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93
제 993화
진천희에게 작은 깨달음이 오고, 남궁운은 황구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진천희는 무아(無我) 속에서 누가 호법을 서줬는지까지는 몰랐고, 남궁운 역시 조용히 덮밥 곱빼기를 요구할 뿐.
그 후.
진천희가 약을 아끼기 위해 다시 몸을 가는 동안.
남궁운은 주변 늪을 메우는 작업 중이다.
“어째 진 아우와 함께하면 전투보다 토목을 더 많이 하는군.”
토목을 하기 전에 남궁운의 주변으로 뇌기가 순식간에 뻗어나간다.
천뢰제왕신공!
검을 타고 흰빛의 뇌전이 사방을 덮으며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번개는 다음 목표물을, 다음 목표물을 지지며 날벌레들을 죄다 태워버리고 있다.
‘뇌공을 살충제로 쓰다니,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혀서.’
남궁운은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확신이 없다.
콰르르르릉!
뇌전은 멈추지 않고 늪에 파고들어 각종 독물과 벌레 알까지 싹 다 태워버렸다.
“이 일대 늪을 다 메운다고 해도 모기를 멸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그렇다 하더라도 줄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으니까요.”
사마혜였다.
그녀가 진천희를 대신해 백린대에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잠시 들른 것.
사마혜가 명령하자 백린대는 곧바로 늪을 메우기 시작했다.
단순히 흙으로 메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갈을 위에 깔고, 그 위에 잡석을 도포해 깔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다시 늪이 되는 것을 막게 되고.
여기에 석회와 넓적한 돌판들까지 깔게 되면 로마식 도로의 완성이다.
도로 전 단계 공사까지 싹 다 해버리는 셈.
“백린대는 이런 일에 익숙한가?”
“비상시가 아니면 백린군의 일도 돕곤 하니까요.”
“기이하긴 하군. 백린대는 애초에 검보다 궁술이 뛰어났지. 거기에 토목까지 뛰어나다라…….”
세가에서 키우는 무인들은 이렇지 않다.
그렇다고 관에서 키우는 병졸들도 이렇지 않다.
기묘하긴 했다.
사마혜가 말했다.
“은공께서는 원래부터 실용주의자시니까요.”
“보통은 미쳤다고 하는데, 소저께서는 실용주의자라고 칭하는군.”
“하하하. 네, 제 생각에는 그래요. 비록 강호의 상궤에서 벗어나 있다고는 해도 뭐, 괜찮지 않나요? 덕분에 환자가 머물 간이 천막은 누구보다 잘 만드는 게 백린대이지요.”
그 실력 하나만은 확실했다.
어지간한 인부들보다 더 잘할 정도였으니까.
“남궁세가에도 뭔가 배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좋은 생각이십니다. 남궁 대협.”
“소협이라고 부르게. 그나저나 사마 소저는 진 아우를 은공이라고 부르던데 뭔가 은(恩)을 받은 모양이군.”
“네. 목숨을 구명 받았습니다.”
남궁운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 소저도 많이 힘든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군.”
“네. 저뿐만 아니라 오빠의 영혼도 구명해주었지요.”
그게 지금 하오문 소문주인 사마현인가.
진천희의 의형제들이 진천희 아래로 똘똘 뭉치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은(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그에 비해 나는 형님에게 친한 척이나 하는 굴러들어온 돌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겠군.’
어째서 여하륜이 그렇게 반응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남궁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사마혜에게 말했다.
“좋은 이야기 해줘서 고맙네.”
“뭘요.”
사마현이 진천희를 깊게 생각하듯, 사마혜에게 있어서도 진천희는 소중한 별이었다.
그러니 그런 은공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든 환영이었다.
그만큼 진천희는 두 남매를 꺼내준 유일한 어른이자, 어찌 보면 신앙에 가까운 존재였으니까.
‘으음, 오빠가 왜 남궁운을 보고 살짝 짜증 냈는지도 알겠네.’
세가의 도련님.
그것도 타고난 자질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다른 무인들이 겪는 고민도 그리 깊게 하지 않은 도련님이다.
그의 오빠는 항주 밑바닥부터 시작해 금혈방, 하오문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 오빠 사마현은 ‘결핍된 자들의 왕’이다.
누구보다 결핍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왕.
그렇기에 뒤틀렸고, 또 그렇기에 탐욕스럽다.
반면 남궁운은 결핍에 대해서 모르고 자란 자, 거기다 평생 그리 살아갈 게 사마혜의 눈에도 보였다.
허기도, 가난도, 약자가 더 약자에게 가하는 부당한 폭력조차도 그는 평생 모르고 살겠지.
‘하다못해 무공에 대한 재능이라도 좀 떨어졌으면 오빠가 덜 짜증 냈을 거 같긴 한데…….’
그녀의 눈에도 남궁운의 경지는 썩 대단해 보인다.
남궁운 본인은 그다지 목숨을 건 혈로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그리고 은공도 살짝 남궁운은 짜증 내고.’
오빠보다는 낫다.
은공에게 있어 남궁운은 악우(惡友)의 느낌이니까.
남궁운 자신은 모르겠지만 결핍된 자를 긁는 묘한 태도가 있다.
무례한 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은 못 느낄 행동이니까.
세상에서는 그것을 궁합이라고 부른다.
약간 극과 극 같은 느낌.
‘이것도 재미있네.’
동생은 오히려 즐겼다.
사마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 결핍되어 살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어린 시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오빠가 곁에 있었으니까.
자신이 받을 상처를 오빠가 대신 받아 왔으니까.
오빠는 자신이 가진 가장 반짝이는 것들을 사마혜에게 주었고, 그 대가로 결핍된 자들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것들 덕분에 사마혜는 의원이 될 수 있었다.
항주의 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빠가 고맙다.
은공이 고마운 거고.
‘그래서 남궁운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겠지.’
그때 두 사람이 채워준 것들이 어른이 된 지금도.
사마혜의 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까.
* * *
그렇게 삼 일을 보내니 사천당가에서 사람이 왔다.
‘당아인가?’
아니었다.
사촌 격이 되는 당묵하.
“사천당가의 약독당 부당주가 백의신룡을 뵙습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염병 사태를 맞이해 약독당 전원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는데 백의신룡 덕분에 얼마나 한시름 놓았는지 모릅니다.”
백의신룡.
오랜만에 듣는 별호다.
사천당가 쪽은 중원에서 멀다 보니 이렇게 별호 업데이트가 늦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이를 보면 당아보다 두 살이 많던가?’
진천희도 사회생활 짬이 있다 보니 잽싸게 나이부터 계산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독기로 환자를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그쪽인가?’
퀴닌이나 아르테미시닌 같은 약에 관심이 많을 줄 알았는데 기공술을 먼저 꺼내올 줄은 몰랐다.
‘약독당이라고 해도 강호인으로서의 자아가 우선이군.’
우선 진천희는 독기로 환자를 치료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흐음, 허나,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공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겠군요.”
“네. 최소 조건이 화경의 무인이니까요. 그에 비해 약 쪽은 부작용과 내성을 관리할 수 있다면 상당한 가치가…….”
그때 당묵하가 생각에 잠겨 말을 이었다.
“화경의 경지만이 쓸 수 있다면 어찌 보면 백의신룡께서 쓰시는 기공에 화경에 다다르는 해답이 있겠군요!”
“…아, 네. 그렇죠.”
‘확실히 순수 의원과는 많이 다르구나.’
그는 진천희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독공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계속해서 파악했다.
“독기 운용에 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백의신룡께서 사용하시는 독공은 사천당가와는 분명 묘리가 다르나 비슷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 어찌하신 겁니까?”
무공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물어보았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그걸 지켜보던 사마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지경.
“별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독공을 여럿 익히면 되죠.”
“예?”
당묵하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만난 듯이 흔들린다.
독공을 여럿 익힐 수가 있나?
“제가 연이 닿아서요. 무당파의 양의신공을 익혔고, 거기에 여러 신공절학도 접하다 보니 독공도 다수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거죠.”
당묵하는 이제 경악하는 것을 넘어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당묵하는 약독당의 부당주로서 사천당가의 심처에서 주로 약과 독을 만드는 사람이다.
주업은 의원 같은 것이지만, 새로운 독의 개발 혹은 이미 제조 비법을 아는 독을 만들어서 저장하는 역할도 하는 이였다.
그러다 보니 강호의 풍문에는 사실 조금 느린 편인지라.
진천희의 옛날 별호를 거론할 정도로 진천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
‘신공절학을 여럿이나 접하고 익힌 놈이라고?’
이게 진짜냐?
그러나 그도 부당주인 만큼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은 이리 도움을 주셔서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무공에 관한 것만 여쭈어봤군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것인지…….”
“저희도 돕기 위해서 왔습니다. 귀환 손님께만 일을 맡겨서야 저희 사천당가의 체면이 설 수 없는 법이죠.”
‘하긴. 지금 내 행동은 남의 안마당에서 일을 치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사천성의 주인은 당가.
그것은 오랜 시간 전해져 내려온 불문율이나 다름이 없다.
아미파와 청성파의 역사도 깊지만, 그들은 도문과 불문의 문파.
속세에 뿌리를 둔 저들 당가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문파라고 보아야 했다.
그렇게 모두 함께 치료를 준비하는데 당묵하가 말했다.
“사천당가의 의원들이 이렇게 도착했으니 지금부터 모두 사천당가의 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 저는 그게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진천희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천당가 약에 대한 풍문을 들은 게 있기에 반대를 하는 것.
“설마 저희 대사천당가의 약을 무시하는 것입니까?”
“아니…….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백린의각에서 사천당가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천당가 역시 백린의각을 존중할 이유가 없지요!”
‘이런이런, 가문의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네.’
중원 사람들은 자부심이 목숨보다 중하다. 특히 세가에 관련된 것은 더욱 그러했다.
거기다 본가의 자존심이 상했다 여기자마자 바로 급발진하는 모습은 특히 강호인들이 보이는 공통점이기도 했다.
진천희는 작게 혀를 찼다.
이렇게까지 왔으면 진천희가 의견을 접어주는 것이 정상.
허나, 의원으로서 당묵하의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어찌 받아들인 건지 당묵하는 더욱 분노했다.
세가의 권위를 의심하는 모습으로 비쳤던 모양.
허나, 말라리아 약에 관해서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나가라고 하고 싶으나, 어디까지나 당가에서 초대한 손님. 그렇다면 차라리 환자를 반반 나누어 치료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네?”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진다.
당묵하가 답답한지 소리쳤다.
“백린의각과 사천당가, 누구의 약이 더 뛰어난지 겨뤄 보자는 겁니다!”
“…….”
거절하면 아예 내쫓을 기색이었다.
거기다 사천당가는 백린의각의 중요한 우군이다.
사람을 구하는 의원을 무공으로 찍어 눌러 겁박할 것도 아니고.
이곳은 사천당가의 땅.
양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당가를 무시했다가는 그 반동이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다.
현실적으로 환자는 계속 들어오고 약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던 상황이기도 했으니.
‘절반이라도 백린의각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겠군.’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반면 사마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거참, 꽉 막힌 양반이네! 은공, 이참에 누구 약이 더 나은지 확실하게 보여 주죠!”
막상 당사자인 진천희보다 더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사마혜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망할 세가 놈들 기죽이려면 언젠가는 한판 해야 했어요! 차라리 잘됐어!”
혜아가 쌓인 게 많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