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3
제 903화
놀랍게도. 이 세계에는 요괴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믿는 사람이 절반, 안 믿는 사람이 절반이라고 할까.
왜냐면 요괴를 실제로 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
과거만 해도 설화와 전설로만 남아 있었고, 이제야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고 해도 통신기기도 없는 세계에서 그걸 알릴 방법도 없다.
진천희도 과거 체라고 하는 개소리를 내는 호랑이를 만났던 게 아니었다면 지금처럼은 못 믿었겠지.
무공과 마찬가지로 주술이나 서대륙의 기기괴괴한 술법들도 실존하지만 역시 경험해 보는 이가 드물다.
그건 관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대부분은 믿지 않는다.
신고를 해도 그냥 아편을 빨고 헛것을 본 거라는 가설을 더 믿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괴어인의 간자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연막책이 아닐까 싶긴 했다.
‘물론 현령 본인이 괴어인의 간자일 가능성도 있긴 하지.’
그래서 여기 오기 전에 사전 검증 작업은 이미 마친 후였다.
거간소의 인부들을 이용해 고양이가 싫어하는 향신료를 옷에 묻히게 했다.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그날따라 역정을 내며 주인을 할퀴었고, 상처가 생겼다.
이다음은 쉽다.
이제 그 상처가 남아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 결과 이자는 괴어인의 혼혈은 아니었다.
“알고 있소이다. 식인을 하는 요괴라고 하기에 말이 안 된다 생각하여 무시했소이다. 그래도 수적이 개입해 있는 것 같아 보여 경계령을 내리는 것까지는 했소만…….”
역시나 관은 요괴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진천희는 계속 말했다.
“최근 형가장주가 불치병에서 나은 것은 알고 있으시겠지요?”
“그것도 들어서 알고는 있소. 그게 무슨 상관이…… 아!”
“예. 괴어인이라는 자들이 병을 고쳐준 겁니다. 대가로 인신 공양을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병이 고쳐진 이들은 괴어인으로 변해서 식인을 하게 됩니다.”
만약 양민이 그런 소리를 했다면 저놈이 아편을 세게 했나 하고 의심했을 터.
허나, 눈앞의 존재는 황상의 총애를 등에 업은 감찰사다.
안 믿으면 어쩔 건가.
믿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황상의 총애가 두텁다는 이야기가 이미 관리들 사이에서 파다하니,
설사 사슴보고 말이라고 해도 옳습니다! 해야 할 판이다.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찌해야 그, 그 요괴들을…….”
제법 리액션이 좋다. 과연 현령에 오를 정도의 인재!
“자자. 진정하시지요.”
진천희는 그런 현령과 쿵짝을 맞춰 보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이를 달래듯 등을 두드려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제가 방도를 가져왔습니다.”
천우 눈에는 형이 사기꾼처럼 보였다.
* * *
괴어인이라는 요괴가 식인을 일삼고, 사람으로 둔갑하니 이를 대대적으로 토벌할 것이다!
그런 포고문이 나붙었다.
물론 관리 밑에서 일하는 관원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무슨 개짓거리람?’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곧 뒤바뀌게 된다.
‘아니, 시X! 진짜였잖아!!’
그리고.
사마현이 제안한 해법.
상처 내기.
그것을 청도 내부에서 대대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하자 당연하게도 괴어인 혼혈들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던 것.
포졸들이 돌아다니면서 상처를 내자 그들의 정체가 물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어마어마한 충격이 청도 전체를 강타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게다가 정체가 들통난 혼혈들은 곧바로 도주하거나 역으로 무기를 들어 반항했다.
일부는 아예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바다로 몸을 던져 사라지기까지 했을 정도!
상처가 부글거리며 빠르게 낫는 놈은 요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진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왕가 놈이 어쩐지 수상쩍더라니! 그놈이 요괴더라고!”
“누가 아니래? 그놈 평소에 얼굴 반반하다고 여자를 후리고 다니더니…….”
“형가장주는 또 어떻고? 죽어 가던 사람이 낫는다는 게 신기하다 했는데 설마 사마외도가 되어서라도 살려고 들 줄은 몰랐네그려!”
“식인도 한다며?”
“끔찍한 것들 같으니라고!”
형가장주는 야반도주를 해서 사라졌고, 혼란에 빠진 형가장은 자체적으로 봉문 비슷한 형태가 되어 버렸다.
형가장만 그런 게 아니다.
불치병을 앓다가 나은 이들도 요괴로 밝혀졌고, 성불구가 되었다가 나았던 이도 요괴가 되었음이 드러났다.
하나둘.
괴어인의 혼혈들이 잡히거나 색출되며 며칠 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청도 전체에 아주 진한 해무(海霧-바다에 끼는 안개)가 생겨났다.
* * *
타하파.
그는 우묵한 눈동자로 죽어 버린 동족 혼혈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동족과 인간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서로 다른 외형을 가지게 된다.
어떤 이는 동족과 비슷하게, 어떤 이는 인간과 비슷하게.
혹은 완전히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거나 완전히 동족과 같이 태어나기도 했다.
다만.
언젠가는 전부 동족의 모습으로 바뀌기는 한다.
어차피 인간의 형질은 그들의 것에 비하여 열등하여 언젠가는 결국 모든 동족은 같은 외형이 된다.
때문에 타하파같이 오래 살아온 존재들은 혼혈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았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대부분의 미숙한 동족들은 외형만 가지고 차별하고 있지만…….
‘어차피 결국 모두가 하나가 될 터.’
그렇기에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들어라!”
그가 그들의 언어로 외쳤다.
제단의 위.
죽어버린 혼혈의 시체를 뒤로하고 그가 제단 아래에 모여들어 있는 동족들을 향해 소리친다.
“저 열등한 것들이 감히 우리를 사냥하고 있다!”
시작은 충격적인 언어로 이루어졌다.
“감히 나약해 빠진 인간 놈들이 우리를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우! 우! 우! 우!”
“우! 우! 우! 우!”
괴어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아우성이다.
분노에 찬 포효였다.
“저들에게 누가 사냥꾼인지 가르쳐줄 때다! 무기를 들어라! 청도의 인간을 모두 죽이리라!”
타하파의 외침에 모두가 화답했다.
평범한 양민처럼 지내던 이들도 모두 창과 칼을 꺼내왔다.
그들의 몸 안에 흐르는 광폭한 야성의 피가 끓고 있다.
* * *
“시작됐구나.”
“호전적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형의 말대로 됐네요.”
“저들 입장에서 인간은 열등한 종족이니까. 참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야. 강호에서도 그렇잖아? 고수가 하수의 무례를 참아주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진천희의 말에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그러했다.
비정한 강호에서 이른바 고수라고 불리는 이들은 사람 목숨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강호인들은 오히려 자존심이 목숨보다 귀하다 여겼다.
그래서 무례를 범한 자를 살려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건 정파도 마찬가지.
스스로 백도라 칭하면서도 칼로 죄를 묻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진… 진 태수! 당신의 말대로 되었소이다! 여, 여기는 안전한 겁니까!?”
의형제 세 명은 현재 현청에 와 있는 중이었다.
괴어인들의 대대적인 침공이 예상되는바 당연히 현령의 협조를 구해서 방비를 해야 했으니까.
현령의 휘하에 있는 포도군사뿐만 아니라, 청도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관군까지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단순한 무림의 일이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양민들을 보호하고, 저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현령은 이제는 연기가 아닌, 진짜로 겁에 질려 있었다.
진짜 요괴가 있었고 그것들이 근처에서 암약하고 있음을 알아 버리곤 두려워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현령은 관직에 있다지만 결국 일반인이다.
무공을 조금 익혔지만 무관이 아닌 이상, 그래 봐야 몸이나 조금 지키는 수준.
칼 든 강호인도 두려워해야 할 판에 요괴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좀 모양 떨어지긴 하네.’
진천희가 말했다.
“예. 안전하니 걱정 마시지요. 제갈세가의 비전의 진법이 현청을 보호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현령을 달래던 진천희.
그때.
삐이이이!
매가 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큰 바람과 함께 현청의 창문을 통해 거대한 푸른 매가 날아든다.
“괴, 괴물이다! 진, 진 태수! 저를 보호해 주시오!”
현령이 놀라서는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그 추태에 진천희는 고개를 흔들었으나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손을 내뻗는다.
푸르고 거대한 매는 진천희의 팔에 와 앉는다. 그 크기는 어느샌가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저를 따르는 아이입니다. 뇌진이라고 하지요.”
본래 백린의각에 두고 왔던 뇌진!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걸까?
“뇌진이 온 것을 보니, 지원군도 제때 도착한 모양이네.”
“양민의 피해도 줄여야 하지만, 관군과 포졸의 피해도 줄여야 하니까. 그러면 현령님, 저는 저들을 쓰러트리러 가 보겠습니다. 부디 몸 보중하시기를.”
“아. 알겠소이다. 내 이곳을 반드시 지키겠소!”
부들부들 떠는 현령을 뒤로하고 진천희 일행은 현청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한 명의 사람이 진천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밖으로 나오니 언가의 가주.
언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가주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진천희가 놀라서 달려갔다.
언권은 새카만 흑포(黑袍)를 입고 한 손에는 종을 들고 있었다.
또한 몸에서 희미하게 백단향이 나는 것을 눈치챈 진천희는 그 옷은 장례를 치를 때 입는 옷임을 깨달았다.
진주언가가 직접 살행을 나갈 때 입는 복식.
과거 진천희와 유적에서 싸울 때 입었던 것과는 다른 옷이었고, 진주언가가 직접 적을 참하여 강시로 만들어 그 유해를 집으로 보내준다는 뜻이기도 했다.
백도로서의 진주언가는 이렇듯 독특했다.
원수라 하더라도 죽고 난 후의 시신은 자비를 베풀어주겠다는 취지니까.
‘혹자는 죽어서 고향에 돌아가는 게 무슨 의미냐고 하겠지만.’
유교 사회에서는 꽤 중요한 개념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객사(客死)니까.
언가주 언권이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언가의 은인이 요청하는데 급히 와야지. 그리고 급히 오려면 정예가 와야 할 것이고.”
“정예요?”
“나를 비롯해 진주언가의 정예 이백여 명이 도착해 있네. 그리고 본가의 주 전력 일천까지 도착한 상태지.”
그 말에 천우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일천……?”
언가주의 뒤.
때마침 바람이 불어 해무가 걷힌다.
안개 사이로 강시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거리를 가득 채운 강시들의 긴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든든하군요.”
진천희의 말에 언권은 기분이 우쭐해졌는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자,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
웨우우우우—-!!!!
그 순간, 괴어인들의 울음소리가 해무를 뚫고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인간들 속에 숨겨 놓았던 간자들을 하나둘 척결해버리니, 아예 전쟁을 결심한 모양이다.
‘아니지. 전쟁이 아니지. 그들에게는 이게 전쟁이 될 수 없어.’
사냥이다.
산에 있는 토끼며 곰이며 싹 다 잡아들이는 사냥.
신이 내린 사냥제.
진천희가 말했다.
“싸워야죠.”
인간은 무기를 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