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66
제 966화
과연 제갈세가다.
그녀가 주군을 위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 미래까지 알고 있었다.
일카나의 마음은 차분하다.
상사 새끼 때문에 이미 과로가 목 끝까지 치닫고 있는 상태.
이러다 죽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분명 책사께서는 이다음에 완벽한 유인책을 위해 홀로 절진을 계획하고, 유인책 한복판에 여하륜을 박아놓을 생각이시겠지요. 그다음 부하들을 하나라도 더 생존시키기 위해 검진을 움직이실 거고요.”
“역시…….”
일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여하륜도 남궁운도 깨달았는지 손뼉을 치는 게 아닌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책사들은 이미 서로의 노동량을 가늠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책사 다섯 명이 해야 할 일을 일카나가 혼자 다 하고 있구나!’
이건 과로사다.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과로사를 피할 길이 없다.
진천희가 말했다.
“미래의 과로를 막기 위해 제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일카나 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들은 사람 혼자서 할 일들이 아니니까요.”
“네!”
일카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역시 책사의 고충은 책사가 아는 것인가.
“일단 유인책 말입니다. 만약 제가 수적들을 집어넣은 사실이 관아를 통해 퍼진다면 어찌 되는 겁니까.”
“그건 걱정하실 게 못 됩니다. 애초에 이 근방 관은 마교와 유착을 하기는커녕, 남궁세가의 입김이 세기에 얼씬도 못 한 데다가……. 수적 놈들의 소속이란 것은 본디 장강의 조약돌처럼 흩어져 있는 터라 외부인들은 의외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제법이다.
특히나 진천희가 수적을 박살 냈다는 정보를 기반으로 곧바로 임기응변을 할 수 있다는 게 더더욱.
“썩 괜찮은 묘수군요.”
“형제님이 과거 가르쳐준 방식을 응용해 흉내를 내본 것이지요. 소라게가 다 같은 소라게이지만 뒤집어쓴 껍질에 따라 사람들은 판단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의태에 관한 병법.
일전에 일카나가 백린의각에서 수행했을 때 많은 것을 배워갔다.
이것도 그중 하나.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배우는 것과 그것을 잘 쓰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요. 그만큼 일카나가 대단한 겁니다. 보통의 책사들은 병법서에서 천금의 지식을 배웠다 하더라도 1전짜리 계책도 못 내는 일도 부지기수거든요.”
“주군을 이상한 놈으로 섬겨버린 터라,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요. 형제님.”
그리 말하며 여하륜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여하륜이 뭔 소리 하냐는 듯 빤히 바라보니, 진천희도 답했다.
“그래요. 책사 팔자 뒤웅박 팔자죠. 이상한 놈을 주군으로 받아 버리면 전장에서 죽거나 과로사로 죽거나 하니까요.”
적당히 보신도 하면서, 세상과 타협도 좀 하면서, 그런 놈을 만나야 책사로서 편하다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조조처럼 조강지처 같은 책사 팽하는 놈 말고.
“맞습니다. 형제님. 그래도 우리 여하륜 형제님은 제게 전권을 일임해 놓고 딱히 사람 의심하지도 않더군요. 그건 편해요.”
천마주먹이 있는데 탈세와 배신을 왜 걱정하나.
알게 되면 그때 뚜벅뚜벅 걸어가서 ‘하나, 둘, 죽어라.’ 하면 되는데.
“이해합니다. 하륜이가 그건 편하죠. 겉과 속이 같은 사람 찾기 쉽지 않은 세계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마교에서 홀로 협을 실천하니까요.”
여하륜이 말했다.
“나는 신비문파 ‘흑검문’이다.”
남궁운이 말했다.
“아, 그렇지. 소형제는 신비문파 흑검문이지.”
“……하나.”
“아니, 아우라고 부른 것도 아니고, 소형제까지는 강호에서 그냥 예의상 하는 말 아닌가! 그것도 안 되나?”
“…….”
고민해보더니 나름대로 납득이 되었는지 죽음의 카운트를 멈추었다.
남궁운이 가슴을 쓸었다.
“아, 심장 벌렁거리는구만. 진 아우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놈과 의형제를 맺었나.”
“하륜이가 의외로 이런 점이 귀엽습니다.”
“…그래. 자네는 혈… 아니, 백린의선도 알고 보면 귀여울 때가 있다고 했지.”
진 아우는 ‘끔찍깜찍’한 게 취향인 것 같다고 남궁운은 생각했다.
문제는 다른 이들의 눈에는 ‘끔찍끔찍’으로밖에 안 보이는 그런 것들.
일카나가 말했다.
“어찌 되었건 밑준비는 끝내고 도착했습니다. 정보도 흘려두었으니 다른 소교주 중 둘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러 왔지요.”
웨웅!
흑설묘가 배가 부른지 일카나의 발목에 뺨을 부빈다.
이제 이놈은 영물이 아니라 돈 먹는 악마가 되었다.
일카나는 한숨을 쉬며 흑설묘의 이마를 긁어주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다른 이의 책략에 업혀가는 일은 드물어서 신선하네요.”
“제갈세가 사람이 언제 이런 걸 경험해 보겠습니까. 이 기회에 즐기시지요.”
그랬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하는데, 제갈세가는 언제나 자기가 자기 머리를 깎아야 했다.
책사들이 저렇게 많아도 내 눈에 안 차면 내가 해야 하지 않던가.
‘뭐, 나는 불만 없다. 스승님이면 맘에 안 차시는 부분도 있으실 수도 있지만, 주군을 위해 이 정도까지 임기응변을 해주는 책사가 흔한가? 일카나도 엄청 성장했구나.’
진천희는 빙정검을 챙기고 일어났다.
남궁운 역시 마찬가지.
여하륜은 가볍게 소매를 털었다.
왜인지 혈향과 희미한 백단향이 났다.
그것은 죽음의 향.
앞으로 펼쳐질 일이었다.
* * *
책사는 준비하는 자.
일카나가 밑준비를 잘 해놔서인지 그 위로 붓질하기가 편해졌다.
진천희는 곧바로 토목에 들어갔다.
한번 박살 냈던 수파채의 섬으로 돌아와 곧바로 진법을 설치하고, 각종 함정들도 매설하기 시작했다.
남궁운은 옆에서 그걸 도우며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많은 흑검문도들과 부대끼게 될 줄은 몰랐군그래.”
마침 주변에 마교인들은 없다.
진천희와 단둘뿐.
그때가 돼서야 남궁운이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하십니다. 집안이 그런 화를 당했는데 마교가 증오스럽지 않으십니까?”
진천희는 결국 마음속 가시를 뽑아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것 때문에 그렇게 차갑게 밀어내려고 했나?”
“…….”
진천희는 대답 없이 남궁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아버님이 마공으로 모든 무공을 잃었는데, 마교가 미울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
남궁운은 왜일까. 그냥 웃었다.
“아버님이 마공에 손을 댄 것은 결국 아버님의 탐욕 때문이지. 마공인 줄 몰랐다 하셨지만, 막상 가주가 되어 시야가 넓어질수록……. 정말 모르셨을까 싶더군.”
“…….”
“조금만 익혀도 지나치게 강해지니 그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법도 하셨을 거야. 제대로 된 무공이라면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던가? 노력을 해도 그만큼 안 나오는 일도 허다하고. 본래 남궁세가 가주 정도 되시는 분이면 그것을 못 깨달을 리가 없었네. 그 눈을 가린 것은 결국 탐욕이지.”
친아버지에게 하는 평가치고는 지독하게 냉정했다.
“…….”
“그리고 남궁세가가 밖에서는 똘똘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물밑으로는 수많은 계파들이 서로 다르게 싸우고 있지. 그들도 분명 남궁세가이나, 모두가 남궁세가를 대표한다 할 수는 없으니 말일세.”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남궁세가가 거대한 만큼 물밑 싸움도 엄청나다는 것은 첩보를 조금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남궁운이 아직 그들을 전부 휘어잡지는 못한 것도.
피를 본다면야 더 빨리 잡을 수 있겠으나, 남궁운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역으로 진천희는 그게 남궁운이 얼마나 심지가 굳고, 강한 사람인지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칼로 해결 보는 게 더 쉽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남궁운이 말을 이었다.
“마교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마교의 후계싸움이라 불리는 천마혈로. 현실적으로 봤을 때 역대 그 어떤 무림맹주도 이 천마혈로를 막은 바가 없네. 그러니 소교주 중 누군가는 언젠가 천마가 되겠지. 안 그런가?”
차가운 논리.
허나, 진천희는 구태여 부정하지 않는다.
지존천마에서도 결국 그리되었으니까.
“이성적으로 셈해 보자면. 내 나름대로 그동안 여하륜 소형제의 행적을 추적하고 감시해본 결과, 그는 소교주 중 가장 온건한 이일세. 이런 이가 교주가 되길 바라는 것,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독단적인 판단이네.”
어째서 원작 지존천마에서 남궁운이 무림맹주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의 창왕 악진이 남궁운에게 다음을 넘겼는지도.
진천희가 물었다.
“이성적인 셈법 결과가 그것이라면, 감성적인 셈은 무엇입니까?”
“그의 발자국에서 협(俠)을 보았네. 또한 그를 동생으로 둔 진 아우의 안목을 믿고 있지. 바보 같은가?”
“아닙니다.”
남궁운.
그는 매우 현실적인 낭만주의자다.
아버님이 어쩌면 마공임을 짐작했으면서도 익혔을지도 모른다는 현실, 그리고 소교주들의 혈전에 강호가 불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에 납득하면서도.
그렇다면 가장 피해가 적을 방법을 찾고, 가장 적합한 이를 돕는다.
‘신기하게도 지금으로서는 가장 옳은 방법이기도 하고.’
그의 판단대로 지존천마에서는 누구도 천마혈로를 막지 못했다.
결국 주인공인 여하륜이 천마가 될 것이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던가.
그가 원래의 미래를 알 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또, 그럼에도 일부러 신분을 감추고 독단적인 판단이라고 말하여 선을 긋는다.
‘지금 남궁운이 누군지 마교에서는 여하륜과 일카나만 알고 있지.’
입고 있는 옷도 암행복이고,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다.
쓰고 있는 뇌룡검도 손잡이와 칼집을 바꿔 와서 겉으로 보면 마교 소속 무사로 보인다.
‘걸렸다가는 무림 공적이 될 일을 고작 낭만 하나로 하는 건가. 이 사람은.’
자칫 남궁세가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
그때가 되면 알아서 진 아우가 수습하겠지, 하는 건가.
‘이런 건 또 은근히 뒤도 안 보고 달려드는 게 참.’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하고 있는 그의 선택이 가장 피를 덜 흘리는 일이긴 한데.
뼛속까지 강호인은 강호인이다.
진천희가 물었다.
“동생은 잘 지내십니까?”
남궁연.
남궁운의 동생이자, 남궁운이 죽고 나면 복수심에 불타 철혈검으로 변하는 자다.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내가 가주가 되었으니 세가에서 무시하는 놈도 없겠다, 좋아하는 것들도 잔뜩 수집하고, 요즘은 기어이 사천당가까지 가서 당아랑 놀고 있네. 이 오라비 고생하는 것도 뻔히 알면서 자기는 풍류나 즐기고, 진짜.”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린다.
하긴 가주가 이렇게 뭐 빠지게 구르고 있는데, 동생은 신이 나서 놀고 있는 게 재미있다.
‘그렇구나. 그래, 철혈검은… 남궁연이 하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남궁연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일상이리라.
복수심과 야망에 불타 살 필요 없이.
그저 소소하게 일상의 행복을 즐기는 나날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딱 그 정도였을 것이리라.
‘남궁형은 계속 살아 계셔야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는 걸 보면 이 인간이 무림맹주씩이나 돼서 왜 지존천마 여하륜에게 죽었는지 알 것 같지만.
그런 여하륜을 이제는 본인 손으로 지키고자 하고 있는 걸 보면 참 희한하긴 했다.
‘운명을 바꾼 것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렇게까지 풍경이 바뀔 수가 있구나.’
투닥이고 있긴 하지만 남궁운은 여하륜을 싫어하지 않고 있고, 여하륜은… 손목을 날리는 선에서 끝내려 했으니 나름대로 친밀감(?) 표시 아닐까 싶다.
진천희가 말했다.
“살다 보면 다 그렇고 그런 거긴 하네요. 그리고 하륜이 수하들은 착한 편이고요. 어디 가서 삥도 안 뜯고, 양민도 안 괴롭히고요. 얌전히 무공 수련만 빡세게 하고 있는 그런 애들이니까.”
“그래. 남의 생피 빨아먹는 마공을 보니 여기 부하들은 다르다는 걸 알겠더군. 새벽부터 허공에 대고 미친놈처럼 주먹질만 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일세.”
“그런 거죠. 꽤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대신 일월이라는 신을 믿는 광신도고?”
“그렇죠. 그런데 사실 정말 광신도인지도 약간 애매하달까. 마종육가만 봐도 뭔가… 자기네들 가문 위주로 돌아가서.”
“그래도 천마에게 절대 충성하지 않나?”
“그렇긴 한데, 저도 아직 저들을 다 이해하는 건 어렵습니다.”
진천희의 말에 남궁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 광신도를 우리 같은 범인들이 이해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지.”
역시 현실적인 낭만주의자.
진천희가 말했다.
“아. 거기 이 철봉을 깊숙이 박아 주세요.”
“음. 이 정도?”
“네. 그 정도. 그리고 저 바위는 반으로 갈라 주시고.”
남궁운이 검을 뽑자 뇌전과 함께 잘려 나갔다.
“이렇게?”
“네. 그렇게… 그거 뇌기 색만 좀 바꾸면 안 됩니까? 대충 마공처럼 보이게?”
남궁운의 뇌전이 검은빛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이러면 되나?”
‘와……. 시킨다고 그걸 하네?’
패도적인 검로에 뇌전의 색도 섬뜩해 보이는 것이 이 정도면 완벽한 마두다.
진천희가 물었다.
“말한다고 바로 됩니까?”
“형(形)을 바꾼 것뿐인데 무어이 어렵나. 중요한 것은 본질일세.”
역시 이 형. 깨닫기는 뭔가 크게 깨닫고 온 모양이다.
‘대책 없이 육감으로 뛰어드는 건가 싶었는데… 이거 결국 본인 실력 믿고 저지르는 게 맞았군.’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걸까.
일단 의념이 곧게 뻗어나간 모양새를 보니 이 형도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가 영약을 밥처럼 퍼먹고, 스승인 태상장로께서 눈 시퍼렇게 뜨고 지옥 훈련을 시켰다고는 해도 이만큼 는 것은…….
‘재능이구만. 재능이야.’
그런 재능 넘치는 남궁운이 물었다.
“진 아우, 뭐 또 시켜 먹을 거 없나? 시키는 대로 다 해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