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42
제 942화
‘물론 정파라고 딱히 착한 건 아니지.’
사파라고 불릴 짓을 안 했다 뿐.
결국 그들 역시 본질은 칼로써 돈을 번다.
이 강호에서 타인의 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이미 몇 번이고 느끼지 않았던가.
혈사가 지난 자리에 얼마나 찬란한 황금 나무가 피어나는지.
진천희는 황구를 탄 채, 두 문파가 싸우는 그 한가운데에 떨어져 내린다.
주변에 다친 이들 숫자를 세고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한다.
‘다행이군. 지금이라면 괜찮아.’
이제 혈사를 막 시작하는 상황인지 크게 다친 이는 없다.
떨어져 내리며 천근추의 구결을 인용하여 황구와 진천희 둘을 잡아 누르고.
콰아아앙!
순식간에 지축이 흔들리며 동심원을 그리더니 저 멀리 퍼져나간다.
“모두 동작 그마아아아아아안—–!”
음공이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장악한다.
이렇게까지 해버리니 제아무리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진천희가 황구에게서 내리며 다시 외쳤다.
“모두 물러나십시오—-!!”
진기가 실린 경고에 모두가 경악했다.
“천하일광이다!”
“천, 천하일광?! 백린군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꽤 되지 않소? 대체 어찌 여기까지?”
“신출귀몰하다 들었는데 이런 혈사까지 개입하려 할 줄은!”
말로 해서는 안 듣는 눈치이기에 진천희는 곧바로 무형지기를 일으킨다.
“…….”
쿠그그그극-!
사방을 내리누르는 무형지기에 모두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흙먼지가 빠르게 가라앉는다.
바람도 멈춘다.
마치 입을 막은 것처럼 숨을 쉴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나무와 풀이 한 방향으로 눕기 시작했다.
허나, 기묘했다. 진천희가 뻗친 무형지기는 천마군림보 같은 것들과는 엄연히 달랐다.
기묘하게도, 사람을 크게 누르진 않았다.
그저 두꺼운 담요에 감싸인 기분만 들 뿐, 힘을 주지 않았다.
지독한 공간 장악.
“……비… 빌어먹을.”
“천하일광이 이 정도 경지일 줄은…….”
“사, 사술. 사술인가!?”
어떤 경지인지는 몰라도 힘의 격차를 느낀 자들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고, 아예 경지의 차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이는 사술이라 소리 지른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경지를 알아볼 수 있는 사형이나 장로의 손에 끌려서 물러난다.
모두가 병장기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진천희는 무형지기를 거두었다.
훅-
그것만으로 공기의 온도가 올라간다.
숨쉬기가 편해졌다.
나무와 풀이 다시 원래의 방향으로 돌아온다.
흡사 천지만물을 담요로 감싼 것과 같은 기행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반면 진천희는 살짝 침음을 내뱉었다.
‘역시 스승님의 경지와는 다르다. 너무 멀어.’
그저 형(形)을 흉내 낸 것일 뿐, 그 본질에는 다가서지 못했다.
그도 그랬다.
그 무학의 본질은 진정한 깨달음을 넘어야 가능한 것이니.
이런 흉내로는 한참 부족함이라.
‘……미치겠군.’
눈만 감으면 스승님께서 보여준 그 경지가, 그 검로가 떠오른다.
천재의 길이다. 나는 다른 길을 간다고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한번 봐버린 이상향을 어찌해야 할까.
그 경지가 눈꺼풀 안쪽에 박혀서 나갈 줄을 모른다.
그 무학을, 그 깨달음을.
언젠가 형(形)이 아닌 본질을 취할 수 있을까.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올라간 자들의 이야기.
다른 이들에게 있어 진천희는 그저 괴물로만 보일 뿐이었다.
장로들이 전음을 보냈다.
[일광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저자는 우리가 상대할 자가 아니다.]“사술 아닙니까! 저것은 사술입니다! 우리 철각문이 언제부터 사술에 굴하였습니까!”
오히려 경지가 낮은 이들은 진천희가 보여준 무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랬다.
천마군림보처럼 온몸을 압박한 것도 아니고.
천으로 덮어서 조금 밀어낸 수준.
다친 곳도, 압력을 느낀 곳도 없다.
그러니 약한 사술이나 환술 정도라 생각해버리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허나, 경지를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은 답답함에 욕을 내뱉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천희는 태연하게 한 걸음 앞으로 저벅, 움직인다.
칼을 뽑지도, 그렇다고 살기를 내뱉지도 않는 그저 평안한 자세.
겉으로 봐서는 허점이 너무 많아, 무공을 익힌 적 없는 양민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좋은 날, 좋은 날씨에 서로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겁니까?”
“…….”
“본 의원이 보기에 철각문과 패산파의 무인들이신 것 같은데.”
장로가 입을 열었다.
“벽안신의께 말씀드리오.”
그때 천둥벌거숭이 무인 놈이 소리 질렀다.
“본 철각문은 저 패산파의 횡포에 분연히 일어난 것이오. 벽안신의께서는 본 파의 행보에 끼어들지 말아 주십시오!”
“흥! 횡포라! 너희 철각문이 본 패산파의 전답을 불태우지 않았더냐!”
패산파에도 천둥벌거숭이는 있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들이 압력을 받거나, 다친 곳이 없으니 이 또한 사술이라 생각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
‘천하일광이 아무리 강한들 우리 문파 전체를 적으로 두지 못하리라!’
젊으니 혈기가 먼저 튀어 나간다.
장로들이 뒷목 잡고 쓰러질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뭐라!? 너희가 과일의 가격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을 우리가 모를 것 같았나! 본문의 주력 사업이 과실주임을 알면서도!!”
“웃기는구나! 네놈들이 먼저…….”
“그만–!”
진천희의 말에 하룻강아지들도 그만 입을 다물었다.
방금 보여준 것은 사술이라 여기더라도 음공은 진짜니까.
진천희는 이 하룻강아지들을 바로 눈치챘다.
그리고 동시에 두 무리 수장들의 기색 역시 바로 파악했다.
원수였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는 의념은 필시 서로를 깊이 증오하는 자에게서 보이는 것이었다.
‘현경에 다가서니 이제 이런 것도 보이는구나.’
하지만 오래 보면 현기증이 밀려오기에 일부러 감각을 닫는다.
그리 생각하고 주변을 보니 원래, 자신이 보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가 떠나면 어차피 또 싸우겠군. 이건…….’
검패문과 도패문은 이미 한번 크게 충돌해서 피를 보았기에 소강상태가 되었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충돌하기 전.
모두가 서로의 피를 원한다.
‘이것이 혈사의 본질인가.’
현경의 기감으로 느끼게 되니 세상은 더욱 지옥이었고, 서로의 증오가 서로를 찔러대는 게 보였다.
혈사를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여서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와, 이래서 등선을 하는 건가.’
단순히 하늘이 반드시 등선을 시키고자 하는 것뿐 아니라, 이 꼴 보기 싫은 도인들은 알아서 올라갔지 싶을 지경이다.
‘그리고 화경의 무인들이 결코 현경의 무인을 꺾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이 감각.
상대의 생기와 의념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감각.
반쪽짜리 현경이 그저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의념을 꿰뚫어 내 의념으로 파고들 수 있게 된다.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의념들이 서로를 얼마나 증오하는지도.
서로의 피를 얼마나 바라는지도.
‘치료해준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를 악문다.
마치 영원히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리는 것과 같지 않나. 이것은.
아무리 올리고, 또 올려도, 결국 바위는 떨어질 거고.
다시 그 바위를 굴려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아니야. 그래도 지금 치료하면 후일 죽을 사람이 살 수도 있다.’
진천희는 일부러 명랑하게 말했다.
“오우, 당신들의 말대로. 당신들의 싸움에 제가 참견하지 않겠습니다요.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으니 부상자만 치료해 주고 떠나죠. 거동이 힘든 환자가 있습니까? 생사를 오가는 환자는요?”
이미 한번 파악했지만, 그래도 진기진맥을 한 것은 아니니 혹시 모른다.
“오오! 과연 벽안신의군!”
“환자를 보고 지나치지 않는다 들었는데 강호의 명성이 참이라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구려!”
명쾌한 진천희의 말에 양쪽 문파가 모두 화색이 되었다.
치료는 환영이다.
상대 쪽 무인은 치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힘들어도 우리 쪽 사람이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있지 않던가.
“고맙네! 고맙소!”
“역시 벽안신의!”
“이 은혜 잊지 않겠소이다! 벽안신의!”
그렇게 진천희는 환자를 몇 치료했다.
치료를 하며 이야기했다.
“오늘은 절대 크게 운신하시면 안 됩니다. 무공을 써서도 안 되고요~”
경고를 하며 양쪽 수장을 슬쩍 노려보니 뜨끔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진천희는 다친 모든 이들을 치료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뒤에 남겨진 양쪽 문파 모두 일단 서로 물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싸우겠지.’
현경에 다가가기 시작하니 더욱 명확해졌다.
새롭게 돋아난 감각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게 강호의 생리라고.
그리고 그 생리를 만든 것은 결국 인간이라고.
인간(人間).
* * *
‘스승님은 줄곧 이런 심마와 싸워 오신 건가?’
스승님의 경지를 탐하면서도 여태 그분의 심마를 이해하지 못해 왔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진천희는 왜인지 이 질문의 답이 현경의 벽을 넘을 실마리가 되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는 생사를 수없이 넘은 무인만이 갖는 육감이었다.
허나, 그 성장까지 얼마나 많은 진흙을 삼켜야 할까.
‘다른 강호인들도 이런 과정을 거친 걸까?’
그동안 너무 쉽게 벽을 넘긴 했었다.
‘그렇군. 나한테도 진정한 ‘벽’이 나타난 거군.’
그러니 답을 얻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무학을 완성하려면, 심마에 대한 답 역시 완성해야 했다.
‘어려운 일이네. 이거.’
모산파를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그리고 강을 건너고 나서도 좀 더 한참 내려가야 하는 상황.
물론 황구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주파가 가능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멈춰서야 했다.
‘혈전 중인 문파만 벌써 세 번째인가. 허허허허.’
강소성의 넓이가 대한민국만큼 넓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무슨 개판인가 싶다.
비유하자면 서울부터 부산까지 내려가는데 동네 조폭들이 죄다 칼 하나씩 꼬나들고 싸우고 있는 꼴 아닌가.
그나마 식칼이면 다행이지. 이쪽은 가정용 소이탄과 가정용 헬파이어로 중무장한 놈들이다.
백도에 몸담은 곳은 그래도 양민들이 휩쓸리지 않게는 하는 편인데 흑도 이놈들은 기어이 끝을 보신다.
멀쩡한 민가에 불을 지르는 걸 보고 결국 붙잡아다 팔다리 관절을 해체한 후, 점혈하여 죄다 관아로 보냈다.
‘싸우려면 자기들끼리 싸우든가.’
서로 삼삼오오 모여서 내장 구경하겠다는데, 이런 자발적인 살육전까지 막을 여력도 없고 막을 방법도 없다.
하지만 양민 집은 왜 태우나. 망할.
본인 혈사에 뭔가 시각적인 효과가 필요했나?
그게 꼭 남의 집이어야 했나.
붙잡아다 쥐어패니까 불 질렀다는 놈은 없고, 싸우다 보니 어쩌다 그리됐다는 놈만 한 수레다.
그래서 관아에 오순도순 정모 하라고 보냈다.
단전이 닫힌 채로 육모 방망이에 두들겨 맞다 보면 양민 심정을 좀 느끼겠지.
그렇게 모산파 인근까지 도착했다.
‘음?’
진천희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솟아올랐다.
모산파가 자리한 모산.
저 멀리서도 기묘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치솟는 게 보였다.
일반적인 기나, 강호인들이 뿜어내는 의념과는 달랐다.
영기(靈氣).
보통의 강호인은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것.
그나마 절정 고수라면 느낄 수는 있다.
허나, 그 영기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도문에 적을 두지 않는 한에는 알기가 어렵다.
그런 영기가 무슨 용오름처럼 치솟는 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황구야. 일단 가 보자!”
컹컹!
황구는 귀여운 울음소리와는 정반대로 뒷다리에 힘을 주더니 단번에 박찼다.
콰아아앙!
일보(一步)에 지축이 흔들리며 거대한 체구가 마치 투포환처럼 뻗어져 날아간다.
순식간에 야트막한 동산 하나를 넘고, 거대한 아름드리나무 꼭대기를 밟더니 그 탄성을 이용해 순식간에 다시 솟구쳤다.
대지가 이렇게 작았던가.
진심으로 달리는 황구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고, 그 움직임은 마치 들판을 휩쓰는 바람과도 같았다.
‘오우, 이거 못 붙잡으면 순식간에 떨어지겠군.’
그런 황구 몸체가 모산파의 앞에 다다른다.
모산파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진천희를 보며 소리쳤다.
그들 역시 강호인답게 멀리서 튀어오는 진천희를 본 모양이다.
하지만.
“뉘, 뉘시오?!”
“설마 선인? 선인이시오?!”
“……?”
음, 대체 뭐랑 착각하시는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