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17
제 917화
짜란짜란! 쿵짝! 쿵짝!
객잔의 앞에 작은 연단이 놓이고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백린의각 오픈 이벤트보다는 작았지만, 이런 소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음식점 오픈 행사.
‘엄연히 말해, 휴점했다가 다시 여는 거지만.’
그래도 새로 여는 척을 했다.
그런 게 다 전략 아닌가?
실제로 소도시의 주민들도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미 소문이 쫘악 퍼진 모양.
천하일광 진천희가 직접 가르치고 재단장을 끝낸 음식점이 신장개업(新裝開業)했다더라!
때문에 다들 이리 몰려든 것이다.
“백린객잔 분타, 뭐 그런 거요?”
“이번에는 좀 다르다고 들었소.”
“호오오오, 대체 뭔지 모르겠군. 거기다 저 객잔은 옛날에는 맛있었는데 지금은 별로라 안 간 지 오래되었는데?”
“아들내미가 물려받았다가 가게가 망했다 들었소.”
그 말에 행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강호의 이야기구만.”
“흔한 강호 객잔 이야기지.”
사람들이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연단 위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때 누군가가 내공을 담아 말했다.
-편아천과 백자육의 명인이신 엄 노사! 숙수 엄씨는 그런 엄 노사의 장자(長子)였으나 그 솜씨는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는지 맛없다는 혹평이었죠!
와아아아아!
미리 돈을 받은 매담자.
화려하게 옷을 입은 그는 벌써 단상에 올라가 바람잡이를 하고 있었다.
매담자 주제에 음공까지 익혔다니, 그야말로 강호의 고급 인력이라 할 수 있었고.
같은 매담자들 중에서도 아주 비싼 몸값을 자랑할 터.
‘금혈방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구했네.’
이게 다 현이 덕이다.
그렇게 구한 귀하신 몸이 내공을 담아 외친다.
-자. 그러나 지금, 새롭게 태어난 그 요리 실력을 여러분들께 보이고자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맛을 제대로 평가하고자 이 지역의 명사분들도 오셨으니 모두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돈으로 기름칠을 한 만큼 매담자는 아낌없이 음공을 쏟아붓고 있었다.
역시 돈이 최고다.
-이 고을에서 맛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시는 미식가! 곽 장자 어르신!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외다.”
오오오오! 사람들이 환호했다.
-강호에서 가장 빠르게 소문을 듣는 분으로 유명하신 분들입니다. 바로 강호 삼학사!
“강호적인 관점에서 맛을 평가할 것이오.”
“무의 이치와 기술적인 것도 볼 것이고.”
“하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면 문제겠지. 심의(心意)야말로 중요한 것!”
세 명의 학사는 뭔가 개소리를 그럴싸하게 하고 있었다.
-맛있다는 말에 직접 왕림하셨습니다! 천하 십 대 고수 중의 한 분이신 무영투괴!
“흠흠. 이런 일이 있으면 오지 않을 수 없지.”
그녀는 이번에도 훔쳐 먹으려다가 졸지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받게 되었다.
-그리고 백린의각의 각주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맛.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심사위원들의 소개가 끝나고 이제 시식에 들어갈 차례.
진천희는 긴장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스승의 입맛을 잘 아는 진천희이니만큼.
자신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천희가 만든 요리가 아닌, 숙수 엄씨가 만든 요리!
‘과연……. 스승님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스승님은 뭐랄까.
품격 있는 언행에 비해 행동은 좋게 말해 야만을 품고 있다.
입으로는 ‘호오, 정말 대단한 무공이시군요. 잘 견식했습니다.’라며 칭찬을 하는데.
하는 행동은 발로 남의 문파 장로 머리통을 잘근잘근 밟고 계신다거나.
약간 그런 식으로 말만 봐서는 안 된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
맛을 기대하겠다 정중히 말씀하셨지만.
한입, 아니 반입, 아니 반의반의 반입 드시고 젓가락 던져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젓가락은 벽을 두부처럼 갈라버리겠지.’
그에 비해 무영투괴는 입만 거치시지 예의를 갖추신 분이다.
‘도둑질은…… 예의를 갖추지는 않지만 여기는 털어갈 것도 없으니까.’
얼마나 기다렸을까.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자 드디어 백자육과 편아천이 나왔다.
-오오옷! 요리 등장했습니다! 벌써 좋은 향이 나는군요!
그리고 모두가 시식하기 시작한다.
“음!? 이 맛은!?”
그때.
무영투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옷! 무영투괴께서 맛 평가를 하십니다!
“면이…….”
“면이?”
“입에서 춤을 추고 있다! 살아 있는 것 같구나!”
쿠오오오오!
마치 투괴의 뒤로 면이 용처럼 치솟은 것 같은 환상이 피어났다.
-오오! 아주 고평가 나왔습니다아아!
매담자가 아주 열과 성을 다하며 함께 리액션을 했다.
양팔로 승천하는 용을 꿈틀꿈틀 그린 것.
그때 곽 장자가 입을 열었다.
“꿰에에엑!”
아니? 이 무슨 돼지 멱따는 소리인가?
“돼지다! 돼지의 생명력이 내 입안에서 살아 난동을 부리고 있다!”
우와아아아아!
그것을 지켜보던 구경꾼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이건 또 기발한 맛 평가군요!
“이 두 요리. 마치 구명절초 같군!”
“신공절학의 하나 같기도!?”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다!”
-삼학사에게서도 고평가가 나왔습니다아아!
다들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어느 순간 사람들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문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저 위압감만으로 기세가 눌려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워진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만한 고요 속.
제갈린이 아직 먹고 있었다.
고요히, 그러나 기품있게. 그는 음식을 먹고 있다.
기묘한 긴장감.
진천희도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엄 숙수 역시 긴장한 눈으로 제갈린을 지켜보고 있다.
탁.
그리고 제갈린이 젓가락을 놓았다.
‘음식은? 남아 있나? 다 드셨나? 어떻지?’
진천희의 눈이 그릇을 본다.
음식은.
깨끗이 비워져 있다!
좋았어!
주먹을 꽈악 쥐는 진천희!
그리고 제갈린의 입이 열렸다.
“맛있었습니다.”
딱 한마디!
그러나 그 한마디가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오오오오! 제갈린 의각주님께 맛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아아아!
우와아아아아!
그 순간, 맨 앞줄의 사람들 몇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컥, 커억!”
매담자가 말했다.
-구경 오신 다른 객잔의 숙수님들이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시는군요! 저분들 모두 끔찍하다는 혹평을 받으셨던 분들이죠!?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과거 진천희가 제갈린과 함께 맛집 탐방을 할 때 특유의 독설에 심장이 찔린 바로 그 숙수들이었으니까!
-백린군 최고의 숙수가 여기 탄생했습니다아아아!
매정하다.
쓰러진 숙수들이 도끼눈으로 매담자를 노려보았지만 뭐 어떠랴.
매담자는 받은 만큼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먹어 보자!”
“어서 빨리 영업해라!”
“객잔 문 좀 여시게! 언제까지 보여주기만 할 텐가!”
사람들이 앞다투어서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을 붙잡고 쓰러진 다른 객잔 숙수들도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분기탱천!
“그놈의 국수 얼마나 맛있는지 한번 보겠네!”
“망할! 저게 우리 것보다 뭐가 더 낫다고?!”
좌중은 그야말로 열기의 도가니!
그 속에서 진천희는 양손을 모으고 푸른 눈을 성스럽게 반짝였다.
“스승님, 제가 해냈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대신해 천하십대숙수(feat. 살육 병기)를 완성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엄 숙수도 기뻐서 진천희를 얼싸안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은공!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엄숙수가 기뻐서 진천희를 들고 한번 튀어 오르는 순간.
콰과과과광!
연단이 박살 났다.
그저 외공의 힘만으로 연단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며 얼빠져서 한 장인이 말했다.
“저거, 저거 엄청 비싼 화강암 바닥인데?”
어느 미친놈이 나무도 아니고 화강암으로 임시 연단을 만든단 말인가.
허나, 진천희는 했다.
스승님을 고작 나무 연단에 세울 수는 없는 일.
“방금 내공으로 부순 건가?”
“아니오. 분명 근력만으로 화강암을 박살 낸 것이오!”
“오오오옷! 강호에 새로운 강자가 출현한 것인가!”
그렇게.
행사는 무사히 끝이 났다.
엄 숙수는 뜬금없이 무명이 생겼고.
과거 백 명의 살수를 근육만으로 패퇴시킨 흉악한 마두이나, 이제는 은퇴하고 고향에서 요리나 하는 숨겨진 고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절대 옛날에 이 자리에서 장사하던 그놈이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 했다.
그만큼 비포, 애프터 차이가 컸으니까.
흉악한 근육은 과거 무기력한 시절과는 천지 차이.
분명 객잔도 숙수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데 친한 지인 외에는 알아보는 놈이 없을 지경이다.
‘음, 그래. 시비 거는 놈은 없을 테니 차라리 잘됐어.’
진천희는 만족했다.
* * *
“홀홀. 그렇게 어렸던 아이가 이렇게 장성하다니……. 겨우 식사 한 끼였을 뿐인데 이리 도와주어 고맙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은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다.
과거 스승님을 구해준 멋진 객잔 주인이었으나, 지금은 지팡이에 의지한 허리 굽은 노인일 뿐.
과거 장대한 근골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쪼그라들었다.
엄 노사.
과거 제갈린에게 편아천을 해 주었던, 사람에 대한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사람.
허나, 그 눈빛은 여전히 따뜻해서.
그리고 그 인상만은 여전히 완고해서.
이 노사가 얼마나 고집스럽게 의인으로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한 끼가 저에게는 천금보다도 귀중한 것이었으니까요. 이 정도로 제가 은혜를 다 갚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하지. 충분해. 내 자식 걱정 때문에 편히 눈도 감기 어려웠는데. 이를 해결해 주었으니 어찌 은혜를 다 갚았다 말하지 못하겠는가.”
노사의 눈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고였다.
“고마우이. 정말. 고마워. 이 늙은이야말로 그 한 끼 때문에 이리 도움을 받았으니 도리어 은혜를 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일세.”
노인은 사람들에게 작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는 아들을 보며 웃었다.
무료 시식회라고 했던가.
한번 저렇게 맛을 보고 나면, 그 이후에는 저절로 가게로 사람들이 몰릴 거라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었다고 권리인 줄 알고 공짜로 밥 내놓으라고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거늘.’
저 흉악한 근육을 보고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 하고 있다.
모두 딱 한 점씩 먹고 가게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
“부디 무공을 전수해주십시오!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크하하핫! 네놈이 그 대단하다는 엄 숙수냐! 그 무공,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볼까!”
쿠과과과광!
오라는 요리 제자는 안 오고 무공에 눈독을 들인 놈들이 꼬이고 있긴 하다.
그랬다.
엄 숙수의 커리어 나침반이 이상하게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 모인 자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노인은 다시 한번 진천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단순히 숙수로서 자립하게 해준 것뿐이 아니라 한 명의 어른으로서 자립하게도 만들어주지 않았나.”
“아닙니다.”
진천희가 겸손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갈린은 부채를 들어 자신의 입가를 가린다.
가린 입가가 슬쩍 미소 지었다.
과거의 은을 갚는다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두려운 일.
과거의 인연이 그때의 그 기억과 같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나?
‘그게 은(恩)의 어려운 점이지.’
감사하다고 해서 쉬이 갚기 어려운 것이 강호였다.
때로는 은(恩)이 원(怨)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게 강호이기도 했고.
허나, 엄 노사는 그때처럼 고집 세지만, 마음이 따스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게 좋았다.
“오래 사십시오. 엄 노사.”
제갈린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오늘은 4월 1일.
강호의 은(恩) 하나가 제자리를 찾아간 날이다.
뜨끈한 국물과 흰 국수.
진천희는 엄 숙수가 만든 요리를 한입 먹더니 이렇게 말했다.
“유호 씨, 이리 와서 한번 먹어 봐유!”
그 향기에, 이번만큼은 천하의 유호도 거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루룩-
좋은 맛, 좋은 향기, 좋은 인연.
그리고 좋은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