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62
제 962화
수국에 젖다, 수국화(Hydrangea)
오늘도 평화로운 백린군의 아침이 밝았다.
그런 백린군의 중심에 자리한 백린의각.
휴화산이 있는 이 지역은 온천이 나오기는 하지만 본래는 그리 인기 있는 지역은 아니었다.
그런 곳에 백린의각이 자리한 이후로는 아주 크게 융성하여 지금은 강소성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가 된 지 오래.
백린의각이 자리한 휴화산을 둘러싼 도심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엄청난 숫자의 여행객과 환자와 그 보호자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또한 제국 내에서 식문화 돌풍을 일으키는 백린객잔 본점이 자리한 곳이기도 했기에.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숙수들의 피나는 노력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백린의각의 내부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따라 백린의각의 유일한 후계자, 소각주 진천희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좋아! 최상급 찹쌀을 곱게 불리고 오행진기와 함께 절구에 찧어서 만든 떡 준비 완료! 그리고 스승님이 최근에 매운 것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으니까 비장의 마파두부를 만들어 드려야지. 마침 콩을 직접 갈아 만든 두부도 있으니까 그것도 준비 완료!”
진천희의 부산스러운 행동을 보면서 옆에서 내총관 유호는 혀를 찼다.
“매년 그걸 꼭 챙겨야 하는 겁니까?”
“어허, 유호. 이건 당연히 챙겨야 하는 거야. 생일 안 챙기면 안 되듯이 스승의 날도 꼭 챙겨야 한다구!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몰라?”
“글쎄요. 그걸 그렇게 써먹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도련님은 본인 생일도 거의 챙기지를 않으니, 결국 주인님이 나서서 직접 챙겨 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반대로 그런 스승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생일을 챙겨드리니까 피차 좋은 일 아닌가? 그리고 오늘 같은 ‘스승의 날’도!”
“그게 무슨……? 혹시 ‘제자의 날’ 그런 건 없습니까? 그러면 주인님도 도련님을 챙겨 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건 들어본 적 없는데? 아, 내가 있던 곳에 어린이날이라는 게 있긴 한데. 나는 어린이가 아니니까…….”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는 진천희를 보면서 유호는 ‘어린이날은 또 뭡니까?’라든가, ‘당신도 내 앞에서는 어린이인데 말입니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 같은 존귀한 존재가 조그마한 필멸자 앞에서 나이 자랑을 하기에도 웃기고.
또, 저 괴상한 인간의 이상행동이야 언제나 있었던 일이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스승의 날인지 뭔지 챙기는 일에 저는 안 도와 드릴 겁니다?”
“뭘. 이미 도움 많이 받았는걸~ 게다가 유호를 위해서 만든 요리도 있으니까 기대해!”
“네이네이.”
유호는 그리 대답하고는 주방을 나간다.
그러면서 진천희가 말한 ‘스승의 날’에 대해서 생각했다.
‘애초에 화 대륙에는 ‘스승의 날’이라는 게 없지 않나?’
나중에는 생길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것으로는 공자 같은 옛 선현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정도?
하지만 엄연히 말해 진천희가 말하는 ‘스승의 날’과는 또 많이 다르다.
때문에.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행사로 지정해서 매년 챙기는 것은 제국 내에서 오로지 백린의각.
그것도 진천희 혼자뿐.
혼자여도 상관없다.
그만큼 스승님께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까지 만든 거니까.
제갈린이야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기념일을 챙기는 제자를 보면서 그저 ‘이놈은 원래 이러지.’ 하는 눈으로 부채로 입을 가린 채로 웃을 뿐.
다른 의각원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소각주님이 각주님에게 지극정성이다.’라든가, ‘저게 제대로 된 효도지!’라는 식으로 반응하고는 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아예 기념일까지 정해서 지극정성으로 스승님을 모시니, 상의원들은 감동까지 한 모양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소각주님에게 각주님은 스승이자 부모 아닌가.”
“음, 일 년에 두 번 모시고 싶은 것도 이해가 가네.”
“우리 애들도 이런 걸 좀 배우면 좋겠구만……. 커흠!”
상의원들은 호시탐탐 ‘스승의 날’이 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동안 잘 키운 제자 놈들이 이런 거 기념해서 찾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은근히 소각주님이 챙기는 ‘스승의 날’이란 것에 대해 언급하긴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없던 ‘스승의 날’이 생기지는 않았다.
“소각주님이 이상한 일 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래도 좋은 의미를 가지고 하는 거니 그건 보기 좋네요.”
“…….”
혼자서 광인처럼 외치고 다니니 외로울 만도 하건만 진천희는 꿋꿋이 ‘스승의 날’을 기념했다.
이해하지 않아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니까. 그것만 전해지면 난 괜찮아.’
결국.
이것은 매년 일어나는 진천희의 이상한 의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였다.
-소각주님이 또 뭔가 각주님을 챙기나 보오.
-밥이나 좀 얻어먹으면 좋겠소. 허허허허!
-아, 나도 그러네. 그날 해주는 밥 하나는 천하일미 아니오?
반면 유호는 올해도 시작하는 ‘스승의 날’,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괜찮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아도.’
모르겠다.
저 인간의 마음 같은 건.
아득히 존귀한 것은 유일한 신관이 무슨 마음으로 올해도 이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즐겁다는 듯 홀로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역시 소각주님은 좀 별나다며, 호감은 있고 응원은 하지만 본질적인 공감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인생을 이 의원은 즐겁다는 듯 살고 있다.
‘……왠지 바람도 쌀쌀하군.’
유호는 그런 진천희를 뒤로하고. 주인인 제갈린에게로 향했다.
* * *
제갈린은 요새 팔자가 좋다.
우선은 그 지긋지긋하던 천형을 던져 버린 것도 있거니와, 여러 가지 과중한 업무를 이용해서 제자인 진천희를 의각에 붙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
물론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다른 문파 스승들이었다면 달랐을 터.
-이 녀석아! 옆 문파 뫄뫄의 제자는 산적 소굴을 털고 양민들을 구했다더라! 문파에서 무공 수련만 하지 말고 나가서 협행이나 좀 하란 말이다!
-이노무 자식은 하라는 무공 수련은 안 하고 왜 돈놀이를 그렇게 해! 네가 무인이냐, 상인이냐? 어! 무가에 태어났으면 무공으로 밥 벌어먹을 생각을 해야지!
-용봉지회에서 최소 본선은 가야 한다! 많이 안 바란다. 예선은 통과해야 문파의 면이 설 것이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같은 건 무가와 문파들에게 없다.
그들의 존재 의의는 당연히 무공의 강함과 명예 그리고 이권이다.
이권을 얻기 위해서 중요하게 여기는 수단도 결국은 무공.
즉, 칼밥이다.
무당권제께서 괜히 제자를 그리 키우는 게 아니고 많은 이들이 괜히 무당권제를 숭앙하는 것도 아니다.
그게 강호인으로서 근본이기 때문!
물론 백린의각은 무가(武家)가 아니라 의각(醫閣)이니 만큼 기준이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백린의각도 강호의 문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백린의각은 지금 강호에서도 보기 드문 거대하고도 강대한 조직이기도 했다.
실제로 강소성의 여러 굵직한 이권은 전부 백린의각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니까.
‘…스승이 제자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 뭐 잘못인가.’
그 때문에 진천희를 붙들어 놓으려는 그런 행위는 사실 다른 문파 사람들이 보면 기이하고 이상한 것이었으나, 제갈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의보(醫報)에 ‘내 제자는 천재라네~ 이번에 새로운 의술도 만들었다네~ 환자를 이만큼 살렸지롱~ 그리고 무공 고수 뼈마디도 점검해 줬는데, 십육대고수 아닐 거면 깝치지 마라~’ 등등의 사설을 마구 실어 대고 있었다.
-혈린 저 싸가지 없는 놈이 의보를 사적 홍보 수단으로 쓰고 있소!
-제자 자랑을 의보로 하는 놈!
-수틀리면 협박도 의보로 은근히 하고 있지 않소!
사실 의보는 돈이 많은 의각이 자신들의 명예욕을 고취시키고.
제국 전체에 ‘우리 의각은 이만큼 의술적으로 뛰어나다!’라고 주장하기 위한 선전문이기도 하다.
그런 것에 그런 내용을 써서 발행해 제국 전역에 뿌리는 제갈린의 행동은 모두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백린의각에 대한 신뢰도는 최고를 달리고 있지만.
그러니 제갈린이 배부른 호랑이-어디까지나 진천희의 시선으로-처럼 늘어져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당연히 그것 외에도 그가 이렇게 느긋한 이유가 있다.
온돌이다.
그랬다.
온돌이었다.
온돌이 있기에 더욱더 그는 나른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구음절맥에서 벗어났음에도 그의 애제자가 만들어준 온돌방은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이 때문에 진천희는 오래전에 ‘혹시 스승님의 몸에 K-국민의 피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는 것을 제갈린은 모르리라.
“차 가져왔습니다.”
“고맙네. 유 총관.”
“오늘도 누워 계시는군요. 최근에 너무 누워 계신 것 아닙니까?”
이 사내가 이렇게 평안하게 누워 있는 날이 있었던가.
제자가 의각에 눌어붙어 있는 이 짧은 시간.
제갈린은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한가하잖나. 요새 평생이 오늘 같으면 좋겠더군. 그리고 누워 있어도 할 건 다 하고 있다네. 천리전성도 있으니까.”
천리전성.
천 리 밖으로 소리를 내보낸다는 전음.
전음 중에서도 상위의 기술이므로, 절대 고수 중에서도 음공에 조예가 있는 이가 아니면 쓰기 어렵다.
‘그런 걸 주인놈은 애들 일 시킬 때 쓰는군.’
처음 이런 짓을 하는 걸 봤을 때 소름이 돋긴 했다.
이 백린의각은 제갈린의 영역. 진법 하나하나가 전부 그의 손안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이 의각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는 대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때문에 천리전성으로 업무 지시 역시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의각원들이 저런 것들을 준비하는 거군요.”
“그건 내 지시가 아니라네.”
호오? 이건 좀 흥미가 돋는다.
유호가 물었다.
“설마 저들 스스로……?”
“그렇지.”
“새삼스럽군요.”
“우리 희를 보고 배운 거겠지. 참… 좋은 모습 아닌가?”
“영원히 혼자 저러고 살 줄 알았는데……. 역시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군요.”
둘의 대화에 주어는 없었다. 하지만, 그 대화를 유추해 본다면.
의각원들이 무언가를 만들면서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펑!
주방 쪽에서 폭발 소리가 났다.
“희가 또 희한한 요리를 만드는군.”
“뭐어……. 늘 그랬지만요.”
“그러면 슬슬 일어나 볼까. 해도 졌으니… 희가 준비한 ‘이벤트’를 즐기러 가 보세.”
“그리고 의각원들이 준비한 것도 말이죠.”
그렇게 주군과 신하는 방을 나선다.
그렇게 나서며 유호는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수한다는 것. 그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인류는 문자를 만들어 그것을 동굴에 그려 다음 세대에 전수했다.
스승이란 결국 벽화에 여기는 괜찮은 사냥터이고 작살을 쓰는 게 좋다며 다음 세대에게 알려 주는 자들 아닌가.
‘하긴, 백 년도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이 ‘운명’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겠지.’
인류가 백 년 전에 넘어진 곳에서 또 다음 대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범과 늑대, 곰에게 잡아먹히던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으리라.
날카로운 손톱이 없어도, 이빨이 강하지 못해도.
그래도 타고난 약자가 타고난 강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법.
그걸 알려 주는 존재가 스승이라면.
그것을 배우는 제자란 무엇인가.
그리고 도련놈은 ‘스승의 날’을 부득불 기념한다며 올해도 혼자 광인처럼 외치고 다니는 걸까.
‘…다시 생각해도 미친놈이군.’
그때 천리전성이 들렸다.
[유호, 이리 와보게. 의각원들이 꽤 재미있는 걸 준비하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