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2
제 932화
-후…… 후하하하핫!
응룡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현명한 질문이로구나. 좋다. 대답해 주마. 그 개구리와 같은 것들은 세계를 자유로이 활보할 수 없느니라.
“……?!”
-천기는 이미 거의 무너졌으나……. 애초에 그 개구리를 비롯한 천외(天外)의 존재들은 천기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일은 없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후후후후. 너에게 해 줄 답은 여기까지이다. 더는 답할 수 없는 것인즉. 술을 내놓거라.
진천희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무쪼록 즐거이 드셔주신다면 감사하겠나이다.”
-오냐. 그런데 어째 네놈, 우리 같은 자들을 점점 더 능숙하게 대하는구나.
“하하하, 그럴 리가요.”
그리 말하고는 비파를 꺼내서 연주를 했다.
응룡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는 진천희가 내려놓은 음식들을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몇 개는 네가 만든 거구나.”
“네. 육포나 사탕 같은 것들은 들고 다니기도 쉽고 오래 보존할 수 있으니 만들었지요.”
“예전의 그 술이로구나. 다시 만들어 왔구나. 흡족하다.”
“천일취이옵니다.”
딩-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현을 퉁겼다.
“한 곡 올리겠습니다.”
진천희는 음공을 사용해 비파를 연주해나갔다.
응룡은 소리에 취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게 남김없이 다 먹어 치운 후, 응룡이 말했다.
-복희의 후손이 이리 극진히 대접을 해주니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가벼운 것이라면 들어줄 터이니 소원을 하나 말해보거라.
가벼운 것?
‘생각 같아서는 지난번에 준 보옥이나 비늘 같은 거나 하나 더 달라고 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고 있다.
거기다가 상대는 변덕스러운 존재.
너무 과한 것을 해달라고 했다가는 심기만 거스르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앞날이 팍팍해질 터.
‘뭐가 좋을까?’
응룡의 기분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으면서 다음번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여지를 주면서.
동시에 진천희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
이윽고 진천희는 비파를 내려놓고는 오체투지하여 말했다.
“응룡이시여.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이무기의 뼈와 힘줄, 이빨과 발톱, 피와 살을 얻었습니다.”
-호오?
“잘만 만들면 무림지보가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섣부르게 제작하여 귀한 재료를 망칠까 고민입니다.”
-영악한 놈 같으니라고, 지식을 원하는구나.
응룡은 투덜거리듯 말했으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 지식이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실상 가장 무서운 것이지. 누가 공명의 후인이 아니랄까 봐. 쯧.
이윽고 응룡이 진천희의 이마에 자신의 손가락을 대었다.
우웅-
-머릿속에 필요한 지식을 넣어주마.
“헛, 그건 대단한 술법 아닙니까? 말로 해주는 걸로 충분하실 터인데.”
다른 사람 머리에 직접 정보를 넣는 술법은 자칫 미쳐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게 엄격히 금지된다.
허나, 상대는 응룡.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
그는 실수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생각하면 말에 비할 바가 없이 무궁무진할 터.
응룡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기분이니라.
천일취를 먹은 응룡은 기분이 좋았다.
* * *
그렇게 황실에 오래 머물고 백린의각으로 돌아갔다.
‘하, 이렇게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골드&실버가 끼면 늘 이렇다.
조금만 있다 가려던 게 결국 한세월 있다 가고 말이지.
“덥구나.”
벌써 계절도 바뀌니 진천희의 옷깃도 한층 느슨해졌다.
반면에 꽉 동여맨 머리카락 아래 뒷목은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핵핵핵핵!
진천희가 냉기로 몸을 식히기가 무섭게 황구가 달라붙는다.
삐이익!
뇌진도 붙는다.
“아, 알았어. 알았어.”
혼자서야 내공을 이용해 여름에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만 문제는 이 두 영물이다.
이놈들 체온이 무시무시하다.
결국 진천희는 냉기를 최대한 돌려 살아있는 드라이아이스가 되어주었고, 두 놈은 진천희에게 부비적거렸다.
진천희는 두 놈 편하라고 아예 황구 위에 앉았다.
아니, 황구 위에 엎드렸다.
치이이익-
‘아니, 무슨 얼음 녹는 소리가 들려?’
헥헥헥헥-
황구는 죽어간다며 혀를 내민다.
털이라도 밀어주고 싶은데 엄청나게 싫어한다.
‘그리고 어디 반려동물 채널에서 봤는데 털이 있는 편이 오히려 시원하다고 하던데…….’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다.
밭에는 곡식들이 전보다 훨씬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초록색 보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밭을 보며 황구가 걸어간다.
“…….”
그러다 깜빡 다시 잠이 들었다.
……컹.
……컹컹!
황구가 짖는 소리에 눈을 뜨니 백린의각 현판이 보였다.
“엇?”
“뭡니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유호.
“우와, 나 완전 무방비하게 자고 있었구나. 와…. 칼 맞을 뻔?”
백린의각에 도착할 때까지 빙정검을 끌어안고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다.
“뇌진님과 황구님께서 계시는데 칼 맞을 일 있겠습니까? 차라리 도망을 치면 쳤죠.”
문득 일어나니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다.
“으헉……! 냄새.”
자신의 땀과 황구, 뇌진의 땀도 섞인 건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냄새가 풀풀 났다.
“씻고 올게!”
그리 말하며 유호에게 짐을 넘긴다.
“그러십시오.”
유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그 짐을 받아 들고는 황구의 이마를 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컹!
둘은 대화라도 하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목욕을 해치우고 나니 겨드랑이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역시 산은 산이라니까.’
백린의각이 화산 지대라고는 해도 산이라는 사실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진천희는 옷을 입기 전에 자신의 몸을 거울로 봤다.
‘환골탈태를 거치니 잔상처까지 다 사라졌구나.’
이미 한번 환골탈태를 거쳤을 때도 인간이 자연적으로는 가질 수 없는 완벽한 대칭인 몸과 뼈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음, 겉으로 봐서는 처음 환골탈태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이는데…….’
지금 봐서는 좀 기력이 없고 속이 허해서 자꾸 배가 고픈 게 전부.
진천희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옷을 입고 곧바로 스승님을 만나러 갔다.
“왔느냐?”
서재.
스승님은 여전히 산처럼 쌓여있는 서류들 속에서 제자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그런 제자를 보다가 스승님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희야, 성장했구나?”
‘헐. 대체 어떻게 아신 거지?’
진천희가 놀라서 눈이 커진다.
제자의 표정을 보고 스승님은 작게 웃었다.
“그래. 그걸 알아본 게 네 눈에는 퍽 신기하겠구나.”
“네……. 하지만 바로 납득했습니다. 그만큼 스승님께서 저보다 경지가 높으시다는 것이겠죠?”
현경에서 한 발자국 사이.
그런 경지를 알아봤다는 것은, 스승님은 최소 반 발자국, 반의반 발자국.
아니, 어쩌면 사실상 현경에 이르신 것은 아닐까.
알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현경이었을 무존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일단 이것부터 말씀드려야겠다.’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황궁 가는 길에 무존을 만났던 일을 설명했다.
그 후에 겸사겸사 행정 교육을 한 일과 비고에 들어갔던 일까지 전부.
스승님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유호가 차와 다과를 내려놓았다.
유자 떡.
무당산에서 받은 유자로 떡을 만든 모양이다.
‘음. 내가 만든 유자잼도 들어갔군.’
중원식과 현대식이 반반 섞인 괴이한 요리지만…….
맛있다.
한입 먹으니 유자의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어찌 되었건 좋은 정보구나. 무존이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나도…….”
스승님은 거기까지 말씀하시고는 말을 흐린다.
후릅-
대신 차를 한 모금 삼키며 생각을 정리하시는 모양.
“어찌 되었건 그분의 가르침은 확실히 귀하지.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네게 다음 단계를 가르칠지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그리 망설일 필요가 없겠구나.”
“다음 단계요?”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연무장으로 가자꾸나. 유호, 부탁하네.”
“네, 주인님.”
유호가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 * *
연무장에 도착하니 유호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우우웅!
그러자 주변을 완전히 뒤덮는 거대한 기막이 생겨나는 게 아닌가.
“스승님, 이것은……?”
“유호가 만드는 결계라 할 수 있다.”
진천희의 푸른 눈이 유호의 결계를 반사하고, 이윽고 또 한 가지 답을 내놓았다.
“진법도 들어있는 것 같은데요?”
“바로 맞췄다. 통찰이 늘었구나.”
스승님은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간다.
뚜벅뚜벅-
결계 안.
원래 스승님이 쓰는 연무장은 허락받은 극소수만이 올 수 있다.
진법이 지키고 있기 때문.
세 사람밖에 없는 넓은 공간 속에서 스승님이 걷는 소리만이 울린다.
“이게 아니면 제대로 보여줄 수 없으니. 하늘의 눈을 피해야 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늘?
스승님이 연무장 한가운데에 서자, 제자 역시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스승님과 대치하듯 마주 섰다.
스승님은 소매에 손을 넣은 채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허점투성이 자세.’
초식의 기본 자세조차 취하지 않는다.
왜일까.
무존에게서 보았던 것과 똑같다.
“자, 와보거라. 빙정검을 써도 좋다.”
보통이면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 싶을 짓.
허나, 상대는 스승님.
진천희는 곧바로 오행개벽을 사용했다.
극쾌의 속도가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간다.
그런 진천희가 스친 곳은, 스친 것만으로 나뭇잎이 잘려 나간다.
파사삭-
이제 이 칼이 스승님의 명치에 닿을 터.
그러나, 그 순간.
덜컥!
진천희 몸 전체를 강력한 무언가가 압박하기 시작했다.
마치 심해 속에 잠긴 듯한 웅후한 압박감!
나아가던 속도 전체가 단번에 제동이 걸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속도가 느려지는 것뿐 아니라, 아예 나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한 상황.
‘뭐지? 허공섭물이라 해도 이 정도는 불가능한데?’
스승님은 여전히 소매에 팔짱을 끼고 제자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흡사 중력이 수백 배는 되어 내리누르는 듯한 감각!
“커헉! 스, 스승님. 이건……?!”
“……보거라. 희야.”
스승님은 웃고 계신다.
진천희는 새롭게 얻은 감각을 열어 스승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미증유의 거대한 기운을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어찌 인간이 이런 기운을?!’
경악하는 제자에게 스승이 말했다.
“왜 그러느냐. 희야. 이것이 진정한 오행신공이란다.”
“이게 가능한 것입니까?”
“오행은 무궁하며 무한하지 않더냐.”
“비유가 아닌 것입니까?”
“그래. 비유가 아니란다.”
“……어찌 그런!?”
실전이었다면 이미 진천희는 죽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죽었을 상황.
더 무서운 것은 스승님은 여전히 한 걸음도, 단 한 번의 움직임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 천지무궁을 깨달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천지무궁이다.”
“크윽!”
진천희의 다리 하나가 결국 꺾였다.
자존심을 포기하고 검으로 땅을 지탱해 보지만 그럼에도 몸이 내리눌린다.
“천지무궁이란 오행으로 세계를 가득 채우는 것.”
과거 천마가 공기 전체를 지배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녀는 마(魔)로서 공간 그 자체를 점하였다.
점이 절정, 선이 초절정, 면이 화경이라면.
‘현경은 공간 그 자체를 점하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랬다.
언정무의 무시무시한 강기운해도 그러했고, 타하파의 기묘한 삼지창도 강기 전체가 파도가 되어 공간을 쓸어버렸다.
천마님과 스승님은 비록 그런 방식으로 적을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공간 자체가 그들의 손아귀 속에 떨어진 것은 똑같았다.
오싹!
전율이 밀려왔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경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