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91
제 991화
남궁운이 말했다.
“워워, 화를 가라앉히고 객잔에서 술이나 한잔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남궁 가주는 술을 끊었다 들었는데.”
“하하하, 저는 끊었으나 여기 토박이들은 말술이지요. 아마 한잔하고 있으면 모두 모용 대협의 무명을 들으러 몰려올 것입니다.”
그리 말하며 어깨를 두드린다.
같이 마실 수는 없으나 그래도 좋은 만남을 기대하며 가 보라는 뜻.
남궁 가주가 직접 면을 세워주니 결국 모용청도 더는 화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내 남궁 가주의 말을 듣겠소.”
그 모습을 보며 사마혜가 진천희에게 속삭였다.
“가주로서 좀 위엄은 많이 떨어지는데 일은 잘 해결하네요? 과연 핑크….”
진천희어(語)를 이상하게 배운 제자, 사마혜.
스승, 진천희가 답했다.
“선대 가주처럼 호위대 이끌고 헛기침하는 성정은 또 아니거든. 남궁 형은… 그래서 장로들이 불만이 많긴 하지만, 역으로 젊은 무인들에게 인기는 엄청 많아.”
공동파의 도장도 남궁운에게 감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남궁 가주.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큰 빚을 지게 되었군요.”
“고작해야 몇 마디 나눈 게 전부 아니겠습니까. 그걸로 공동파에 빚을 달았으니 이 남궁 모도 남는 장사지요.”
하면서 장난스럽게 웃는다.
“허허허, 내 남궁 가주께는 절대 못 당하겠군요.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소이다.”
남궁운은 호탕하게 웃으며 공동파의 도인을 보냈다.
이번에는 다른 쪽.
“아까 보낸 객잔보다 더 맛있는 곳을 아는데 거기로 가시렵니까? 내 일부러 추천을 아껴두었소이다.”
“오오, 어느 곳이오?”
자연스럽게 두 무인이 다시 마주치지 않도록 조치를 했다.
그때 진천희가 끼어들었다.
“괜찮다면 허벅지의 상처는 제가 처치를 해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오, 진 아우? 어찌 여기에 있단 말인가?”
남궁운은 그제야 진천희를 알아보고 놀라서 물었다.
“제가 물을 말입니다. 남궁 형께서는 세가를 놔두고 어찌 여기 계시는 겁니까?”
“일이 생겨 사천당가로 가던 중일세. 자네는?”
“저 역시 일이 있어서…….”
신기했다.
둘 다 일이 생겨 사천당가로 가는 중이라니.
남궁운은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 이런 우연이 있나.”
* * *
다친 공동파 도인에게는 응급처치를 해주었고, 가까운 의방으로 향하라 일렀다.
객잔은 그다음에 가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공동파 도인은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세 사람은 미리 예약한 객잔에 식사를 하러 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남궁운이 말했다.
“오. 이런 미인이 사마 아우의 동생이었나!”
“사마 아우요?”
“남궁 형은 자기보다 어리면 전부 아우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특이한 사람이거든.”
“와아…. 그렇군요. 그러면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면요?”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더라고. 그리고 그걸 막 강요하고…….”
“헤에……?”
“아니. 나를 무슨 괴인으로 만드는 겐가! 나도 사람 봐 가면서 한단 말이네!”
사마혜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다가 이윽고 가볍게 예를 표했다.
“백린의각 재생당주 사마혜가 남궁 가주님을 뵙습니다.”
“내 정신 좀 봐. 정식으로 인사할 생각도 못 했군. 사마 소저, 알다시피 남궁세가의 가주직을 맡고 있는 남궁운이라고 하나 그냥 편하게 부르게나.”
“남궁 대협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대협은 과하네. 남궁 소협이라고 불러주게나.”
신기하게도 남궁운도 사마혜에게 남궁 오라버니라고 부르라고 청하지는 않았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의외로 남녀의 선이 분명하구나.’
이런 칼 든 유교 사회에서 오라버니라고 부르게 했다가 결혼도 안 한 사마혜가 괜히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
‘껄렁한 듯하면서도 이런 건 또 칼 같은 모양이네.’
거기다가 한 가지 더.
사마혜 뒤에는 사마현이 있다.
동생에게 억지로 오라버니라고 부르게 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사마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사마현은 혜아를 위해 말 그대로 ‘무슨 짓이든’ 하는 녀석이니까.
거기까지 계산하고 말한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주로서 선을 분명하게 지키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진천희가 물었다.
“남궁 형은 무슨 일로 사천당가에 들르십니까?”
“개인적인 행사가 있어 가네만.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이네.”
비밀, 비밀인가.
진천희의 눈이 푸르게 빛난다.
짐작 가는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남궁운이 명랑하게 말했다.
“그러면 이런 만남에 잔이나 나누는 게 어떤가?”
쨍!
좋은 인연, 좋은 밤이었다.
* * *
오랜만에 배 위가 아닌 객잔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백린의각의 의원들은 모두 기쁜 기색으로 방을 잡았고, 진천희와 남궁운은 따로 객잔 가장 높은 곳에 방을 잡았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남궁 가주씩이나 되이면 자객 올 개연성 충분하지.’
괜히 중간층으로 내려갔다가 의원들까지 휘말리게 하지 말고, 그냥 꼭대기에서 암살자가 알아서 지붕 뚫고 내려오게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짐을 풀고 황구와 뇌진을 복복 긁고 있으니 남궁운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째 내가 사천당가로 가는 이유를 짐작하는 모양이군.”
“……모릅니다. 남궁 형에게 그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지요.”
“알면서 덮어 주려는 것 같고.”
“그냥 집안싸움에 안 끼기 위해 조심하는 것뿐입니다.”
“…….”
이미 그것으로 어느 정도 대답은 대신했다.
그 모습에 남궁운은 진천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거기까지 파악하다니 과연 진 아우로군. 나를 경멸하나?”
“……경멸할 것이 무어이 있겠습니까. 저는 선인도 아니고 그저 살아남기에 바쁜 사람일 뿐. 그저 남궁 형의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진천희는 남궁운을 경멸하지 않는다.
애초에 의각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해오며 강호란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지 않나.
순진한 시기는 지났다.
그리고 이 칼이 범람하는 세계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남궁운이 고뇌하고 있다는 것도.
‘현대 기준으로 보면 내 의형제들은 모두 살인자지. 스승님도 살인자고, 곧 만나는 당아도 살인자고, 적도 아군도 모두가 다 살인자다. 내 손도… 이제는 깨끗하진 않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은원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나 혼자 고고한 척 설교할 생각은 없다.
그럴 자격도 없고.
그저 그 순간, 자신이 믿는 가장 옳은 길을 가기 바랄 뿐.
“마교와 싸운 이후, 자네가 내게 했던 말이 있었지. 한 가지 부탁이라면 들어주겠노라고.”
“…그랬지요.”
“그 약속은 여전한가?”
“…….”
진천희는 눈을 감는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들어드린다 했습니다만. 네. 그럴 생각입니다.”
하륜이의 빚은 진천희의 빚이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아우를 지켜준 이에게는 그만한 보상을 한다.
그것이 강호의 은(恩)이니까.
“그거면 되었네.”
남궁운이 씨익 웃었다.
진천희가 자신의 편이라는 게 기쁜 모양이었다.
* * *
일행은 그렇게 배를 타고 쭉쭉 나아갔다.
장강은 사천성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며칠간의 항행으로 사천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천성 의빈(宜賓).
장강의 포구로 사천성 남단에 위치한다.
사천당가가 위치한 곳으로 가려면 육로로 며칠을 더 움직여야 했다.
배에서 마차를 꺼내고, 짐을 내렸다.
배는 백린의각의 것이니 포구에 정박한 채로 대기하기로 했다.
돌아갈 때 또 써야 하니까.
그렇게 전부 내린 다음 사천당가로 향하려고 했지만 멈추게 되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진천희가 환자들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니…. 전염병이 이 정도로 번지고 있었단 말이야?”
포구의 한쪽.
으슥한 곳에는 천막 같은 것도 없이 천 한 장만 깔리고, 그 위에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환자들은 누운 상태로 구토를 했는지 주변이 어지러워져 있었고, 입에 흰 천을 감싼 의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진천희는 급하게 이 지역 의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화를 듣고 나서 생각했다.
‘의원들이 병에 따라 분류했다가 마지막까지 분류를 못 한 게 황열(yellow fever virus)과 학질(malaria/말라리아)인데……. 다행히 진기진맥이 가능한 의원들이 도착해서 분리해 두었다고 했지.’
황열과 학질은 겉으로 보았을 때 증상이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 세계에는 다행히도 kiiii가 있어 진기진맥을 할 수 있는 의원이 있으면 구분이 가능하다.
증상이 황열인데 진맥을 해서 회임혈이 잡히면 학질로 분류한다.
이것은 과거 새외의 왕자를 진맥할 때와 비슷한데, 기생충으로 병이 생기면 회임혈이 잡히곤 한다.
이 방식으로 중원에서는 학질을 구분한다.
‘일단 황열을 치료하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지금 기술로도 없고, 미래인 현대에도 황열 치료는 무척이나 어렵다.
허나, 대증 치료는 가능했다.
수액 처치를 하고 해열제를 주는 정도.
가장 큰 문제는 급성신부전인데 이것은 의원이 붙어서 진기로 생을 이어가도록 억지로 돕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래대로 회복되는 일은 극히 드물고.
부디 중증까지 안 가고 환자가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황열을 옮기는 모기는 남아프리카나 중남미 지방에나 주로 서식한다는데……. 여기는 중원에도 사는구나.’
감자와 토마토가 화 대륙에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좋은 작물들이 자란다면, 당연히 해로운 것들도 자라기 마련.
세상에는 인간 편한 것만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다음.
‘말라리아.’
모기에 의해서 감염되는 전염병.
인류는 이걸 예방하기 위해 미리 약을 구강 섭취하곤 했다.
나라에서는 말라리아 위험 여행 국가에 가기 전에 먹으라고 권하는데 어지간하면 듣는 게 좋다.
보통은 여행 국가에 가기 며칠 전에 먹기 시작해서 의사가 복용하라는 주기대로 계속 먹어야 한다.
엄연히 말해서 백신과는 다른 형태.
먹다가 말면 얼마 후에 그냥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치료제가 있긴 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죽을 수도 있고.’
현대 지구, 중증 말라리아 치사율은 약 10%.
치료제를 쓴다 해도 환자의 나이와 과거 병력, 그리고 체력에 따라 치사율은 더 크게 치솟을 수 있다.
어느 학자는 전 인류의 절반이 말라리아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는데.
오늘날에는 거기까지는 과장이고 10%~20% 정도는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쪽이 좀 더 대세.
‘전 인류의 10~20%도 사실 미치게 많지.’
그리고 놀랍게도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 기록이 남아 온 인류의 숙적.
진천희는 아연해졌다가,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시를 내렸다.
“여기부터 치료하고 움직이겠습니다. 백린대에서는 사천당가에 사람을 보내 의빈에서 치료 활동을 하고 간다고 전하세요. 사마 당주는 의빈 외곽 공터에 천막 치고 장비 세팅하세요. 저는 관청에 가서 허가받고 오겠습니다. 남궁 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자네를 돕겠네. 기공 치료 정도는 이제 할 줄 아니까.”
산소호흡기도, 투석기도 없는 세계에서 기공 치료는 거의 유일한 생명줄이다.
“흠….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의술을 배운다 하셨었죠. 기초라도 하실 수 있다면 도움이 되실 테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소각주의 명이 떨어진다.
그러자 상의원과 중의원, 하의원까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자, 어서 진법부터 펴세.”
“간호당 의원들 집결하십시오!”
“연구당 하의원들만 일단 모여요!”
뇌의 명령을 받고 신경이 움직이듯 모두가 일사불란하다.
어찌 보면 군대라고 할 만큼 빠른 움직임.
그 속에서 진천희는 모두를 통솔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남궁운은 혀를 내둘렀다.
‘아니, 세가의 무인들도 이렇게 일사불란하진 않건만…….’
대체 양민과 다름없는 의원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기민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마치 수십 번, 수백 번은 연습한 듯한 동작들.
그 하나하나가 체계가 전부 있었다.
‘비록 의원의 일이라고는 하나, 이거 서툴게 일했다간 진 아우에게 한소리 듣겠군.’
짐짝 취급받는 건 사절이다.
남궁운 역시 뭐라도 옮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골인 몸이 짐을 여러 개 옮기는 모습은 그 자체로 박력이 있었고, 지켜보는 의원들 모두 혀를 내둘렀다.
“짐마차로 옮겨야 할 것을 내공도 안 쓰고 한 번에 옮기시다니. 과연 대단하시구려.”
“우리 소각주님과 친우라 들었는데 아주 든든하구려.”
그때, 사마혜가 작게 중얼거렸다.
“과연 핑크.”
“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남궁운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뭔가 협객을 뜻하는 말인가 보군.’
핑크.
진천희에게서 시작된 단어가 사마혜를 거쳐 남궁운에게 들어갔다.
남궁운은 그 단어를 외웠다.
‘분명 강하고 마음 넓은 대협을 뜻하는 단어겠지.’
중원에 그렇게 핑크라는 단어가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