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4
제 934화
백린군 전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백린군의 주인인 의국백 제갈린이 완치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이제 곧 열린다.
‘그렇다고 대동맥에 있는 것을 제거하지는 않으시지만.’
진천희가 설치해둔 스텐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소우주를 완벽하게 완성한 상황이니 이미 그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다 할 수 있다.
흡수하려면야 흡수하실 수 있겠지만 그대로 둔 것을 보니, 환골탈태까지는 기다리실 모양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더는 구음절맥이 스승님을 괴롭히지 못한다.
제아무리 절맥에서 냉기가 침습한다 한들.
아득한 현경까지 오른 자를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원래라면 탈각하여 신선이 되셔야겠지만…….’
모종의 방법으로 경지를 한 단계 낮추도록 제약을 거신 모양.
그래도 무존이 밖으로 나올 만큼 하늘이 느슨해진 지금.
제자에게 자신의 무리(武理)를 전수하고자 하셨다.
웃기게도.
지독하게도.
정작 진천희 자신은 그 무엇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스승님께서 가르쳐준 것이 무엇이든 전부 받아들일 수 있었을진대.
환골탈태를 하고, 현원전단신공을 써도 그 이치가 너무 아득하여.
‘……멀군. 아니, 이 정도 멀면 다른 세상이라고 봐야 하나?’
절망만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처음으로 진천희는 새벽 연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삐걱이는 몸을 이끌고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그 아득한 경지에 닿을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니 밀려오는 것은 고통뿐.
‘어이없긴 하지. 스승님께서는 좀처럼 칼을 쥐는 법이 없었는데……. 제자란 자가 어찌하여 이리도 차이가 나는가.’
그럼에도 멈추지는 않았다.
검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만약 여기서 포기하면 그동안 노력해 온 모든 것들이 모래알처럼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
‘내가 살다 살다 재능의 차이로 절망을 해볼 줄은 몰랐네.’
자신이 가진 능력, 그 한 단계 위를 펼치는 여하륜.
그 여하륜의 성취를 순수하게 축하해주었다.
무엇이든 볼 수 있으며, 무엇이든 통찰해내는 천우.
천우의 눈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한 번이라도 본 무공을 곧바로 모방해내는 사마현.
감탄이 나올 만큼 멋지다고 늘 생각했다.
무존의 아득한 무공을 보았을 때는.
소설이, 구전이, 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었지.
하지만 왜.
‘왜 나는 스승님의 경지에 절망하는가.’
따라가지 못할 길이라 하더라도, 이 한 걸음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닐진대.
스스로 늘 강호인이 아니라 의원이라고 말해왔던 주제에.
‘어리석구나.’
텅!
그만 목검을 놓쳤다.
검수가 목검을 놓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학이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처음으로 진천희가 진지하게 무공에 접근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의원인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나서야 품은 감정.
이 시커먼 것을 스승님께 들킬 수는 없었다.
‘무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오지 않았나.
그게 아님을 다른 이도 아니고 스승님께서 보여줄 줄은 몰랐다.
그때 유호가 걸어왔다.
“축제 준비하실 겁니까?”
진천희는 소매로 눈가를 쓱 닦으며 밝게 말했다.
“오우, 좋지~ 요리는 나한테 맡겨!”
오늘은 스승님을 축하하는 자리.
흐트러짐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허나.
‘그래서 인간은, 우리는, 무(武)로써 어디에 다다르는가.’
질문 하나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 * *
진천희는 그야말로 요리 공장이었다.
백린군 인구 전체에 자신의 만두를 물려줄 생각인지, 엄청난 속도로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만두뿐이랴.
탕, 튀김, 떡, 화과자, 엿, 사탕.
심지어 새외의 간식들까지!
‘유자 약과 같은 것도 만들어 볼란다. 내가.’
그야말로 신의 솜씨로 요리를 빚어내고 있었다.
“소각주님, 그러다 쓰러지시는 거 아닙니까?”
나중에는 걱정하는 이들도 생겼지만 진천희는 손사래를 쳤다.
“아휴,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이럴 때는 바쁜 게 좋다.
이 먹물 같은 속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사방에 오색 만두와 탕, 계란을 듬뿍 넣은 닭고기 조림과 덮밥들이 깔린다.
삼 일간 모두가 놀고먹으며 행복에 젖어있었다.
“오, 공연패가 오는가!”
각지에서 공연패들이 와서 축제에 흥을 보탰다.
“이런 숙련된 변검이라니!”
“소매 한 번에 얼굴이 열 번이 넘게 바뀌는구만!”
변검부터 줄타기 곡예까지.
접시를 층층이 쌓아서 돌리는 자들도 있었고, 때로는 칼을 입에 물고 불꽃으로 엄청난 공연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제갈린은 그런 공연을 즐거이 보았다.
“그래서 희는 여전히 부엌에 있느냐?”
그의 말에 유호가 답했다.
“네. 스승님께 드릴 요리에 매진하고 싶다더군요.”
“……생각이 복잡할 테지.”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제갈린은 입을 닫았다.
제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자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 아이를 걱정하고, 그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삶.
결국 무학도 거기에 녹아들어 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아이가 가장 이상향으로 느낄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홀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결국 그 아이의 이상향이 되었으니.
절망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이상향에 닿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으니.
무(武)란 사람을 죽이는 도구라며, 의원으로서 은근히 반발한 적도 있지 않던가.
그도 그랬다.
그 아이는 부술당의 당주이고, 그 아이에게 부술을 받는 이들은 그 태반이 다른 이의 무공에 몸이 다친 자들이니까.
일순의 칼질을 수 시간을 거쳐 꿰매고 붙인다.
치료가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흔도 많았다.
그렇게 은근히 백안시하던 무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혀야 했던 무공이.
그 뭐라 말할 수 없었던 애증의 대상이.
‘그리던 이상향을 보여주었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무공.
제갈린이 보여준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공간 그 자체였고.
숨긴다고 될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건 제갈린의 방식도 아니었으니까.
‘재능의 벽이라도 본 것인가.’
절망하고 있을까.
잿물이라도 삼킨 기분일까.
피식-
제갈린은 작게 웃으며 눈앞에 놓인 화과자를 내려다본다.
토끼 화과자.
유자 앙금이 민들레가 되어 귀 사이에 걸려있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귀여운 형태이지만 그걸 빚어내는 심마는 악귀와도 같을 터였다.
“도련놈은 내버려 둘 겁니까?”
“내버려 두어야지. 그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니 말일세.”
“성장……?”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본디 강호인이란 벽을 마주하고, 그 벽을 넘으며 오욕칠정을 다 느껴야만 하네. 그 오욕칠정이 무공이 되고, 의념이 되어, 검을 살리는 게지.”
“성가시군요.”
“그래. 성가시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라네. 그 녀석은 그동안 기이하리만치 벽을 쉽게 넘어왔지.”
유호가 물었다.
“그렇다면 만약 넘지 못하면 어찌 됩니까.”
“강호인이 뭐라 생각하나. 못 넘으면 죽을 뿐이네.”
제갈린은 화과자를 손으로 들어 입에 한입에 삼킨다.
호쾌한 한입.
“도련놈이 벽을 넘을 수 있겠습니까?”
“글쎄. 모르겠네. 허나, 계속 나와 같은 무학을 추구하게 된다면…… 그건 불가능하겠지.”
“잔인하군요. 그리도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 놓고. 다른 길을 가야 한다니.”
제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독한 스승이라네. 나는.”
결코 부정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홀짝이며 말했다.
“또한 그놈도 솔직하게 인정할 때가 되었지.”
“무엇입니까?”
“그리도 무공이 싫다 하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간절히 좇고 있다는 것을.”
강호인이란 결국 끊임없이 벽을 넘어야 한다.
제대로 된 강호인이란 벽을 넘기 전에 그 절망을, 공포를, 질투를, 모든 것을 삼키며 그 구정물 속에서 발악하고 발악해야 할 터.
그 오욕칠정이 범벅이 된 절망을 넘지 못하면 강호인은 부서진다.
마음이 부서지든, 몸이 부서지든.
괜찮다.
가장 아픈 것은 마음이니까.
의외로 몸이 부서지는 것은 그저 생의 단말마일 뿐.
그 후는 죽음이니, 이 또한 평안이기도 했다.
그게 바로 검로(劍路)이며.
무학(武學)이다.
“이번에는 안 도와주십니까?”
“불가하네. 아무리 나라도 이것을 해결할 묘리 따윈 없네. 이것은 마음(心)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고, 의념(意念)의 문제이니까. 강호인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무(武)의 본질일세.”
그러니 삼켜라.
삼키고 넘어라.
그러지 못하면 부서지고 말 것이니.
제갈린은 눈을 감는다.
“…….”
절망 앞에 가장 먼저 부서지는 것은 몸인가,
마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