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07
제 907화
차가가가각!
공수를 나누는 것과 별개로 진천희의 이성은 차갑고 빠르게 돌아갔다.
‘이건.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불가능해.’
무엇이 다른가?
방대한 양의 강기를 상대한 것은 이미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무공은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인가?
현원전단신공은 즉시 결론을 도출한다.
과거 보았던 아수라혈강시. 그리고 언가의 언정무.
둘 다 현경의 경지에서 강기를 무한하게 쏟아내던 강적들이었으나.
그들은 강기라고 하는 절대적인 파괴적인 힘을 그저 방출했을 뿐이다.
역(力)은 있으나, 기(技)와 술(術), 그리고 예(藝)가 없음이니.
무리(武理)가 없기에 반쪽짜리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지금 이자의 창술은 절대 경지를 넘어선 것.
수없는 생사결을 통해 그 경지에 맞는 무리(武理)를 체득한 것.
그러니, 현원전단신공으로도 그 빈틈을 찾거나 허점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
츠팟!
강기가 서린 두 무기가 충돌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강기의 여파가 진천희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파직! 파지짓!
이번에는 호신강기를 일으켜 그 공격을 방어했다. 그러나 진천희의 안색은 어두웠다.
‘이제 내공은 절반뿐. 방법을 찾아야 해.’
-흐. 기린의 제자. 기린보다 약하다. 너. 죽으면. 기린에게 복수. 끄끄. 즐겁다.
스승님은 이런 적들을 상대해 오셨던 걸까.
그렇다면 같은 현원전단신공을 사용하는 자신도 분명 답이 있겠지.
때문에.
생각해야 한다.
촤악!
몸에 생긴 상처가 어느덧 서른두 곳. 그러나 진천희는 끈덕지게 버티며 생각한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 생각…….
사고가 끊어졌다가 빠르게 이어진다.
상대는 정기신(精氣神)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자다. 심기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자는 ‘정기신은 한의학이나 중국 선도에서 사용하는 중국식 명칭이고, 심기체는 일본 무류에 그 어원을 둔 일본식 명칭이다’라고도 이야기하는데.
한국 무협 최근에 와서는 작가마다 심기체를 차용하는 작품과 정기신을 차용하는 작품.
또는 둘 다 쓰는 작품도 있다.
작가마다 무학의 설정이 다 다르고, 그 설정에 맞춰서 그때그때 채택해 쓰는 모양.
지존천마는 둘 다 쓴다.
‘깊이 들어가면 둘 모두 사용하는 한자 자체가 다른 만큼 분류 기준도 다르고, 근간이 되는 어원도 다르기야 하지만.’
막상 강호에 와서 굴러 보니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어느 쪽이든 결국 본질은 똑같다.
무(武)란 결국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
상대는 현경에 걸맞은 몸에, 현경에 걸맞은 경험, 그리고 현경에 걸맞은 무공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무림지보로 몸을 똘똘 감아서 왔다.
등 뒤로 본인 고향까지 박살 나니 방심도 안 하고 있다.
‘최악이군. 언정무는 그래도 자기 무공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놈이라 상대할 만했는데.’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이딴 괴물 딱지들을 상대해 오신 겁니까.
촤아아악!
다시 상처 하나가 더 늘었다.
그럼에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희야. 너는 무인이라기보다 의원이기를 택하고 있다는 것을 내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도산검림(刀山劍林)의 강호에서 의원으로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무인으로서도 자존자립(自存自立)할 수 있어야 하지. 그러기 위해서, 무(武)의 본질을 언제나 생각해야 함을 명심하거라.
-무(武)의 본질이요?
-그래. 무공이라는 것의 근원.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많은 이들이 무에 대해서 논하지만, 어떤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 하지만 본가에서는 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과거 오행신공에 대해 배울 적에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때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본가의 신공절학으로 알려진 오행신공은 사실 본가의 것이 아니란다.
-네? 진짜요?
-그래. 사조께서 직접 창안하신 것은 현원전단신공과 천기미리보 같은 것들이지. 오행신공은 그분께서 가져오셨으나 직접 창안한 것은 아니라고 한단다. 후인을 찾지 못한 어느 무인이 공명께 자신의 무공을 맡기고 돌아가셨다고. 사조 공명께서는 그 무공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현원전단신공과 결합했지.
호랑이가 죽어 가죽을 남긴다 하지 않았나.
무인은 죽어 무공을 남긴다.
그들에게 있어 무공이란 결국 혼이고, 그렇게 받은 혼은 제갈세가를 거치며 이어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스승님께서는 한쪽 이마를 찌푸렸다.
-허나, 세대와 세대를 거듭해가며 점차 그런 이야기도 풍화되기 시작했지. 후대로 가면서 강호는 오행신공이 제갈세가가 그 뿌리인 양 기억하기 시작했단다. 몇 번이나 정정을 하긴 했으나, 그것도 수백 년이 지나고 나니 어물쩍 인식이 박혔더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묻어버린다.
어느 무인과 책사의, 죽음으로도 가를 수 없는 맹세.
그 맹세가 수백 년을 지나 이어지고 이어졌다.
무인에게 있어 부모보다도, 자식보다도, 연인보다도 소중한 것이 결국 무공이며 혼이다.
이 혼은 세대와 세대를 지나서, 시간과 시간을 넘어 그 맹세를 이어가게 되었고.
강호에서는 미담 비슷한 게 되었다가 점차 그마저도 잊혀져갔다.
아예 오행신공은 현원전단신공과 함께 한 몸이 되어 한 핏줄을 타고 흐르게 된 것.
-거기에 가문이 화를 당해 서가가 불타버렸으니, 오행신공을 맡긴 무인이 누구인지조차도 그 기록을 찾기 어렵더구나.
아마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무인들 중 하나일 거라 짐작은 하고 있다만.
결국 멸문지화의 불길이 많은 기억을 앗아갔다.
-물론 서가가 불타면서 오행신공 역시 일부 유출이 되었단다. 허나 그럼에도 오행신공을 논할 때 사람들은 제갈세가를 먼저 떠올리지. 왜 그런지 아느냐?
-결국 오행신공을 제대로 사용한 것은 제갈세가뿐이기 때문 아닙니까?
스승은 그런 제자의 답이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었다.
-무(武)라는 것은 결국 싸움이다. 그렇다면 무공(武功)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공(功)이란 쌓음을 말함이니, 무공이란 무를 쌓아나가는 것을 뜻한다. 무를 쌓는다는 것은 결국 이(理)를 궁구(窮究)하고, 기(技)와 술(術)을 정립하여 체계화하는 것.
-……!
-그렇다. 본가는 무공을 기술과 이치로 보고, 그것을 통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제자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본가의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천지만물 모든 것은 음양오행팔괘의 이치로 풀어낼 수 있으니…….
-그리하여 본가의 개파조사께서 오행신공을 선택하여 본가의 것으로 삼아 발전시켜 온 것이란다.
-자. 희야.
-보아라.
-오행은 음양에서 태어나 무궁(無窮)하여 무한(無限)하고, 천지만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란다.
‘…….’
왜일까.
왜 이 생사의 기로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이 떠오른 걸까.
필사의 순간.
죽음이 지척에 다가와 그 거친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다.
그런 상황에서 오행신공을 가르침 받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초 중의 기초.
수많은 신공절학이 아닌, 왜 오행신공 처음 배우던 때가 떠오른 걸까.
어떤 직감 혹은 생존 본능. 아니면 육신에 흐르는 풍가의 신혈이 반응한 걸까?
지금껏 오행신공을 대성했다고 생각했고, 스승도 그리 말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성을 이루고, 대공에 닿은 것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오행신공은 좀 더 심후한 것이었다.
-오행은 음양에서 태어나 무궁(無窮)하여 무한(無限)하고, 천지만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란다.
위우우우우우우웅!
진천희의 몸 안의 오행신공의 기운이 격렬하게 끓어오른다.
본래 단전 하나에 조화롭게 머물던 오행진기가 갈라져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공이란 결국 기술. 훌륭한 외과의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술 실력이듯, 나 역시 강호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 그것은… 현원전단신공을 통해 더욱더 세분화된 기술적인 무공을 펼친다.’
그것은 깨달음이었다.
보통의 강호인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
허나 현대인이자 의원인 진천희에게는 이쪽이 더 익숙하고 당연했다.
그간 진천희는 무공을 ‘사용’해 왔다.
있는 그대로. 무공이 가진 공능을 그저 이용해 온 것뿐.
그러나 이제부터는 진정 무공을 기술로써 이해하고, 응용하고. 더욱 자유롭게 재조립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오행신공의 기운을 재조립한다.
그리하여.
본래는 상대를 격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오행신공 오행합벽(五行合壁)을 그 몸 내부에서 사용했다.
퍼펑!
폭탄이 몸 내부에서 터진 것 같다.
그러나 그 덕분에. 진천희는 시간이 멈춘다 싶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보인다!’
사고가 더욱 가속된다.
진천희는 자신이 몇 배나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검을 움직였다.
그때 뽑아 든 것은 흑송운검.
공손영이 선물했던 검이다.
빙정검과 흑송운검.
쌍검은 원체 검로도 동선도 복잡하여 함께 쓰는 일은 흔치 않다.
처음 입문 난이도 자체가 칼 하나 쓰는 것과 차원이 다르니까.
허나, 현원전단신공이 인지를 극대화하고.
생사를 넘었던 경험들이 검로를 피워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게 맞는 것 같아.’
거기다 자신은 애초부터 양손잡이지 않나!
생사의 기로, 아득한 죽음을 비집고 본능이 이게 맞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현원전단신공이 곧바로 답을 도출해냈다.
‘그렇군. 상생도 상극도 혼자서는 불가하지 않던가.’
사람의 인연도 이와 같다.
은(恩)도 원(怨)도 결국 혼자서는 불가능하니.
오행신공도 결국 인연(因緣)이라.
두 자루의 검이 서로 다른 속성을 품으며 상생과 상극을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과거 진천희가 수기와 화기로 터뜨렸던 수극화(水剋火) 음양개벽(陰陽開闢)은 아주 기초 중의 기초였다.
당시에는 서로 다른 오행을 양손에 펼치며 적과 공수를 나누기 부적합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상대로는 불가능했다.
허나, 심무절기를 깨달은 지금!
‘상극만 쓸 필요 없지. 상생도 응용하면 되니까.’
불과 나무가 만나 극강의 양기를.
물과 금속이 만나 극한의 음기를.
이 모든 것이 칼 한 자루만으로는 할 수 없을 터.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이 생기듯.
인연은 오행을 그린다.
오행은 검로를 만들어 더욱 상생상극하기 시작했다.
서른여덟 번의 쾌(快)와 환(幻)을 담고 있는 타하파의 창에 맞서, 진천희 역시 태을단선검을 서른여덟 번 펼친다.
서른여덟 번의 상생과 상극!
콰쾅!
무시무시한 폭발이 허공에서 일어난다.
창과 검이 충돌하며 강기가 부딪히고, 주변의 공기를 끌어당겨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폭발력을 정면으로 받으며 진천희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초월심무 인의.
초월심무 생사예지.
초월심무 천라지망—-!!
아까 전까지만 해도 타하파의 기술과 속도 그리고 힘이 모두 압도적으로 우위였기에 쓸 수 없었던 초월심무.
그 초월심무가 오행을 만나 한꺼번에 개화한다.
몸 전체가 붉게 달아오르며, 순식간에 주변이 일그러져 보인다.
극도로 정지한 시간 속에서 진천희는 검을 내찔렀다.
세계에 상처가 새겨지고, 세계가 관통된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을 때.
타하파의 심장은 정확하게 빙정검에 의해서 관통되어 있었다.
-컥……. 뭐냐. 대체. 어떻게?
단순히 관통한 것만이 아니다.
강기가 그 내부에서 뻗어나가며 타하파의 몸 안쪽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있다.
그는 기운을 체내로 돌려 저항하지만, 이미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는 없었다.
‘괴어인이라고 해도 심장이 꿰뚫리고, 그 내부에서 강기가 충돌하면 버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야. 애초에… 이렇게 버티는 것만 해도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그의 몸에 서린 기운이 급속도로 사그라들고,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
“몸 안에서 기운을 폭발시키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급속도로 빠른 속도를 얻어낸 것뿐.”
이것은 진천희라는 몸을 가솔린 엔진처럼 사용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동차 엔진의 원리.
휘발유가 들어가고, 그것이 폭발하며 동력을 얻는다.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으로 달리는 것이 바로 자동차 아니었던가?
거기에 오행까지 상생상극을 계산하여 검로를 죽죽 그어댔다.
그 모든 것을 몸으로 해냈다.
‘사실 미친 짓이지.’
다른 이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주화입마로 내부가 폭발하고 온몸이 갈가리 찢겨 사망했을 터!
시도하려는 초입부터 칠공에서 피를 토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 것은 금강불괴에 가까울 수준으로 외공을 수련하였기 때문.
거기다 내가진기의 운용과 제어력이 초월적인 수준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진천희는 순식간에 극초음속으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현원전단신공으로 그렇게 몇 배로 빨라진 몸을 세세히 조정한다.
그 가공할 힘이 타하파의 경지와 신공절학을 찍어누르고 이렇게 가슴에 칼을 꽂아 넣을 수 있게 만들었다.
-혈기린… 무섭구나…….
타하파가 그리 말하고 고개를 떨군다.
동시에 그의 몸이 쩌억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몸은 폭탄처럼 폭발했다.
콰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