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70
제 970화
적이 창을 찔러 들어가려던 그 순간.
두두두둥 둥둥둥!
귀가 터질 것 같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고통 때문에 청연의 자세가 무너진다.
급히 호신강기를 최대 출력으로 올렸다.
그리고 아예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하기까지 하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주변의 기척도 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
허나, 고통은 멈추었다.
‘천하일광 이 미친놈이! 하지만 이러면 너는 나에게 아무것…….’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중.
콰쾅! 하고 폭발이 그녀의 등 쪽에서 일어나는 게 아닌가.
소리가 아닌 충격이 몸을 덮친 것. 그 충격량은 가히 호신강기가 흔들릴 정도였다.
게다가,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아, 고맙네. 고마우이!”
그사이 뇌전강기를 두른 제왕검형이 잽싸게 다가온다.
그녀가 흔들리는 몸으로 겨우겨우 방어하지만, 이내 검이 그녀의 창을 잘라 버리고, 그 어깨를 찔렀다.
서컥!
“망할! 검로가 이 정도로 예리하다고?”
부가주 청선이 옆에서 튀어나와 공격하지만 역시 음공이 방해하기 시작했다.
“허허허, 합격 아닌 합격진이군.”
생소한 음악.
하지만 박자는 알고 있다.
이 박자는 진 아우가 가끔씩 연주하는 이상한 노래들 박자와 흡사하니까.
예로부터 무(武)와 무(舞)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하던가.
남궁운 정도 되는 고수는 그 정도의 간격은 능히 즐기며 맞출 수 있었고.
두 사람의 협공이 시작된다.
소리의 간격에 맞춰 남궁운이 청선의 옆구리를 순식간에 베어낸다.
츠가가각!
“크아아악!”
이것으로 청선과 청연 둘 다 부상을 입은 것.
상처 사이로 새카만 번개가 지져 들어가니 화끈한 고통이 밀려온다.
“소교주, 더 싸우면 목숨이 위험하다.”
그 말에 청연이 이를 악문다.
“내가 이름도 모를 마교 무인에게 밀린다고?!”
“…….”
형(形)을 버렸기 때문일까.
남궁운은 생각보다 쉽게 적을 속이고 있었다.
“저 뒤에 있는 것은 일광이다. 잊지 않았겠지?”
까드득-
청연이 어금니를 신경질적으로 부딪쳤다.
그때, 남궁운이 뇌룡검으로 바닥을 긋는다.
파지지지직-
검 끝을 따라 새카만 번개가 선을 그리며 올라온다.
뇌전으로 만든 검막.
그 뜻은 두 가지, 하나는 상대가 화경을 아득하게 넘은 고수이며 뇌공을 이미 대성하고 남음이라는 것.
두 번째는 아주 단순하다.
이 선을 넘어오는 순간, 죽이겠다는 뜻.
가면인은 왜인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법 상처가 누적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즐거워 보였고.
‘숨겨진 한 수가 있다.’
이만한 놈이 교에 있을 줄은 몰랐다.
허나, 이상하진 않다.
여하륜은 단순히 교에서뿐만 아니라 교 바깥의 사람들도 자신의 수하로 데려오곤 하니.
놈이 데리고 있는 책사 일카나도 새외 사람 아니던가.
그렇다면 자신이 모르는 경지의 무사도 수하로 끌어들일 수 있을 터.
“빌어먹을.”
결국 소교주 청연은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이쯤에서 퇴각한다.”
“현명한 선택이다.”
결정을 내리는 순간 행동은 빠르다.
청연이 퇴각하자 만병살가의 부가주 청선도 함께 엄호하듯 도망쳤다.
그들이 멀어질 때까지 남궁운은 그대로 곧게 서 있다가, 완전히 점이 되어 사라질 즈음…….
“후우, 삭신이 다 쑤시는군.”
검막을 거두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진 아우는 매번 이런 전투를 하고 있나? 제명에 못 살겠군그래. 나였으면 족히 세 번은 죽었을 거야.”
하지만 눈앞의 진 아우는 잘 살아있지 않던가.
남궁운은 진법 안쪽 안전한 곳까지 걸어간 후에, 가부좌를 했다.
위험한 순간인 건 알고 있지만 방금 청연, 청선과 싸우며 얻은 깨달음은 천금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이렇기에 내가 진 아우의 행보에 끼어드는 것이지.’
진천희와 함께하면 고생길이 열린다.
어지간한 전투를 뛰어넘는, 압축된 무언가 그 자체를 겪게 되고 목숨의 위험도 당연했다.
허나, 반드시 깨달음이 하나 이상은 들어왔다.
‘그게 강호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진 아우는 아마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의 본질은 의원.
깨달음과 목숨을 저울질한다면 당연히 목숨이 훨씬 무겁다고 말할 테니까.
어째서 이런 일을 돕냐는 질문에 정치적인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이 깨달음이 더 중하다는 것을 진 아우는 이해하고 있을까?
‘진 아우는 그런 강호인을 안타까워하겠지만.’
세상에는 목숨을 내놓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남궁운은 거기까지 생각하며 천천히 내면에 침잠했다.
전장 한복판에서 깨달음을 갈무리하다니. 미친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순간을 놓친다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기에.
문득 남궁운은 목뒤의 살갗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아픈 것은 아니고, 육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 진 아우. 지금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모양이군.’
깨달음을 갈무리하는 그를 보고, 주변을 살핀다.
이윽고 따끔거리던 기척은 사라진다.
피식-
남궁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주변에 적은 없는 모양일세.’
그 순간, 남궁운의 기감이 놀라울 만치 멀리 확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다음 단계군.’
현경은 아니다.
허나, 그동안 배워 왔던 것들이 한 번에 머릿속에 치고 들어오며 의념이 구름(雲)처럼 퍼져나가고 확장되는 게 느껴진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주변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구름이 된 의념이 이번에는 번개(電)가 되어 뻗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때.
콰과과과과광-
남궁운은 느꼈다.
먼 곳에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여하륜.
그가 마교 소교주와 부가주를 제압하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진천희의 의념이 그곳에 집중되는 것도.
음의 파동이 첩첩이 겹쳐 여하륜을 돕는다.
적을 공격한다.
‘어처구니없이 강하군. 진 아우도. 그리고 여 아우도.’
깨달음 하나를 넘자마자, 더 큰 깨달음을 갖고 노는 두 놈을 보며 남궁운은 생각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매일 밥 먹듯 죽음 사이를 뛰노는 놈들과 편안하게 남궁세가에서 지내고 있는 자신.
물론 그럼에도 화경의 끝에 도달한 것 자체가 보통 재능이 아님을 알고 있다.
심지어 아버님을 그리 보내기 전까지는 그다지 무학에 의욕도 없어서.
후계자로서 최소한의 수련만 하며 적당히 시간만 보내던 나날들이었지 않나.
급하게 벼락치기한 것만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날로 먹은 감은 좀 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다르다.
그들과 발을 맞춰 걸으려면 자신 역시 함께 사선을 건너야 할 것이다.
‘음, 할아버지 말이 맞군. 진 아우가 미친 짓을 하면 옆에 붙어서 같이 미친 짓을 해보라고 하셨던가.’
이제는 시간이 지나 남궁세가 사람들도 잊고 있지만…….
그게 남궁세가의 방식라고.
곱게 피어난 뇌룡검은 결코 제왕을 논할 수 없으니.
진정한 제왕검은 생사(生死)의 경계에서 꽃피고.
일광은 반드시 새로운 길을 가르쳐 줄 것이라 하셨다.
‘……무섭단 말이야. 우리 할아버지. 아니, 태상장로님.’
남궁운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깨달음을 완전히 갈무리, 감고 있던 눈을 뜬다.
넓게 퍼져나갔던 기감이 이제 순식간에 그의 주변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와아아아아아아!”
“대승이다! 대스으으으응—-! 이런 승리가 있다니!”
“축포를 쏘아라아아아아! 오늘은 고기다!!”
마교도의 습격이 끝났다.
남궁운은 바닥에 꽂아둔 뇌룡검을 의념만으로 뽑아 검짐에 집어넣는다.
챙-
동쪽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진천희가 쏘아대던 음공도 완전히 멈춘다.
‘진 아우는 탈진했군.’
하긴, 그렇게 음공을 쏴댔는데 보통 강호인이라면 이미 선천진기까지 빨리고 칠공으로 피를 토했을 터.
탈진으로 끝나는 게 용할 지경이다.
남궁운은 진천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길었던 밤이 드디어 끝났다.
평생 저 산에 솟아오르는 햇빛을, 이 개판이 난 풍경을…….
승리에 취해 사람의 생피나 광증 대신 먹을 고기부터 찾는 기묘한 마교인들을.
이 우스꽝스러운 생사전을 평생 못 잊으리라.
남궁운은 그리 생각하고는 진천희를 찾았다.
* * *
길었던 전투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뒤처리인가.
우선 붙잡힌 흑록은 천마진기를 여하륜에게 빼앗겼다.
우우우웅-
흑록 역시 그동안 많은 소교주들을 잡았는지, 가공할 양의 천마진기가 뿜어져 나왔고.
천살성이 기뻐 날뛰는 것도 자명한바.
여하륜은 그 천마진기를 받으며 내면의 광증을 갈무리하고 또 갈무리해야 했다.
그동안 그 과정을 도운 것은 진천희.
디링-
느리고 절제된 선율이 여하륜의 의념을 도왔다.
별이 반짝이는 것 같은 선율을 느끼며, 그 선율에 인도를 받으며 여하륜은 한참이나 가부좌를 하고 흑록의 천마진기를 자신의 것으로 복속시켜 나갔다.
‘이번에는 형이 있어 다행이군.’
이만한 소교주의 천마진기를 흡수한다는 것은 같은 소교주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사냥감을 삼키는 뱀과 같다.
한계까지 턱을 벌리고 사냥감을 꾸역꾸역 입 안으로 집어넣지만, 자칫 사냥감이 살아있어 저항하다가 위장이 상할 수도 있고.
때로는 이 과정에서 적에게 공격당해 주화입마로 사망할 수도 있다.
심지어 여하륜은 등 뒤에 천살성이라는 적이 있지 않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위험한 순간.
‘왜인지 천살성이 형의 선율에 저항하지 않는군.’
자신이 의식을 잃은 동안 천살성과 ‘대화’를 했다고 하던데.
‘뭔가 나는 모를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나.’
그 순간, 약간 질투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못났군. 나도.’
천우가 생기고 사마현이 생기고.
형이 자신만의 형이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수많은 이들에게 은(恩)을 나누어주고 살리는 사람이니 그런 인연이 깊어질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자신과 형은 한 번이라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짧은 시간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모르고 있겠지.
그리고 다른 아우들은 십만대산에 비해 훨씬 가까우니 자주 형을 만나고 있다는 게 은근히 신경 쓰인다는 것도.
‘후, 의미 없는 일인 것을…….’
그런 것을 신경 써서 어쩌란 말인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은 그야말로 혈로.
형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 아닌가.
여하륜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깊게 숨을 삼킨다.
흑록의 천마진기는 지난번 독운의 것에 비해 무겁고 단단하다.
‘같은 천마신공에서 나온 진기일진대 왜 이리도 특성이 다 다른 것이지?’
알 수 없다.
허나, 흑록과 싸울 때 여하륜이 사용하는 천마신공은 다른 천마신공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여하륜의 천마신공을 마종육가가 분석하고 파훼식을 만들었다고.
물론 부질없는 짓이었다.
당시 여하륜은 흑록에게 이런 말을 했다.
-쓸데없는 짓. 파훼식은 어디까지나 어제의 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강하다!
그 말에 흑록을 비롯한 철혈마가 부가주도 무슨 개소리냐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상관없다.
진실은 곧 여하륜의 손아귀에 있으니.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상대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놈들은 여하륜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같은 개소리가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가능했다니… 여하륜, 네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나도 모른다.’
하늘의 꼭두각시라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하루하루를 죽지 않기 위해 깨달아갈 뿐.
그러니…….
먹어 치운다.
쿠우우우우우웅—–!
단전이 흑록의 천마진기를 먹어 치운다.
천살성이 기다렸다는 듯 덤벼들어서 놈의 천마진기를 으깨고 박살 내며 자신의 것으로 통합한다.
미쳐 날뛰는 와중에도.
딩, 다랑, 딩-
형의 선율이 그의 육신을 감싸고.
천살성은 흠칫 놀라서 기경팔맥 사이를 부드럽게 휘돈다.
‘이번에는 덜 아프겠군.’
다행이다.
흑록급의 천마진기를 고통 없이 맞을 수 있다니.
간다, 간다, 나아간다!
이윽고 여하륜이 눈을 떴을 때는 아득히 높은 곳.
세상이 발아래에 있었다.
부공삼매의 깨달음.
형이 놀라서 칠은금도 내려놓고 아우를 올려다본다.
순수한 기쁨.
“형은 내 인생 가장 중요한 순간에 늘 있군.”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내 인생 분기점에 네가 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