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0
제 900화
진천희가 볼 때 사마현을 상처입힐 수 있는 건 생판 이름 모를 타인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사마현의 이름을 부르짖다가 만 명쯤 죽어 나자빠져도 사마현은 아무 생각이 없다.
일면식도 없는 놈이 이름 부르든 말든 알 게 뭔가.
하지만 그런 그를 상처 입힐 수 있는 자가 바로 가족.
늘 소중히 여기는 가족의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
‘만약 혜아가 사마현의 이런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면 그때는 현이가 상처를 받겠지.’
진천희 자신도 다를 바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현에게 있어 진천희 자신도 일단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인 것 같으니까.
“씩씩해서 좋네!”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자 사마현이 웃는다.
“사파 짬이 어디 가는 게 아닙니다요~”
“그래그래. 앗, 그렇다고 천우가 심약하다는 뜻은 아니고. 이건 누구라도 충격 먹을 일이니까.”
그리 말하며 억지로 일어나려는 천우를 손가락 하나로 쿡 누른다.
천우는 마지못해 다시 누웠다.
‘사실 사파라도 그런 광경을 봤다면 심혼이 뒤흔들렸을 텐데……. 이건 굳이 말하지 말아야겠다.’
사마현의 타고난 천성은 그냥 그대로 덮어두는 게 좋겠지.
자신이 원해서 그리 태어난 것도 아니고.
지금은 어쨌든 많은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천우도 얼추 회복이 되었고, 진천희와 사마현의 내공도 어느 정도 돌아왔다.
조금 졸리긴 했지만 그래도 운기조식을 깊게 해서 어찌저찌 잠을 쫓았다.
애초에 그런 광경을 보고 잠이 올 만큼 신경이 두껍지도 않으니까.
진천희는 우선 자신이 찾아낸 것들을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사마현이 말했다.
“천 년을 살았다라? 늙지 않고 영생불사할 수 있다니, 과연 꿈같은 이야기네. 그 정도쯤 되니까 반위도 막 치료할 수 있겠구나.”
그러더니, 진천희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형이 별세계에서 본 미래에서 황상은 사람이었어?]미친 가설.
상식인이라면 거기까지는 닿을 수 없는 발상이었다.
황상에 대해 감히 그리 생각하는 것은 불충 중의 불충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만약 대장암과 치통으로 고통받는 골드&실버에게 괴어인이 와서 그걸 낫게 해주고 영생불사할 약이 있다고 한다면?
‘대장암과는 달리 치통은 여차하면 치아를 뽑아버리겠지만… 음…….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약을 먹고 변화한다면 처음 한동안은 선황으로서 자아가 유지될 터.
허나, 시간이 지난다면 결국 변화된 육체에 정신도 그리될 거고.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두 황상도 괴어인들과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정신은 생각보다 유약하고, 그 그릇인 몸이 바뀌면 저도 모르게 바뀌어 갈 수밖에 없으니까.
제아무리 고강한 무인들도 그런 식으로 변화하면 결국 맥을 못 추고 내면도 괴어인으로 변화하는 모양.
‘쉽게 말해 그런 거지. 서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바뀌니까.’
어느 웹툰에서 나왔던 명대사였다.
단순히 노동권뿐만 아니라 인간은 그저 서는 자리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생각도 달라지기 마련.
[모르겠어. 그런 건 안 나왔어.]지존천마 여하륜은 관무불침을 잘 지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지간하면 관은 잘 안 건드리는데 심한 탐관오리면 목을 뽑아버렸다.
토벌대가 나온다고 해도 신출귀몰한 강호 고수를 뭔 수로 추적을 하겠나.
거기다 당시 화 제국의 상황상.
하급 관리를 죽인 강호 초고수 하나 잡겠다고, 금의위나 동창을 마구 풀 만큼 황실 상황이 여유롭진 못했다.
그런 여력이 있다면 한 톨이라도 더 끌어서 숙신족을 막아내는 데 썼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전쟁으로 세상이 혼탁하고 병과 기아가 넘치고 있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이지.
‘금왕야가 은왕야가 죽고 혼자 남아서 버티다 그리되었을 수도 있고, 둘 다 약 먹고 우파루파 브라더즈가 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
지존천마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왜인지.
‘지금 두 사람이면 죽었으면 죽었지, 그냥 버틸 거 같아.’
근거는 없다.
그냥 감이다.
단순히 죽는 게 두려워 그런 약을 먹는 성정이었다면, 황제의 자리까지는 못 올라갔을 거라는 감.
그 자리는 진정으로 광기에 찬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
골드&실버를 봐온 사람의 믿음.
‘남의 말 들을 바에는 접싯물에 코 박고 죽을 놈들.’
성격 개 더러운 놈들.
하지만 다른 이들, 특히 제국팔가의 몇은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인간의 시대가 끝나는가.’
형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자, 천우가 시선을 돌린다.
“일단 저는 장원 끝까지 달려가서 진법으로 가로막힌 곳을 발견했고, 타하파가 그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가 들어가는 순간 강력한 기운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게 심상치 않더군요.”
“나는 그걸 못 느꼈는데, 형은?”
“나도 전혀.”
아마 장원 자체가 단순히 섭혼술만 쓰는 게 아니라 기파가 더는 퍼지지 않게 일종의 진법이나 결계도 사용하는 모양이다.
사마현이 말했다.
“여러 대화를 들을 수 있었어~ 다행히 내가 간 쪽은 순혈만 있는 게 아니라 혼혈이랑 축복받는 놈들도 배치된 모양인지 제국어를 쓰더라고~”
운이 좋았다.
진천희가 건질 만한 게 있는지 묻자 막내아우가 씨익 웃었다.
“축복을 받은 이는 무조건 괴어인이 되지만 그렇게 낳은 자식, 즉, 혼혈 중에서는 이따금씩 완전히 인간과 비슷하게 변하는 자들도 있다더라고.”
“걔들이 지상에서 활동하는 건가?”
“맞아. 어인족 사회의 최하층을 맡고 있어.”
그들 안에 있는 계급.
순혈 아래에 축복.
그리고 두 존재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혼혈 아래에는 인간과 닮은 혼혈이 자리하는 모양이다.
진천희는 생각에 잠긴다.
“오우, 완전히 인간과 비슷하다라……? 형가장주처럼 외형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지?”
“응. 인간 기준으로 미인이라고 하는 자도 있다던데. 지상에서 활동하는 첩자라는 거지. 눈치로 봐서는 홍루각 청루에도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사마현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사저인 임운현이 말한 적이 있었다.
사마현이 이렇게 웃을 때는 꼭 피바람이 불곤 했다고.
‘그래도 아마 당장은 치진 않겠지. 그건 현이 방식이 아니니까.’
상대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얼굴이 뜯기고 난 후일 터.
진천희가 말했다.
“일단 대충은 알겠어. 지상에서 그들을 이용해 사람을 확보하고, 아래로 내려보내 제물로 쓰는 거지. 참, 괴어인들은 보통 인간을 얼마나 먹어 치우는 것 같아?”
일기장에 있는 자는 나름대로 직책이 있는 자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잡아 온 인간들 대부분은 제물로 사용하지만, 갑옷 입고 있는 놈들은 종종 먹는 것 같더라고. 특별한 날에는 인간을 먹을 수 있다나? 기대된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아, 얼마 후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계속 인간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진천희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기에.
“…….”
푸른 눈이 깊이 생각에 잠겼다.
“형. 어떻게 할 거야?”
이윽고 진천희의 입에서 나온 건 냉정한 한마디.
“……무너뜨려야겠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음?”
“형?”
마침내 의원은 결론을 내렸다.
검수가 칼을 뽑듯, 말을 꺼내 공기를 가른다.
“그 지하 도시 전체를 무너트려서 근거지를 일단 없애야 해. 알잖아? 일단 건물들만 없애 버려도 세력은 줄어들 테니. 어차피 저들을 근절하는 건 불가능해. 막말로 저들이 바다로 들어가 버리면 못 잡으니까.”
제갈세가가 책사를 길러낼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모시는 주군이 비록 몽상가라 하더라도, 책사는 현실을 봐야 한다.
그래야만 몽상은 이상(理想)으로 발돋움할 수 있으니.
스승님은 그리 평했다.
누구보다 몽상가를 좋아하는 주제에 그 몽상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과 싸우는 게 제갈세가의 천형이라고.
‘그랬기에 조조나 손권이 아니라 유비를 택한 걸까.’
그렇기에 제갈세가는 화 제국에 와서도.
멸문지화를 겪고 나서도 몽상을 깎아 이상으로 만들어낸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리고 그 자식이 자식에게.
대대로 현실과 꿈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르친다.
“그들의 증언과 증거를 봤을 때 괴어인들의 세력은 여러 곳에 흩어져있고, 거주지 역시 저곳 하나만 있는 게 아닐 거야.”
허나, 근거지는 근거지.
오랫동안 고대 유적 비슷한 곳에서 살아온 자들이다.
근거지에 들이는 공이 보통이 아닌 듯하니 아무 곳에서나 막 살 수 있는 것까지는 아닐 터.
인간도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지만, 대충 산 같은 곳에 던져두고 살라고 하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화장실도 필요하고 벌레도 피해야 할 거고, 농사도 지어야 하니까.
그놈들도 마찬가지.
제아무리 바닷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고 해도 거주지는 또 지저 도시.
즉, 공기가 있고 습기가 많은 곳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조건이 있는 모양.
그러니.
“과거 스승님께서 그러셨듯 문파의 터를 주춧돌까지 무너뜨리면 결국 그 세력은 확 죽기 마련이지.”
광오한 말이다.
그 정도만 해도 적어도 이 청도 인근 지역 괴어인들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을 터.
천우가 물었다.
“형, 괴어인이 얼마나 많은지 제대로 본 거 맞죠?”
“응.”
“마을이 돌과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구조는 파악했어.”
그것만으로 가능하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진천희가 푸른 눈으로 말했다.
“왜? 못 할 건 없잖아. 그들은 신이 아니니까. 거의 영원한 시간을 산다고 해도 결국 밥과 옷, 수면이 필요한 존재야.”
오싹한 한기가 밀려왔다.
천우는 왜인지 저 눈을 정면으로 보기 어려웠다.
진천희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말했다.
“다행이지. 살아온 시간에 비해 그 지혜는 그리 깊지 않아 보이니. 그렇다면 인류가 못 이길 것도 없어.”
종(種)과 종(種)의 싸움.
눈앞의 한없이 자애롭고 자해로운 천재는 주저 없이 인간을 고른다.
사랑은 이기심의 단면 같은 것이었다.
인간을 사랑하기에, 인간에게 방해되는 자들은 제거한다.
대화와 타협을 시도해 보겠지만, 그게 어려운 자들이라면 눈앞의 형은 주저 없이 인간을 고른다.
어찌 보면 그 역시 사냥꾼이었다.
스승인 제갈린과는 다른 형태.
때로는 제갈린보다도 손속이 잔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천우는 들었다.
사람들은 일광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흑도는 단전을 폐하지만, 정파는 그래도 봐주는 편이라며 쑥덕거리지만, 천우는 왜인지 그마저도 형의 무서운 점 같아 보였다.
그와 친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
형은 인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강호인을 깊이 사랑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사랑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길.
하지만 곰도 자기 새끼를 위협하는 존재를 죽일진대.
과연 형이 그걸 놔둘까.
정파인 천우가 살짝 고뇌하는 반면.
사마현은 담담했다.
“그래서 일단 타격을 좀 주자는 건데……. 좋은 의견이지만 형, 어떻게 무너트릴 건데?”
사마현이 턱을 괴고서는 느슨한 어조로 묻는다.
그에게 있어 형이 무엇을 중시하는지는 판단할 거리가 아니었으니까.
눈앞의 사내가 하나뿐인 동생을 구원해줬을 때부터, 사마현에게 있어서 형은 신앙이었다.
피를 묻히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갑옷을 입은 괴어인은 성가시긴 하지만 그들도 두개골이 박살 나면 죽는 존재.
신이 아닌 이상 죽일 수 있다.
‘그거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