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
제 93화
눈앞에 있는 지하 동굴 안에는 유황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백린의각이 있는 곳도 화산 지대라 온천수가 나온다. 하지만 이곳은 백린의각 본산이 있는 곳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진천희는 미리 준비한 수건을 꺼내 약물에 적셨다.
유황 특유의 계란 썩은 냄새를 막아 주는 녀석이다.
수건을 마스크처럼 얼굴에 두르고 한 걸음 내디디니 황구가 멍, 하고 짖으며 진천희의 앞에 섰다.
“황구야. 안 돼. 너한테는 너무 뜨거워.”
왕!
진천희는 그런 황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좁은 지저 동굴에 몸을 밀어 넣었다.
“돌아올 때까지 주변을 감시하고 있어.”
왕, 왕!
황구가 진천희의 손등을 핥고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았다. 진천희는 그런 황구를 보고 피식 웃었다.
아래로 계속 몸을 얼마나 밀어 넣었을까.
발아래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진천희는 용기를 내서 뛰어내렸다.
탁-
바닥이 밟혔다.
위를 올려다보니 지면과 통하는 빛이 천장 사이로 겨우 보였다.
이래서야 밤이 되면 출구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왕!
“응, 황구야. 이따가 신호하면 짖어.”
왕, 왕!
다행히 밖에 황구가 있으니 황구가 짖는 소리를 따라 돌아가면 될 것 같았다.
바닥부터 열기가 밀려온다.
‘숨쉬기가 힘든걸?’
진천희는 곧바로 오행신공을 돌려 열기에 저항했다.
단전에서 빙(氷)기를 운공하기 시작하니 빠르게 몸이 식혀지며 어지럼증이 가셨다.
‘나중에 시간 되면 이런 곳에서 화기와 수기를 운공해 봐야겠다. 소득이 있을 것 같아.’
보통 의각원들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운공이 중간에 끊기기라도 하면 열기에 정신을 유지하기가 극한으로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천희는 그런 극한 상황이야말로 내공을 일로정진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 나는 어리니까. 이런 젊은 몸뚱이를 냅두는 건 섭하지.’
어리다. 젊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
골병은 내 의술로 막을 수 있으니 계속 굴려서 쉬지 않고 단련하는 게 우선이다.
그야말로 인생 이회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좋아. 지저 연못을 찾을 때까지 계속 빙기를 운공하는 거야.’
오행신공 빙기(氷氣)는 수, 금, 토를 조합해서 만든다.
꽤나 까다로운 속성이다.
하지만 환골탈태를 거쳤기 때문일까?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오행의 기운이 스스로 움직여 조합되고는 전신 세맥으로 움직였다.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치 몸을 지키기 위해 오행이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공능에 진천희는 내심 놀랐다.
거기다가 원래도 정순했던 오행의 기운이 훨씬 더 정순해졌다. 적은 내공으로도 열기와 싸울 수 있었다.
얼마나 더 내려갔을까.
온천수로 된 연못이 보였다.
그것도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일각도 안 되어서 전신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온도였다.
‘소설에 나온 그대로네.’
주기적으로 이 온천수들은 지저 동혈을 통해 밖으로 분출된다.
그만큼 이 안은 지옥도에 비견될 만큼 뜨거우리라.
진천희는 크게 심호흡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여기를 뚫기 위해 현원오행신단까지 섭취했잖아.’
스승님이 보았다면 미친 짓이라며 진천희의 뒤통수를 쳐서라도 끌고 나왔을 터였다.
진천희는 눈을 감고 내력에 집중했다.
단전을 따라 빙기를 계속해서 주천시켜 나간다.
원래라면 심장이 느려질 만큼 차가운 기운이 이 안에서는 더위를 막을 만큼밖에 안 된다.
‘더 차가워져야 해. 그리고 더 구석구석 밀어내야 해.’
전신 세맥에 내력을 보내길 집중했다.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느려진다. 저체온증으로 내려가는 과정 같다.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힘겹게 지저 온천에 손을 넣었다.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진천희의 얼어붙은 몸을 덥혀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온천수의 열과 오행신공의 빙기가 싸우기 시작했다.
그것에 맞춰서 진천희는 평행을 이루도록 오행신공을 조절해 나갔다.
이윽고.
진천희는 몸을 전부 다 넣었다.
풍덩!
“후하!”
할 만하다는 판단이 들기가 무섭게 제갈 서고에서 배운 잡기를 펼쳤다.
만만천근추(萬萬千斤錘).
몸이 천 근처럼 무거워지며 물속으로 더욱 깊이, 깊이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온도는 올라갔고, 물살은 거세어졌다. 진천희는 만만천근추를 계속 유지했다.
쿠웅-
마침내 물속에 발이 닿았다.
진천희는 야명주를 꺼냈다.
보통의 야명주보다 크고 밝은 녀석이었다.
과거 황구를 도왔을 때 천장에서 얻은 놈으로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야명주가 주변을 밝히니 그럭저럭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진천희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갔을까. 가재 비슷한 생물을 발견했다.
이런 뜨거운 열 속에서도 생물이 산다.
책을 읽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진천희는 그것을 붙잡아 머리카락으로 묶었다.
소소지공(小召遲攻).
작은 동물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리는 잡기.
진천희가 내린 명령은 다음과 같다.
-가장 무서운 놈이 사는 곳으로 가라.
가재 비슷한 것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한 방향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놈을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재가 멈춘다.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만만천근추를 풀자 마치 추를 푼 다이버처럼 몸이 곧바로 위로 솟구쳤다.
“푸하!”
수면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지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천희는 몸이 빠르게 식는 것을 느껴 빙기를 거두었다. 차가운 물이 손가락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소설에 나왔던 것과 똑같아. 여기만은 물이 차가워.’
만년화리가 사는 연못 묘사와 똑같았다.
‘이건 소설 안 읽었으면 절대 못 찾았다. 아니, 황구 없었어도 못 찾았다.’
진천희는 품에서 금속 대를 꺼냈다.
이음새에 맞게 조립하니 창이 되었다.
‘이걸로 잡는다!’
십보신창(十步神槍)!
그동안 잔챙이 상대할 때는 맨손으로 패도 무방했다. 하지만 만년화리는 진짜배기다.
이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진천희는 야명주를 허리에 더 단단하게 고정했다.
‘미끼는 나다.’
지금 이 지저 호수, 새카만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건 야명주뿐.
빛을 감지한 만년화리가 공격할 것이 자명했다.
문제는 수중전이라는 것.
진천희는 손목에 찬 팔찌에서 흑천혈사를 풀어 창대를 단단하게 감았다. 미리 꼬아 놓은 흑천혈사가 흡사 밧줄과도 같았다.
‘천마 동생아. 고맙다!’
여하륜의 선물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물에 뜬 채로 발밑에 집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언가가 미끄덩하고 발가락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뜨겁고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만년화리의 지느러미였다.
놈은 진천희를 스쳐 지나갔다. 바로 물지 않은 것은 진천희가 먹을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물살이 출렁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놈의 벌린 입이 진천희를 향해 덮쳐 왔다. 진천희는 급히 창대를 휘둘러 놈을 찌르려 했다.
그 순간,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놈의 꼬리가 진천희를 쳤다.
퍽!
진천희의 몸이 수면 위로 붕 떠올랐다.
고작 한 방인데도 내장이 자르르 울리는 것이 의식을 잃을 것만 같다.
‘범고래가 이렇게 바다표범을 갖고 노는 걸 본 적 있어!’
꼬리로 바다표범을 쳐서 수면 위로 날려 버리고 바다표범이 기절하면 그 순간 잡아먹었다.
영물답게 지능이 상당한 모양이다.
허공에 떠오른 진천희의 몸이 다시 수면에 처박힌다. 그리고 그곳에는 만년화리의 입이 있었다.
어지간한 고수라도 저 입 속에 들어가는 순간 끝장이다.
진천희는 미리뇌창, 즉 십보신창의 구결을 떠올리며 창을 내리찍었다.
미리뇌창(迷離雷槍).
뇌전출수(雷電出手)!
푸른 뇌전이 진천희의 단전에서 솟구쳐 창끝에 맺혔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놈이 방심한 상태!
만약 진천희의 진짜 실력을 알게 된다면 싸움은 끝난다.
아무리 진천희라도 천마 여하륜 같은 소설 주인공이 아닌 이상 물속에서 물고기와 무공 대결을 하는 미친 짓을 길게 유지하지는 못할 터.
그러니 최대한 단판으로 끝내야 했다.
창끝에 맺힌 푸른 뇌전이 더욱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만년화리가 도로 입을 다물려 했다.
‘젠장! 눈치도 빠르네.’
진천희는 뇌전이 만족할 만큼 모이기 전에 그냥 놈의 입 속에 창을 쏘았다.
쉐에엑-!
입천장에 창이 박힌다. 고통으로 만년화리가 저항하기 시작했다.
호수 전체가 울렸다.
진천희는 흑천혈사를 풀며 호수 가장자리로 헤엄쳤다.
만년화리의 움직임에 맞춰 흑천혈사가 빠르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천희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흑천혈사를 붙잡았다.
꽈악!
그러나 만년화리의 힘 때문에 진천희의 몸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다시 만만천근추(萬萬千斤錘)!’
몸이 무거워지며 양발이 바닥에 콱 박힌다.
이다음 진천희가 쓸 기술은 단 하나였다.
태산거력(太山巨力)!
그랬다. 서고에서 대출받은 도색 서적에 들어 있던 비급이다.
과거 극한까지 외공을 익힌 괴인이 남긴 무공으로, 무슨 생각인지 화공을 불러 도색 서적에 넣어 놓았다.
이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책을 뜯어서 낱장 상태로 조합을 해야 했다.
진천희는 태산거력의 구결을 떠올렸다.
구결에 따라 근육을 움직였다.
만만천근추로 무게를 잡고, 태산거력의 힘으로 당겼다.
미리뇌창으로 박힌 철창은 놈의 목구멍에 박혀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만년화리가 저항했다.
촤아아악!
진천희는 흔들리지 않았다.
여하륜이 선물해 준 신물. 흑천혈사가 엄청난 기세로 당겨졌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끊어지지 않는 한 희망이 있다.
진천희는 흑천혈사 밧줄을 어깨에 둘러서 멨다. 기합을 주며 당기고, 당긴다.
“영차, 영차!”
여기서부터는 지구력의 싸움이었다.
단, 일 센티라도 놈을 뭍으로 꺼내면 진천희가 이긴다.
당기고, 당기기를 계속 반복했다.
만만천근추에 보낼 내공을 끊임없이 유지하며, 태산거력의 외공을 계속해서 돌려 나갔다.
그렇게 몇 시진이 흘렀을까.
진천희는 온몸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밧줄을 감은 팔에 보라색 멍이 번졌다.
감각이 느껴지질 않는다. 하지만 놈이 힘든 것도 마찬가지다.
진천희는 오행신공을 돌렸다.
큰 주천도 아니고 그저 한 번 세맥을 타고 휘도는 것만으로도 몸에 생기를 보내 주는 내공이다.
피로를 풀어 나가며 다시 당긴다.
“영차, 영차!”
한때 여하륜이 보여 주었던 인간과 영물의 멋있는 싸움은 아니었다. 그저 뚝심으로 반복할 뿐.
마침내 놈의 주둥이가 수면 위로 보이기 시작했다.
퍼더덕-
최후의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진천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올렸다.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