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4
제 904화
관군 그리고 포졸들은 청도 내부 요충지에서 창칼과 쇠뇌까지 동원하여 무장했다.
그렇게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서슬 퍼런 기세가 대단했다.
상대는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
어릴 적 요괴나 귀신 같은 것들은 전래동화로 늘상 들어왔지만 그런 존재가 진짜로 존재하며, 사람을 뜯어 먹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
허나 의외로 양민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고 각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우가 말했다.
“강호의 양민이라면 혈사를 경험해 볼 일이 있으니까요. 그게 크든 작든, 골목에서 일어나든 대로변에서 일어나든 마찬가지죠.”
상대가 흑도든 요괴든 큰 차이는 없다.
죽이고 나서 살점을 뜯어 먹는가, 뜯어 먹지 않는가의 차이일 뿐.
미국도 치안이 나쁜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전쟁 PTSD와 유사한 것을 경험한다고 하지 않던가.
강호는 상시 그런 상황이다.
화 제국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 세계가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일개 개인이 물 위를 달리고, 손으로 바위를 찢을 때부터 그래 왔다.
백린현 같은 치안이 지극하게 좋은 곳이 아니면 다들 이러고 살아야 한다.
그게 싫다면 본인이 무공을 익히거나.
물론 무공을 익힌다 하더라도 초야에 살 게 아니면 결국 강호의 은원에 휘말리기 마련이지만.
양민들은 나무판자로 능숙하게 문과 창문을 닫아걸고는 가족들과 함께 어딘가로 숨거나, 아니면 관아로 향했다.
진천희가 권한을 이용해 양민들을 관아로 대피시킬 수 있게 한 것.
허나, 관아도 믿지 않는 몇몇 양민들은 각자 자신이 가장 믿을 만한 장소로 들어갔다.
‘음. 그래. 이런 세계에서 관은 그리 신뢰할 게 못 되긴 하지.’
선대에 비해 현 황제가 치세를 잘하고 있다고 해도 강호인을 씨몰살 시킬 게 아니면 관무불침은 여전하지 않던가.
누구도 믿지 않고 스스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은 이런 시대에 어찌 보면 미덕이 될 수 있겠다.
‘나약한 현대인은 이런 세상 어떻게 사나 싶다만.’
그래도 뭐 살아진다.
살아지니까 아이도 낳고 농사도 짓고 사는 거지.
‘물론 힘드니까 평균 수명이 서른을 넘기가 힘든 거고.’
그렇게 거리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고 텅텅 비었다.
강호인들과 관군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대화는 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약간의 눈짓 정도는 나누었다.
심지어 진주언가의 강시들.
제아무리 강시술이 정파라고는 해도 시체가 통통 뛰어다니는데 누구 하나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쨌든 저 점핑 통통 시체가 괴어인을 한 마리라도 더 잡아 죽여주기를 바라는 눈치.
그 이야기를 하니 천우가 답했다.
“조사하면서 관군들도 괴어인의 심각성을 깨달은 거죠. 양민들이 아편을 빨고 환각을 보는 게 아니라 실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신고가 그렇게 많았는데 조사를 안 하다니 직무 유기 아닌가.
이놈들 나중에 감찰사로서 황상께 이 사실을 올려야겠다고 진천희는 이를 갈았다.
사마현이 말했다.
“무서운 거지. 저 사람들도. 포졸이니까 어쩔 수 없이 와있는 거긴 한데~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무섭잖아~?”
“응.”
“이 정도로 짙은 해무는 이 동네에서도 드문 모양이고.”
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사마외도와 조우하게 되면 다른 건 신경 쓰지 못하게 되거든요. 그 자체만으로 공포니까.”
사마외도.
진천희는 천우를 본다.
천우가 작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형. 제 손발은 이제 따뜻해요.”
사마외도를 목격하고 손발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천우였다.
당연했다.
그것은 천우가 여태껏 경험해본 적 없었던 악의였고,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닌.
비인외도가 인간에게 하는 방식이었으니까.
그 악의는, 그 광기는.
일개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천우는 인간과 인간의 온기를 아는 아이였고, 권제께서.
‘무심한 듯하나 또 나름대로 사랑을 많이 주셨지.’
비록 강호인의 방식으로 제자를 굴렸지만 그분이 천우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비인외도든, 사마외도든 더는 심마는 없을 거예요. 방금 이야기는 관군들의 심정이 이해 간다는 거니까… 형, 걱정하지 마요.”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보다 형은 대체 어떻게 견디는 거예요? 의원이잖아요.”
“직업이 직업이라서 그런가. 고어한 영화는 또 별로 안 무섭더라.”
“……?”
천우는 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천희는 그제야 다시 말을 바꾼다.
“의원이다 보니 볼 거, 못 볼 거 많이 보거든. 강호에서 혈사라는 게 대단해 보여도 의외로 의원 관점에서 보면 죽음의 모양은 사실 비슷비슷하거든. 그리고 의원은 그런 죽음을 볼 일이 많고.”
혈사가 끝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게 의원들과 장의사니까.
진주언가의 언권과 진천희가 잘 맞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사마현이 슬쩍 화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진주언가는 요괴도 장례 지내줘?”
“쓰읍, 모르겠네. 애초에 괴어인을 강시로 만들 수는 있나?”
진주언가는 유가족, 또는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강시를 만들지만 가끔.
아주우 가끔 천인공노할 악적은 동의 없이 쓴다고 들었다.
살아서 그 죄를 지었으니 죽어서라도 갚으라는 뜻이란다.
‘음. 언가주가 지하에 있는 시크릿 다크 템플을 보면 아마 괴어인들을 죄다 강시 만들려고 시도는 할 거 같다.’
그건 인육 고기 판다는 흑점에서나 볼 법한 광경 아닌가.
요즘 흑점은 그런 거 안 한다지만.
그때.
관군 하나가 말했다.
“구름, 구름이 기어 오는 건가?”
이미 청도 내에 해무가 꽉 찼다 생각했는데 더 짙은 해무가 멀리서 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와 해변을 적시고 마침내 가옥 하나하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물속에 있는 것 같아.”
사마현이 중얼거린다.
그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콧구멍 안으로 물방울들이 계속해서 스며들고, 또 스며들어온다.
몸속 전체가 안개로 꽉 차는 것 같은 기분을 모두가 느낀다.
독무는 아니었다. 그저 물.
물고기라도 헤엄칠 것 같은 해무의 파도를 모두가 본다.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앞당긴다.
관군들의 솜털이 곤두선다.
강호인들은 이를 으득 갈면서 구결을 속으로 외운다.
구결은 강호인의 코란이었다.
기쁠 때도, 싸울 때도, 그리고 죽을 때조차도 강호인들은 자신만의 구결을 되뇐다.
먼 옛날, 개파조사부터 대를 이어, 피를 이어 이어지고 이어지는 그 구결들을.
이미 몸이 완전히 체득하여 잊고 있어도 검로가 따라갈진대.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구결을 되뇌었다.
그때.
웨우우우우–!
인간의 성대로는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소리가 공기 중에 있는 모든 수분을 진동시켰다.
그 물을 들이켜고 있는 사람의 뱃속까지도 울리는 기분.
철퍽!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해안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해무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특유의 바다 비린내는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다가온 걸까.
해무 사이로 검은 잔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사지가 달려 있다. 하지만 인간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아가미의 형상과 물갈퀴의 형상.
도무지 인간이라 생각할 수 없는 외형의 무언가가 무리 지어 다가온다.
“괴, 괴어인이다!”
“진, 진짜였어!”
관군들이 본 것은 괴어인 혼혈이나 변이되어도 인간과 비교적 비슷한 외형의 괴어인들.
인간의 형상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제대로 갑주를 입은 자들은 조우해 본 적이 없다.
비명 소리를 가라앉히듯 장군이 명령했다.
“쇠뇌를 쏴라!”
그 말에 관군들은 즉시 반응했다.
공포와 별개로 그들의 손은 쇠뇌를 갈긴다.
타다다당!
그것은 수천 번, 수만 번, 수십만 번 연습해왔던 그들의 존재 이유였고, 개중에는 숙신족을 직접 조우한 자들도 다수 있었으니까.
인간은 어찌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도 배워온 것들을 했다.
그 뒤로 일반 궁병들도 함께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피비비비빙!
궁병 몇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지고 있다.
공포를 참으며 그들은 신음했다.
“어떻게 이런 존재들이 있단 말이냐!”
하지만 활시위를 당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 뒤에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수천, 수만 발이 순식간에 하늘을 가득 채우고는 해무를 찢으며 틀어박힌다.
그러나.
“망할…. 얕아.”
진천희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괴어인들이 쿵쿵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덩치가 큰 괴어인들이 십 척이 넘는 몸으로 앞장선다.
그 몸뚱이에 화살이 박히지만 거품을 내며 지혈하고 재생한다.
그러고는 공성 병기인가 싶을 정도의 거대한 삼지창을 휘둘러 찌른다.
후우우웅!
콰과과과과과광!
순식간에 앞 열이 와해된다.
“으아아악! 이 무슨 괴력이냐!”
“화살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아아아!”
“물러서지 마라! 목책을 끼고 싸워라!!!”
순식간에 해무 사이에 튀어나온 괴어인들이 인간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괴어인들 중에 갑옷 안 입은 자들도 있는데?”
“응. 그들로 치면 평민인 셈이지. 그쪽도 사람이 전쟁하듯 징병한 거야. 아니……. 사람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지도.”
얼마나 이자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괴어인에 대한 이야기는 문자가 발명되기 전부터, 그림으로라도 전해져왔다 하니까.
허나, 평민 계급의 괴어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힘은 강력했다.
평범한 옷을 입고 삼지창만 들었다고 해도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일반 병졸들은 순식간에 밀려나 창에 찍혀 죽음에 이른다.
콰과과과광!
“막아라! 모두 막아라!”
“이 뒤에는 가족이 있다. 싸워야 한다!”
전선과 전선이 부딪치면 그다음 난전.
진천희는 전장의 냄새를 담뱃대로 중화시킨다.
후우-
책사로서의 감각이 손끝부터 자르르 돌아온다.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전투지. 미지를 상대로 일개 관군이 대응해야 하고, 또한 한 번도 합을 맞춰본 적이 없는 자들을 이용해 진형을 짜야 하니까.’
미리 예행연습을 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숙신족을 상대할 때처럼 각 장군들이 진형을 숙지하여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처럼 팔진도라도 개진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불가능하지.’
몇몇 자들이면 모를까.
여기 모인 대부분의 관군들은 기본적인 진형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강호인들은…… 이 와중에도 말을 안 듣는다.
숙신족이 쳐들어올 때도 징그럽게 말을 안 들었는데 사마외도를 상대로도 말을 안 듣는다.
진천희가 할 수 있는 건 언제 난전에 뛰어들지 정하는 정도.
그 정도는 진천희가 정할 수 있게 해줬다.
‘그동안 배워온 것들에 비춰 보자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지.’
허나, 책사 인생에서 스스로 전쟁터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몇이나 되던가.
그래도 뒤에 있는 것은 삶의 터전.
가족, 논밭, 추억, 뿌리.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기에.
진천희가 깃발을 들자 곧바로 내공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칠성검진을 펼쳐라!”
형가장주는 비록 야반도주를 했으나, 형가장주의 아들은 침착하게 형가장을 추슬렀다.
그들은 속가제자들답게 무당파에서 배운 칠성검법을 토대로.
칠성검진을 펼쳐서 괴어인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지독한 해무.
공포를 상대로 인간은 반격한다.
내공 섞인 외침이 해무 속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생문(生門)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