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7
제 937화
‘그나저나…… 마치 숙신족 전쟁 때 같은……. 아니. 그때랑 비교할 건 아니지. 그때는 하루 만에 세 자릿수 환자도 몰려들었으니까.’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 않던가.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궐련 연기가 꺼질 틈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래. 차라리 그 정도는 아니니까 된 거지.’
기억 속의 전쟁터는 언제나 기울어져 있었다.
지금은 괜찮다.
진천희는 깊게 숨을 몰아쉬고는 이윽고 차분히 명을 내린다.
“일단 준비해둔 들것들을 모두 쓰고, 부족한 것은 즉석에서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황구야. 돌아갈 적에는 안 흔들리게 해야 해. 알았지?”
왕왕!
그다음. 진천희는 바로 칼을 꺼내 들었다.
주변의 나무를 단번에 동강 내고, 백린대 무인들에게 들것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완성되면 화생기로 한번 소독한다.
그러고는 중상자들에게로 다가갔다.
‘이 흔적은… 검(劍)보다는 도(刀)구나. 도패문과 사이가 안 좋다고 했었지…….’
검패문과 도패문.
이름도 비슷한데 왜 사이가 안 좋은 건지.
도패문이 습격해 오기라도 한 걸까?
‘물어봐야 제대로 답을 들을 가능성이 적지. 그리고 깊게 들어가버리면 도리어 혈사에 연루되어 버릴 수 있으니…….’
강호 의원의 주옥같은 점이다.
사람을 구할 뿐인데도 자칫 은원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백린의각이라는 뒷배가 있고, 자신이 천하에 손꼽히는 고수 중 하나이니 쉽게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진천희는 의문을 속으로 삼켰다.
연원이야 어찌 되었건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 아닌가.
오히려 뻔뻔하게 말했다.
“아이고, 이거~ 크게 하셨구먼. 아프면 말하세요.”
진천희는 재빠르게 응급처치를 해 나갔다.
퍽퍽퍽!
“크아아아아아악!”
“오우, 끝났어요.”
점혈로 출혈을 잡고 감염을 막고자 백린의각표 금창약을 꺼내어 발랐다.
뼈가 부러진 이들은 즉석 부목을 만들어서 고정하고, 비수가 아예 꽂혀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뽑진 않습니다. 환자분, 건드리지 마세요. 일단 점혈하고 옮깁니다.”
문제가, 강호인들은 일단 비수가 박히면 자꾸만 바로 뽑으려고 한다는 것.
‘아이고, 그 과정에서 뭘 건드릴지 알고 더러운 손으로. 그리고 저 비수가 어디에 꽂혀 있을지 어떻게 알고.’
본인이 의학적 지식이 있는 게 아니면 의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식이 있어도 사실 안 빼는 게 낫지.’
진기진맥으로 자가 진단을 할 것도 아니고, 최대한 안 건드리는 게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호인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뽑고 죽거나, 운이 좋아도 그냥 뽑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상처를 헤집듯이 뽑아버려서 더 나빠진 상태로 의원에게 발견되거나 한다.
심지어 왜 그랬는지 동기는 알 수가 없으나, 꽂힌 칼을 자기 손으로 돌려서 뽑는 강호인도 봤다.
안 뽑는 강호인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수혈팩은 이제 남은 게 별로 없는데… 뇌진이 되도록 빨리 지원을 데려온다면 좋겠지만…….’
하필 길도 제대로 정비 안 된 외진 곳이다.
거기다 딱 왕진 나온 물품도 다 떨어져 가던 중이었고.
이런 건 꼭 가장 터져서는 안 되는 순간에 터지곤 했다.
‘몇 명이나 살릴 수 있을까?’
진천희는 속으로 냉정히 계산을 하면서 사람들을 돌보았다.
곧 들것이 만들어지고, 환자들을 하나둘 나르기 시작한다.
한 번에 전부 나를 수 없어서 몇 번 왕복해야 하는 상황.
백린대의 무인들과 검패문의 무인들이 환자를 나르는 동안에 진천희는 자리를 지키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환자와 함께 진천희가 어촌 마을로 되돌아왔을 때.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 천막 하나 더 만들어!”
“삶은 물 가져와!”
“의원 나리. 이건 어디다 둘 깝쇼?”
“거기다 놔 주시오!”
“깨끗한 천! 깨끗한 천 더 가져와!”
그곳에는 전쟁터가 펼쳐져 있었다.
“……!?”
환자의 수도 두 배 이상 늘어나 있다.
검패문의 무인뿐만 아니라 다른 무복을 입은 무인들도 보인다.
‘저 무복은…… 도패문?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거야? 설마. 양패구상?’
도패문과 검패문이 싸웠다.
그것은 이제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양측에 이렇게 부상자가 속출하다니.
그렇다는 말은 두 문파가 혈전을 벌여 양패구상했다는 뜻일 터.
이게 무슨 날벼락?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한쪽에서 쿠구구그! 살기가 치솟는다.
진천희의 무위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지만, 환자들을 치료하는 이 난장판에서 살기라니?
의원 몇은 몸이 굳고, 심지어 공포심에 주저앉는 의원들도 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같은 살기도 누가 내느냐에 따라 그 위협감은 차원이 달랐다.
살갗이 조금 따끔거리는 걸 봐서는 그냥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장문인급의 상당한 고수들.
그런 고수들이 내는 살기다.
이런 살기를 하의원, 중의원들이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중의원들은 그나마 도망칠 정신이라도 있지, 하의원은 그냥 애기지. 애기.’
애기는 강호인의 살기를 버티질 못한다.
얘들은 그런 거 맨몸으로 받으면 보통 정신이 나간다.
진천희는 이마를 찌푸리며 살기가 흘러나오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두 명의 사내가 서로 노려보고 있었고, 그 중간에 백린대의 무인이 서서 곤란하다는 듯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허나, 살기만으로는 검을 뽑기 어렵다.
하지만 그 살기에 죄 없는 의원들은 일을 못 한다.
그래도 한 명은 아는 사람이다.
종건생. 검패문의 당주.
그 앞에서 맞서는 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무복을 보니 도패문의 문도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여기서까지 와서 서로 싸우려고 드는 거야, 지금? 어이가 없네.’
백린의각의 치료소 앞에서 싸워?
‘와아……. 내 앞에서?’
진천희는 오랜만에 조금 화가 났다.
그래서.
……했다.
화아아악!
오행진기의 기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스승 제갈린처럼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장악하여 창세에 가까운 권능까지 휘두를 수는 없지만.
그 비슷하게 흉내는 내볼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스승님과 같은 계통의 무공을 익히고 있고. 짭…… 아니, 유사하게 하는 것으로는 현원전단신공을 따라올 무공이 없으니까!
* * *
종건생.
검패문의 당주로서 무위로 치면 이제 막 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이다.
마흔 정도의 나이에 절정 고수 소리 듣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명문 대파들이라면야 젊은 나이에 절정 고수가 되는 이들도 수두룩하지만 이런 중소 문파에서 이와 같은 이가 나오는 게 쉽겠나?
그래서 그가 검패문의 다섯 당주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당주가 된 이라고는 해도 강호에서 강한 무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는 따지자면 절정의 경지에서도 하수.
검패문주 종단진이 절정에서도 고수 소리 들을 만한 이였고.
강호 전체로 보면 강한 축에는 속하지만 조금 애매한 무위.
그렇다고는 해도 이 지역에서는 강자로 소문이 난 자였다.
그리고 그런 종건생과 같은 이들이 모인 것이 바로 검패문이다.
검패문은 종(鐘)씨가 중심인 문파.
혈족 중심의 세가가 되지 않은 이유는 문주가 제자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간부들은 대다수가 종씨긴 하다.
종건생도 검패문주의 조카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런 종건생은 사십 평생 강호에서 칼밥을 먹었고, 제법 경험도 많았다.
‘젊었을 적에는 표사로도 활동했었지.’
거기다 생사의 고비도 여럿 넘겨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그러나.
그런 그임에도 이런 감각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세!
‘누군가가 내 뒷목을 붙잡고 흔드는 것 같은 기분. 이건 대체…….’
그는 방금 전 도패문의 사람에게 살기를 흩뿌리던 것도 잊고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감히 고개를 돌려 기세의 근원을 바라볼 의지조차 일어나지 않을 정도.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의기상인(意氣傷人)인가…….’
의기상인이라고 하면, 검기를 만들어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경지라고들 한다.
그러나 지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기상인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
막 기세를 끌어 올리고 살기를 흩뿌리던 두 명은 자신의 몸에 휘감겨지는 기운에 깜짝 놀라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차갑다. 딱딱하다. 뜨겁다. 거칠다. 부드럽다.
각기 다른 기운이 몸을 휘감고 있다.
‘이게 무슨 일……?!’
경악한 채로 종건생은 숨을 죽였다.
그때였다.
청아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들의 보호자분 되시죠오? 환자분 치료에 지금 방해가 되거든요. 그러니 두 분 다 정숙해 주시겠어요? 점혈해 버리기 전에.”
종건생에게는 아까 전 들었던 목소리였다.
원래라면 그에게 이딴 소리를 할 의원은 없다.
여기가 어디든 감히 강호인인 그를 막는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가 다름 아닌 일광.
‘천하일광… 천하 십 대……. 아니 십육 대 고수가 이 정도 수준이란 말인가!!’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
종건생도 과거 모용세가의 장로라는 절대 고수의 신위를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었다.
허나,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경험과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저 하늘의 태양과 작은 모닥불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후욱!
그리고 기운이 순식간에 걷혔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진 소각주. 사죄드립니다.”
강호는 결국 칼의 논리다.
종건생은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포권하며 진천희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종건생과 싸우다가 기세에 제압되었던 이.
장판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천하일광이었구나!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자가 나타났나 했더니만……. 과연 천하 십 대 고수 중 일광의 위치란 말인가. 허나 어째서 백린의각의 소각주가 이곳에 있단 말이냐!’
그는 호사가들이 말하는 천하 십육 대 고수가 아직도 익숙지 않다.
대충 옛날 십 대 고수만 기억하고 산다.
아무튼, 속으로 경악한 그 역시 포권을 하며 진천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진 소각주. 원수를 만나는 바람에…….”
그러면서 종건생을 슬쩍 본다.
‘종가 놈의 반응을 보면 검패문이 의도한 일은 아닌 듯한데……. 으으음. 이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르겠구나.’
그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는 동안.
진천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환자들을 치료 중이니 두 분 다 자중해 주세요. 아셨습니까?”
“네, 넵!”
“그리고 저는 백린의각의 소각주가 아닌 보건별가의 자격으로 이곳에 있는 것인즉. 만약 방해한다면 공무 방해로 죄인이 되어 수배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리 경고합니다.”
‘보건별가? 그런 직책은 들어본 적이 없거늘……. 태수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 것 아니었나?’
장판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도패문의 당주인 장판구라고 합니다. 소란을 피우게 되어 사죄드립니다.”
“예. 그러셔야죠. 장 당주가 소란을 부릴수록 환자 치료가 늦어지고 원래라면 깨끗하게 잘 치료될 환자가 나중에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살 수 있는 환자가 죽을 수도 있겠죠.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주의하세요.”
진천희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설명을 하듯 하나하나 짚어 말했다.
바보 취급한다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허나, 그들이 여기서 벌이려고 했던 짓은 그 어떤 바보보다도 나쁜 짓이었으니까.
진천희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마주 포권도 하지 않고 뒤돌아 가버렸다.
실로 오만한 태도.
저벅.
그러나 장판구는 그의 모습에 무례하다거나 하는 생각 같은 것은 감히 하지 않았다.
강호에서는 힘이 전부이므로.
또한 치료 중에 소란을 피우는 걸 일광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보다는…….
‘백린의각… 소각주가 저리 강하다면, 그 스승은 대체…….’
장판구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