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1
제 941화
제갈린의 서재.
선희 공주가 비파를 들고 있는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제갈린이 기분 좋을 때 꺼내 놓는 초상화다.
그 초상화 아래에서 제갈린은 찻잔을 들어 마시고는 입을 연다.
“희는 갔는가?”
유호가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린다. 그리고 다른 쪽 눈을 슬쩍 뜨더니 대답했다.
“도시를 막 벗어나는 중이군요.”
“부지런한 아이야. 꿈을 위해서 저렇게까지 하는 아이는 아마 희가 유일무이할 걸세.”
“그거야… 그렇겠죠. 저도 저런 인간은 처음 보니 말입니다.”
“후후훗. 이 나는 어떤가?”
“주인님 같은 고약한 인간도 처음 봅니다.”
“하핫. 그거참 기꺼운 칭찬이로군.”
제갈린은 기쁘다는 듯이 웃음을 머금는다.
“뭐어. 나는 우리 희의 꿈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존중하고는 있다네. 강호인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인 것을 저리 안타까워하다니……. 하긴, 저 제자 놈의 뇌를 이해할 자가 강호에 있기야 할는지 모르겠네만.”
돈보다 사람의 목숨이 우선이다.
은원보다 사람의 목숨이 더욱 중하다.
강호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진실로 믿었다.
이 세상에 사람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다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협(俠)이라며.
“불가의 고승 중에는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쪽은 중생구제가 교리 안에 들어 있으니까. 그나저나, 찾긴 했나?”
뜬금없는 질문이 푹 공기를 찌른다.
유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시다시피 저의 권역은 이 백린의각일 뿐이죠. 도련놈이나 토용이 있는 곳이라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것도 그뿐. 멀어질수록 기감은 흐려집니다.”
“주술당주는?”
“쟈시의 말로는 이미 빠져나갔다고 하더군요. 강소성의 외곽 지역 몇몇 곳에서 의식을 치르고 사라졌다는데……. 그렇게 되면 기실 더 추적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쯧. 개방과 하오문에서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제갈린은 쓸모없다는 눈으로 유호를 바라본다.
더러운 인성.
하지만 유호도 할 말은 또 한다.
“첫째. 지금 제게 원하시는 수준이 필멸자에게는 불가능한 수준이란 건 아십니까? 차라리 등선이라도 하라고 하지 그러십니까.”
“등선 안 하면 못 하나?”
알면서 묻고 있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하늘을 속여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다그침.
대체 주군은 뭐가 문제일까. 유년기를 저따위로 보내면 사람이 이따위가 되나?
유호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그어진다.
“둘째. 어디에서 일으킨 것인지는 이미 눈치채셨으면서 그러십니다?”
그 말에 제갈린이 혀를 찼다.
“알기야 알지. 일월신교 놈들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일으키지 않으니까.”
‘…역시 알면서 나를 쪼는 거였군.’
혹시나 했더니 이럴 줄 알았다.
개더러운 성질머리.
그보다 일월신교.
혈선교가 아니라 일월신교를 거론했다.
“일월신교라고 확신하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제 눈에는 거기서 거기 같아 보입니다만.”
“혈선교 무리는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게 보통이지만……. 일월신교 놈들은 사람들의 본성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심중의 마(魔)가 인간의 본성이며 일월의 아래에서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선(善)이라고 믿는 미친놈들이기 때문일세.”
“미묘한 차이군요.”
“자네 눈에는 미묘해 보이지만 인간들 기준으로는 퍽 큰 차이지.”
‘과연?’
보통 인간들도 혈선교와 마교를 구분하지 못하여 사고가 나지 않던가.
못 알아보면 사람 새끼가 아니라는 뜻인가?
유호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제갈린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일월신교도 이리 움직일 줄이야……. 조금 더 나중에 움직일 거라고 봤는데… 어느 부분에서 오차가 생긴 것일까…….”
“십만대산 심처에서 봉인당해 움직이지 못하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천기가 찢어진 지금은 제법 활동이 용이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겠죠.”
“아아…. 그런 거로군.”
제갈린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흠…. 땅이 넓으니 자꾸 뭔가가 들어오려고 하는군그래. 지금처럼 재빠르게 왔다 가는 것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대응하기 어려우니……. 이 기회에 적어도 강소성 전체는 완전히 손에 넣어야겠어. 들어오는 즉시… 소각시킬 수 있도록.”
“정원을 만드는 데 열중이신 것은 좋습니다만……. 그거, 가능한 겁니까?”
유호는 조금 질렸다.
강소성에 들어오는 즉시 소각시킨다는 말을 하는 인간이라니.
이쯤 되면 이미 인간이 아니고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
그만큼 이자의 본질은 인간보다는 자신들 부류와 더 닮아있다.
사람의 태내에서 나온 놈이 어찌 저리 흉악한지 알 수 없으나, 그 흉악한 놈이 의각을 차리고 의원질을 하고 있고, 제자를 키우고 있다는 게 더 기묘하다.
제갈린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품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네. 사실 저 벌레 같은 강호 놈들이 자중지란으로 죽어 버린 것은 참 기꺼운 일이긴 해.”
“…….”
“하지만 남의 집 앞마당에서 분탕을 친 것은 용서하기 어렵지. 이 대가는 이자까지 쳐서 되돌려 주어야겠어.”
“그러시든가요. 그런데 도련놈은 괜히 보낸 것 아닙니까? 어차피 주인님이 뭔가 하실 거라면, 굳이 도련놈이 모산파에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제갈린이 부채로 탁자를 두드린다.
“모산파의 도움도 필요하다네. 일월신교의 수작을 방비하는 데도 필요하겠지만. 내 예상이 맞다면 사도련 쪽도 크게 득세할 테니 무림맹에 힘을 좀 주기 위해서라도 필요해.”
유호는 뜬금없는 사도련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술제라는 인간 때문이군요.”
“그렇다네.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사실 천기의 제약은 아마도 그분이 가장 많이 받고 있을 거라네. 귀령파의 문인이 적은 것도 사실 그런 이유지.”
귀령파.
그들도 강호에서는 주술과 좌도방문의 술수로 유명한 자들.
그러나 그 구성원은 지극히 적다.
멸문 직전까지 간 귀령파를 술제의 손으로 되살렸으나, 그럼에도 그 숫자는 여전히 적은 편.
“삼존이 아니고요?”
“그래. 그게 그분의 무서운 점이지. 누구도 진짜 실력을 모르지 않나. 그분이 제약을 벗어던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더군. 게다가 귀령파를 억누르려면 그 대척점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모산파로군요. 나부파는 끌어들이지 않을 겁니까?”
나부파.
이 역시 강호에서 주술로 유명한 문파였다.
이들은 도문(道門)의 4대 계파 중 하나인 부록파의 문파이다.
무협 소설에 주로 서술되는 도문에는 연단파(燃丹破), 장생파(長生派), 연기파(練氣派), 부록파(符籙派)의 4대 계파가 존재하는데.
이중 연단파는 금단선공(金丹仙功)이라 하여 영단과 비약을 법제하여 섭취하고 이로써 신선이 되려는 이들을 뜻한다.
장생파는 음양화합, 방중술, 섭생섭식의 수행으로 선(仙)에 이르려는 자들.
연기파는 토납술과 기공술, 거기에 무공의 수행 등으로 선(仙)이 되려는 계파로 묘사되곤 한다.
그렇다면 부록파는 무엇일까?
이들은 천지산천에 신령이 있으며, 옥황상제 같은 상위의 존재들의 힘을 빌리거나 혹은 제어하여 다스리는 데 중점을 두는 이들이었다.
그를 통해 선(仙)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믿은 자들.
즉.
어찌 보면 강호에서 주술과 도술로 유명한 이들은 대다수가 부록파의 도문이지 않을까?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도 일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부록파라는 계파도 흐릿하기만 하다.
모산파가 그래서 연단을 안 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무당파의 경우에도 아직 선도라고 해서 도술을 쓰는 이들이 있긴 하다.
요는 어느 계파를 더 중점으로 하느냐.
그런데 나부파는 철저하게 부록파로서 자신들을 수행하는 종류의 문파였다.
귀령파도 마찬가지.
“그들은 귀령파나 마찬가지 아닌가. 귀령파와 다른 점이라면 전혀 속세의 일에 관여치 않으려고 한다는 것뿐.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일세.”
“그러시다면…….”
유호가 눈을 가늘게 뜬다.
제갈린이 답했다.
“외부에 몇 개의 일거리를 던져두고… 조용히 관측을 해 보세나.”
제갈린은 스산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모산파(茅山派).
강소성 모산(茅山)에 위치한 문파이다.
강소성 모산은 남경에서 남동쪽으로 쭈욱 내려가다 보면 있는 산으로, 영산(靈山)으로 이름 높은 곳이기도 하다.
모산은 예로부터 [산(山)이 아름답고 도(道)가 신성하며 동(洞)이 기이하다.]라는 말이 떠도는 곳인데, 그만큼 도가의 수행자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그런 모산파는 그들 스스로 상청파(上淸派)라고도 칭하는데.
대다수는 모산파라고 부르는 편이었다.
이들은 다른 강호 문파들과 다르게 무공보다는 법술과 도술.
그리고 좌도방문의 술수를 자신들의 선도를 수행하는 방편으로 삼은 이들로서 강호의 문파 중 하나임에도 모산파의 문인을 직접 만난 이들은 거의 없다.
사실 모산파는 강호에서 거의 활동하지 않는 편이기에 그렇다.
실제로 무림맹에 가맹도 하지 않은 이들인 것이다.
게다가.
주술과 도술이 강호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런 술법의 힘으로 위명을 떨친 자는 술제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이 도술이라는 것이 수행하기 어렵거나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
사실 그렇기도 하다.
진주언가의 구시술이라는 것도, 강시를 법제해서 만드는 것 아닌가?
얘들이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하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술제의 술법이라는 것도 식신을 부리거나 하는 쪽이지, 번개와 불을 불러내어 공격하는 것들도 아니었다.
때문에 신비 문파로도 유명한 모산파.
지금 진천희는 바로 그 모산파에 가서 주술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스승인 제갈린의 명령은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어렵다면 어려운 것이었다.
모산파에 강소성 전역을 커버칠 수 있는 보호 주술을 만드는 데 도움을 구하라는 것이니까.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스승님이 뭔가 하시긴 하시겠군.’
진천희도 바보는 아니다.
스승님께서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짐작은 하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모산파를 향해 움직여야 했다.
‘그게 나인 거지.’
그렇기에 경공으로 달리는 대신 황구의 등 위에 타서 달려가고 있다.
엄청난 속도!
투다다다다다–!
역시 개가 가장 빠르다.
그것도 영물 개는 인간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지.
그때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아아앗—!”
살기가 목소리에 배어 쩌렁쩌렁하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까지 어찌나 살벌한지 모른다.
‘망할. 전쟁이 한풀 꺾였다 들었는데…… 아, 혹시 잔당인가?’
황구와 함께 가 보니 수십 명의 무인들이 서로를 향해 병장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심지어 기본적인 검진이나 진법도 짜지 않고 난전 그 자체로 서로를 향해 살초를 펼친다.
다행히 아는 문파다.
“한쪽은 철각문(鐵脚門)이고 다른 한쪽은 패산파(敗山派)인가.”
놀랍게도 둘 다 강소성의 정파다.
지금 정파끼리 서로를 상잔하고 있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