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88
제 988화
진천희는 오늘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오우, 단약 베이킹~!”
연단술로 단약을 굽고 있다.
시설이 확충되고 인력이 충원된 백린의각 약제당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영약을 대량생산 중이지만.
최상급의 영약.
그러니까 대환단에 비견되는 백린의각 특상급 영약은 제갈린과 그의 후계자 진천희만이 제작할 수 있다.
진천희 주변에는 영석이 천간과 일시에 맞춰서 흡사 퍼즐처럼 정확하게 도열되어 있었고.
영약을 만들면서 때때로 영석이 진천희의 의념에 따라 주르륵 움직이기도 했다.
드륵, 드르륵-
지금처럼.
“음, 옆으로 쪼오끔만 더 옮기자.”
드륵-
옛날 지구에 이거랑 비슷한 공짜 게임이 있었는데 말이지.
광고 10초를 봐야 리트라이 기회를 줬었는데.
미친 소리 같지만 그게 도움이 되고 있다.
‘인간은 역시 뭐든 해봐야 해. 암.’
제자리를 찾아간 영석에 기운이 맺힌다.
“애초에 영약 만드는 것 자체가 은근히 요리와 비슷하단 말이지. 특히 지금 단계에서는 곰국. 사골 안 타게 젓는 거랑 딱 닮았어.”
참고로 영단을 뭉치는 건 빵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흥얼흥얼 트로트인지 록인지 모를 노래를 부르며 영단을 만들어 낸다.
진천희가 느리게 저으면 저을수록 연단로에 오색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함할 일이긴 하지. 사실 이렇게 룰루랄라 만들기에는 너무 대단한 물건이니까.’
다른 이라면 이마에 딱 힘주고 옛 선현에 대한 존경과 구결을 떠올리며 집중해서 젓고 있긴 할 거다.
하다가 망할까 봐 무섭기도 할 거고.
‘애초에 이것도 백린의각에서도 일 년에 하나만 만드는 놈이니까.’
재료도 특별해야 하고, 만드는 과정도 힘들다.
거기다 천간의 기운이 맞아야 가능하다 보니 일시를 기다려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놈들은 비싸고.
이 정도급 대영약은 돈으로도 잘 안 푼다.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건 하급이나, 최대로 쳐봐야 중급.
소림사 대환단을 돈으로 못 사듯이 백린의각의 대영약도 돈만으로는 사기 힘들다.
허나, 이것을 만드는 이유.
‘황궁 진상용!’
가뭄을 해결하자마자 골드&실버가 포상을 내렸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포상.
직접 내역서 들고 찾아가서 뜯어낼 생각이었는데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일사천리로 칙서가 내려온 게 놀랍긴 하다.
공문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백린현 식읍 이천 호.’
그게 본래 공식적으로 스승님이 의국백으로 받은 것이었고.
이 식읍 지역에 이사를 온 사람들도 백린현의 백성으로 취급되는 게 이 지역 암묵적인 룰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암묵적일 뿐이지 완전히 굳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 백린군 전체가 식읍이다.’ 하고 땅땅 칙서로 박은 것.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숫자!
이렇게 되면 제국법으로 명시가 되게 되니 스승님께서 혼인하셔서 자손을 보실 의지만 있다면…
‘…제갈세가는 멸족한 미가(麋家)를 대신해 제2의 제국팔가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겠지.’
사실상 공신급 대우.
게다가.
백린군은 제3의 수도라고 부를 정도로 대부흥 중인 상황.
북경과 남경을 제외하면 심지어는 저 항주 같은 곳보다도 더 발전하고 있다.
무려 십이 층 전각 같은 초고층 건물까지 몇 개나 들어선 곳이 바로 백린군!
어쨌든 그런 백린군을 식읍으로 땅땅! 하고 박아버린 상황.
‘이제는 어지간한 황족들 저리 가라 할 만큼 거대해졌군.’
물론 지금 살아남은 황족들은 주왕야처럼 완전히 골드&실버 편에 붙어 황위에 오르는 데 분골쇄신했거나. 아니면 아예 세력이 없어서 죽일 가치도 없는 놈들뿐.
황상이 비록 황위에 오를 당시 미친개처럼 살았다고는 하나, 쾌락 살인마는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황상과 주왕야, 셋을 제외한 황족의 위세가 한없이 쪼그라든 상황이다만, 전멸시킨 것은 아니니 그 씨앗은 남아 있다.
과거 남궁운, 사마현과 함께할 때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사마현은 여하륜의 천살성을 완벽하게 ‘복사’했고.
남궁운은 제국팔가 중 양가에서 온 자객과 대치하고 있었다.
-당신이야말로 이런 지저분한 암살에 끼어들어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나는 명을 따를 뿐이다.
-황상 쪽일 리는 없고… 그럼에도 황가의 인물이로군…….
양가(楊家).
제국팔가 중 하나인 신창무가(神槍武家).
그중 한 사람이 진천희의 목숨을 노리고 온 적이 있었다.
외눈박이의 창술사인 그녀는 신창무가 출신답게도 풍겨 오는 기도가 남달랐다.
-이 일이 지저분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당신이 모시는 군주도 무사할 수 없을지도 모르오.
-진천희 태수 하나 죽인다고 해서 주군이 위험할 것 같지는 않군. 게다가 그것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흠……. 양가의 혈족은 주군의 품성을 본다 했는데… 당신은 군주를 신뢰하는가 보구려.
남궁운이 겉으로는 돈 많은 세가의 파락호처럼 보여도, 의외로 통찰력이 있다.
아니, 그냥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좋은 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 자리에 올라가지도 못했겠지.
남궁운의 의견에 진천희도 동의한다.
황족 중에서 누군가가 진천희를 노리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이런 황상의 총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가진 세력은 이제 일개 황족 하나가 막을 수 없는 수준까지 커졌으니.’
역사서에 뭐라고 기록될지 모르겠다.
‘권력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군. 착실하게, 아주 착실하게.’
망태기의 중력이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스승님께서는 별말씀 없으시다.
아마 뭔가 따로 계산해두신 게 있으신 모양.
‘뭐, 어쨌든 황상의 시크릿 주치의 신분으로 단약을 굽는다. 그것도 두 개!’
-누이만 입이고, 황제인 나는 주둥이냐?
하나만 구우면 삐진다.
쌍둥이니까 두 개 구워 줘야 한다.
귀찮은 황상 놈들.
심지어 속도 개좁아.
만민의 어버이라면서 왜 이렇게 쪼잔한 거냐!
그렇게 활활 타는 연단로를 지켜보며 진천희는 계속해서 영석을 옮겨 진법을 조정하고 있다.
드륵, 드르르륵-
“아이고. 선조님. 진법 맞춰 돌리느라 허리가 휩니다. 기왕 할 거면 남궁세가처럼 기관진식 같은 거나 안배하시지. 왜 우리는 다 수동입니까. 거기다 현원전단신공 대성에 허공섭물까지 오르지 못하면 이거 연단하면서 영석 옮기는 거 불가능하잖습니까.”
왠지 하늘에서 공명 선생께서 ‘이렇게 해야 세가가 망해도 약탈당하지 않는단다.’라고 하실 것 같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냥 돌멩이들의 나열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봐도 선조님은 약간 멍청하거나 뒤떨어지는 후세는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다.
상식적으로 세대마다 이걸 할 수 있는 인재가 계속 숨풍숨풍 나올 리가 있나?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영석 전체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영석에서 시작된 무지갯빛이 마치 커튼과도 같다.
‘아, 꼭 무슨 다큐로 봤던 극지방 오로라 같네.’
그것도 하늘이 아닌 땅에서 오로라가 펼쳐진다.
쿠웅-
그 순간.
세계의 색이 순식간에 뒤집히기 시작했다.
대지는 보라색으로, 공기는 붉은빛으로, 진천희의 옥빛 소매는 흰색으로 물들었다.
영석들은.
공명하는 영석들만큼은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어서.
마치 세계를 뒤틀어 이치를 끌어내는 것만 같았다.
이 현상 알고 있다.
이제는 알고 있다.
‘스승님의 초절심무도 이런 현상이 생기지.’
현경에 다다른 스승님은 세계를 조작할 수 있었다.
그분께서 보여 주신 심상대로 세상이 응답하여 광할한 힘을 보여 주었다.
당시에는 인간에게 이런 힘이 허락이 되나 싶었지만 이제는.
이제는 진천희도 의념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지 않았던가.
그런 지금.
이 영석의 배열이 얼마나 더 말도 안 되는지 깨달았다.
‘현경이 아님에도 진법만으로 현경이 일으키는 현상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제야 깨달았다.
선조를 욕할 게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법칙을 뒤틀어 현경에 오르지 못한 후손들이 현경의 축복을, 그 혜택을 조금이나마 누리게 해 준 것이었으니까!
‘물론 현원전단신공 대성, 허공섭물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놈은 이 현상을 만들 자격도 없는 거고.’
현원전단신공씩이나 가지고 그것밖에 못 크다니, 거기서부터는 뒤지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느낌이 온다.
그것은 그야말로 오만함.
최고의 인재만이 현경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이 현상을 입회할 자격이 생긴다.
‘어떻게 보면 좀 밥맛없으시긴 하지.’
재능 없는 후손들은 어떻게 살라고?!
콰르르르릉!
오색의 빛이 연단로에 쏟아졌다.
그 순간.
진천희는 현경의 흐름을 보았다.
자연의 힘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의념을 응축, 구체화하는 광경을 ‘관측한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위험한 가르침이었다.
번개 하나하나가 만들어 내는 의념이.
자연의 아득함 그 자체였고.
그 아득함이 의념으로 진법에서 화하며 자연조차도 다스리겠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느껴진 것은.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집념.
콰아앙!
“완성……인가.”
진천희는 눈을 비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 옆에서 가부좌를 했다.
방금 본 것을 깨달음으로 갈무리하지 않으면 모두 잊어버릴 테니까.
이 깨달음은 보통 무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일 터.
“…….”
그것은 아득한 옛날.
이 세가가 시작이 되었을 때.
공명께서 후대의 자손들에게 남긴 깨달음의 조각.
그는 진주언가처럼 멸망을 대비하여 종을 설치하지도, 괴어인의 고대 유적처럼 신을 봉인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지혜의 열매를 주었을 뿐.
허나, 그 열매는 틀림없이 현경으로 가는 열매였으며.
그 열매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실로 제갈세가다운 안배.
그야말로 모든 생을 걸고 지(智)와 무(武)를 향해 달려온 극소수에게만 내려주는 선조의 응답.
오싹-
솜털이 곤두선다.
깨달음을 인위적으로 내리는 게 가능하다니.
‘어이가 없군.’
혹시 이것 하나만 남기신 걸까?
아니면 무언가…….
제갈세가 멸문 당시 집터는 모두 다 불탔고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약탈당했다고 했다.
흩어져있던 것들을 모은다면 뭔가 더 나올까.
스승님께서는 별 미련이 없어 보이시지만…….
깨달음을 내면으로 갈무리하고 또 갈무리할수록 진천희 안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 갔다.
* * *
깨달음을 갈무리한 후.
진천희는 곧바로 일어나 완성한 영단들에 금박을 입히고 새카만 상자에 담았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소박한 오동나무 상자이나, 상자의 표면에는 승천하는 용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빛을 받을 때만 모습을 드러내니 이만한 사치품이 없겠지.
원래 사치품은 대놓고 화려한 것보다, 이렇게 아닌 척 화려한 걸 더 높이 쳐주더라.
이런 게 진정한 사치라나?
“좋아. 진사 같은 중금속 안 들어간 자연 친화 웰빙 영약 완성이오!”
진천희는 흡족해져서 스승님께 이것을 가져갔다.
제갈린은 그런 제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관측했느냐?”
주어는 없으나,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깨달았습니다.”
“그래. 지금의 너라면 가능하고도 남겠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혼자 연단하라고 시키신 거군요.”
“어떤 깨달음은 홀로 사색할 때 나오는 법이니까.”
제자, 스승의 깊은 뜻에 감복하여 예를 표한다.
스승님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확신은 없었단다. 네가 영단을 만드는 방식이 비록 형(形)은 같다 하더라도 그 안에 든 의(意)는 무척이나 다르지 않더냐.”
“영약 베이킹 말씀하시는군요.”
“…….”
제갈린은 미친 제자의 총기 넘치는 눈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윽고 창밖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깨달음을 얻은 걸 보니, 다행히 개파조사님께서 그것도 영약 제조라 쳐주신 모양이구나.”
“네. 천기와 영석이 반응하여 무사히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영약이 맛있게 잘 구워진 거죠.”
“…….”
공명께서 천기를 읽으셨다던데, 혹시 이딴 놈이 후대로 올 것이란 사실을 예측하셨을까?
베이킹이든 영단술이든 아무튼 형(形)만 지켜지면 ‘현상’이 일어나게 하시긴 한 모양이니.
“선조께서 대단한 물건을 남기셨더군요.”
제갈린은 포기했다.
연단로를 은막대로 휘젓든 거품기로 휘젓든, 연단 체로 약재를 곱게 만들든 제빵용 체로 쳐서 곱게 만들든.
…어쨌든 해냈으니 된 일이다.
화경의 끝자락, 현경을 목전에 둔 놈이 연단로 앞에서 그걸 하리라고는 선조님도 몰랐겠지만 하는 놈이 후손인데 어쩌겠나.
“그래. 경지에 오르지 않은 자는 알아볼 수 없는 물건이지. 너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게 그것을 대하도록 하거라.”
“귀히 여긴다면 다른 이도 이것이 사실 무림지보인 것을 인식할 테니까요?”
“그래.”
제갈린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정도의 대우이기에 도적들도 훔쳐 가지 않은 것이니까. 물론 영석 한두 개쯤 훔쳐 간다고 해도 그냥 다른 데서 구해다가 보충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수리까지 쉽다는 게 이 연단로의 장점이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움직일 수 있는 두뇌니까요.”
“그렇지.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두뇌가 되지 않는다면 그저 돌더미일 뿐. 제갈세가가 남겨야 할 것은 이런 물건보다는 현원전단신공이니 말이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스승님께서 세가 이야기를 안 하시는 건가.’
문득 봤던 서류에서 스승님께서 옛 제갈세가 터를 조사했다는 기록을 봤다.
가벼운 조사였다.
그 서류에는 조사 결과까지는 적혀 있지 않았고, 그 이후로 뭔가 더 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제자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래. 그곳은 스승님의 가장 아픈 곳이니까.’
진천희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연단로 주변에 오색 천이 나타나 주변을 빛내던데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뭐?”
제갈린이 할 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어릴 적 가주께 배울 때도 연단로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하고.
“내가 초월절기를 펼칠 때처럼 단순히 주변 색이 변하는 수준이 아니고?”
“네. 오색 천이…….”
극지방 하늘에서나 보인다는 오로라가 땅에 펼쳐졌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대충 손가락에 물방울을 묻혀 쓱쓱 그렸다.
“!”
그것만으로도 제갈린은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그런 현상이 없었거늘.’
설마 ‘요리’, 아니 진천희식으로 말하면 영약 ‘베이킹’.
‘그 미친 방법이 설마, 연단로를 올바르게 쓰는 방법이었나?’
그럴 리가.
어느 선조가 제갈세가 대연단로에 그 짓을 하라고 후손에게 남긴단 말인가?!
그쯤 되면 연단로가 아니라 주방 아닌가?
‘아무리 개파조사께서 만두를 창안하신 분이시라고 해도 그 정도로 괴짜이실 리가?’
반면 진천희는 스승님의 반응에 당황했다.
‘아, 망할. 혹시 나 설마 베이킹하다가 뭐 잘못 건드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