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22
제 922화
“이야~ 이거 참 기쁘군그래. 그 아해가 아직 살아 있다니. 이거 기대가 되는구먼. 찾아가면 제법 재미나게 놀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뜬금없는 이상한 말.
게다가 표정도 괴상했다.
먹을 것을 두고서 배고파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논하면서 그런 표정을 짓다니?
“혹시 사람을 잡아드시는 그런 겁니까?”
“아니, 소형제. 돌았나? 맛있는 소고기를 앞에 두고 그런 소리를 왜 하나. 내게 있어 무공은 곧 식욕일세. 절세의 무공만큼 맛있는 게 없지.”
괴인(怪人).
혹은 광인(狂人).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스승님을 아시나요?”
“그 녀석의 아비와 제법 교류를 했었지. 과욕을 부리더니 훅 가버리더군. 쯧쯧.”
“……!”
“하긴, 나도 남 욕할 처지는 아니긴 하네. 욕심 하면 이 몸도 어마어마하게 부리는 편이거든. 그 때문에 고생도 했고 말이야.”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의 말이었다.
하지만 진천희는 그 말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기억해 두고 있다.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진실과 사실 그리고 정보를 만들어 나간다.
“저는 제갈린 스승님의 제자인 진천희라고 합니다. 귀인께서는 누구신지요.”
“호……. 제갈가가 아니라 진가렸다? 제갈세가의 인간이 다른 혈족을 제자로 맞이했단 말인가? 하기사 네 녀석의 천기 역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아하니 범상한 놈은 아닌 모양이지만…….”
‘역시. 천기를 보는 자였나. 그것도 아주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
“어디 먼 곳에 계셨었나 보군요. 스승님께서 저를 제자로 맞이하신 지 제법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강호에서 천하일광이라고까지 불리는 몸이다.
천하 십 대 고수 중 한 명.
일광 진천희라고 불린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스승 제갈린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으로 보이는 언행까지.
강호를 떠나 오랜만에 돌아온 자가 아니라면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없었다.
‘거짓인가 싶었지만… 안구의 움직임이나 그 기색이 너무 자연스럽고.’
초일류 살수라면 그 모든 것을 숨길 수야 있다. 있지만.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른 자가 그런 귀찮은 짓을 한다고?
‘가능은 해. 하지만 확률은 낮아.’
진천희의 현원전단신공은 거기까지 추리해 냈다.
그리고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어렴풋이.
……이자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단서가 모자라다.
“하하핫! 그렇다네 소형제. 제법 먼 곳에 다녀온 참이지. 본래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도 하늘에 길이 열려 돌아올 수 있었지 뭔가!”
“하늘길이요?”
단순 비유일까?
보통이라면 어떤 비유, 또는 은유적인 단어라고 생각하겠지만, 방금 별을 보고 천기를 읽는 것을 보지 않았나.
“그래. 거기를 걸어왔네. 아주 기꺼운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천하에 아직 보지 못한 무공이 수두룩하거늘. 어찌 그 무공들을 두고 떠날 수 있겠는가.”
‘역시. 이 사람은…….’
진천희는 상대의 정체를 완전히 깨달았다.
그리고 속으로 경악하고 말았다.
지존천마에서도 등장 횟수가 극히 적은 인물.
그런 자가 불쑥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진천희가 그 자리에서 깍듯이 예를 표했다.
“무존 광무백 노선배님이시군요. 무림말학 진천희가 인사 올립니다.”
“호오?”
무존 광무백!
천하삼존의 한 명이며, 천하에서 가장 강한 절대자 세 명 중 한 명!
순수한 무공의 경지만 따지면 다른 삼존보다도 한 끗 위일 것이라는 평가마저 있는 자.
아주 옛날.
마존과 무존이 겨루는 바람에 산이 사라지고 강이 되었다는 거짓말 같은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런 신화적인 인물이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천마님이 마존으로 불리고……. 눈앞의 이분이 바로 천마님과 싸웠다던 그 무존. 이로써 천하삼존 중 두 명을 다 만났구나. 본래 지존천마에서는 아주 드물게 나오는 데다 어느 기점으로 홀연히 사라지게 되는 사람들인데…….’
그런 진천희의 반응에 무존 광무백은 박장대소를 하면 기꺼워했다.
“하하핫! 제갈세가의 무공을 아주 제대로 이어받은 모양이로군. 별거 아닌 말에서 단서를 찾은 것이렷다? 놀랍군. 놀라워. 본 지 일각도 안 되어 사람을 통찰하는 것이 마치 천리안 같군그래!”
“하찮은 재주일 뿐입니다.”
분명 말투는 칭찬이지만, 진천희의 목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가 삼존 중 하나, 무존 광무백이 맞는 이상.
언제든 이 거리에서 진천희의 목을 칠 수 있다.
천마가 살아있는 마(魔)라면 무존은 살아있는 무(武) 그 자체.
살아 숨 쉬는, 진정한 무학(武學)이 눈앞에 있다.
그리고 다행히 광무백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니네. 소형제. 아주 훌륭하군그래. 정말 훌륭해! 그렇네.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호의 친구들이 무존(武尊)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지.”
지존천마.
둘은 흑막에 의해 살해당하고, 하나는 등선하였는지 자연사를 했는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지존천마의 서술이 확실한지 아리송하긴 하다.
결국 그 또한 여하륜의 시선에서 제공되는 정보가 대부분이고.
그 정보에 빅 레드 버튼 in 해저 도시 같은 건 없었으니까.
‘흑막에게 살해당했다기보다는 어디론가 가셨는데 흑막이 자신의 힘을 부풀리기 위해 살해한 척을 했다거나?’
하늘길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일단 강호를 오래 떠나있던 건 확실했다.
어찌 되었건 확실한 건 있다.
천하삼존이 전부 사라짐과 동시에 세상은 본격적으로 위험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런데.
마존은 여전히 마교에서 군림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무존이 여기 나타났다.
선존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으나 괴어인의 준동과 함께 생각해 본다면…….
좋은 징조는 아니리라.
“뭐어. 그렇게 경계하고 딱딱하게 굴지 말게나. 이래 봬도 강호의 규율과 규범 그리고 사승 관계 같은 예법은 그리 따지지 않거든.”
“천하의 그 누가 노선배님 앞에서 경망되게 굴 수 있겠습니까? 저도 조심스러울 수밖에요.”
진천희의 태도에 무존이 으쓱했다.
“흐흐. 범인(凡人)과 범부(凡夫)라면야 그렇겠지만. 소형제가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인가?”
“…….”
“보아하니 현원전단신공을 극성으로 익혀내고, 초월의 경지까지 개척한 것으로 보이네만. 그런 사람이 그리 평범한 척 구는 것도 타인에게는 괴이하게 보인다네.”
‘내 무공의 경지를 단번에 꿰뚫어 보다니……. 과연 무존이다!’
진천희는 속으로 다시 한번 경악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했다.
원래 호랑이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공격하지 않던가.
이런 무존 광무백이라는 거대 맹수를 앞에 두고 빈틈을 보일 수는 없는 법.
그 모습이 광무백은 도리어 마음에 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자자. 그런 고리타분한 소리는 그만하고. 그래서 그 요리, 이 몸에게도 조금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요. 사실 저야말로 제 요리를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제 요리가 천하제일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간다고 자부하는 편이거든요.”
이거는 진심이다.
접대용 말 따위가 아닌 진천희의 진심!
제갈린이 봤다면 이랬을 것이다.
-희야. 너는 강호인이잖니?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무존 광무백.
광무백은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
“호오. 천하십대숙수에 들어간다. 이 말인가?”
오히려 감탄한다!
대견해한다!
강호인이 천하십대숙수에 비견되는 건지 의문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럼요. 최근에는 팔선 종리권의 진전을 이었다는 분과 요리로 대결을 해서 이겼습니다. 만두 대결이었죠.”
“오! 팔선도의 제자 중 종리권 계파를 요리로 이겼다고!? 그건 정말 기대되는걸! 그놈들 요리의 도와 무공의 도를 동시에 수련하는 맛 간 놈들인데 말이야.”
광무백은 배를 긁으며 실실 웃었다.
“흐흐. 이거 참. 속세로 되돌아온 첫걸음에 이런 숙수를 만나다니. 내 운이 아직 다하지는 않은 모양이로군.”
손까지 비비면서 기뻐하는 무존 광무백.
그 모습만 보면 철없는 무림 초출 같아 보이지만, 그 안쪽에 들어있는 것은 혈선교주도 조심해야 하는 끔찍한 무공 광인의 괴물이다.
‘확실히 천마님과는 달라. 천마님은 차분하고 의뭉스러운 성격인데 이분은 호탕하고 종잡을 수가 없군.’
천마님의 곁에 있으면 모든 공기가 무거워지고, 색채를 잃어가는 착각이 든다.
거기다 곁에 있으면 어째 숨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아 눈앞의 천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을 품는지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무존은 정반대.
무존에게 있어 무공이란 식욕과 같다.
왜 두 사람이 산을 날려버릴 만큼 싸워대는지 알 것 같았다.
‘야사에 의하면 무존은 천마의 무공을 탐하여 아주 끈질기게 싸움을 걸었다고 하지.’
진천희는 그릇을 꺼내어 죽을 떠 무존에게 대접했다.
광무백은 숟가락으로 한입 떠먹어 보더니, 이내 표정이 흐물흐물해지는 게 아닌가.
“흐아아아. 이건……. 정말 천하일미라고 아니할 수 없구먼! 내 수백 년간 이런 고기죽을 먹어본 적이 없네! 어허헛! 숟가락을 부르는 맛이로다! 정말 대단허이!”
그러면서 죽을 야무지게 먹는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한입, 한입.
음미하면서 먹고 있다.
그사이 진천희는 황구에게도 죽을 덜어 주고, 뇌진에게도 죽그릇을 내밀었다.
그리고 물론 자신도 죽을 퍼담아서 먹는다.
황구가 제대로 배를 채우려면 솥단지를 가득 채워도 모자라기 때문에, 애초에 황구는 맛만 보는 셈이라서 그랬다.
“후우. 아. 좋군. 정말 좋아. 아주 맛있었네. 소형제.”
“여기 후식도 있으니 드시지요.”
진천희가 호리병에서 나무잔에 음료를 따라 건넨다.
그사이, 빙공을 사용.
살얼음이 안에서 맺히게 해 아주 차갑게 식혀냈다.
“오! 후식까지? 이건 뭔가?”
“오미자차입니다. 석밀(石蜜)을 조금 섞어서 아주 새콤하고 달달하죠.”
“어디……!”
꿀꺽꿀꺽.
목 울림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이윽고 그제야 입을 뗐다.
“푸하아아! 엄청 맛있구먼! 아하핫! 이건 황제도 못 먹을 맛이야! 내 옛날에 황제의 식사를 뺏어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보다도 더 맛있군그래! 크으……!”
태연하게 엄청난 소리를 해대면서 칭찬하는 무존 광무백.
“후후후. 제 초식이 어떠십니까? 연계기도 훌륭하죠?”
“헛!?”
무존이 움찔했다.
그리고 다시금 크게 웃었다.
“하하핫! 그렇군. 숙수에게 요리란 무공과 같은 것. 게다가 본식을 먹은 이후 내놓은 후식은 그야말로 필살의 절초를 연계 초식으로 펼친 것이나 다름없지!”
진천희는 접대용 미소를 지었다.
“바로 알아주시니 기쁘군요.”
“과연과연. 이 몸이 한 방 먹었구먼. 하하핫!”
그러면서 오미자차를 마저 훌쩍 마셔 버린다.
탁.
나무잔을 내려놓은 무존은 배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아주 좋네. 이 광무백이가 한 방 먹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야. 이거 참.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았는데 보답을 아니할 수 없겠어.”
“보답을 바라고 대접해 드린 것은 아닙니다만……. 보답을 주신다면 기쁘게 받지요.”
주는 걸 마다할 진천희가 아니다.
거기다 무존은 진천희의 요리와 말솜씨 덕에 몹시 즐거워 보였다.
“이야……. 이 집 장사 잘하는구먼. 과하지 않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내는 솜씨가 아주 좋아. 아니. 도리어 기분이 좋군그래. 이리 아름다운 자가 농을 치며 식사를 내어주니. 이러다가 단골손님이 되어 버리겠군.”
무존은 한참 웃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하하. 하지만 이 몸은 그리 쉬운 사람은 아니라네. 그러면 어디 음식값을 치러 볼까?”
히죽 웃는 무존 광무백.
그 순간.
그 손이 흐릿하게 움직이며 안개, 혹은 유령처럼 다가들었다.
‘공격!?’
진천희가 놀라며 반응한다.
번개처럼 앉은 상태에서 냄비를 후려쳐 뒤엎고, 그런 혼란 사이에서 장력을 발출해 때리려고 들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무존의 한 손이 냄비를 내리눌렀고.
아까 전 다가든 손은 어느샌가 진천희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기묘하고 신묘한 술수!
‘헛!?’
휙!
진천희의 몸이 천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땅으로 착지.
그사이 천막 안쪽에서부터 상상 이상의 속도로 좁쌀만 한 무언가가 여럿 날아들었다.
“합!”
진천희는 번개처럼 빙정검을 뽑아 들어 그 암기들을 갈랐다.
콰쾅! 하는 폭음과 함께 암기들이 갈라져 흩어진다.
자세히 보면 작은 흙 조각들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느긋하고 배부른 호랑이처럼 무존 광무백이 천막에서 걸어 나왔다.
“이 몸에게 무공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삼생의 영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과거 황제 녀석도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어찌나 조르던지. 황궁비고의 열람이 대가가 아니었다면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야.”
선황은 아무래도 이 무존에게 무공도 배우려고 노력했던 모양이다.
‘이전 황제일까? 아니면 전전대?’
무존의 나이가 많다는 것만 알고 있지, 정확한 나이는 알려진 바가 없다.
광무백이 무림에 이름을 떨칠 때도 이런 모습이었고, 그 이후에도 늙지 않았으니까.
풋내기 소교주부터 시작해서 차곡차곡 올라갔던 마존과는 달리.
무존은 강호 출두 때부터 완성된 자였다.
그리고 무공 그 자체에 누구보다 미쳐있는 자.
덕분에 어느 황제인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무존 광무백이 씨익 웃었다.
“후후후. 소형제. 어디 한번 그 무위를 보여 보게나. 이 몸이 한번 봐주지!”
그런가.
이게 밥값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