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1
제 951화
심 학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요새 하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걸?”
만 학사가 그 말을 받았다.
“알잖나. 천하일광 이야기. 이번에 남경에서 거하게 사고를 쳤더군.”
장 학사가 의문을 표시한다.
“우리 소각주께서 또 무슨 일을 벌이셨나?”
“자네는 언제부터 ‘우리 소각주’가 되었나? 하여튼…….”
“쯧쯧. 요새 장 학사 자네, 상태가 안 좋아……. 듣기로 천하일광의 그림을 샀다지?”
“요새 서대륙 출신 화가의 그림이 인기라서 산 것뿐일세.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양산형 목판화에 색 조금 입힌 놈이니 오해 말게. 그래서 진 소각주가 뭘 어쨌다는 건가?”
“쯧쯧. 이렇게 소식이 느려서야……. 천하일광의 활인기행을 못 들었단 말인가?”
“활인기행? 아니, 이 무슨 호랑이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천하일광이 드디어 진짜로 돌아버렸다더군.”
만 학사가 옆에서 다시금 끼어들었고. 장 학사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진짜로 미쳤다? 본래도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다니긴 했지만…….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런 소리가 나온 겐가?”
“혹자는 천상천하 유일진광이라고 불러야 한다고도 하더군.”
“아니면 천하진일광이라거나.”
“아니 이게 무슨…….”
장 학사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다른 두 사람의 얼굴에는 당연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장 학사 이 친구가 이리 궁금해하니 가르쳐 줘야겠지.”
만 학사가 썰을 풀기 시작했다.
남경에서의 일.
진천희가 강호인들을 음공으로 눕히고, 그래도 저항하는 자들은 붙잡아다 금나수법으로 탈골시킨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고는 선언했다더군.”
“선언?”
“한동안 자신 앞에서 싸우는 모든 무림인을 환자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랬다고 하네.”
“허?”
“거짓말 같지? 진짜일세.”
“헐……. 아니. 무슨 권리로? 강호인들이 서로 은원 가지고 싸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게. 명분이 있나?”
심 학사도 이 부분은 못 들었는지 눈을 빛낸다.
만 학사가 다른 둘에게 다시 입을 놀렸다.
“그게……. 들어 보면 맞는 명분이 있긴 하네.”
“그게 대체 무엇인가?”
“어차피 서로 싸워서 환자가 되면 자기가 치료하기 곤란하니, 미리 환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더군.”
“헛!?”
“헐!?”
이게 왜 맞는 말인가.
그냥 개소리 아닌가?
언제부터 강호인들이 의원 생각해가며 싸웠다고.
만 학사는 이미 설득된 모양이다.
뭔가 그의 심금을 울렸던 모양.
거기다.
천하십육대고수 중에서도 삼존을 제외하면 적수가 거의 없는 인물.
꼬우면 니가 천하십육대고수 하든가!
그런 감성이 팍팍 느껴지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다.
“그…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
“글쎄……. 적어도 강소성 안에서는 강호인들이 함부로 은원을 정리하지 못하게 될 것 같네. 일광도 ‘한동안’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일세.”
‘영원히’라고는 안 했다.
하지만 그 ‘한동안’ 기준도 일광 마음 아닌가?
“그건… 그렇군.”
“확실히…….”
세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의원 고만 좀 괴롭히라고 관절을 뽑는다?
예전에는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던 놈이다.
허나, 강호가 비웃던 그자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말하기 입 아프지.
일광이 하는 말은 강호 기준으로 미친 소리다.
하지만, 사내의 행보 그 자체가 묘하게 호사가들의 가슴을 울리는 게 있었다.
그리고 잔을 들었다.
미친 짓도 이쯤 되면 하나의 협(俠)이 아닐까 생각하며.
“활인기행을 하는 천하일광 진천희를 위하여!”
“활인기행이 성공하기를!”
“건투를 비네. 일광.”
짠! 하고 잔이 충돌했다.
* * *
“하지 말라면, 하지마루요! 아.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들으시려나?”
우드득.
“으아아악!”
“자. 이걸로 끝.”
진천희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만족한 듯 어깨를 으쓱인다.
남경 근처에 자리한 대도시를 돌면서, 그곳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문파들을 습격.
사파, 정파를 가리지 않고 탈골시켰다.
그리고 그 소문을 널리널리 퍼트리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제 한동안 강소성에서는 문파들끼리 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진천희가 와서 두드려 패고 강제로 환자로 만들 테니까.
‘거기다 한동안이라는 단서를 들으면 일광이 식을 때까지 조금만 참자는 놈들도 나오겠지.’
‘영원히’라고 하면 ‘이 원한을 갚고 저녁에 죽겠다!’라며 달려가서 싸우는 놈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까 ‘한동안’이라고 말하면.
‘일광 이 새끼가 치료하다 또 돌아버린 모양이오. 잠시 은인자중하는 게 어떻소?’라고 잠시 이성이 돌아오기 마련.
사람의 심리가 참 무섭다.
‘영원’은 포기하게 만들지만 ‘한동안’은 기다리게 만드니까.
‘물론 그 ‘한동안’도 참지 못해서 기어이 칼질하러 가는 놈들도 있다만.’
끝을 봐야 하는 은원들.
전에 만난 문파들처럼 과일값이 어떻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진짜 부모의 원수들을 상대할 때 그렇다.
물론 그 부모도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며 칼 들고 나갔다가 증조할아버지가 원수인 장로에게 칼 맞고 죽은 거고.
‘은원의 사슬이 이렇게 무섭지.’
진천희는 은원 재판관이 아니기에 누구 은원을 우선하고, 누구 은원은 가벼우니 나중에 하라고 하진 않는다.
일단은 이 혈사를 멈춘다.
양민에게 오는 피해를 막아낸다.
‘그리고 이 전쟁을 멈춰 각 중소 의방과 의각 분타, 의각 본산을 정상화시킨다.’
밀려오는 강호인들로 인해 양민들은 치료를 못 받고 있는 상황.
그때 관원 하나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진 태수님! 그 난리를 치던 놈들이 이렇게 들것에 실려 가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요.”
주변을 보니 다른 관원들도 속이 뻥 뚫린 표정으로 무인들을 들것에 나르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사이다 중독이 되는 거군.’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말로도 타일러 보고, 제도적으로도 바꿔 보려고 했고,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술 탓이라 여겨 주술도 해제해 봤다.
주왕 전하는 엄명까지 내렸다.
‘결국 마지막은 주먹인가.’
현대인 진천희는 대화로 해결이 안 되는 작금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돌도끼를 휘둘렀는데… 음… 좋군. 왜 세파에 찌든 강호인들이 마지막에는 패도를 꿈꾸는지 알 것 같아.’
“뇌옥 증축 공사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계속 짓고 있습니다. 남궁세가 쪽에서도 사람이 도착했습죠. 그분도 지금 속이 뻥 뚫린 표정으로 뇌옥 짓고 있습니다.”
‘남궁세가도 은원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양이군.’
자기도 무림인이면서 왜 관의 고민을 하고 있냐 싶지만, 기본적으로 정파는 어찌 보면 관의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다만.
남궁세가 규모 정도 되는 세가는 그래도 자신의 영역에서 양민이 사사로이 죽는 것을 신경 쓰고, 때로는 사법기관처럼 원한을 갚아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민영화된 경찰이다.
경찰 회사.
민영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 민영화된 기분……이지만 관무불침 아래, 관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양민이 기댈 곳은 무(武).
즉, 우리가 정파, 거대 세가라고 부를 만한 곳에 기댄다.
불의를 보다 못한 무당파 도인이 사파를 물리치는 일은 가끔씩 듣지 않나.
남궁세가는 도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영역의 치안은 고심하는 편이고…….
‘죄다 패니 속이 다 시원하신 모양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기준이 언제나 공평한 건 아니다.
심지어 남궁세가 같은 세가는 모용세가나 진주언가처럼 수많은 가솔들이 딸려 있고.
또한 세가 간의 동맹, 분가 간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그러니까 괜히 ‘민영화된 경찰’이 아니지.
양민들의 고혈을 짜낸 놈이지만 이러한 이해관계 때문에 죽이지는 못하고 물러나라고 경고 선에서 끝내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본가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힐 수가 없는 경우, 다른 분가에 하청을 줘야 하는 일도 생긴다.
그 분가가 일을 잘 처리할까?
잘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돈 받고 놓친 척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법기관이 아닌 거지. 민영화인 거지.
그나마 사천당가가 동맹이고 나발이고 사람 새끼가 아니다 싶으면 머리통 터뜨리고 다닌다고 하나, 백린의각 진천희처럼은 못한다.
진천희는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고.
심지어 제갈세가는 이미 멸종 직전의 혼자 남은 한반도 호랑이 같은 상태고.
그 호랑이는 혼사를 치러 자손을 볼 의욕도 없으시다.
이런 상황에서 가솔이 어디 있고, 분가가 어디 있겠나.
심지어 동맹인 오륜회도 진천희 성질을 잘 아는지라 강소성에서는 어지간하면 작업 안 한다.
그러니 다 쥐어 패고 있는 셈.
‘생각해보니 남궁세가에서 못하는 수준까지 일을 처리하고 있는 거군.’
진천희가 물었다.
“남궁세가 쪽에서 사람을 많이 보낸 모양이군요.”
“네네! 물론 강호제일의 진법가는 제갈세가지만 각주님과 소각주님 모두 바쁘시니까요. 대신 남궁세가가 오게 되었으니 그쪽도 기쁘게 하고 있습죠.”
강호인들을 위한 뇌옥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감옥과는 달랐다.
내공을 폐하거나 제압하고서 가둔다고 해도, 이놈들은 참으로 기가 막히게 탈옥을 시도하니까.
그뿐인가?
동료를 구출하겠답시고 외부에서 담을 넘기도 한다.
그런 놈들을 일일이 막아내고, 죄수들의 탈옥을 막기 위해서는 보통의 방법으로 뇌옥을 건설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강호인을 위한 특별한 뇌옥은 기관장치나 진법이 들어가야 했다.
제갈세가가 강호 제일의 진법, 기관장치의 대가인 것이야 강호가 전부 아는 사실이지만.
문제는 제갈세가는 몰락했다는 점이다.
가문의 구성원은 제갈린 한 명. 거기에 직전제자인 진천희 정도.
그러니 뇌옥의 건설 의뢰를 맡길 수 없는 것!
그래서.
당금 강호에서 기관장치 및 진법 공사의 으뜸 업체가 누구냐 하면…….
바로 남궁세가다.
일전 패천무상신공 비급과 비동을 둘러싼 일에서도 남궁세가의 진법과 기관장치의 대가가 와서 비동의 함정을 파훼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관아에서는 강호인 특수 뇌옥을 지을 때 남궁세가를 부른다.
확실한 일처리가 일품!
‘남궁운이 작심하고 사람을 보낸 모양이군.’
진천희가 빡 돌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짐 싸서 보내버린 모양이다.
그의 아우가 그 정도로 진노하는 일은 흔치 않기에.
“과거 주왕부에 강호인 전용 뇌옥을 설치했던 적이 있어서, 그것을 더욱 개량해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요!”
설치하는 건 남궁세가인데, 자랑스러워하는 건 관원이다.
하긴 그도 그랬다.
관무불침이 말이 관무불침이지, 포졸 입장에서는 무력감도 컸을 테니까.
진천희가 물었다.
“임시 뇌옥의 죄수들은요?”
“보건별가께서 제안하신 죄수 활용 계획 때문에 아주 좋습니다요! 그럼요. 죄인 놈들도 밥 먹고 싶으면 일을 해얍죠!”
‘음. 잘 굴러가고 있군.’
그랬다.
죄수 활용 계획.
죄수들에게 용역을 부과하여 그 능률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정책.
무급.
일을 안 하고 태도조차 불량한 죄수.
반성을 하지 않으니 멀건 죽 한 그릇으로 때우게 한다.
스승님께서는 ‘희야, 그냥 굶기지 그러니. 밥값도 세금이란다.’ 하셨지만, 한국인으로서 완전히 굶기는 건 좀…… 그렇다. 그냥 법대로 사형을 시키면 시켰지.
일급.
그럭저럭 일을 하고 있는 죄수다.
고깃국에 밥을 준다. 반찬은 없다.
이 또한 스승님께서. ‘희야.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고깃국까지는 죄수에게 너무 호사 아니니?’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이 또한 한국인의 자아가 노동을 했으면 고깃국은 주고 부려 먹어야 한다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급.
온 근육을 다하여 일류 토목 장인처럼 일을 해댄 자.
이분들은 고깃국에 밥, 세 가지 반찬이 딸려온다. 일주일에 한 권 정도의 협객 소설을 공급해준다.
이번에는 스승님도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일류 토목 장인의 용역비를 생각하면 이쪽이 더 싸겠구나.’ 하면서.
관인이 말했다.
“죄수 놈들이 경쟁이 붙었는지 서로 더 일하려고 싸울 정도입니다. 아, 밥으로 등급 나누는 건 치사하지 않냐고, 약간 짐승 길들이는 것과 비슷하다며 욕하는 놈도 더러 있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