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
제 94화
“흡, 흐아아아앗!”
촤아악!
마침내 힘이 빠진 만년화리가 수면 밖으로 끌려 나왔다.
거구가 뭍에서 퍼덕인다. 하지만 물속에서 하는 싸움에 비하면 이다음은 쉽다.
진천희는 창대를 놈의 입에서 뽑았다. 놈이 자유인가 싶어 물속을 향해 몸을 퍼덕이는 순간.
진천희는 창으로 아가미를 찔렀다.
뇌전이 담긴 창대가 관통했다.
짧은 공격인데도 놈의 마치 불덩이 같은 몸체가 진천희의 손을 지졌다.
‘후, 진짜 뜨겁네!’
이놈이랑 난타전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여하륜은 여하륜의 방식이, 진천희는 진천희의 방식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끼아아아-
최후의 일격에 결국 만년화리의 목숨이 끊어졌다.
“해……냈다!”
진천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 근육 중에 무사한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뼈마디까지 욱신거렸다.
극심한 피로.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만년화리는 내단 채집도 힘들어.’
열 그 자체를 담고 있는 만년화리의 내단은 만년화리가 죽는 순간 빠르게 내기가 흩어진다.
여기서 몇 시진만 방치하면 보통의 돌이 된다.
천마는 그 자리에서 먹었지만 진천희는 스승님께 배달해야 했다.
맞는 방법으로 내단을 채취해서 열기를 보존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진천희는 창대를 뽑았다.
“후우…….”
현원전단신공이 극심한 피로 속에서도 진천희의 머리를 맑게 했다.
진천희는 피로로 비명을 지르는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놈의 배를 갈랐다.
촤아악-
* * *
황구는 턱을 땅에 대고 진천희를 계속 기다렸다.
기다리는 건 황구가 가장 잘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황구는 눈을 감고 반쯤 잠이 들었다. 날벌레가 날아와 귓가에 윙윙거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현듯 황구의 눈이 떠졌다.
컹, 컹컹!
황구가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텁-
사람의 손이 지저 구멍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짚었다.
“하…… 죽는 줄 알았다.”
진천희가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온천수가 밖으로 분출됐다.
보통 사람들이 탕치할 만한 온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끓는 물이다.
황구는 잽싸게 도망쳐서 거리를 벌렸다.
진천희는 나려타곤을 써서 구르듯 도망쳤다.
“마지막 잡기까지 살뜰하게 썼네.”
나려타곤.
땅을 구르면서 도망치는 걸 뜻한다. 제갈 서고 잡서란에 있는 놈으로, 진천희는 그걸 굳이 들고 가서 배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힘도 내공도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믿을 건 나려타곤 같은 잡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잡서라고는 하나 그래도 무공서다. 각을 잡고 배웠기 때문일까.
내공 하나 넣지 않고 삼 장(약 구 미터)을 단숨에 굴러서 피할 수 있었다.
내공을 넣는다면 더 빠르게 구를 수 있겠지만 애초에 내공이 있는 상태라면 회피기를 쓰지 나려타곤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다.
한 칼에 죽을 거 아득바득 살아서 피해 보겠다는 진천희의 생존 욕구라고 할 수 있었다.
본디 뼛속까지 의원이다 보니 무림인의 품위 같은 것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내공 하나도 없이 구 미터를 단숨에 피한다는 건 정말 좋은 기술이지.’
진천희는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용천수 시간 주기를 알 도리가 없어서 도박하긴 했지만 어째 나가는 시간에 터지냐.’
만년화리를 잡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했다.
하지만 그 몸을 이끌고 만년화리의 내단을 채취하고, 호수 밑바닥 진흙과 오행신공을 이용해 화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막는 건 더 큰 시험이었다.
거기에 진천희는 아가미 밑 살점과 등근육살, 뱃살, 심장에서 나오는 피, 갈비뼈까지 알뜰살뜰하게 죄다 채취했다.
내단만큼은 아니어도 화기가 상당히 고여 있는 부위였다.
진천희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채취를 다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가뜩이나 뜨거운 온천이 부글부글 끓더니 분출을 시작했다.
지옥이었다.
물론 짐을 내려놓고 영단만 들고 가도 된다.
‘그럴 순 없어! 이게 다 얼마짜리인데! 돈 주고도 못 사는 만년화리라고오오!’
그 미친 짓을 하고 내단 하나만 챙겨 간다는 것은 진천희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무협지 주인공인 여하륜 놈이야 앞으로 먹게 될 내단, 영단이 소설 완결 날 때까지 무궁무진 산처럼 쌓여 있지만 진천희는 달랐다.
마지막 내공 한 방울까지 짜내서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죄다 챙겨 왔다.
라스트는 삼 장 나려타곤이었다.
필살 생존기!
황구는 진천희의 독기에 질렸는지 세 걸음 물러났다.
“황구야, 고생했다. 내가 너 주려고 만년화리 고기도 챙겨 놨어. 내단만큼은 아니어도 이것도 영약이니까 너 먹어.”
헥헥!
언제 질렸냐는 듯 황구는 꼬리를 흔들며 충성을 맹세했다.
진천희는 황구용으로 잘라 둔 만년화리 등살을 꺼냈다.
첩첩첩첩!
냄새도 맡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 댄다.
“맞다. 너 영약, 내단 다 좋아했지?”
쓰디쓴 백린신단도 한입에 삼킨 황구다. 몸에 좋은 건 악착같이 먹어 댔다.
컹!
다 먹은 황구가 헥헥거리며 진천희의 뺨을 마구 핥았다.
“귀여워라. 이제 돌아가자.”
* * *
객잔에서 쉬는 건 사치다.
진천희는 곧장 배를 탔다. 삼살추서는 그런 진천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소백룡님 덕에 삼서가 살았습니다!”
“어흐흐흑…… 고맙습니다. 소백룡님.”
일서와 이서가 진천희를 향해 울면서 포권을 했다.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마지막은 하늘에 달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인 거죠.”
“아닙니다. 보통이라면 단전을 폐하고 사지근맥을 끊을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치료도 해 주시고 계도까지 해 주시니 감복할 따름이죠.”
삼살추서는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일서가 입을 열었다.
“단순히 백지 계약서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자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건 저와 저희 형제들의 뜻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그냥 내 목숨을 노렸으니 딱 그 값만큼 무보수로 부려 먹을 생각이었는데……?’
진천희가 대답을 하지 않자 받아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알았는지 일서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희 같은 잡놈들을 이렇게 진심으로 치료해 주신 분은 처음이십니다.”
“사지근맥을 끊는 대신 노를 젓게 하신 것은 계도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뭣도 모르는 무지렁이지만 공자님을 계속 따르고 싶습니다!”
진천희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백린의각을 경영하려면 의원 밖의 일도 해 줄 사람이 필요하긴 하지.’
무림의 의각은 현실의 병원과는 다르다.
도산검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자잘한 일을 해 줄 이가 필요했다.
삼살추서는 최고의 수족이었다.
단순히 백지 계약서 때문에 온 게 아닌 감복해서 온 거라면 더더욱.
‘이 세계에서는 다친 사람을 치료해 준다는 행위 자체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무거웠구나.’
좋은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각을 나서지 않았다면 실감하지 못했을 터였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알겠어요.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일 겁니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비검이 다가왔다.
“저도 삼살추서 형님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비검까지?
진천희가 비검을 바라보자 비검이 다급하게 말했다.
“……삼살추서 형님이 아니었다면 이 비검, 공자님에게서 도망칠 궁리만 했을 겁니다! 저를 일깨워 주신 것에 네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넌 좀 속은 것 같다……?’
마치 친구 따라와서 함께 다단계 계약서를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천희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비검께서도…….”
백지 계약서를 어디선가 쓱 꺼내서 비검에게 건넸다.
삼살추서가 쓴 것과 같은 계약서였다.
비검은 손가락에 피를 내어 수결했다.
노예 사 호가 들어왔다.
컹!
황구가 짖자 네 명의 노예들은 흠칫 놀라서 황구에게서 멀어졌다.
“공자님, 기분 탓인지 저 개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제 눈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저마다 황구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진천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만년화리 살점 먹은 게 벌써 티가 날 수가…… 있나?’
굳이 말하면 만년화리도 영물이고, 황구도 영물이다.
영물이 영물을 잡아먹은 셈이다.
원래라면 영역 싸움을 할 일이 아니면 서로 죽자고 싸울 일도 없거니와 영물 자체가 희귀하다.
그게 진천희에 의해 인위적으로 일어난 셈이다.
‘엄…… 강해지면 좋은 거겠지?’
진천희는 황구의 이마를 벅벅 긁어 줬다.
헥헥헥.
황구는 그런 진천희가 좋은지 손등을 열심히 핥았다.
‘귀여운 건 역시 시골개가 최고지.’
병원 일 하다가 힘들어질 때면 폰으로 개 동영상을 시청하곤 했다.
진천희는 그때도 품종 개들보다는 이른바 시골 잡개라고 불리는 믹스견들에 더 관심이 갔다.
튼튼해 보이는 앞발과 수더분하고 발랄한 그 분위기가 좋았다.
단순 시골개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커져 버린 황구지만 진천희 눈에는 여전히 귀여워 보였다.
반면 삼살추서와 비검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불알 분쇄기가 더 강해졌다.’
황구의 파괴력을 직접 몸으로 느낀 삼서는 특히나 더 얼굴이 창백해졌다.
015. 역사를 비틀다
백린의각 본산까지 온 힘을 다해 돌아왔다.
중간에 삼살추서와 비검은 삼서의 도박 빚을 갚으러 잠시 떠났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진천희를 잡아서 빚을 변제할 예정이었는데 그게 불가능하니 다른 방식으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삼서는 진짜 빚 액수를 이야기했고, 일서, 이서에게 먼지가 나도록 두드려 맞았다.
한 번만 더 도박에 손을 대면 손가락을 자르기로 약조하였는데 어찌 될지는 두고 볼 일.
‘넷이서 힘을 모으면 갚겠지.’
진천희가 빚을 갚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대신 운룡표국에 간단하게 소개서를 써 주는 정도까지는 해 주었다.
추적과 도주가 특기인 놈들이니 크게 한탕을 하지 않더라도 자잘한 일을 차근차근 하다 보면 금방 갚을 터였다.
그렇게 황구와 진천희는 백린의각 본산 근처, 폐관 수행터와 연결되는 계곡 입구까지 왔다.
“황구야, 네 일은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
컹.
황구는 낮게 짖더니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제 개방에 돌아가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도 황구는 계속 진천희를 따랐다.
‘왜 이러지? 황구가 돌아갈 길을 몰라서 쫓아오는 건 아닐 텐데.’
개방에 전서구라도 날려서 보내야 하나.
그 전에 폐관 수련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황구가 거기까지 따라오면 문제가 커진다.
들어갈 때는 진천희 혼자였는데 나올 때는 진천희와 황구 한 마리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이지 않나.
“일단 그래. 알았어. 이 근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건 할 수 있지? 폐관 수련 끝내고 돌아올게.”
헥헥헥.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황구가 꼬리를 흔들었다.
진천희는 황구의 이마를 벅벅 긁었다.
‘좋아. 이제 다시 물길을 타고 연무실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네.’
스승님은 본래 죽었을 사람이다.
그 사람을 살린다는 건 세계가 변한다는 뜻.
그동안 살렸던 이들과는 비견되지 않을 만큼 무림에 파급이 커질 터였다.
그만큼 무림에서 신의란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존재였으니까.
‘그래도 괜찮아. 스승님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역사가 바뀌든 진천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진천희는 입수할 준비를 했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