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18
제 918화
용광로 제작이 끝난 후.
드디어 가동을 시작했다.
진법을 돌리고 가열한다. 순식간에 공기가 탈 것 같은 온도까지 올라가자 장인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풀무를 발로 밟아가면서 공기를 순환시켜 열을 올려야 했다.
허나, 이번에 건설된 용광로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차를 이용해 공기를 송풍한다.
쉽게 말해 사람이 밟던 풀무를 물레방아가 대신 밟아준다고 보면 된다.
물론 아주 쉽게 말하자니 그런 거고,
‘송나라 때에 남겨진 자료를 보면 수차를 이용해 옆으로 도는 물레방아를 만들고, 그 물레방아로 돌리는 기계가 화로에 달려 있는… 일종의 환기구 같은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송풍을 하더만.’
지구 역사를 보면 강호인들도 사용할 법도 한데 무림 별에서는 아직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아니면 모르고 있는 걸지도.’
사천당가나 남궁세가 같은 세가에서 사용하고 있으나 기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거나.
확실한 것은, 시중에 유통되는 선철 가격을 보면 비싸다는 것.
만약 송나라 기술 그대로 전부 전수받았다면 이 가격일 수가 없다.
‘강호의 생리가 기술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긴 하지.’
비인부전의 법칙이 이렇게 무섭다.
어쨌든 여기에 진천희는 좀 더 송풍을 강하게 할 수 있도록 유럽식으로 응용을 가했고, 거기에 진법도 사용해 열을 응집시켰다.
철광석, 석회, 석탄(코크스).
석회석은 철광석의 불순물을 없앤다.
석탄은 철광석의 산소를 떼어내 환원 작업을 한다.
코크스.
세계사에서 철기 문명 언급할 때 단골로 등장하시는 코크스가 바로 이 석탄으로 만든다.
‘그렇긴 해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지만.’
중원에서 질 좋은 석탄 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대신 북해빙궁 쪽에는 널려 있다.
덕분에 싸게, 잔뜩 구해 올 수 있었다.
이렇게 수입해 온 석탄을 장시간 동안 고온 가열해서 만들면 된다.
1,200도 정도?
그 정도는 여기 기술로 가능하다.
나무로 숯을 만드는 것과 원리 역시 비슷하고.
여기에 수차를 이용해 열풍을 일정하게 불어넣기 시작하니 온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오오오, 어릴 때 세계사 재미있게 보던 보람이 있네.’
진법까지 더해지니 용광로 안은 그야말로 초열지옥!
철광석의 불순물인 슬래그와 순수한 쇳물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선철! 선철이다아아아!”
숙련된 장인들은 그저 용광로에 쇳물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선철을 알아보았다.
진천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슬래… 아니, 회색 찌꺼기들은 시멘트…… 아니, 건축 재료로 사용하죠.”
가공만 잘 하면 비료로도 쓸 수 있다.
이렇게 나온 규산질 비료는 토양에 철분을 공급하거나 식물의 병해를 예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슬래그 성분을 좀 더 연구한 다음에 들어가야 할 거야.’
비료라는 게 뿌리면 다 좋아 보이지만 자칫 토양이 오염되어 역으로 사람이 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먹는 것도 인간이니까.
질소비료를 쓸 때처럼 실험을 오래 거친 후 도입해야 할 터.
“소각주님, 용광로 연기가 한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현대에서는 용광로 연기도 재활용한다.
그 가스들을 한번 걸러낸 후 용광로 동력원으로 재사용하는 방식.
하지만 전기가 아닌 사람과 물, 기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는 진법을 계속 유지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소중한 화기(火氣)를 낭비할 수는 없지.’
원리야 다르다만 진법도 무한하지 않다.
무당산처럼 적당히 양생과 운기조식을 위한 진법이면 모를까, 열을 모아 고온으로 용광로를 돌리는데 지맥이 소비가 안 될 수가 없다.
애초에 이걸 돌릴 수 있던 것 자체가 백린의각이 자리한 곳이 휴화산 지대이기 때문에 화기를 모으기가 좋기 때문.
그렇다고 너무 사용했다가는 대자연이 어찌 반응할지 알 수 없으니 ‘적당히’ 해야 한다.
그 적당히가 바로 이 용광로 연기 재활용으로 화기를 보강하는 거고.
그렇게 연기가 진법을 따라 흘러 커다란 무쇠 통으로 들어간다.
이 안에서 먼지는 가라앉고 가스만이 남게 되는데, 이걸 정화하면서 화기가 지맥으로 회수될 터였다.
‘대체 기(氣)란 뭘까.’
웃기게도 진천희는 진법을 만들면 왜 기가 그대로 따라 흐르는지 모른다.
마치 컴퓨터와도 같다.
반도체 속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쥐뿔도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프로그램 언어는 알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뿐.
‘후, 이걸로 리사이클까지 어떻게든 된 건가?’
용광로의 가장 큰 문제가 환경오염이다.
인류는 거대 용광로를 만들고부터 환경오염에 신음을 하며 살았다.
당시에는 환경오염이 뭔지도 모르던 시기라 대장간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이 잘 죽는다.
이 정도가 다였고.
그 사람이 잘 죽는 것도, 굳이 철광 일 하는 게 아닌 앞집, 옆집, 뒷집 사람들도 다 비슷하게 죽어서 그런갑다 했단다.
환경오염은 더욱 커져 가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죽고 나서야 인류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천희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은 인류가 그런 반성을 담아 찾아낸 방식들을 응용한 것.
물론 지구 별 포스코 같은 거대 용광로에 비하면 손톱만큼 작은 곳이지만.
그래도 오염이 퍼지는 건 막고 싶었다.
‘거기다 까만 연기가 계속 솟아오르면 용광로 위치를 다른 세가에서 알게 될 거고 기술도 유출되겠지.’
이놈의 비인부전이 강호의 발전을 망친다고 투덜거리던 양반이 또 본인 기술 유지에는 철저하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철면피!
그도 그럴 것이.
‘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정파여도 환경오염이고 나발이고 그냥 용광로 세울 것 같다.’
자칫 선철 좀 뽑겠다고 본말전도가 되어 버리는 수가 있다.
그리고 전략적으로 이곳을 공격하는 미친 흑도 놈도 있을 거고.
세가야 세가 사람들만 드나드니 기밀 유지가 되지만 여기는 환자들도 함께하는 백린의각 아닌가.
좀 떨어지는 곳에 지었다고는 해도 멀리서 같은 자리에서 연기가 솟다 보면 저게 뭔가 싶어 보는 강호인도 있을 거고.
그리고 지금.
선철이 이렇게 쉽게 뽑혀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장장이들이 모두 환호했다.
“이야아아! 이게 다 돈이다. 돈!”
“신병이기라도 만들 수 있겠습니다요!”
“이걸 소각주님이 설계했다는 거죠?”
환호하는 장인들을 보며 진천희가 말했다.
“이걸로 철 문제는 해결입니다.”
“…….”
“무월?”
무월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진짜로 일어났다.
“정말로 저게 전부 선철이라는 겁니까?”
“네! 철의 질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가 없을 겁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한 게 이리도 쉽게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체 이런 지식을 소각주님은 어찌 알고 계시는 건가. 혹시 다른 세가에서 이런 걸 비밀리에 사용하나?’
사천당가에서 선철을 많이 뽑아내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리라 생각한다.
설령 사천당가에서 이렇게 병기들을 만들어 왔다고는 해도 그걸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가?
개방이나 하오문에 천금을 싸 들고 가도 얻을 수 없는 정보.
‘세상에. 이런 게 가능할 줄은……!’
무월은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일부러 태연함을 가장하여 말했다.
“흠흠, 철 부족 문제는 해결되긴 했습니다만……. 소각주님. 이걸 이제 농기구로 만드는 것은 어찌하시렵니까?”
“대장장이를 대량으로 교육시켜야겠죠. 신병이기를 만들게 시킬 것도 아니고, 농기구를 만드는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하니까요.”
아무리 진천희라도 이다음으로 트레이에 주르륵 철물을 부어서 금형까지 원 큐로 끝내는 지식까지는 없다.
‘그러면 인력이지.’
사람도 많고, 직업이 없는 강호인들도 많지 않나?
싹 다 데려다가 쓴다!
거기다.
대장장이로 일하면서 화기를 내력으로 축적하는 내공심법을 가르쳐 줄 예정.
익히기가 아주 쉬운 데다가 근력과 내열 능력까지 갖추게 되니 탐을 내는 낭인들이 많을 터.
‘거기다 강호인들은 웬만큼 일을 해도 연골 나가는 일이 없지.’
다섯 살부터 물동이를 지고 계단 삼천 개를 매일매일 오르는데도 팔 척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는 게 강호인이라는 족속이다.
삼류 무사도 맨몸뚱이로 바위를 들이박는 놈들인데 이런 일에 쓰기 최적화되어 있다.
‘황실 서고에서 빼낸 묘리를 섞어서 만들어 봐야겠군.’
재미있게도 경신보법보다는 이쪽이 차라리 쉽다.
화기가 가득한 지맥을 이용한 동운공이니 이곳, 진법을 설치한 대장간 내에서만 연공이 될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밀 유출도 막을 수 있게 된다.
애초에 진법은 제갈세가 사람이 아니면 본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라는 걸 저 사람들이 가장 잘 알 테니까.
‘강호인을 부려 먹어 대장장이 일을 시키겠다니……. 미쳤… 아니, 은공답구나.’
상사를 천하일광으로 둔 무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광이 일광 일을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은공이 정상적인 인물이었다면 배달업에서 이미 막혔다.
“좋습니다! 소각주님!”
무월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단순히 농업뿐 아니라 생산 경제력에서도 화 제국 최고가 되어 봅시다!”
“오우! 좋네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불닭볶음면으로.”
“……많이 맵습니까?”
“위에 건락도 얹고 곁들일 감주에는 살얼음 동동 띄워줄게요.”
“…….”
“어, 그리고 매운 거 못 먹는 사람을 위해 간장 닭국수도 준비하도록 하죠.”
무월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 좋은데 소각주님은 매운 걸 너무 잘 만든다.
맛있어서 입에 계속 들어가지만 그래도 맵긴 맵다.
본인은 별로 맵지 않다고, 이게 뭐가 맵냐고 묻지만 다들 먹다가 감주부터 찾을 때가 많다.
사천 출신 놈들이야 신나서 잘 먹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 온 장인분들 중에는 소각주님 요리를 한 번도 못 먹어 본 분도 계시겠군요.”
“아, 그러네요? 한동안 백린의각 숙수분들이 만들어 주셨으니.”
‘요리 중독자가 더 늘겠군.’
일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심법으로 제약을 만들고 그런 게 아니다.
밥으로 사람을 길들인다는 것.
천하일미(天下一味)!
황제도 못 먹는 진미를 점심 반찬으로 꺼내온다.
“아, 맞다. 계란탕도 하나 해야지. 아쉬울 뻔했네.”
* * *
대장장이 왕판.
그는 백린현과 백린군이 들어서기도 전에도 그 자리에 살던 자였다.
당시에는 백린현이라는 명칭 대신 다른 이름으로 이 지역을 불렀는데, 그때에도 대장장이로.
그리고 지금도 대장장이로 살고 있다.
경력은 무려 20년.
야장(冶匠-대장장이를 뜻하는 단어) 중의 야장이라 마을에서 불리고 있으며 나름대로 실력에 자부심도 있다.
그는 오늘도 망치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농기구.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쟁기며 호미, 낫 그런 것들이다.
신병이기를 만들 정도의 실력은 없으나, 그래도 대대로 내려오는 용광로 제련 비법이 있다 보니 꽤 괜찮은 철을 뽑아서 만들고 있다.
철을 뽑는 날은 집안사람들 모두가 모여서 철괴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철괴를 다른 대장장이에게 팔거나.
직접 농기구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이번에 천하일광 소각주가 철 주괴를 만들고 있다고?’
지금 만들고 있는 농기구가 바로 그 백린의각 철괴로 만든 것.
가격도 자신의 대장간보다 저렴한 데다가 직접 사용해서 만들어 보니 철의 순도가 비할 바가 없었다.
‘이 정도 철을 이렇게 싸게 팔 줄이야……. 이래서야 장사에 타격이 있겠는걸?’
시름은 깊어간다.
그때였다.
“할아버지, 백린의각에서 사람이 왔어요!”
손주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통통한 볼이 얼마나 귀여운지 깨물어주고 싶었다.
밖으로 나오니 백린의각 무복을 입은 사람이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쓰읍, 소금이라도 팍 뿌려버릴까?’
이제는 장사 경쟁자가 되었지 않나.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할까 싶지만 손주가 백린의각에 신세 진 게 많았다.
‘거기다 내가 무릎이 다쳤을 때도 백린의각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치료해줬지.’
거기다 세금도 낮아지고 물도 멀리 가서 뜰 필요도 없고.
그런 대은인이 생계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어 버린 셈.
복잡한 심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정작 백린의각 관리는 대문 밖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들어오시오!”
‘무슨 속셈인지 들어나 보자.’
그런 그의 뒤에는 여우 모양 토용이 걸려있었다.
손주가 어디선가 사 온 못생긴 토용.
노인은 그 토용을 힘껏 노려보았다.
‘하여간. 이상한 제안이면 이 토용 다 깨버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