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58
제 958화
“……모르겠다.”
“…….”
이게 끝이다. 진짜 모르는 눈치.
‘보통은 자신이 당한 게 뭔지 불안에 떠는 게 정상 아닌가?’
쿨하다. 주인공.
아주 그냥 엄동설한의 만년설 같다.
이게 무협 주인공의 짬밥인가.
‘같은 주인공도 하륜이는 요즘 소설 주인공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긴 하지.’
협에 살고 협에 죽는 옛날 스타일 주인공이시다.
그래서 독자로서 더 마음이 갔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란 프라이를 여하륜의 죽 그릇에 덜어주었다.
그러고는 양념을 조금 더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반숙했으니까 노른자 한 번에 먹어. 그게 더 좋아.”
효과가 좋다는 걸까?
여하륜은 잘라 먹을 것도 없이 마시듯 계란 프라이 두 개를 삼킨다.
극상의 맛.
‘영물의 무정란이 이렇게 맛있는 건가?’
아니면 형이 뭔가 한 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단전부터 시작되어서 손상된 혈도가 치유되는 게 느껴진다는 것.
“약재 가루에 영단 가루에, 내 진기도 좀 넣었다. 귀한 거야.”
“그래 보이는군.”
평생 못 잊을 맛이라는 건 확실했다.
다시 먹고 싶었다.
그건 결코 천뢰응의 무정란이기 때문인 것도 아니고, 약재 가루, 영단 가루가 들어갔기 때문이 아니다.
죽고 살아난 이후 처음 먹는 음식이기 때문.
아마 형이 준 게 그런 호사스러운 게 아니라 어디서든 볼 법한 풀죽이라도 못 잊을 터.
“어디서 떨어졌는지는 그래 모른다 치고, 뭐랑 싸운 거야?”
“…사람이 아닌 것들.”
“짐승?”
“…짐승도 아니었다.”
“……?”
여하륜은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살아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이물(異物)이라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검고, 끈적이고, 악의로 차 있고, 하나같이 독을 품고 있고.”
“크기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발아래 잡풀조차도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었지.”
“……그런 곳이 있다고?”
‘지옥’인가?
지존천마에도 그런 곳은 나온 적이 없었다.
“으음…….”
진천희는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가 박살 나서 별게 다 나오나 보다.”
그래. 하륜이가 맞다.
백날 고민해봤자 의미 없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인정하고 나니 상쾌해졌다.
그렇게 진천희는 여하륜과 두런두런 대화를 했다.
“그러면 너는 왜 여기에 와 있어?”
“본교의 간자에게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서 왔었다. 그것 때문에 분쟁이 있었지.”
“오우…! 그랬구나. 그거 혹시 마공을 전파하라는 그런 명령이니?”
이번 일이 천마와 관계가 되어 있는 건지 마종육가가 독단적으로 벌이는 일인지 알아야 했다.
여하륜은 쉽게 해답을 알려주었다.
“아니. 본교로 복귀하라는 명령이었다. 다만 그 녀석이 형에 대해서 운운하길래 버릇을 고쳐 주었지.”
‘마종육가일 가능성이 더 높긴 하군. 이건 지존천마와 같네.’
여기서 결론을 내리면 편해질 터였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도, 당사자인 여하륜의 증언을 들었을 때도 그랬으니.
‘무엇보다 지존천마 원작에서도 그런 흐름이었고.’
제대로 된 책사라면 그리 판단하는 게 정상이니까.
하지만 진천희는 왠지 완전히는 믿지 않았다.
‘모르지. 천마가 마종육가를 위해 움직이는 간자를 이용해 자신의 일도 함께 처리했을지도.’
진천희는 천마를 믿지 않았다.
천마, 그녀가 과거 강호를 상대로 심계를 걸었을 때를 생각하면 특히나.
그때 수많은 책사들이 그녀가 낸 귀계에 혀를 내두르며 무너졌다고 한다.
‘그냥 노파심일지도 모르지만…….’
진천희가 생각하는 동안 여하륜은 진천희가 건네준 차를 천천히 마셨다.
후룹-
“…맛있군.”
약 향이 났다.
이 또한 내상을 다스리는 약초를 쓴 모양이다.
대체 자신이 기절한 동안 이 형은 뭘 한 걸까.
무엇 하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동생을 위해 전부 다 준비해 놓았다는 뜻.
천살성을 잠재우고 그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형은 그걸 했다.
명치가 따뜻해진다.
“그러는 형은 무엇 하러 여기에 온 거지?”
“마교에서 마공이 무분별하게 풀리고 있거든. 일단 주범은 마종육가 같은데 공범에 천마도 끼어있을 수도 있고……?”
“……?”
“아, 마공 돌아다니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어?”
“요즘 마공을 익힌 자들이 보이긴 했지만, 본교의 간자거나 아니면 작전의 일부라 생각했다.”
역시 거기까지는 짐작 못 했던 모양이다.
“본교로 돌아가서 알아봐야겠군. 형은… 본교의 행사를 막을 건가?”
그 말에 진천희가 답했다.
“막을 거야.”
“그런가. 그렇다면 나도 본교에서 힘을 써 보겠다.”
“무리하지 마. 알았지?”
“알고 있다.”
여하륜은 형과 오랫동안 대화했다.
그러다가 다시 깜빡 잠이 든다.
‘상처는 천살성 특유의 재생력으로 치료되었다고는 해도 내상은 아직 남아 있으니…….’
거기다 내공을 회복하려면 휴식이 필요했다.
“하륜아. 일단 화현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음.”
여하륜은 잠에 취한 상태로 작게 동의한다.
보아하니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모양이었다.
소교주 싸움을 하면서 노숙이 일상이 되었겠지만 이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주변에 부하들도 없고.’
일카나를 비롯해 원래라면 여하륜의 수족이 되어줄 자들이다.
전멸을 한 것 같지는 않으니 어떤 이유로 잠시 따로 움직이게 된 모양.
‘결국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하나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하륜이의 몸에 남겨진 잔흔들은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왔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천살성의 폭주까지…….’
여하륜 자신도 막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씩 인간성을 뺏기고 있다.
필체가 어느 순간 각져있을 때부터 약간 짐작은 했으나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기분이 다르다.
‘하륜이는 점점 인간성을 놓고 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자신은 사람이라 되뇌어도 감각을 조금씩 잃어가고, 먹는 즐거움도 없어지고, 심지어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인생이다.
마음이 계속 마모되어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이 끝에는 뭐가 있을까. 등선인가.’
진천희는 지존천마의 끝을 떠올린다.
이윽고 의원은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하늘로 터뜨렸다.
퍼엉!
굉음과 함께 푸른빛이 밤을 수놓는다.
먼 곳. 별 사이 수평선에 그림자가 지는 게 보였다.
관군의 배가 신호를 받고 접근하고 있었다.
* * *
하륜이를 만난 지 이틀이 지났다.
흑설묘는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서 여하륜의 냄새를 맡더니 주변을 맴돈다.
웨옹-
이 녀석은 내킬 때는 곁에 있다가 여하륜이 싸울 때는 귀신같이 어딘가로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다가 또 안전해지면 다시 돌아오고.
여하륜의 말로는 흑설묘도 상당한 영물이라 싸우려면 싸울 수야 있겠지만.
여하륜을 그럴 만한 주인으로 아직 인정하지 않은 것 같단다.
‘음, 황구랑은 다르네. 아니면 하륜이도 직접 세 끼 밥해다가 계속 먹이면 마음이 바뀌려나?’
진천희는 그런 흑설묘에게 육포를 던져주고는.
‘바람이 기분 좋다.’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때보다는 별은 어둡지만, 주변은 밝다.
화현에서 가장 비싼 객잔의 별채를 빌렸으니까.
진천희가 이틀 동안 한 것은 아우를 잘 먹이고 잘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오감이 돌아와야 한다.
삶의 즐거움이 없다면 인간은 금방 인간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니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향을 맡고, 좋은 소리를 듣게 하는 것.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보안이 잘 되는 별채가 필요했다.
여하륜의 신분을 생각하면 특히 더욱 그렇고.
디리링-
진천희는 현을 켜는 것을 멈추고는 간단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가 선물한 암향비파는?”
“아, 그건 두고 왔어. 이건 음공 쓸 때 최적이라 들고 온 거고.”
어째 현이와 하륜이가 준 선물이 겹쳤다.
덕분에 형이 자신이 선물한 게 아닌, 사마현이 선물한 걸 들고 온 게 신경 쓰이는 모양.
‘아이고, 나도 너 만날 줄 알았으면 비파 들고 왔다. 이놈아!’
여하륜이 물었다.
“형은 이제 돌아갈 건가?”
“그래야지.”
짧은 만남이었다.
이별 역시 짧을수록 좋겠지.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말했다.
“이번에 일이 커져서 할 게 많아. 이제부터는 마교까지 상대해야 할 테니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나름대로 깨달은 것도 있고.”
“무슨 깨달음이지?”
“앞으로 내 앞에서 싸우는 놈들은 대화보다 쥐어 패는 게 더 빠르다는 깨달음?”
“평화를 위한 패도인가?”
“응. 이 강호에서는 흔한 깨달음 아니겠냐.”
그 말에 여하륜이 피식 웃었다.
“아니. 대화 방식이 다르다. 사람들은 입으로 대화하지만 강호인은 칼로 대화하니, 어찌 보면 그쪽 ‘대화’가 더 맞는 대화인 셈이지.”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속이 터져서 그냥 성질대로 해버리기로 했어.”
“심마를 관리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리고 계속 싸울 것 같으면 그냥 죽이지 그러나?”
“어이고……. 의원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이 동생 놈이.”
“형은 여전히 무르군.”
여하륜은 붉은 눈을 감더니 말을 이었다.
“……무르기에 여전히 강한 거고.”
무슨 뜻일까.
알 수는 없지만 왜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진천희가 물었다.
“너는 어쩌려고?”
“몇 가지 임무가 더 남아 있으니 그것부터 마저 해야지. 간자에게 복귀 명령을 보내는 것은 사실 가벼운 임무였을 터인데…….”
“그러고 보니 그런 사소한 일은 부하를 보내지 않아? 네가 직접 올 일은 아닌데.”
“……그렇지. 하지만 다들 바쁘니까.”
“제법이네. 네가 사람도 챙기고. 이야, 내 동생 많이 컸다!”
“형은 참…….”
그렇게 두 사람이 작별의 대화를 유쾌하게 나누는데, 그때 황구가 누워있다가 귀를 쫑긋 세웠다.
황구는 허공을 향해 짓는 대신 고개를 들어 한 곳을 바라보았다.
“적인가?”
“응. 하륜아. 준비해.”
적의 살기가 커져 간다.
살갗이 따끔거리는 순간을 계속 노리다가, 한순간 여하륜이 천장을 부수며 뛰어올랐다.
그야말로 무협 주인공의 포스였으나 소시민 진천희는 생각했다.
‘아이고. 객잔에 천장값 물어줘야겠네.’
진천희도 함께 뛰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복면을 쓴 자들이 달려온다.
여하륜이 설마하니 천장까지 박살 내며 올라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인지 놈들의 공격이 반 박자 늦어졌다.
그것은 썩 괜찮은 일이었다.
여하륜과 진천희는 서로 맞추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암기를 쳐냈다.
타타타탕!
빙정검이 만들어낸 한기와 새카만 마기가 공기를 물들이며 순식간에 피어올랐다.
형이 만들어낸 일곱 개의 눈꽃을 보며 여하륜이 여상하게 말했다.
“형의 경지가 더 높아졌군.”
“너도. 암기를 쳐내……는 게 아니라 빨아들이고 있구나.”
수십 개의 암기가 여하륜의 검은 강환에 빨려 들어간다.
마치 태양을 공전하는 별처럼 여하륜의 강환을 중심으로 암기들이 회전한다.
여하륜은 복면인들을 쓱 훑어보더니 말했다.
“무공을 보니 본가의 교도들이로군.”
“…그래…. 아무리 봐도 그냥 오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네.”
“다른 소교주 휘하의 놈들일 거다.”
이거, 휘말려 버렸군.
‘차라리 잘됐나?’
소교주 쟁탈전에서 암습은 마치 약방의 감초 같은 것.
상대 소교주의 목을 따기 위해 마종육가끼리도 얼마나 암살대를 보내던가.
심지어 마종육가의 핏줄도 아닌 여하륜은 더욱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터.
“형. 미안하다. 나 때문에 작별을 미루게 되었으니.”
왜일까.
분명 상황이 귀찮게 돌아간다는 말투였지만, 여하륜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한동안’은 계속 함께 움직여야겠네.”
진천희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으나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희미하게 피었다.
‘이별이 아쉬웠던 건 피차일반이었나.’
만남이 있다면 이별도 있는 법이라지만, 이 넓은 강호에서 언제 다시 서로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에.
진천희.
그의 푸른 안광이 적들을 하나씩 직시한다.
‘이 수십 명이 모두 초절정 고수라는 게 놀랍긴 하네.’
화경은 아니라고는 하나, 이만한 인재를 고작 쓰다 버릴 살수로 쓴다는 게 충격이다.
‘역시 마교는 밭에서 살수를 캐오나 보다.’
중원에서 황제가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그걸 다 씹고 십만대산에 자치국 비슷한 거 만들 수 있는 놈이 되려면 저 정도는 해줘야 하는 모양.
“형. 그리고 아마 여기서 싸우면 양민들이 많이 죽거나 다칠 거라는 것도 미리 사과하지.”
그건 맞다.
이만한 놈들과 붙는데 주변이 개판이 안 날 수가 없다.
“뭐, 사과할 것까지야. 황구야!”
컹컹!
진천희의 신호에 따라 황구는 순식간에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진천희가 잽싸게 황구의 등에 올라탄다. 그와 동시에…….
덥석!
“음?”
여하륜의 뒷목을 붙잡았다.
“튀어. 인마!”
컹, 커컹!
황구가 지붕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흑설묘도 도망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황구의 털 속에 쏙 숨는 게 아닌가?
힘을 빌려주진 않지만 동행은 할 모양이다.
“하륜아. 쏴!”
뭘 쏘라는 건지 말하지 않았는데도 여하륜은 자연스럽게 방금 모은 암기들을 전방으로 쏘아냈다.
촤좌좌좌좍!
“형?”
“네가 강한 건 알고 있지만, 꼭 여기서 피를 봐야 할 건 없잖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살수들이 휘파람을 분다.
삐이이이익!
쫓으라는 뜻.
진천희는 여하륜에게 말했다.
“이 형이 혈사가 터질 때마다 무인을 패서 말리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너도 보이는 족족 다 죽일 필요는 없다.”
“두 번은 센다.”
거기다 주영영은 죽여 버렸을 시, 남궁세가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셋까지 세어주었다.
지금 남궁세가의 가주는 형과 많이 친하니까.
“그래. 그렇긴 하지만. 장소를 고르는 것 정도는 하는 게 좋다는 거지.”
강한 놈은 이게 문제다.
어차피 죽일 놈을 상대로 무슨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겠나.
냅다 주먹 꽂고 직진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양민들이 휘말리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순간, 진천희 입에서 익룡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쫓아오던 살수 몇이 귀를 막고 피거품을 뿜었다.
“꼭 이게 도망치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잘만 도망치면 멀쩡한 사람도 화딱지가 나거든. 크헤헤헤헷!”
형은 황구 위에서 살수들을 약 올리기 시작했다.
“…형?”
심마로 혀를 깨물고 엎어지는 살수들을 보며 여하륜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봐도 이건 죽이는 것보다 더한 짓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