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5
제 955화
진천희는 황구에게 작아지라고 명하고는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컹!
황구는 작아져도 엄청나게 무겁지만, 그래도 진천희의 외공도 보통은 아니었다.
이놈을 머리에 올려두기에 충분하다.
“간다!”
진천희는 곧바로 모산파에서 배운 술법을 쓰고는 경공을 활용해 강을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길게 이어지는 수면 위로 청년의 모습이 마치 제비의 활공과 닮아 있었다.
바람처럼 달리는데도 수면에는 출렁임 하나 없었고, 황구는 그런 진천희를 느끼며 눈을 감는다.
컹-
기분 좋다.
물론 직접 달리는 게 가장 즐겁지만 이렇게 남이 대신 달려주는 것도 개는 싫지 않았다.
그렇게 진천희의 잔상이 멀어지고, 멀어지더니, 마침내 섬에 도착했다.
찰박-
작은 물소리만이 그곳에 의원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섬 전체가 엉망진창이다.
큰 해일이 있었다던데 그 탓인가 수백 년 된 거목까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엄청나군. 무슨 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아.’
진천희는 어렵지 않게 이게 자연재해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구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황구야. 찾아.”
컹!
황구는 납작하게 엎드려 사람 냄새를 맡는다.
거대한 섬.
얼핏 봐서는 사람의 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그때 바람이 황구가 있는 쪽으로 불었다.
젖은 코가 무슨 냄새라도 맡은 걸까.
황구가 빠르게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는 섬인데도 절벽이며 원시림이 울창했다.
그리고 그 끝, 산 뒤에 가려진 부두가 보였다.
‘와, 각도 참 절묘하군.’
산으로 이루어진 절벽 안쪽에 숨겨져 있는 형태라서 처음부터 알고 들어가지 않으면 모를 곳이었다.
수파채의 수채.
헥헥헥-!
황구가 간식을 요구한다.
진천희는 빠르게 육포를 꺼내 황구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냥 육포도 아니고 오리 육포, 비싼 향신료로 오랫동안 고온 건조한 녀석이다.
첩첩첩첩.
개는 행복해졌다.
이 앞에 있을 인간들의 참상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입 안에 들어간 육포만이 행복의 상징이었다.
꼬리를 붕붕 흔들며 열심히 육포를 뜯는다.
그러고는 다시 꼬리를 흔들며 묻는다.
컹!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는 질문.
“어떻게 하기는. 전부 밀어버려야지.”
컹컹!
우드득-
황구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본래의 흉악한 모습.
그럼에도 얼굴은 동글동글하다.
진천희는 황구의 찐빵 코를 꾹 누르더니 볼살을 마구마구 잡아당겼다.
헥헥헥!
기분 좋단다.
* * *
수파채의 수적.
그들은 모닥불 옆에서 마작 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본래 마작은 탁자 위에서 하는 거지만, 이렇게 대충 바닥에 펼쳐놓고 하는 것도 진미는 진미다.
그중 한 놈이 이마를 찌푸리며 마작 패를 노려보고 있자, 다른 세 명이 흐흐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마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X발, 니들 나 하나 두고 사기 치는 거 아녀? 패가 이렇게 나쁜 게 말이 돼?”
“지가 못 뒀으면서 사기라 하는 거 봐라.”
그때였다.
컹컹컹컹!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일이긴 했다.
이 섬에는 마을이 없으니까.
누가 개를 배로 실어 나르지 않는 이상에야…….
“누가 개 데리고 왔나?”
“그러게.”
다들 마작에 집중하느라 대충 대답한다.
그 순간.
콰과과과과광!
그들 옆에 있던 목조 건물이 폭발했다.
박살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대들보 하나까지 가루가 되어 튕겨 나간다.
그야말로 ‘대폭발’!
그 속에서 거대한 개가 그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거대한 얼굴을 들이민다.
동그란 얼굴.
왕~!
한 놈을 바로 입에 넣고는 터그 놀이를 하듯 양옆으로 흔들다가 던진다.
다른 한 놈은 잔해를 맞고 기절.
남은 하나는 황구가 던진 놈에게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제정신인, 유일하게 싸울 수 있는 놈이 마작 패를 던진다.
가장 더러운 패가 나왔던 놈이었다.
“거대한 개다!”
“뭐냐! 영물이냐!”
“요, 요괴?”
수적의 외침에 자고 있던 다른 수적들이 부랴부랴 바지춤을 추스르며 밖으로 나온다.
모두가 병장기를 하나씩 뽑아 들고는 외쳤다.
“요괴면 뭐 어떠냐!”
“오늘 개고기 맛 좀 보겠구나앗!”
밖으로 나온 수적들의 눈이 순식간에 붉어지고.
그와 동시에 흙먼지 속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다.
“오우, 눈이 붉으시네요. 예상대로 혈선교는 아니고… 마공이시죠?”
“개, 개가 말을 한다!”
따악!
뒤에 있던 놈이 앞의 수적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바보 놈아.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거다.”
역시 마공 때문인가.
강호인이라면 전투를 앞두고 으레 있을 긴장감이 없다.
한마디로 그들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두려움조차도 마공에 먹혀 거세되었다고 봐야겠지.
“목소리가 꽤 좋은데?”
“좋기야 하지만 사내놈 목소리 아니오.”
“사내면 뭐 어떠냐. 내가 예전에 남…….”
그 순간, 황구의 앞발이 마치 산처럼 무너져내린다.
콰광!
뼈가 부러지며 순식간에 한 놈이 바닥에 쓰러진다.
죽지는 않았다.
더 힘을 주고 싶지만 죽이는 건 주인이 별로 안 좋아하니까.
개는 놈이 사지가 부러져 기절한 것을 확인하고는 앞발을 치운다.
“오, 황구야. 잘했어, 잘했어. 이제 힘 조절도 잘하는구나?”
컹컹!
“물론 흥분하면 본성이 나오는 것까지는 어쩔 수는 없겠지만 이게 어디냐.”
진천희가 황구의 등 위에 서서 놈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사마현이 선물했던 칠은금이 하나 들려 있었다.
“개… 개? 개애애애!?”
“그리고 저 미모……?!”
“칠현금?”
이윽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수적들이 바로 눈치챈다.
“천하일광인가?!”
“크하하핫! 오늘 운수가 좋군. 천하일광의 피를 마셔보겠구나!”
‘……음, 역시 마공에 중독된 놈들 상대하는 것과 혈선교 신도들 상대하는 건 좀 다르긴 하네.’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칠은금을 부드럽게 만진다.
‘좋아. 이번에 새롭게 경지에 올라 의념을 볼 수 있게 되었지. 그렇다면 의념을 음공에 실어 현을 퉁기게 되면 어찌 되려나.’
디리링-
그 순간, 진천희를 중심으로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뻗어져 나왔다.
콰과과과과광!
순식간에 수채의 바닥과 벽이 단번에 개박살 나는 게 아닌가?
“크아아악!”
“미친, 미친, 미친, 미친!”
“일광이 새로운 무림지보를 들고 왔다!”
그냥 사마현이 선물한 칠은금이다.
단단하고 오래되고 과거 음공 고수가 썼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제는 소리에 의념을 담아 쏘는 경지에 이르렀을 뿐.
진천희는 볼 수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음공에 의념이 실리니 마치 거품 방울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닿는 모든 것들을 박살 내는 것을.
놈들의 의념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복잡하게 엉키는 것을 봐서는 이 중에 큰 고수는 없다.
의념을 보는 것은 둘째 치고, 의념을 제대로 검 끝에 만들 수 있는 자도 거의 없다는 뜻.
‘그렇구나. 이게 현경의 경지인가.’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진천희는 화경과는 아득히 차이가 나는 곳까지 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니 더 화가 났다.
‘그렇군. 결국 그들 본인도 마공에 의지하면 안 될 정도로 약하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자들을 핍박하고 피를 빨아먹는 건가.’
미친 세상이다.
진천희는 음공을 담아 말했다.
“여러분들. 저는 몹시 슬픕니다. 여러분들은 사지 멀쩡하게 살면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갈취하고, 그러고도 반성 하나 없이 마공까지 연마하였으니. 이는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 할 수 있겠네요.”
정론이다.
허나, 사람이 정론대로 살았다면 이 강호에 흑도는 없다.
“하! 천하일광이라더니! 진짜 미친놈이네? 야, 새끼야!”
“그래서 어쩌라고! 네가 지금 혼자 여기 와서 살아 나갈 성싶냐!”
“네놈의 개는 끓여 먹고. 내 녀석은 우리 노리개로 삼아 주마–!”
우하하핫!
껄껄껄!
모두가 웃는다.
마공에 심취한 붉은 눈이 삼류 공포 영화 같다.
지독한 고양감. 사람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힘에 취해 웃고 있는 자들을 진천희는 천천히 관조한다.
‘단순히 마공 때문은 아닐 수도 있어. 이자들은 힘과 내공이 강해졌을 뿐, 무학은 없으니까. 무학이 없어 힘의 격차도 짐작이 가지 않는 거야.’
지난번 만났던 검패문과 도패문의 싸움, 그곳의 장로들은 진천희와 자신들의 격차를 깨달을 수 있는 눈이 있었다.
그렇기에 어린 제자들을 말릴 수 있었던 거고.
허나, 이 중에 그런 눈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물론 마공이 괜히 마공은 아니다.
사람의 피를 빨아 얻은 마공으로 인해 검패문이든 도패문이든 찢어 죽일 힘은 있을 터.
그러나 무학에 대한 고찰이 없으니 타인의 경지도 알아볼 수 없다.
‘그래. 죄다 쁘띠 언정무들이구나.’
그래도 언정무는 쟤들보다는 착했다. 나름대로.
피식.
왜일까, 웃음이 나온다.
여전히 가슴에 분노는 자글자글하지만 입은 웃음이 나왔다.
마공으로 미친놈들 아닌가.
나도 좀 같이 미치면 어떨까.
“저의 슬픔을 담아. 여러분들께 한 곡 들려 드리겠습니다. 첫 곡. 파헬벨(Pachelbel) 캐논 변주곡.”
“뭐? 이 미친노…….”
클래식이 괜히 클래식이 아니다.
진천희는 미친 듯이 칠은금을 퉁기기 시작했다.
기묘하게 분명 칠현금인데 기타가 섞인 듯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아. 선물한 건 잘 쓰고 있단다.’
진천희를 중심으로 의념의 파도가 쏟아졌다.
진천희는 클래식이라 주장했지만 음은 어째서인지 록 스피릿이었다.
* * *
클래식은 비싼 스피커로 들어야 한다.
지구 별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 친구는 돈이 많았다. 정확히는 그 친구의 부모님이 돈이 많으셨지.
그 집의 부모님은 모두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씩 있었고, 때때로 가족끼리 함께 연주를 했다.
그 친구는 바이올린을 켰다.
한남동 집에는 수천만 원짜리 스피커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죄다 모양이 이상했다.
친구 말로는 인테리어를 신경 썼다고 하는데, 진천희 눈에는 뭔가 SF 영화에 나올 법한 우주선을 닮은 것 같았다.
거기서 클래식을 들으니 좋았다.
그렇다고 영혼이 자르르 울리는 감동 같은 건 없다.
그냥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서 몇천 원짜리 이어폰으로 그 노래를 들으니 뭔가… 모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친구처럼 비싼 걸 사는 건 무리이니, 이어폰 대신 헤드폰을 쓰고 헤드폰도 인터넷 카페를 찾아서 가성비 좋은 라인 추천받아 듣는 게 전부.
그 정도만 해도 꽤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직접 연주를 듣는 것보다는 못하긴 하지.’
진천희가 자아내는 음이 의념이 되어 퍼져나간다.
‘크헤헤헤. 바로크 맛 좀 봐라.’
이 클래식이 나중에는 8090 세기 말 서브 컬처 장르에서도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걸로 클래식 입문하는 놈도 많았다고 한다.
강호에서 바로크 연주하면서 즐거웠다.
뽕짝기 있는 가요도 좋아하지만 캐논은 또 캐논만의 맛이 있다.
왜일까, 진천희는 캐논이 전부터 좀 슬픈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경쾌함도 담겨있지만, 사람을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념이 닿자 물리적인 파도가 터져나갔다.
‘그래. 파헬벨 씨도 강호에 협을 실천하려고 캐논을 연주한다 그러면 그러라고 하시겠지.’
콰광, 콰과과과과과광!
천하일광과 그 영물인 개가 서 있는 자리만이 멀쩡하고.
그 주변으로 원형의 음공기파(音功氣波)가 번져 나오며 건물 바닥과 땅 그리고 사람을 갈아 버리기 시작했다.
부르르.
진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폭발하듯이 터져 나간다.
나무 바닥은 파편화되어 박살 나 흩어지고, 사람은 전신을 두드리는 진동파에 기혈이 뒤틀리고 오장육부가 흔들리며 피를 토해야 했다.
그 기파는 점점 범위를 넓혀 간다.
소리가 마치 물방울처럼 쏟아진다.
경쾌한 듯, 잔잔한 듯, 마치 수면 위를 만지듯 이어지는 소리들이 의념이 된다.
흡사 진천뢰가 수천 발 터진 것처럼 신들린 듯한 진천희의 연주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단번에.
보이지 않는 믹서기 혹은 드럼통 안에 끼인 무언가처럼 폭발하여 비산했다.
“이게, 대체! 이게 어떻게 사람이 할 수 있단 말이냐!”
“망할, 죽여. 죽여라!”
“크아아악! 일광이 사술을 쓴다!”
마공을 쓰는 놈들이 하나같이 경악하여 일광의 사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