도망가고 있지만……. 살 수 있을까? 아내가 기다릴 텐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인어들이 있었다. 이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산해경에 따르면 저인국(氐人國)의 사람이라고 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쉬이 지치지 않는다고…….
-그들이 아내를 낫게 해 준다고 한다. 대가로, 첫 번째 자식을 달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금 조각 몇 개와 함께 약을 받아 돌아왔다. 아내가 나았다. 너무 기뻤다.
-아내의 외모가 조금 기이하게 변했다. 마치 그들과 비슷하게.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아내를 사랑한다.
-아이를 낳았다. 나와 아내를 반반 닮은 것 같다. 건장한 사내아이다.
-그들이 찾아왔다. 아이를 빼앗으려는 것에 저항하자 그들이 제의했다. 축복을 받으라고.
-축복을 받았다. 나도 이제 하나가 된다.
-진즉 축복을 받을 걸 그랬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활력이 넘친다. 아내도 아주 좋아한다. 아이도 건강하다. 듣기로 늙지 않기에 다치지만 않으면 오래 산다고 한다. 영주는 벌써 천 년이 넘게 살았다고 하는데, 정말이라면 좋겠다.
-제법 오래 여기서 살았다. 그런데 두 번째 아이가 생겼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야겠다.
-영주가 불렀다. 제국어를 배웠냐고 묻기에 몰락하기 전에는 본래 학자 집안이라서 배웠다고 했더니 일을 맡기고 싶다고 한다. 나는 고심 끝에 승낙했다.
-지상의 인간과 교류하는 일에 내가 뽑혔다. 몇십 년 만에 육지로 올라간다.
-일이 고되지만, 덕분에 첫째를 장가보내고, 둘째를 건사하고 있다. 셋째도 생겼다. 셋째는 귀여운 딸아이다.
…..
…
.
-요새 납품되는 인간들의 신선도가 별로다. 사파 놈들 하는 짓이 늘 그렇긴 하다.
-딸아이가 놈팡이와 눈이 맞았다. 어째서 그런 가자미 놈을 좋아하는 건지……. 걱정이다.
일기를 죽 읽어 내려가면서 일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들 괴어인들이 인간을 괴어인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정신도 점점 괴어인으로 변하는 것.
스스로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인간을 대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다.
지금은 주로 의식에만 사용하는 모양이지만, 이따금씩 사람도 잡아먹는다는 것을 보니…….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하는가.’
그릇에 따라 물의 형태가 바뀌듯 사람이 괴어인으로 변하면 결국 그 마음도 괴어인을 따라가는 걸까.
하긴, 락샤샤 때도 사람들이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가 밤의 기억을 잊어버렸으니까.
스스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아이 하나를 희생시켰다.
그 선택조차도 지독하게 인간다워서 입맛이 쓰다.
허나, 이것은 그때와는 근본 자체가 다른 일.
이미 이곳의 괴어인들은 처음부터 ‘축복’을 원했고 그 삶에 적응하고 있다.
몸을 따라 마음도 괴물이 된 것.
‘결국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거로군. 늙지 않는다. 그 증거로 영주는 천 년을 넘게 살았다고. 거기에 이 일기장의 주인은 이미 몇십 년 전에 괴어인이 되었고, 괴어인이 된 후 인간과의 교류는 최근 몇 년 만에 시작한 건가.’
-이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산해경에 따르면 저인국(氐人國)의 사람이라고 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쉬이 지치지 않는다고…….
일기에 쓰여 있는 문구.
그리고 지상의 불치병이 나은 이들은 바로 이 축복을 통해 괴어인 종족으로 변했기에 건강을 되찾은 것일 것이다.
확실히 인간보다 강건한 종족이다.
이런 자들이 오랜 세월 해저에서 살아왔다니…….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들을 내버려 둔다면.
‘청도의 인간들을 제물로 삼고, 어느샌가 이 괴어인들에게 청도라는 지역 전체가 정복당하겠지.’
그래도 인간의 형상이 남아 있는 혼혈들은 인간을 연기하면서, 제국 정부에게서 자신들의 상황을 숨기려고 들 터.
관은, 관은 황금을 좋아한다.
그것은 화 제국이 있기 전부터 있어 왔던 관의 생리 같은 것이었다.
청렴결백한 관리는 암습하여 죽이고, 말 잘 듣는 관리는 황금을 준다.
영원에 가깝게 살아가는 종족이니 몇십 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터.
그렇게 세 번만 관아를 갈아치워도 자신의 사람들로 가득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체가 수면 밖으로 드러났지.’
본인들이 나오는 게 먼저라 생각했는데, 일기를 보니 스승님께서 싹을 도려내기 시작한 게 먼저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느 쪽이든.
이걸 내버려두면 강호 전체가 피로 물들 것은 자명했다.
그 전에 이를 막아야만 한다.
‘하……. 스승님은 어디까지 예측하셨을까?’
진천희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확실한 건 제자가 진실을 마주하고 머리 싸매고 있을 거라는 거. 이거 하나는 백 퍼센트 예측하셨을 터.
그래도.
‘혼자 싸우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
동생들이 있다.
* * *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하지……?’
진천희의 눈이 빠르게 푸른빛으로 변했다.
단순히 육체만 변이한 것이라면 이들을 인간으로 봐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영혼과 사상까지도 인간과는 아득히 먼 자들을 인간 취급할 수는 없는 일.
애초에 스스로 인간을 버리는 것을 택했지 않나.
‘하지만… 아니다……. 더 미련을 갖지 말자.’
진천희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미 그들은 인간을 잡아먹고 있지 않나.
‘그래. 나는 신이 아니야.’
인간을 버리고 다른 존재가 되기로 선택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이들이 지상에 올라와 사람들을 참살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일단 스승님이 괴어인이 계속 찍혀 나오듯 나오고 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알 것 같다.
진짜로 이들은 사람으로 괴어인을 찍어낼 수 있다.
아픈 자들을 꼬드기면 하겠다는 이들이 많을 터.
설령 괴물이 되고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가 된다 하더라도 하겠다는 자들이 많을 터였다.
그중에는 그저 영원에 가깝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하겠다는 이들도 있을 거고.
‘최악의 경우에는…….’
과거 스승님께서 일으킨 불이 떠오른다.
자비도 없고, 대화도 안 되는 그야말로 자연재해 그 자체.
산에 사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산불이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스승님은 그런 산불을 닮았다.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과 ‘대화’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의 사정도 고려하는 일이 없다.
괴어인이 된 것도 본인들 사정이니 책임도 본인들이 지든가.
냉정해 보이나, 어찌 보면 종(種)으로서의 선택이다.
그들이 인간을 잡아먹는 한은 무슨 타협을 보든 평화협상을 하든 의미가 없다.
그러니 보는 족족 죽인다.
유해 조수와 대화하는 사냥꾼은 없듯이.
그 유해 조수가 인간보다 강대하고 오래 산다면 더더욱 타협의 여지는 없는 것이겠지.
‘그것은 스승님의 길. 나 역시 인간을 저버린 자들에게 동정을 주고 싶지 않아. 아니, 감히 그럴 능력도 안 되고.’
진천희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천희, 천우, 사마현 모두 화경에 이른 절대 고수.
어지간해서는 들키지 않을 터.
허나, 지난번에 조우한 타하파 같은 경지의 괴어인이 있다면 시간을 지체할수록 발각될 확률은 높아진다.
일기로 미루어보아 타하파는 수백 년은 묵은 괴어인 같아 보였으니까.
가뜩이나 괴어인은 인간보다 체력도 근력도 강한데, 그 시간 동안 무공만 연마해 온 괴물.
그런 자를 내쫓아버릴 정도로 대등, 어쩌면 그 이상의 무위를 보여주었지만 정작 진천희의 감상은 간단했다.
‘성가셔.’
진천희는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더 훑어본 후에 바로 집무실을 나와 처음 흩어진 곳으로 향했다.
아래에서는 여전히 그 환단을 만드는 의식을 하고 있다.
의식을 치르는 자들 전원이 순혈 괴어인들인지, 제국어를 쓰지 않아 대화 소리가 들려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기감을 넓게 퍼뜨려 주변을 면밀히 살펴본다.
‘딱히 경계할 만한 자는 느껴지지 않는군.’
진천희는 곧바로 입구로 향했다.
사마현과 천우도 그런 형을 발견하고 곧바로 합류했다.
세 사람은 눈길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동시에 밖으로 향했다.
단순히 장원 밖이 아닌 이 도시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밟아 올라갈 생각은 없다.
통!
사마현의 몸이 마치 월면에 떠오르는 토끼처럼 튀어 올라 계단 사이에 난 공간을 밟는다.
기묘한 암벽 등반.
토형보만으로 튀어 오르고 튀어 오르고, 뛰어올랐다.
반면 천우는 유운보를 이용해 계단과 계단을 징검다리 밟듯 걸어간다.
그리고 진천희는.
‘가자.’
달팽이 나선처럼 빙글빙글 이어지는 계단. 그 옆면을 밟으며 올라간다.
위에서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모양새.
천우가 놀라서 물었다.
[형, 멀미 안 나요?] [응. 이게 편해.]나사못의 골을 따라 걷듯이 90도로 딱 붙어서 걷는 모양은 그야말로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어찌 되었건 세 형제는 각자의 방식으로 빠르게 지상까지 올라왔다.
[다음 올 때는 밧줄이라도 챙기자~ 형,] [그게 낫겠다.]진천희도 동의했다.
밖에 나오니 경비병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세 사람은 느긋하게 밖으로 나와 아침 해를 본다.
[와, 악몽 같은 밤이었네요.]지저 도시 괴이(怪異)들의 마을.
거기서 본 것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언가였다.
* * *
문득 응룡이 과거 말세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천지만물의 균형이 깨져, 세상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을 말함이다. 당금 지상의 주인은 누구이더냐? 바로 복희의 후손인 너희들과 너희가 가호하는 인간이 아니더냐? 그러나, 인간 스스로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는 날, 때가 오는 것이다. 지상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지.
-그때가 오면, 인간은 더 이상 지상의 주인이라 자처하지 못하고. 너희 인간의 피로 세상이 씻겨 나가 새로운 질서와 규칙이 들어설 것이다. 복희가 팔괘를 내려 너희를 가호한다 하여도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리라.
엿 같은 가설인데.
‘만약 말세가 오면 괴어인 같은 애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건가?’
방금 인간표 정육점을 보고 와서 그런지 기분 참 족 같은데?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운기조식을 했다.
천우는 손발이 차서 침을 놓아주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전에 천우가 본 것은 천우 인생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니까.
정파인 천우가 상대하는 것들은 기껏해야 흑도의 무리나 혈선교 정도.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악행이 물론 약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종족이 다른 종족에게 하는 먹이사슬과는 차원이 달랐다.
‘거기다 진득한 악의가 느껴졌지. 제대로 된 공간도 아니었고.’
일종의 섭혼술까지 작용하는 공간이니 제아무리 굳건한 강호인이라 하더라도 심혼이 흔들릴 만했다.
진천희는 가볍게 운기조식을 하고는 천우의 혈을 누르며 침을 계속해서 놓았다.
“저는 괜찮아요. 형.”
“아니야. 이런 건 조금이라도 빨리 해야 나중에 큰 사고 예방한다. 가만히 있어 봐.”
천우의 거대한 체구에 식은땀이 고인다.
진천희 자신이야 이게 처음이 아니고, 사마현도…….
그래도 지난번 버섯 사건 같은 일을 경험하다 보니 잘 적응하는 것 같다.
어쩌면 본인 말대로 처음부터 ‘하늘이 정한 악당’이기 때문에 이런 것에는 멀쩡한 성질인 것일지도.
“현아. 너도 맥 좀 보자.”
“네, 여기 대령하겠사와요.”
장난스럽게 말하며 손목을 가져다 댄다.
맥을 짚어 보니 평온하기 그지없다.
‘음, 현이는… 진짜 하늘이 내린 뭐……. 그런 건가.’
일단 쟤는 보통 인간의 감성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괜히 내색을 하면 상처받을 수 있으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