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39
제 939화
진천희의 질문에 한참 고민하던 사마혜가 결국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네요.”
사마혜도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옆에서 궐련 태우는 향이 났다.
그것도 진천희가 끄더니 공기를 손으로 저었다. 그러고는 풍기까지 만들어 공기를 멀리 흩어버린다.
간접 흡연 금지.
그 뜻은 명확하다.
사마혜는 왠지 불퉁스러워졌다.
“사람… 참 덧없이 죽는 거네요.”
“그렇지…….”
진천희의 공허한 목소리를 들으며, 사마혜는 왠지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묵직한 머릿속. 그 피로감이 조금 희석되는 기분이 든다.
“은공은…… 많이 보신 거죠?”
“뭐. 그렇지.”
이번에는 그래도 답을 했다.
“이걸. 어떻게 견디신 거죠?”
“견딘다기보다는…… 익숙해지는 거야.”
익숙해진다.
진천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익숙해지는 일이군요.”
“그럼. 익숙해지지. 강호인들도 그러잖아.”
“저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바위와도 같다.
바위가 단단하다 생각하지만 이것만큼 잘 깎이는 것도 없다.
구르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고.
물살에 쓸려가기도 하고.
그렇게 구르고 구르던 바위는 어느새 주먹만 한 자갈이 되고, 동그래지고 동그래지다가.
마침내 모래 알갱이가 된다.
흔한 모래 알갱이들.
모두 한때는 용암이었고, 지층이었고, 바위였던 아이들이었다.
문득 진천희는 모래 알갱이 한 줌을 떠올렸다.
작고,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것들.
그 한 줌 안에는 몇 개의 바위들이 들어있었던 걸까.
수천 번, 수만 번의 마모가 결국 바위를 모래로 만든다.
‘지금 내 마음은 어디까지 왔을까?’
하지만 그렇게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진천희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보람차잖아.”
“보람이요?”
“내가 살리지 못한 분들도 계시지. 하지만 나로 인해서 다시 살아가실 수 있는 분들도 있잖아.”
“아…….”
“강호 의원 특성상 그래, 안 좋은 부분이 크게 다가오긴 해. 열 마디 칭찬보다 한 마디 증오가 더 아프지. 하지만 말이야, 좋은 점이 아예 없는 일이 아닌걸. 그런 것도 가끔씩 꺼내 봐줘야 해.”
공허한 눈이 천천히 돌아온다.
망가지고, 텅 비어도 다시 고치고 채워나간다.
어른의 지혜였다.
오독문에 갔을 적, 사마현과 함께 했던 그곳에서.
그곳의 사람들은 마교의 인물들에 맞서서 진천희를 위해 나서 주었다.
담진 왕국에서도.
사람들은 떠나가는 진천희를 크게 배웅하며 다시 와달라 이야기해주었다.
그 전에 다두 왕국에서도.
이 백린군이 백린현이 되기 전에도.
복숭아술을 담그던 마을에서도.
궁귀 왕채백이 딸 왕각연을 치료하고 나서 백린대에 머물게 된 일에서도.
황제의 쌍둥이 풍하은의 대장암을 고쳤을 때도.
가완의 딸 가월을 고쳤을 때도.
투괴의 손녀를 구했을 때도.
전대 개방방주를, 여하륜을, 사마혜를, 천우를, 북해빙궁의 사람들을, 두창에 고통받던 사람들을, 우역에 신음하던 사람들을.
시간의 순서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기억들.
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구했을 때를 추억한다.
진천희의 공허한 눈이 마침내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나하나가 전부 내 보물이지.”
“보물…….”
“그리고 혜아. 너도 내 보물 중 하나야.”
“제가요?”
“그래. 내가 구해 낸 내 보물. 네가 살아줘서. 그리고 이렇게 장성해서 내 옆에서 의원이 되어 있다는 게……. 나에게는 큰 보물이야.”
사마혜는 조금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위를 보았다.
여전히 나른하지만, 아까보다는 생기와 혈색이 느껴지는 어른이 그곳에 서 있다.
그것은 마치 빛나는 별 같다고.
사마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랬군요. 저도… 은공의 보물…….”
“스승님 그렇고, 현이도 그렇고, 천우도 그래. 하륜이는……. 사실 내가 안 구했어도 잘 살 녀석이지만.”
진천희는 키득거렸다.
여하륜. 지존천마의 주인공.
사실 유일하게 사기를 친 부분이 아닐까 싶은 진천희의 첫 번째 의동생.
그때 불쑥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유 총관은요?”
“응?”
유호가 거기서 왜 나와?
고개를 내려다보니 사마혜가 진천희를 바라보고 있다.
“유 총관은 보물 아니에요?”
“유 총관이야말로 최고 보물이지. 오늘도 봐. 유 총관 없어서 석션 해줄 사람도 없고……. 하. 유 총관 그립다.”
그 말에 사마혜가 풋 하고 웃어 버렸다.
“뭐예요, 그게. 유 총관이 그 소리 들었으면 은공을 죽이려고 들걸요?”
“아니. 죽이려고 들지는 않아. 뭐어. 사랑의 손길로 나를 마구 어루만져 줄지도…….”
“그 추궁과혈 말이죠?”
“그렇지. 그게 효과가 참 좋아서…….”
그제야.
둘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온다.
작은 농담들이 오고 가고, 지친 것을 달랜다.
그것은 어쩌면 어른이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사라진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 *
어촌 마을 인근에는 석두산이라고 하는 작은 바위산이 있었다.
높이는 고작해야 삼십 장이나 될까 싶은 산.
그래도 이 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어촌 마을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장소이다.
그런 석두산의 봉우리에 흑백으로 나뉜 가면을 쓴 이가 한 명.
그리고 그 뒤로 검은색의 가면을 쓴 이들이 여섯 명이나 서 있었다.
심혼귀령가.
남궁세가에서 마교에 속한 마종육가라고 스스로를 밝혔던 자들.
그들이 왜 이곳에 서 있는 것인가?
“이것 참 우연이로구나. 천하일광이 마침 여기 있을 줄이야.”
흑백 가면을 쓴 이가 입을 열어 육성(肉聲)으로 말했다.
그 말만 들어본다면, 이자가 지금 이곳에서 어떤 일을 획책한 듯 보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귀계를 꾸민 것일까?
“후후후. 좋겠지. 어차피 혈린도 이번 일은 막을 수 없을 것이야. 인간의 내면에 있는 마(魔)는 곧 욕망이니. 그것을 어찌 막겠는가?”
혈린.
진천희의 스승을 언급한다.
설마 심혼귀령가는 제갈린을 대상으로 음모를 꾸미는가?
“자. 돌아가자꾸나. 이제 느긋이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느니. 천마께서 기뻐하시기를.”
“천마께서 기뻐하시기를.”
“천마께서 기뻐하시기를.”
괴인들이 합창하듯 외친다.
그것은 광신(狂信)이라는 단어가 지독히도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 * *
진천희는 너덜너덜 걸레짝이 된 기분으로 백린의각으로 향했다.
육체야 쌩쌩하다.
오행신공을 대성하고, 그 이후의 경지까지 진입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게다가 현원전단신공은 강제로 이성을 붙잡아 주화입마가 일어날 수가 없다.
괴로운 스트레스도 시스템 압축을 해서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는 데다가.
사실 지구 별에서의 경험과 용봉지회의 경험, 숙신족과의 전쟁에서의 응급치료실 운영.
오독문과 패천무상신공 비급 쟁탈전 등 각종 지옥들을 경험해 본 덕에 이제는 이런 일에도 제법 잔뼈가 굵어졌다.
그래도.
‘죽겠네……. 아주.’
익숙해서 크게 고통스럽지 않다는 거지,
지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상태로 백린의각이 자리한 도시의 근처에 도달했을 때.
왠지 도시가 부산스러워 보였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그것은 부흥에 의한 활기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혜야. 우리 의각에 무슨 일 있었다는 소식 있었어?”
“그런 건 없었는데요? 왜 그러세요?”
“도시가 부산스러워 보여서.”
“저는 안 보여서…….”
“음. 일단 가 보자.”
일행을 이끌고 진천희는 도시로 진입했다.
그리고 왜 부산스러웠는지 알 수 있었다.
객잔들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고, 돌아다니는 강호인 비율이 상당한 것.
그리고 대다수가 부상을 입은 자들이었다.
‘뭐지? 왜 환자들이 이렇게…….’
게다가.
강호인들의 수에 맞춰서 포쾌와 포졸.
그리고 포두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은데?’
분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묘한 긴장감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의각으로 향했다.
산을 오르면서도 수많은 환자들이 길을 오가는 게 보였다.
그렇게 의각에 도착하자.
온갖 사방에 환자들로 북적거리고 있는 의각을 볼 수 있었다.
“소각주님을 뵙습니다!”
수문 위사가 진천희를 맞이한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 이렇게 환자가 많죠?”
“그것이…… 전쟁이 났다고 합니다.”
“네……. 전쟁!?”
혈사도 아니고?
진천희의 두 눈이 커졌다.
* * *
톡-
발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진천희가 의각 내를 걷고 있다.
그 복장은 방금 전 돌아온 사람의 복장이 아니다.
어느샌가 부술복을 입고 있었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채였다.
오행진기가 일어나 몸을 셀프로 소독하는 중!
게다가.
기막(氣膜)을 사용해 그 몸 전체를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있는 중이기까지 하다.
부술을 하기 위한 만전의 상태라고 할까!
옛날이었으면 꿈도 못 꾸었을 경지!
이 정도의 무학을 고작 부술 준비하는 데 쓰냐고 누군가는 핀잔하겠지만 진천희는 뿌듯하다.
이건 외과의라면 누구라도 뿌듯할 터.
이게 판타지지, 뭐가 판타지냐!
꼭 용을 때려잡아야 판타지겠냐!
‘이야, 나 많이 컸다.’
역시 의원이든 숙수든 일단 고수가 되고 봐야 한다. 그건 진리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유호가 같이 걷고 있다.
“현재 강소성 내의 쉰다섯 곳의 문파들이 서로 상잔(相殘)했거나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각지의 분타에도 환자가 밀려들고 있다더군요. 그리고 치료가 힘든 중상자만 본각으로 이송 중입니다.”
“며칠 정도는 내공이나 준영약 같은 것으로 생명을 연장하며 버틸 수 있어서 그런 거겠네. 차라리 분타로 갈 것이지…….”
“팔다리가 절단된 놈들이 주로 그러고 있습니다. 분타에서도 그 정도는 부술이 가능한데도 저러니 인간의 아둔함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하아……. 그래서, 스승님도 부술 중이시지?”
“예.”
그랬다. 진천희는 의각에 도착하자마자 부술복으로 갈아입고 다시금 부술 최전선으로 뛰어들려고 하고 있었다.
“유호가 스승님 안 도와도 돼?”
“지금은 제가 인력 관리하는 쪽이 더 효율적입니다. 무월 내총관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까요.”
유호는 이제 와서는 어지간한 상의원을 능가하는 의술도 가지고 있었다.
만능 간호사 대학원생의 위엄이라고 할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유호는 그런 능력보다 인력 관리 능력이 더 유효할 때다.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윤활유 같은 중간관리자가 없다면, 부술대에 환자가 올라가기도 전에 사망할 수도 있다.
“그렇구나. 수고해줘, 유호. 고마워.”
“도련님도 고생하십시오.”
유호는 그리 말하고 다른 방향으로 멀어져 간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진천희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부술방의 문을 허공섭물로 열어젖힌 다음 들어갔다.
드륵!
누군가의 도움, 자동 개폐?
하하하! 그런 건 필요 없다.
시대는 허공섭물이다.
‘이게 간지지.’
꼭 어검술로 어디 문파 노장로 목을 따야 간지인 게 아니다.
부술실 문을 허공섭물로 밀어도 간지다.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들어가니 이미 준비되어 있는 간호의원들, 그리고 부술당 중의원, 하의원들이 진천희를 보며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자. 다들 준비되셨나요? 표정이 비장하시네~ 아주.”
최대한 명랑하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부술실의 리더는 자신.
자신이 쓰러지면 다른 이들도 다 같이 쓰러질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러니, 최대한 감정적인 소모를 줄이는 게 맞겠지.
“뭐해요? 후딱 하고 밥 먹어야죠.”
혈사가 아닌 전쟁 수준의 싸움.
얼마나 더 많은 환자가 밀려올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진천희는 각오를 다진다.
‘강호란 그런 거지.’
그야말로 응급 전쟁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