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15
제 915화
백린군은 이제 백린서현과 백린동현으로 나뉘어 있다.
제법 넓은 지역이지만,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유입되다 보니 이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마을 수준이었던 곳이 소도시 수준으로 변모한 경우도 제법 많다.
본래는 작은 마을이었던 이정(利貞)이라는 곳도 새롭게 변화된 백린군 내부의 유통 경로 때문에 많은 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중간 교역 장소로서 성장해 소도시가 되었다.
그런 소도시의 외곽 지역에 자리한 음식점 춘몽(春夢).
봄의 꿈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허름하고 좌석도 여섯 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다.
그런 가게로 진천희와 함께 유호가 들어서고 있었다.
“어째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더 많이 망한 모양인데?”
진천희의 눈은 이미 새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다.
첨단기기처럼 고속 정밀 스캔을 행하고 있는 것!
“이거이거……. 안 팔리는 가게의 전형이네. 일단 청소를 대충 하는지 먼지가 제법 많아. 그리고 바닥에 음식물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네. 환기도 제대로 안 했는지 퀴퀴하고. 일단 마이너스 일 점.”
“그 마이너스라는 건 대체 뭡니까?”
“감점(減點)이라는 뜻이야.”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는 진천희와 유호.
계산대에는 주인인 중년 사내가 앉아 있다.
그런데 약간 무기력하게 앉아서는 진천희 일행이 앉는 것을 보고만 있다.
이윽고 진천희가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꾸물꾸물 일어서고 있다.
[마이너스 일 점 더. 우리가 들어올 때부터 접객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말이야.]음식점 주인이 듣지 못하게 전음으로 말하는 진천희.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워 왔습니까?] [가씨세가에서 객잔 넘겨받을 때. 총지배인이랑 현이가 도와줬어.]총지배인이야 본인 직업이니 당연히 그렇다 치고, 사마현 이놈은 형의 일이라면 어째 빠지는 곳이 없다.
“어서 옵쇼. 식사하실 거요?”
[말투도 조금 퉁명스러운 것이……. 마이너스 일 점. 총합 마이너스 삼 점이군. 이거 점점 안 좋은걸?]이 괴상한 점수법도 그놈이 가르쳐준 걸까.
유호는 생각했다.
이윽고 진천희는 육성으로 주인에게 말했다.
“여기 음식이 뭐가 있죠?”
“편아천(片儿川)과 백자육(白煮肉)을 팔고 있습죠.”
편아천!
항주에서 발생한 요리로 죽순과 채 썬 돼지고기를 이용해서 만들어내는 국물 면 요리.
죽순의 담백한 맛과 돼지고기의 육즙에 간장 양념이 기가 막힌 조화를 자랑한다.
반면 백자육은 일종의 수육 요리로 북경의 황궁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게 어찌저찌 민간에 널리 전파된 것!
[호오. 선대 숙수분이 제법 능력자이신데?] [그건 또 뭔 소립니까?] [백자육은 돼지고기를 수육으로 만드는 요리거든. 편아천도 돼지고기가 쓰이고. 백자육 만들면서 남는 고기로 편아천 국물을 만들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대단하지. 요리에서 원가율과 재료 폐기율은 가게 이익을 좌지우지하니까.]이것도 사마현이 가르쳐줬나.
‘뭐지? 그놈 강호인이 아닌가?’
심심하면 사람 얼굴 가죽을 뜯고 다닌다 악명이 자자한데, 그딴 마두가 이런 시시콜콜한 연구까지 하고 있다고?
유호가 직접 얼굴 봤을 때는.
‘형 앞에서 알랑거리느라 알기가 어렵군.’
마두로도 보이지 않고 밥장사에 미친 놈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확실한 건 있다.
그 새끼는 셋 다 하고 있다는 것.
‘도련놈은 어째 동생을 거둬도 이상한 놈들만 동생으로 거두니 원.’
거기까지 생각한 유호.
그래도 실력은 인정하는 의미로 진천희의 말에 전음으로 답했다.
[즉. 재료를 통일해서 이익이 많이 남게 했다……. 이거로군요.] [그렇지! 선대 숙수분의 고심이 느껴지지 않아, 유호?]유호는 답을 하지 않았다.
“여기 백자육하고 편아천. 각각 1인분씩 가져다주세요.”
“예입.”
중년인은 그리 말하고는 안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간다.
“그런데 저는 굳이 왜 와야 하는 겁니까. 주인님께서 저 바쁜 거 아실 텐데 말이죠.”
유호가 전음이 아닌 육성으로 물었다.
제갈린이 괜히 진천희에게 먼저 빌려준다고 한 게 아닐 터.
진천희가 유호를 향해 슬쩍 눈짓을 한 것을 유호는 보고야 말았다.
그 눈짓을 알아듣고 빌려준 거지.
망할.
진천희가 무월을 통해 일을 벌이면 유호도 덩달아 바빠진다.
아무리 부서가 나뉘어 있어도 결국 모든 일은 이어져 있는 법.
외총관의 일이라는 게 내총관에게도 영향을 끼치니까.
“그거야 유호가 뭔가 만들어 줘야 할 수도 있어서 그렇지. 특이한 조리도구라든가, 그런 게 필요할 수 있어서.”
단 한 번의 눈짓.
제자는 유호가 필요하다 했고.
스승은 제자가 왜 유호가 필요하다 눈짓한 건지 알아차리고 동의했다.
고작 0.3초도 안 될 짧은 제스처.
그것으로 제갈 사제는 이미 앞으로의 계획까지 논의한 셈이었다.
“하아……. 겨우 그런 이유로 같이 오자고 한 겁니까? ……죽고 싶은가? 도련놈.”
여우는 일이 많으나 과로사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는 고귀한 존재이기에 죽도록 일을 해도 병이 안 나는 병에 걸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멸자라 부른다.
“아하하하. 뭐, 이 정도 가지고. 자자. 내가 이거 끝나고 맛나는 육회 해 줄 테니까 화 풀어, 유호. 응?”
유호는 깊은 빡침을 느꼈다.
“그나저나 주인장의 접객 태도도 역시 마이너스 일 점이네.”
“이유가 뭐기에 또 감점한 겁니까?”
“술 같은 거라도 권해야지! 장사할 생각이 없잖아!”
주인장이 부엌에 들어갔다고 아예 대놓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손님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진천희의 말을 못 들을 정도로.
“편아천은 국물 면 요리니까 그렇다 쳐도, 백자육은 술과 먹어도 좋을 음식이거든.”
“그렇군요.”
“특히 술은 요리보다 단가가 높아서 팔수록 이득이라고!”
그런데 권해 보지도 않으니 이것은 접객성에 문제가 있다!
“참 지독하시군요. 도련님.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잠깐, 그런데 의원인데 술 안 권했다고 뭐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여기 왜 왔어?”
“요리 가르쳐 주려고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냐아냐. 요리 실력 향상은 조건 중의 하나야. 진짜 중요한 건 가게가 대박이 나야 한다는 거라고.”
진천희의 의원 자아는 퇴근했다.
백린의각 출근할 때까지 나무늘보처럼 누워 지낼 터.
지금은 천하십대숙수 일광 놈이 출근할 시간.
그놈이 진천희 핸들을 붙잡고 조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아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박!
대박 나야 한다!
하지만 대박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SNS는커녕 잡지나 TV도 없는 세상이 아닌가.
이 세계의 맛집은 입소문만으로 전파되기 마련.
당연히 대박 맛집으로 소문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진천희도 백린객잔을 오픈할 당시에 작은 축제를 열지 않았나!
그걸 핑계로 겸사겸사 사람 좀 초대하고!
“요리만 잘한다고 대박이 나는 게 아냐. 접객 서비스도 잘해야 하고, 당연히 가게 관리도 꼼꼼히 해야 해. 일단 이렇게 더러우면 안 된다 이거지.”
“아까도 말했지만 참 지독하십니다.”
그렇게 둘이 이야기를 하는 와중 음식이 나왔다.
편아천과 백자육!
우선 진천희는 편아천을 먹기로 했다.
그러나 유호는 먹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의 음식은 그리 즐기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이… 이 맛은!?”
진천희는 한입 후룩하고 면을 먹더니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젓가락을 가져가 이번에는 백자육을 집어 들었다.
우물.
“컥……. 이 맛은!?”
그러고는 유호를 바라보는 진천희.
“유호 씨! 어서 잠깐 와 봐유! 이거 좀 먹어 봐유!”
갑자기 말투가 이상해졌다.
유호는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저 이미 앞에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말투도 이상하게 바꾸고… 하여튼…… 대체 어떻기에 한번 먹어 보라는 건지…….”
짜증 내면서도 일단 백자육을 먹어 보는 유호.
“허! 이 맛은!?”
그리고 드물게도 살기가 새어 나왔다.
진천희는 잽싸게 의념을 이용해 유호의 살기에서 주인장을 지켜내는 기염을 토했다.
초고수들만이 할 수 있는 무학.
그러나, 유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렇게 맛이 없는 걸 저에게 굳이 먹이신 겁니까!!”
“아니. 나만 먹으면 좀 그렇잖아아. 유호도 먹어 보고 맛 평가를 해 주면 좋지.”
아무리 봐도 혼자 못 죽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유호는 생각했다.
‘그렇군. 주인님은 이미……. 저자와 돌아다니며 쓰레기 같은 음식들을 함께 먹어 주었다 했지.’
도련놈은 맛집 기행이라 불렀고, 주인놈은 쓰레기 수집이라 불렀다.
그걸 왜 본인 입으로 수집하는지 모르겠지만 제자가 그러고 있으니 같이 갔다고.
‘…….’
참스승이었다.
제자가 입에 쓰레기를 넣고 있으니, 자기도 같이 앉아 그 쓰레기를 입에 넣고 있다니.
강호의 스승이란 마치 광기 그 자체 아닐까?
생각해보면 유호가 한창 사람 간 파먹던 시절에도 광기에 찬 스승들이 많았다.
제자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자들.
죽을 걸 알면서도 선천진기 한 방울까지 짜내서 제자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사망했다.
그러고 난 몸뚱이는 매미껍데기처럼 가볍고 퍽퍽해서 맛이 없었다.
그때 유호는 강호의 스승이란 자들이 어떤 광기를 지니고 있는지 깨달았다.
제자를 기른다는 것은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구나.
제갈린도 마찬가지.
아마 진천희가 아닌 다른 놈이 그런 쓰레기를 입에 넣으라 권했으면 그 자리에서 여섯 갈래로 찢어졌겠지.
유호가 말했다.
“일단 이 백자육은 삶은 지 너무 오래된 고기입니다. 적어도 이틀 전에 삶은 걸 뒀다가 데워서 내놓은 것 같은데……. 이러면 고기가 퍽퍽하고 냄새가 나죠.”
‘제법인데? 인간들이 먹는 요리는 별로 안 좋아하면서 미각은 꽤 정확하단 말이지.’
진천희는 내심 감탄했다.
그 속도 모르고 유호가 말을 이었다.
“고기의 질도 좋지 않은데 향신료로 속이려고 들었지만 아주 고약하게 맛이 없군요. 약간 상한 느낌도 나고. 거기에 편아천도 문제입니다.”
“편아천도?”
“네. 이것도 고기 품질이 낮은 데다 오래된 거라서 맛이 변해서 못 먹을 음식이에요.”
“맞아. 고기 자체가 오래되었어. 바로 깨닫는군.”
“네. 그나마 죽순은 신선하고 간장 양념이 쓸 만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음식 쓰레기가 요리로 변하는 건 아니죠.”
그야말로 신랄한 평가!
진천희는 유호의 날카로운 평론에 놀라다가 곧바로 가슴을 쓸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려나?’
진천희가 나타나기 이전, 그 스승님의 음식을 만들던 것이 바로 유호니까.
그의 요리 솜씨 또한 사실 일절이나 다름이 없었다.
“역시 유호야! 나도 유호 생각이랑 같아.”
“이미 아시면서 왜 물어봅니까. 하여튼… 성격은 나빠 가지고……. 그나저나 이건 이미 요리 실력 이전의 문제 아닙니까?”
요리 실력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요리를 하려는 자세나 의지가 없다.
그리고 돈도 없고.
며칠 전, 날씨를 보니 어쩌면 지난주쯤 삶은 고기를 데워서 내놓는다.
위생도 위생이지만 준비한 음식이 안 팔리니 회전율이 지극히 떨어졌다는 의미다.
‘음, 이 시대에는 먹고 식중독 걸리는 일도 많지.’
거기에 주방장의 게으름까지 더해지니 이렇게 지옥의 음식이 완성되었다.
보아하니 고기 버리고 새로 사기에는 자금이 후달리고.
그렇다고 해서 가게를 번듯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접객 태도와 가게 관리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그렇지. 사람 자체가 무기력증에 허우적대는 그런 상태니까.”
“글쎄요. 무기력증보다는 본래 게을러빠진 인간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인간 자체가 조악(粗惡)하고 저열(低劣)하면 어떤 수를 써도 안 될 텐데요.”
신랄한 독설.
듣는 진천희도 뜨끔할 지경이다.
‘간호당 하의원들이 유호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죄다 혼이 나가는 게 이런 이유군.’
허나, 맞는 말이다.
“뭐어……. 나도 거기까지는 생각했어. 그래서 좀 돌아가야 하지만 거친 방법을 쓰려고.”
“거친 방법이요?”
“응! 정신 재무장부터 좀 다시 시켜야지. 어쩔 수 없잖아?”
천하일광의 두 눈이 새파랗게 번쩍이고 있었다.
“주인장! 나 좀 봅시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