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10
제 910화
“원래라면 물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우리이기에 숨어 있었습니다만, 다시 돌아오시는 것을 보고 운명을 직감했지요.”
제독태감은 후룩 차를 한 모금 삼키더니.
‘뭐, 두 번이나 오가다 어쩔 수 없이 만난 거라면 황상께서도 뭐라 하지 않을 거고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림자 속에 있어야 하는 게 동창의 일이지만.
역시 제독태감도 은근히 성격 있으시다.
하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야 하는 게 환관이라고는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만 살았다면 저 자리까지는 못 올라갔겠지.
“그렇군요.”
“그 화탄은 사실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던 것이었습죠. 황상께서 진 태수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곳에 넉넉하게 쌓아두라고 명하셨습니다요.”
골드&실버 둘이 그랬다고?
진천희는 그 둘이 자신을 신경 쓰고 있음을 알고 약간 기분이 묘해졌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모처럼 숨겨진 길을 발견했는데 안 써먹을 수 없지.’
아무리 황상이라도 바다 밑에서 물이 범람해 세상이 다 잠길 거라는 사실은 모르지 않겠나.
‘나도 죽기 전까지 몰랐고!’
진천희가 눈을 빛내며 제독태감의 양손을 꼬옥 붙잡았다.
“이것 참 반갑네요.”
“……방금 이 촌부, 등이 오싹했습니다만… 설마 이 늙은이를 부려 먹으시려는 건 아니시죠?”
역시 눈치가 빠르군.
과연 황실 모략사슬의 최강자 짬밥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동창의 고수들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이런이런, 방금 전까지 동창은 물 밑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만?”
“마냥 물 밑에 있을 거라면 굳이 저를 만나러 오지 않으셨겠지요.”
“…….”
제독태감의 주름진 얼굴에 고민이 스친다.
이윽고 그가 미소 지었다.
“인연이란 참 무섭군요. 이리 장성하셨는데 노부는 아직도 불안하니 말입니다.”
제독태감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던졌다.
탁-
집어 드니 그것은 새카만 패였다.
흑요석을 깎아 만든 패.
거기에는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이 음각되어 있었다.
“이 패를 들고 있으면 제 아이들이 말을 따를 겁니다. 그러라고 가르친 아이들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태감께서는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곧 여기는 전쟁터가 될 겁니다.”
“호오, 볼일이 없으니 노인네를 치워버리시려는 겁니까?”
“그게 아니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다가 진천희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겪은 것은 자신이 겪은 것일 뿐.
아직 세계의 종말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청도가 완전히 어인족의 밥상이 된 것도 아니다.
“…….”
진천희가 입을 다물며 바라보고 있자 이윽고 제독태감이 몸을 일으켰다.
“이 늙은이가 너무 심술을 부렸군요. 이 나이가 되면 이렇게 못된 장난만 늘어가니 말입니다.”
그는 진천희에게 미소 지었다.
“뭔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이 촌부도 알 수 없으나, 우리 진 태수께서 얼마나 사람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지요.”
후릅-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몸 보중하시지요.”
그 말을 끝으로 제독태감의 잔상이 사라진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텅 빈 천막.
탁자만이 그가 있던 흔적이었다.
만약 이 손에 흑패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게 꿈이라고 생각했겠지.
‘이거 참…….’
황상을 위해 시산혈해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키던 사람이다.
그의 손에 죽은 자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그럼에도 제독태감은 왜인지 진천희에게만은 너그럽다.
황상을 위해서라면 팔족을 멸하고 구족을 멸하는 자가 왜 자신에게는 유독 너그럽게 구는지 알 수 없지만.
‘고맙네.’
그 마음을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
제독태감이 앉았던 탁자 뒤에는 화탄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챙길 수 있는 것들은 챙기고, 나머지는 군 병력에 가져가 사용하라고 해야겠군.’
미친 척하고 이거 들고 황도로 달려가면 이만한 역모도 없을 거다.
허나, 골드&실버는 왜인지 자신을 믿었다.
처음부터 그럴 가능성은 단 한 점도 없다는 듯이.
‘그래. 나도 줘도 안 받긴 하지.’
천막 밖으로 나오니 흑의인들이 모두 부복하여 진천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흑패의 주인에게 바치는 예.
그들은 주인이 허락할 때까지 결코 말하지 않는다.
몸으로 보여줄 뿐.
지독할 정도로 서슬 퍼런 위계에 무서워지면서도, 이만하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천희는 시계를 꺼냈다.
토용 시계의 시계 부분은 따로 빼내서 휴대할 수 있었다.
끈을 매달아 손목시계로 쓸까 하다가 강호에서 고수의 검격이 얼마나 매서운지 알고 있기에 그냥 소매 속에 넣고 다니기로 했다.
여기는 AS 해줄 곳도 없다.
‘나중에 다시 합체해야 하지만.’
아무리 죽어도 인과율이 충전될 때까지는 다시 공짜 코인 넣어주지 못하니까.
‘이제 대충 몇 시진 후면 언가의 가주가 도착하고 해무가 일어나게 되겠네.’
현대인은 서대륙 시계가 반갑다.
물론 서대륙이라도 연금술을 쓴 게 아니면 이런 작은 형태의 시계는 못 만들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만한 동창을 손에 넣었으니 어지간한 현은 이 동창들만으로 박살 낼 수 있다.
그야말로 이건 동네에 쳐들어오는 요괴를 막기 위한 게 아니라 그냥 전쟁 병력이다.
동창은 그 개개인도 무림 고수인 데다가 명령도 목숨을 걸고 지키기에 진천희의 모든 전략을 따를 터.
진법 하나 제대로 못 쓰고 손발 묶인 채로 싸워야 했던 전 회차보다야 낫다.
‘괴어인들이 침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군을 이끌고 제대로 해저 도시를 직접 공격할까.’
아니면.
‘지금 먼저 쳐들어갈까.’
“…….”
한참 고민하던 진천희가 눈을 들었다.
‘어느 쪽이든 타하파에게 있어 이만한 개지랄이 없겠군.’
그렇다면…….
‘아, 그거 재미있겠어.’
그 계획이라면 날로 먹을 텐데 괜히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지.
푸른 눈이 곧바로 다음 계획을 짰다.
진천희가 향한 곳은 현청이었다.
* * *
진천희는 곧바로 해저 도시로 들어가는 통로로 달려갔다.
이미 현청에서 언가주와 만난 후.
동창을 이용해 언가주에게 빠르게 서신을 보내 상황을 설명했다.
언가주 역시 곧바로 걸음을 재촉하여 현청에 도착했다.
‘순식간에 몇 시진을 벌었네.’
사마현이 진천희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 동창 정말 편하다~ 황제쯤 되면 이런 고수들을 수족으로 쓸 수 있는 거야?]이제 진천희는 그럭저럭 동생들과 말을 섞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눈은 못 마주치고 있지만.
[그렇지. 거기다 개개인 모두 황제를 위해서라면 자결까지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동창이 황상에게 갖는 충성도는 광신에 가깝다.
말 그대로 그들은 황상을 위해 살고 황상을 위해 죽으니까.
[경공도 엄청나더라. 이러니 이 넓은 제국에 벌어진 일들을 황상이 알 수 있는 거구나.] [그렇게 해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야. 들은 거지, 본 게 아니니까.]영상으로 녹화해서 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게 전부다 보니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고서를 하나부터 열까지 통으로 세세하게 적어주는 진천희를 무척이나 아끼는 거고.
여기에 들고 온 화탄들까지 몇 배.
[남은 동창들도 데려오는 게 낫지 않아?] [무슨 소리? 대마불사 몰라?] [대마불사?] [동창들이 저 화력으로 진법까지 짜서 어인족 목을 따고 있으면 타하파 속이 좀 뒤집어지겠지.] [그러면 형은요?]천우가 불쑥 참견했다.
[나? 무시무시하게 많은 화탄이 있지.]겉으로 봐서는 지난 회와 큰 차이 없는 행보.
좀 더 시간을 앞당겨 움직인 것 외에는 뭐 없어 보인다.
허나 등에 진 어마어마한 화탄의 양이 뭔가 달랐다.
많았다.
무식하게 많았다.
개 미친 무식하게 많았다.
말도 안 되는 화력(火力)!!
진천희가 말했다.
[지저 도시에 괴어인은 없을 테지만 이무기는 있을 거야. 얘들아.] [응? 이무기?] [그 이무기가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도주한다. 튄다!] [형이 이무기를 대체 어떻게……? 아니, 아는 방법이 있겠지, 뭐!]문득 천우가 말했다.
[형이 온몸을 붕대로 꽁꽁 싸맨 것도 그런 이유에요?] [……비슷해.]조건은 바닥에 복희의 피가 튀는 것.
그래서 자신이 직접 가지 말고 폭탄 던지는 걸 동창에게 시킬까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상대는 현경의 이족(異族).
실패했을 때 인간이 잃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지금이라면 현경지독을 아주 끝내주게 쓸 수 있거든.’
사실 미친 짓이긴 하지.
지저 도시에서 이미 한번 죽지 않았나.
자신의 무덤을 다시 밟으러 가는 짓이기도 했다.
거기다 그 존재가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다는 건…….
‘크크큭,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일이긴 하다만.’
거기다가 위에서는 방어하고 아래에서 공격한다.
이 또한 큰 틀에서 보면 지난번과 같지 않나.
북해빙궁 때는 아예 정반대로 움직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시간과 화탄, 그리고 인력이 더 생겼을 뿐 큰 차이가 없는 행보.
‘아마 동생들이 알았으면 돌았냐고 하겠지.’
두 사람에게는 비밀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해저 도시에 도착했다.
“아, 진짜 사람 없네요.”
천우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거봐. 그렇지?”
군대가 전쟁을 앞두고 이동했다는 뜻.
사마현이 말했다.
“딱히 형이 대가를 치른 것 같지 않았는데……?”
그 말에 진천희가 살짝 뜨끔해져서 모르는 척했다.
동생들이 화탄을 설치하는 동안 부리나케 달려가서 왼팔을 그대로 해저 도시에 연결된 수로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실성한 놈처럼 노래를 흥얼거렸다.
“현경독 먹고 즐거운 파티~ 현경독 먹고 즐거운 파티~ 오행으로 버무린 튀김 과자~”
바다와 연결된 수로.
현경지독을 풀어내기 시작하자 물이 순식간에 새카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진천희의 머리가 핑 돌았다.
‘젠장, 예상 이상으로 독기가 강하군.’
경지가 올라갈수록 독도 강해진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그 향만으로도 멀쩡한 사람도 마비가 될 지경.
‘이 정도면… 이무기라고 해도 단번에 올라올 수는 없겠지.’
그때 소리가 울렸다.
콰과과과과광!
사마현과 천우가 화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좋아. 나도 이제 해볼까?’
진천희는 물에서 팔을 뺐다.
그러고는 바로 화탄을 죄다 던져 버리기 시작했다.
딱 한 개만 킵해 두고.
콰광, 콰과과과과광!
사방에서 대폭발이 일어나고, 아까와 비교되지 않는 물량에 곧바로 지저 도시 전체가 우르르 흔들리는 게 아닌가!
전에는 천천히 금이 가다 부서지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먼 곳부터 우르르 지반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잘 안 된다면 화력이 부족한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
아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마현이 말했다.
“형, 이제 튀자!”
그 순간.
키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이무기가 독으로 오염된 바다에서 튀어나왔다.
“헉! 이무기 고통스러워하는데?”
온갖 구멍으로 피를 토하며 이무기가 단말마를 지르듯 몸을 꿈틀거리고 있다.
진천희도 자신의 팔을 보고 중얼거렸다.
“어? 난 마비만 시키려고 했었는데?”
이런 위력이었던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성취가 더 대단했던 거야?’
진천희는 빠르게 붕대를 감아 독을 가린다.
우리 편도 이거 맡고 기절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다음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기린 제자! 네놈!
분노하며 소리 지르는 타하파!
그때의 그 장소에서 정확하게 타하파가 나타나는 것을 보며 진천희가 말했다.
“아, 기다렸습니다. 역시 예상 포인트, 예상 각도!”
그 순간, 마지막 남은 화탄이 정확하게 타하파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간다.
타하파가 자세를 잡고 뛰어오르기도 전에.
사실상 예지의 영역!
콰과과과과과광!
이무기 머리 위에 올라타 전신을 붉은 기운으로 보호하고 있던 타하파가 진천희가 던진 화탄을 창으로 가르려는 그 순간.
-이런!?
창에 닿기도 전에 화탄이 스스로 폭발한다.
이미 창으로 화탄을 베어낼 걸 생각하고 그 타이밍에 맞춰 터지도록 설계해 놓은 것!
‘현원전단신공의 가장 무서운 게 초월심무 천하경영이지.’
한번 죽어봤다는 이야기는 뒤집어 말하면 비슷하게 움직이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다는 것.
‘북해빙궁 때는 아예 성지에 얼씬도 안 하고 도망치는 걸 택했지.’
그게 정상이다.
세계가 멸망하는 빅 레드 버튼이 있는데 거길 다시 간다는 것 자체가 미친 소리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진천희는 달랐다.
‘이번에는 이 ‘예지’를 역으로 이용한다!’
그것이 초월심무 천하경영과 맞물리며 흡사 신처럼 운명을 조작했다.
-끄아아아악!
그것은 범인(凡人)은 결코 상상도 못 할 발상!
‘천인의 계획 아래. 마땅히 그리되리라.’
그것은 한없이 광기에 가까운 용기.
미친 의원은 날로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