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81
제 981화
진법으로 비를 공급하는 것은 응급수단일 뿐.
진짜로 기상이 바뀌어 내리는 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언 발에 오줌 누기.
허나, 그 정도만 되더라도 인간은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다.
그렇게 강호인들을 돈 주고 갈아서 비를 공급하고, 그사이에 수로 공사를 해나갔다.
“너는 비가 내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려야죠. 여기는 인간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괴어인들을 만나며 많은 힌트를 얻게 되었다.
세상은 인간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아득히 높은 존재들 중에는 각자 자신들이 비호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계의 멸망이 아니다.
만약 세상 모든 만물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좀 더 쉬웠을 터이니.
기다린다.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마치 항생제와도 같지.’
비유하자니 인간이 마치 병균같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항생제를 다량 투여하여 병마를 죽일 수 있으나, 그게 만능은 아니다. 과용하다 보면 멀쩡한 장기도 같이 보내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적게 주었다가는 내성이 생기는 것이고.
그러니 반드시 의사가 복용량과 주기를 알려주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 가뭄은 항생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비를 안 주면 인간만 죽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같이 죽지.’
그러니 버틴다.
진천희는 오늘도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 정오의 하늘.
하루 중 가장 해가 높이 떠 있는 시간.
오늘까지 하늘을 몇 번이나 바라본 걸까.
앞으로 얼마나 더 노려보아야 하는 걸까.
구름은 껴있다. 이제 비만 주면 된다.
하지만… 줄까?
그냥 지나가기를 몇 번이지 않았나.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왔지만, 그래도 진짜 자연만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제대로 비가 내려야 한다.
그 정도 수량으로는 잠깐 목을 축이는 것밖에 안 되니까.
구름, 망할 비구름.
잠시 멈춰서 뱃속에 있는 비만 토하고 가면 되지 않나.
‘설마 다른 동식물들도 다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진천희는 자연 그 자체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이대로 모두 함께 죽든가.
비가 내려서 모두 함께 살든가.
그들이 생각하는 말세에 인간이 멸망한다면, 그래도 대신에 다른 놈들이 살아남으려면.
‘너희들’이 원하는 풍경을 만들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수목(樹木)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때 그 괴어인들의 신처럼 아예 세상을 바다로 가득 채울 게 아니라면.
그러니 제발…… 살려다오.
비를… 모두에게 비를!
후우우웅-
먼 곳에서 강풍이 불어왔다. 몇 번이나 봐왔던 경험이다.
희망 고문이라도 하듯 비구름이 몰려왔다가 강풍에 밀려 도로 가버리곤 하지 않았나.
이대로 또다시 구름이 멀어지는가.
“망할……!”
오늘도 비가 내리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고 하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현원전단신공의 푸른 눈이 다음 계획을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더 뭘?
인간이 대자연을 상대로 꺼낼 수 있는 수는 한정되어 있지 않나.
명치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절망의 신호였다.
손끝으로 추락하는 감각이 느껴진다.
이대로 비가 계속 내리지 않는다면, 하늘이 정녕 이 지역 모두를 죽여 버릴 생각이라면.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삶이란 고작 그런 걸로 놓을 수 있는 게 아니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도 모두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았나?
‘…….’
하지만 머릿속 작은 진천희들이 침묵했다.
그들도 대자연 앞에서 더는 답이 없는 것일까?
진천희는 이를 악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뭔가, 뭔가 해야 해.’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 여기서 뭘 더 해야 하지?
아아…. 자연 앞에서 인간은 이토록 연약한 것이었나.
그때.
툭-
물방울이 떨어진다.
뺨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이 마치 누군가의 눈물과도 같았고.
진천희는 손등으로 그것을 쓸어 향을 맡았다.
“비다. 그래……. 비야. 내려야지. 그래! 내려야지!”
의원이 전율하는 순간, 결국 하늘은 참아왔던 빗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일제히 쏟아지는 빗물.
그동안 조금씩 언 발에 오줌 누듯 했던 스며가던 비가 아니었다.
진짜 비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 나왔다.
지평선 끝까지 쏟아지는 회색 빗방울이 세상을 적셔나간다.
모두가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진천희의 옷이 흠뻑 젖는다.
얼마나 센지 속곳까지 완전히 젖고, 신발 속은 물이 차서 어항이라도 신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득한 희열 속에서 진천희는 소리를 지른다.
해냈다. 해냈다!
의원은 달려 나갔다.
“스승님! 비가 내렸어요!”
흠뻑 젖은 것을 닦지도 않고.
제갈린은 마침 검토하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래. 내리는구나.”
“엄청 많이 내리고 있어요!”
“네가 이겼구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진천희가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비다! 비이이이이이! 내가 이겼다! 이놈들아아아아아아아!”
미친놈처럼 웃으며 대로를 질주했다.
그러나 그 모습에 누구도 손가락질하는 이가 없었다.
다른 이들도 지금 간만에 내리는 진짜 비에 취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살았다.
살아남았다.
진천희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것이 진짜 비!
말세가 다가오는 지금, 인간이 하늘을 상대로 이겨낸 증표였으니.
빗물에 흠뻑 젖어서 웃고 또 웃고.
어린아이들이 달려와서 진천희와 함께 달린다.
현경에 가까운 고수임에도 이상하게 아이들은 진천희를 무서워하는 일이 없었다.
애 하나가 같이 달리다 넘어진다.
아이가 우아앙 울음을 터뜨린다.
진천희는 애를 부축해주더니, 상처를 확인했다.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모양.
아이를 들어 아예 목말을 태우고 골목대장처럼 달려갔다.
방금 전까지 엉엉 울던 아이가 꺄르르 웃었다.
다른 아이들도 진천희를 쫓아서 같이 달렸다.
“우와아아아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빗방울을 뚫고 도시를 적신다.
동네 개들도 기분이 좋은지 모여들어 같이 달렸다.
개와 아이들, 그리고 강호 의원.
순식간에 빗방울 행진대가 생겼다.
그런 제자를 제갈린은 눈을 감고 느낀다.
오늘은 인간이 하늘을 상대로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고집이 만들어낸 힘이었다.
인간의 의지가 함께라면 삶은, 죽음보다 강했다.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이가 바로 그의 제자였다.
두근두근.
제갈린은 자신의 가슴에 맥동하고 있는 박동을 느낀다.
그것은 어느 제자가 고집을 부렸던 증거.
그리고 그를 살려낸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 놈이니 비를 못 내리는 건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의지는 천기를 꺾고 사람을 살려낸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을 꺾어 비를 뿌렸다.
정오의 하늘.
비.
인간이 승리한 날이었다.
* * *
비가 왔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던 비가 왔다.
수량도 제법이고 꽤 오랫동안 내리고 있다.
물방울은 물줄기가 되어 갈라진 진흙 바닥을 질주한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한 일이다.
이 가뭄 속에서도 개구리는 살아남아서 이렇게 하늘을 향해 우짖고 있으니까.
비 한 번으로 모든 풍경이 뒤집힌다.
지구, 그것도 도시에 살 때는 자연의 위대함을 이렇게까지 체감할 일이 그리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것들이 자연 그 거대한 힘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
밥상에 올라가는 쌀알 하나조차도 자연의 변덕에 좌우되니까.
진천희는 저릿저릿해지는 손끝을 애써 진정시켰다.
‘해야 할 일이 많아.’
비가 온다고, 당장 가뭄이 해갈되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진천희는 곧바로 수로 정비를 마무리하고, 남동사성을 돌며 성주를 협박했다.
각 마을에 저수지를 만들도록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알겠습니다요! 최선을 다해 태수님을 보필하겠사옵니다!”
이놈 눈치를 보니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랬다.
보통 해오던 것만 하는 것이 관리의 속성이고.
이렇게 뜬금없이 일을 만들어서 던져주니 고까운 심정은 알 것 같다만…….
그래도 현령의 지팡이도 아니고 태수의 지팡이, 거기에 황상께서 특별하게 임시직까지 만들어 보내버리니 이놈이 할 수 있는 건 [손 비비기], [덕을 찬양하기] 스킬밖에 없다.
최악의 상황에는 금의위나 동창몬을 꺼내야 하나 했는데, 그냥 순조롭게 공사는 진행 중이다.
‘현재 가장 빠르게 공사가 된 곳은 절강성인가.’
강호인 다수를 동원한 덕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도 강호인들을 토목에 동원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공사대금을 백린의각에서 받고, 백린의각은 그 값만큼 영약을 만들어 남동사성 지역에 고용된 강호인에게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맛보기 서비스는 처음 한 번뿐입니다. 고객님.
“예, 예에! 그렇게 하겠습니다요!”
‘성주는 중간에 돈을 못 떼어먹어서 열불 터지겠군.’
보통 이런 것은 제국에서 예산이 떨어지고.
그 예산 일부를 성주와 그 아래의 동물 친구들이 나누어 먹고.
그렇게 또 남은 예산을 그 아래, 그 아래의 숲속 친구들이 다 같이 나누어 먹고 나면 그 찌꺼기가 마지막에는 촌장에게 가고.
그다음 마지막 그릇에 남은 양념 몇 방울 정도가 양민의 손에 들어간다.
황상이 작정하고 감찰을 보낸다고 해도 전체 예산의 50% 정도가 양민에게 가면 다행인 수준.
그놈의 관례가 늘 문제다.
‘사실 화 제국에서 내려보내는 예산은 널널한 편이지.’
진천희야 위생, 교육, 토목에 미친 놈이니 좀 많이 쓴다고 해도 다른 곳은 이렇게까지 쓸 일이 없다.
하지만 왜 맨날 예산이 부족할까?
오죽하면 황상도 필요 예산의 3할 정도를 더 집어넣고 있다.
떼어먹을 걸 각오하고 보내는 것.
하지만 이 경우에는 진천희가 직접 집행하고, 예산을 보내고, 황상에게 상소까지 보내버리니 떼어먹을래야 떼어먹을 수가 없다.
‘이런데도 숫자놀음이 가능하면 인정해야지. 현원전단신공 두 사람을 이길 두뇌라는 거니까.’
성주만 아니었다면 천마님이 납치해다가 인간 계산기로 쓰실 거다.
하지만 다행히도.
“알겠습니다. 신 남동사성을 책임지는 성주, 황상의 뜻을 받자와 내역을 받자마자 예산을 즉시 보내도록 하겠사옵니다!”
저수지 파낼 때도 순순히 하더니 이번에도 그냥 [납작 엎드리기]를 시전하는군.
‘혹시라도 악속성 스킬 [나쁜 음모]라도 발동하면 격투 스킬 [판별]로 끝을 볼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이놈이 어떻게 성주까지 갔는지 알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사마현이 보내준 하오문 지도에 의하면, 남동사성은 정파와 사파가 꽤 골고루 섞여 있는 지역이다.
이 신공절학 할인 판매 사태 속에서도 사도련에 속하는 거대한 방파 하나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
당연히 사파다.
허나.
백린의각이 관과 합동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형태다 보니 감히 방해하지는 못한다.
-길을 비키시오! 만약 공사를 방해하면 그때는 천하일광이 직접 방문한다고 하오!
-대체 그놈이 왜 이런 곳까지 와서 지랄을 한단 말이오!
-비켜라. 천하일광이 오면 이번에는 혈린광살도 함께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하필 또 둘이 붙어 있소?
-그래. 본디 천하진일광이 혼자 돌아다녔지만, 이번에는 스승이 함께 온다고 하더군. 절강성에 비를 불렀던 것도 두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다.
-헛소문 아니오? 사람이 무슨 수로 비를……?
하지만 비를 부르는 걸 믿든 말든 두 사제 놈이 와서 깽판을 친다는 것은 진짜이고 바꿀 수 없는 미래다.
-우리가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혈린광살은 부동산을 날려버리지 않소!
미친 소리 같지만, 사파에게 있어 사람 목숨보다 문파 땅에 불이 나는 게 더 문제다.
그리고 제갈린은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테러리스트로.
한 번이라도 놈과 마주해본 적 있는 장로들은 모두 몸을 사린다.
-혈린광살이 개새끼가 맞지만, 머리가 좋은 개새끼요. 그 새끼는 재산손괴의 무서움을 너무 잘 알고 있소.
-혈린광살이 나중에는 아예 문파 창고부터 태우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오.
-심지어 화재 틈에 들어가 비밀 장부를 빼 와서 적대 문파에 살포하던 때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그놈은 여차하면 뒤를 안 보는 놈이다.
-…그래서 진일광이 뭘 원한다느냐. 어지간하면 들어주거라.
이 대화를 모르는 진천희는 그저 행복해져서 스승님께 말했다.
“스승님! 사도십이문 중에 세 개의 문파가 직접 나서서 노역을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 영약이 많이 탐이 났던 모양이구나.”
“와, 사도십이문쯤 되는 곳은 이미 영약을 창고에 그득하게 쌓아둔 곳이라 이번 일은 안 도와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 말에 제갈린은 여상하게 답했다.
“다다익선 아니겠니. 있는 놈이 더한 게지.”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런 자세이니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저희 백린의각은 최대한 공정하게 공과를 측정하여 영약을 배분하고 노역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제자의 눈.
제갈린은 왠지 웃음이 나와서 피식거렸다.
“스승님?”
“……아니다. 잘해 보거라.”
“넵!”
진천희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 나갔다.
그놈의 뒷모습을 제갈린은 한참 바라보았다.
이놈은 과로하느라 모르고 있겠지만.
제갈린은 요 근래 가장 평안하고, 즐거운 한때였다.
그때, 창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혀, 혈린광살이 진짜로 왔구나?!”
사도십이문 중 소문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간자를 보낸 곳이 있었던 모양이다.
“…….”
제갈린은 꺼지라는 눈으로 간자를 바라보았다.
제자가 돌아오기 전에 빨리 저놈을 치워야 한다.
그 거대 사도십이문이 사실 혈린광살이 무서워서 이러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어쩌란 말이냐!
“히익!?”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자마자 간자 놈은 이성을 잃고 구르기 바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마주한 것 같은 몸짓.
그도 그랬다.
그가 조우한 것은 단순히 제갈린의 눈빛이 아니라.
그 사내가 품은 심상, 그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으니까.
공포심 앞에서 한 줌의 이성도 남지 않았다.
자아를 잃고 소변까지 지리며 도망치는 간자를 제갈린은 담담히 바라본다.
꺼지면 됐다.
제갈린은 스승의 이미지를 지켰다.
그때 멀리서 진천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거기 누구 안 갔어요? 방금 기척이 느껴졌는데.”
이렇게 먼 거리에서 사람의 기척을 눈치채다니.
이 정도면 단순히 보거나 듣는 게 아니라 의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
제자의 성장이 눈부시다.
하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희야.”
스승님은 시치미를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