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90
제 990화
“혈편왕은 어떤 사람인가요. 은공?”
사마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어릴 때부터 동경해왔던 영웅을 만나러 가는 길.
생각해보면 당아와 사마혜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긴 하다.
당아는 혈편왕이라는 그 별호대로 그녀의 길은 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적을 상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천당가가 정파라고는 해도 은원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 소가주의 손도 피로 얼룩져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
반면 사마혜는.
‘무공을 익혔으나 강호인으로서 사용하지는 않고 있지.’
혈사 같은 것은 전혀 모른다.
무공도 어디까지나 몸을 지키고 의술을 펼치기 위한 것.
그녀의 손은 아직 깨끗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편왕을 동경한다는 것은…….
‘음, 정반대끼리 끌리는 그런 걸까.’
당아가 사마혜를 마음에 들어 할지는 조금 걱정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또 마음에 안 들어도 상관없지 않나.
어디까지나 일로서 오는 거고.
당아는 어디까지나 소가주로서 손님을 맞이하는 수순일 거니까.
마음에 안 들면 안 만나면 된다. 그러면 끝인 거지.
그게 사회생활일 거고.
거기까지 고작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생각을 마친 진천희는 말을 이었다.
“솔직한 친구야. 강하고 거침이 없고.”
“와아……!”
사마혜의 눈이 다시 빛난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
사마혜가 얼굴을 붉히더니 말했다.
“이번에 의술 교류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들어둔 게 있거든요. 선물하고 싶어서요. 물론 쓸모없다고 버리셔도 상관없지만.”
“……당아가 그런 성격은 아니라고 본다.”
어디 대충 박아놓고 까먹으면 몰라도.
배 위에 어둠이 진다.
진천희는 장강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황구를 타고 가면 금방이겠지만 짐이 많으니 어쩔 수가 없구만. 거기다 사람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 왕복만 한세월을 소모하게 된다.
‘그래도 육로보다는 낫지. 육로로 가면 반년이다… 이 사람들이랑 이 짐 다 싸 가지고 갈 거면.’
배는 밤에도 항해한다.
그래서 등불이 아주 크고 화려했다.
이 정도면 수적이 나타날 법도 하나, 어디선가 ‘우연히’ 정보가 새어 나가서 일광이 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수적들이 알아서 피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사마현…이… 편히 가라고 슬쩍 정보를 뿌린 것 같은데.’
하긴.
사마혜가 죽네 사네 은원에 젖어 싸우는 강호인도 아니고.
하나뿐인 동생에게 수적 시체를 보이고 싶진 않을 테니.
“…….”
그렇게 둘은 등불로 환하게 주변을 밝힌 배를 타고서 주변을 멍하니 바라본다.
배가 흘러간다.
그 갑판에 서서 함께 하늘을 보았다.
매연도, 가로등도 없으니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소금처럼 뿌려진 별을 두 사람은 말없이 지켜본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이 별빛 덕에 밤에도 주변을 어느 정도 분간할 수 있군. 적습을 막기 좋겠어.’
강호에서 별별 놈들을 다 겪은 베테랑답게 그리 낭만적인 감상은 하지 않았다.
“…….”
하지만 사마혜는 다른지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물이 글썽인다.
옛날 생각이라도 난 걸까?
그때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렇게 멍하니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예전부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
진천희는 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옛날. 아파서 누워만 있던 때.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토굴 같은 곳에서 살았던 당시.
그저 아프고, 아프고, 아프고, 아파서.
땅을 기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싫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했을 때.
그때.
사마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다.
“사람이 참 간사한가 봐요. 그때는 가만히 있는 게 그렇게나 싫었는데… 지금은 푹 쉬니 좋네요. 사실 그때를 잊으려고 더 일에 매진한 것도 있었거든요.”
어떤 상처는 비록 아문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흉터가 되어 남아 있곤 했다.
그 시절은 혜아에게 흉터였다.
“그럴 만하지.”
사마혜는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일했다.
재생당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
그리고 연구각 일부를 빌려 개인적인 연구도 거기서 진행하고 있지 않던가.
재생 관련 약물을 개발한다던가?
단순히 피부뿐만 아니라, 뼈와 근육 관련 재생 연구다.
중원에 흩어져있는 다종다양한 민간요법들을 검증해 보고 효과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볼 요량.
제법 결과가 좋아서 휘하에 연구원들이 더 모이더니.
이번에는 재활을 위한 근골 재생도 연구 중이다.
천룡불사기공을 환자에게 익히게 하는 것은 어려우니, ‘외부에서 천룡불사기공의 진기를 불어넣어 재활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발상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연구 중이라고.
그 어리던 사마혜가 이제는 훌륭한 ‘교수’가 되었다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사마혜는 과거 아팠던 자신을 이제는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재생시켰듯.
선천적으로 기형이 있거나 사고로 다친 자들.
또는 은원에 휘말려 크게 다친 강호인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 ‘재생’을 돕고 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돈이 많이 모이는 것은 근골 재생 같은 당장 장애를 치료하는 쪽이 아닌, ‘피부 재생’.
‘돈 좀 있다 하는 자들은 전부 그쪽으로 후원하고 있긴 하지.’
호감 가는 외모는 중요하다.
이건 지구 별과 똑같다.
‘하지만 그래서 사마혜는 연구에 돈을 아끼지 않아.’
모든 당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게 재생당이니까.
어릴 적, 자신 같았던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다는 ‘이상’과 결국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것은 피부 미용이라는 ‘현실’.
사마혜는 매끄럽게 줄을 타고 있다.
한 사람의 의당주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
“그래서 사천당가 교류회에 가는 건 재생당의 연구 때문?”
“그쪽에 살을 녹이는 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독?”
“네. 대신 그 독에 상한 곳은 깨끗하게 새살이 돋아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번 직접 보고 싶어서요.”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이든 약이든 결국 인간이 사용함에 따라 결정되는 것.
직접 가 볼 이유는 충분하다.
“맞아. 당아 말인데.”
“혈편왕 님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음…. 많이 활발한 사람이니까. 당황하지 말고.”
당아는 여전히 그대로일까?
모르겠다.
생사를 넘는 강호에 살다 보면 누구라도 변하기 마련 아닌가.
그녀는 ‘놀이’를 그만두게 되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즐기고 있을까?
서류로 볼 수 있는 것들은 당아가 이룬 업적뿐.
이런 것들은 늘 빠져 있다.
‘생각해 보면 당아를 마지막으로 본 지도 꽤 오래되었네.’
진천희 자신도 그때에 비해서는 상당히 변해 버렸고.
당아 역시 그리되었을 수도 있겠지.
‘그게 세월이니까.’
하지만 어쩌면 그대로일 수도 있겠다.
세월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들이 있으니까.
문득.
술 마시던 남궁운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때가 살짝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나도 참. 미친 생각을…….’
밤하늘의 별이 천천히 움직인다.
하늘이 움직이는 것인가.
강호가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움직이는 것은 인연(因緣)인가.’
* * *
촤악.
해가 밝았다.
저 멀리 포구(浦口)가 보였다.
장강에 자리한 포구들은 대다수가 중계무역을 위한 도시들이기에 다들 나름대로 번성하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 의창(宜昌)도 그중 하나.
호북성의 장강에 자리한 포구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무역도시다.
백린의각의 배가 그런 의창의 포구로 다가가 정박했다.
오늘은 이 포구에서 정박해서 이틀을 휴식할 것이다.
며칠간 쉬지 않고 배가 달려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적절히 쉬어 주지 않으면 안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정박 후 배를 지켜야 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우르르 배에서 내렸다.
미리 의창에 사람을 보내두었기 때문에 객잔들은 이미 전부 예약이 끝난 상태다.
배에서 내리니 모두가 거대한 배를 보고 놀란 기색이다.
“오오?! 거대 상단이라도 온 건가?”
“이 정도면 거의 군선급 아닌가!”
사마혜가 물었다.
“의창에는 백린의각 분타 없죠?”
“오우, 미리 공부해왔구나. 천하삼대의각 바로 아래에 위치한 천하십이중의각(天下十二仲醫閣)이 있어.”
“천하십이중의각.”
사마혜는 저도 모르게 반복 중얼거렸다.
지존천마에서도 별로 언급은 안 되는 집단이지만 화주의각, 백린의각, 흑전의각을 제외하고 제법 믿을 만하고 의술 실력이 좋은 의각이다.
화주의각이 북경을 중심으로 한 북동쪽 지역에 자리하고.
백린의각이 남동쪽 지역을 차지하며, 흑전의각이 북서쪽 지역을 먹고 있다면.
남은 지역을 이들 천하십이중의각이 차지하고 있는 셈.
해선방 같은 지역 의방이 커져서 로컬 프랜차이즈화되었다고 보면 이해하기 더 편하려나.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에서 성당기사단 빵집이 유명해져서 분점을 대전 안에 여러 곳 두는 것처럼.
‘거기 빵 맛있지. 딸기도 왕창 들어가고.’
가끔 그립다.
이제는 천금을 써도 못 가지만.
‘아무튼, 여기도 마찬가지.’
아무리 천하삼대의각이 유명한들,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가 썼던 의방이 더 정감 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천하삼대의각보다 이런 지역 의방이 더 좋은 점이 분명 있지.’
천하삼대의각 소속 의방이라고 해도, 그 지방에 서식하는 약초들을 잘 모르니 대체할 약재 구하는 게 늘 큰일인 데 반해.
지역 의방은 그럴 필요가 없다.
거기다가 그 지역에만 존재하는 풍토병 같은 것들은 지역 의방이 더 전문적일 때가 있다.
“호북성에는 옛날부터 태청의각이라는 곳이 있어.”
“아, 태청!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의술을 배워서 세운 의각이라고 들었어요.”
역사는 무당파의 역사와 비슷하다.
호북성 토박이 의각.
“다만 의술은 우리 의각에는 못 미치지 않나요?”
사마혜는 오만하게 말했다.
확실히 백린의각의 당주로서 자부심이 가득 찬 모습.
‘물론, 스승님께서 만드신 우리 의각은 삼대의각이 아니라 천하제일 의각이긴 한데…….’
친백린의각 측 사람들의 평가에 의하면 천하제일 의각 백린의각 밑으로 천하이대의각 화주, 흑전이 있고 그 밑으로 십이중의각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친백린의각이 아니라 친화주의각, 친흑전의각이면 저 위의 하나만 바뀌는 셈이지만.
예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백린의각 쪽에 몸을 의탁한 강호인들이 늘고 있긴 하지.
‘어찌 되었건 대(大)의각 다음이라서 중(中)의각인 모양이네.’
어쨌든 그렇게 쉬러 가는데…….
강호인 두 명이 길거리에서 칼을 뽑아 드는 게 아닌가.
“망할 자식, 오늘 잘 만났다!”
“비무로 끝을 보자!”
살기가 등등하다.
사마혜가 물었다.
“은공, 안 말려요?”
“일대일이기도 하고 여기는 내가 있는 강소성도 아니니까.”
“의외로 공사가 철저하시네~”
“하하하, 그거 구분 못 하면 강호에서 못 살아간다. 그래도 승부가 나면 말릴 생각이야. 사람 죽는 건 싫으니까.”
진천희는 그리 이야기하며 닭꼬치를 사서 입에 물고는 사마혜도 하나 건네주었다.
본격적으로 비무가 시작되었다.
한쪽은 그 움직임이 뱀처럼 기괴했다.
“오오, 무슨 뱀 같네요? 뼈가 없는 것 같아.”
“공동파의 무공. 모든 움직임이 큼직큼직한데, 그 움직임을 제대로 실어 내리치는 강검이 특징이거든.”
“우와아아.”
이런 것도 의원에게는 큰 공부다.
공동파의 고수가 칼 맞고 오거나, 공동파의 고수에게 칼을 맞고 온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필요하니까.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기괴한 듯 보이지만 잘 보면 규칙이 있어. 특히나 피하고 막는 데 유리한 공방일체의 무공이 공동파의 복마검법의 특징이지.”
“음음. 그렇군요.”
사마혜는 작은 종이를 꺼내 간이 서필로 빠르게 메모했다.
그동안 전투는 계속된다.
“죽어랏!”
그렇게 날아온 공격.
상대 무인은 그 공격을 빠르게 피하더니, 빈틈을 찾아 찔러대기 시작했다.
“오우, 저쪽은 모용세가의 사람 같구나. 모용세가의 섬광분천검(閃光分天劍)이 유명하지. 그리고 저 검법이 바로 그 섬광분천검이야.”
“대단한데요?”
“쾌속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지. 상대의 빈틈을 찔러서 승기를 잡는 무공이야.”
“호오오오. 확실히 머리로 배운 것과 실전을 보는 건 다르네요.”
“그렇지.”
사마혜도 내공만 보면 고수이나, 어디까지나 몸을 지키고 의술을 위해 익힌 것일 뿐.
이런 실전과는 거리가 머니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흥미진진해하는 눈치.
카아아앙!
그렇게 몇 합을 부딪쳤을까.
결국 공동파의 사람이 졌다.
허벅지에 칼이 스치자 자세가 흩어졌고, 그사이에 모용 검수가 칼로 목을 찌르려고 했다.
진천희가 일광답게 먹던 닭꼬치를 던져 막으려는 순간.
그때.
번개가 튀어나와서 모용 검수의 검을 때렸다.
콰르르릉!
“누구냐! 누가 감히 나 모용청의 행사를 방해하는 건가!”
그때 삿갓을 쓴 자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났다.
“공동파와 척을 질 셈이 아니라면 여기서 그만두시는 게 어떻겠소?”
그리 말하며 삿갓을 쓱 들어 올리는 게 아닌가.
남궁운이다.
‘호오?’
진천희는 닭꼬치를 던지는 대신 도로 입에 넣는다.
사마혜의 눈이 커진다.
“어, 저 사람……. 남궁 가주잖아요?”
“그러게. 기묘한 인연이네.”
모용청은 납득할 수 없는지 소리를 질렀다.
“제아무리 남궁 가주라 하더라도 이렇게 끼어들다니! 너무하지 않소?”
“자, 자! 이미 누가 봐도 우리 모용청 대협께서 더 강하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소이까. 이미 명예가 모용세가에 있음인데 굳이 사람을 죽여서 더 증명할 필요가 어디 있겠소.”
일부러 슬쩍 세가를 들먹이자 모용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면 남궁운은 능글맞게 웃었다.
‘호오. 제법이네.’
사마혜도 남궁운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눈을 빛낸다.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은공, 저 사람이 바로 혈편왕님의 오른팔이자 맹우! 남궁운이죠?”
전대물로 치면 당아가 레드이고, 남궁운이 블루나 그린이냐고 묻고 있었다.
“오우…. 굳이 말하면 머리 색을 따서 핑크인데.”
“핑크?”
“협객(레인저)들의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이야. 보통 공주 같은 고귀한 신분들이 많지. 평화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사이도 좋더군.”
“아, 그런 대단한 역할이?! 남궁세가의 가주시면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핑크.
그렇지 않아도 마침 강호인들의 분쟁을 가운데에서 해결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군요. 남궁 가주께서는 협객들의 핑크를 맡고 계시는군요.”
“…음, 그렇다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