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98
제 998화
부부부부부!
놈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방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하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니, 이제 여유가 없어진 모양.
왜에에에엥!
음공에 버금갈 만한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당아에게 수직 낙하!
그 거대한 주둥이를 그대로 내밀어 찌른다!
콰아!
그러나 당아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채찍에 흐르던 기가 강기로 변하며 그대로 놈의 주둥이를 후려갈긴다.
“받아랏! 흑마혈편—!”
……사천당가에 그런 초식 명은 없다.
사천당가는 정파.
그런 마(魔)가 들어가는 초식 명은 쓰지 않는다.
가뜩이나 독공 때문에 오해를 사고 있는 판에 그런 글자까지 넣었다가는 선조들이 거품을 물 터.
콰쾅!
허나 그 위력만은 일절!
거대한 폭발과 함께 둘 다 뒤로 밀려났다.
비(蜚)가 날아오르면서 꼬리를 흔들어 독침을 연사해댔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위력적이었고.
쾅! 쾅! 쾅!
독침이 닿는 곳은 새카맣게 녹아내리며 땅속 깊숙이 파인다.
제아무리 단단한 바위라 하더라도 놈이 쏘아내는 독침을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진다.
허나. 당아의 붉은 장포가 흔들리며 신묘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크하핫! 고작 그 정도냐. 미물아!”
허나, 피한 대신 너무 거리를 벌린 터라 당아의 공격도 닿지 않았다.
당아가 말했다.
“좋아. 가랏. 내 대적자! 다음은 네 차례다.”
“오우!”
진천희는 이상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고요히 합장한다.
마치.
불가의 고승이 깨우침을 얻어 해탈하기 직전의 모습 같았다.
그러나 외견이 그러할 뿐 진천희의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오행신공의 진기가 몸 안에서 상생상극을 반복하며 진기의 속성을 바꾼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기운이 과거 남궁운에게 배운 무공의 구결, 그리고 현원전단신공과 양의신공, 황실 서고에서 배운 다종다양한 무공들과 일순간 섞인다.
원래라면 이 모든 과정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감각으로 해결해야 할 터.
무골과 체질이 그래서 중요하다.
진천희는 둘 다 없으나, 그 대신 다른 강호인들은 못 하는 걸 할 수 있다.
‘계산’.
현원전단신공을 따라 수없이 많은 작은 진천희들이 계산을 돕고.
그 계산식이 도출되는 순간, 그것은 무학으로 발현된다.
파직. 파지지직!
청백광의 뇌전이 합장한 손에서 꿈틀거린다.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
본래는 검에 쓰는 무공이고 전용의 내공심법이 있어야 하지만, 오행신공으로 대체하고 변환한 다음 장법으로 쓴다.
‘남궁 형에게 감사해야겠군.’
진천희식 천뢰제왕장법!
합장한 손을 천천히 떼어내자, 마치 테슬라 코일의 전류 방사처럼 뇌전이 두 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휘감는다.
그 상태로 진천희가 쌍장을 내밀었다.
콰릉!
강기.
그 지고의 파괴력을 가진 힘이 뇌전으로 변하여 쏘아졌다.
이른바 뇌전강기라 부를 수 있는 것!
그 속도는 아광속에 가깝기 때문에 피하는 것은 불가능!
푸화아악!
비(蜚)의 한쪽 날개에 뇌전강기가 격중하고, 그대로 날개 한쪽을 찢고 불태운다.
당아가 놀라서 탄성을 뱉었다.
“세상에! 이런 번개가 가능하다고?”
두 번째 날개까지 나아간 뇌전강기는 그 날개마저 태워버렸다.
“키이이이이!”
기괴한 비명을 내지른다.
그사이 당아가 튀어 올랐다.
비정상적일 정도의 엄청난 도약!
혈룡편을 스프링처럼 구부렸다가 튕기며 추진력을 얻어 뛰어오른 것이다.
“하핫! 악물아. 심판의 때가 도래했도다아앗!”
강기로 둘러싸인 혈룡편이 그대로 비(蜚)의 다른 날개를 찢어 버린다.
거대한 몸체만큼 단단한 육체를 가진 괴물이지만, 날개는 그래도 약점이었다.
검기 정도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강기는 날개만으로 버틸 수 없던 것!
그대로 비(蜚)가 괴음을 내지르며 추락했다.
“하핫! 크하하핫! 죽어라아아앗—!”
당아가 기뻐서 웃음을 터트리며 지상에 착지했다.
비(蜚)는 날개를 모두 잃었지만, 지면에서 꿈틀거리며 분노를 토해 내었다.
그러나 기동성을 잃은 영물이 무에 두려울 것인가?
진천희와 당아가 천천히 비(蜚)를 향해 다가간다.
그때다.
삐이이익!
고막, 그리고 영혼을 동시에 흔드는 괴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놀랍게도 비(蜚)가 지르는 소리가 아니었고.
‘이건!?’
진천희가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니.
녹색 깃털에 몸통은 검은 거대한 새가 내려오고 있었다.
“저건……?”
당아가 묻는다.
그 순간, 진천희는 자신이 보았던 산해경을 떠올린다.
사마혜가 본 것과는 다른 판본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건 알고 있으니까.
“짐조!”
“!”
당아가 진천희를 돌아본다.
허나, 진천희는 당아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짐조만 바라보았다.
‘거대한 독수리만 하다고 산해경에서 봤는데… 저건…… 몸체가 수십 장이 넘잖아? 거의 삼십 장은 되어 보이는데……?’
짐조는 마치 쏘아진 활처럼 수직으로 활강하더니, 발톱으로 비를 콱 움켜쥔다.
삐이이익! 삐이이이이!
거대한 비(蜚)가 바둥거리며 소리 지르지만 짐조는 그대로 비의 머리를 뜯었다.
우지끈!
맛있다는 듯 씹어 먹더니, 그대로 놈의 몸뚱이를 물고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아니, 미친… 이게 무슨……?”
그야말로 괴수 대전이다.
당아와 진천희는 정신이 나가서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때 진천희의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들이 동시에 울렸다.
‘짐조.’
‘응, 짐조야.’
‘짐조가 벌써 나타났어?’
이것도 현원전단신공 때문인가.
머릿속 작은 진천희들이 어째서 당황하는 거지……?
그때 당아가 와서 진천희에게 말을 걸었다.
“대적자여! 나를 도우러 왔는가! 들었노라. 활인천마라고 스스로를 칭했다지? 과연 나의 대적자다!”
그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머릿속 목소리들도 일제히 멈춘다.
왠지 접싯물에 코를 박고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괜찮다.
상대는 당아.
부끄러워하는 쪽이 지는 것이니까.
당아가 말했다.
“하하핫! 내 혈편왕이라는 별호에 어울릴 별호를 이제 얻게 되었군.”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응, 그래. 약간 2% 정도 죽고 싶어졌어.
인정하자.
‘인정하면 편해진다.’
그때였다.
사마혜가 산 너머에서 황구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혀, 혀, 혀, 혈편왕 님!”
시뻘게진 얼굴로 오는 게 아닌가?
당아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음? 나의 추종자인가?”
‘설마 이런 일이 많았던 건가?’
생각해보면 당아 관련 상품들이 엄청나게 잘 팔린다고 사마현이 이야기한 적이 있긴 했지.
당장 사마혜만 해도 그렇지 않나.
사마혜는 그런 당아 앞에서 내리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눈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동경.
어린 시절 가장 힘들 때 우상으로 삼았던 사람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었다.
“패… 패… 패… 팬입니다!”
“팬?”
무슨 뜻인가 싶어서 사마혜를 바라본다.
“어어… 그러니까 추종자입니다! 열렬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아마 팬이라는 단어는 사마현에게 배운 것 같다.
‘내가 현이에게 그런 것도 가르쳤나?’
사마혜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어쩔 줄 모르고 펭귄처럼 팔을 파닥인다.
생각했던 말들은 많았는데 머리가 하얘져서 하나도 안 나오고 있는 모양.
그 모습이 왠지 재미있어서…….
“하핫, 혈편왕이여. 오랜만에 만났으니 밥이라도 한 끼 하겠는가?”
진천희의 장난스러운 말에 당아도 웃는다.
“좋지! 오늘 밤. 코가 삐뚤어지도록 밤을 마셔보자.”
생각해보니 사천당가는 다들 엄청난 주당이긴 하다.
당아도 마찬가지겠지.
진천희가 자리를 만들어 주자, 사마혜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
이 만남을 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다는 뜻.
진천희의 은근한 배려에 사마혜는 행복해졌다.
‘으으, 역시 은공이군요.’
이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의각에서도 지독하다 하면서도 다들 그의 곁에 붙어 있으려 한다.
평생 동경하던 사람과 야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마혜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눈물을 몰래 닦으려고 시선을 돌리던 순간, 그때였다.
“어!? 은공! 저건…….”
사마혜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새의 깃털처럼 생겼지만, 그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한 것이 떨어져 있었다.
짐조의 깃털 다섯 장.
그런데 그 깃털이 떨어진 자리의 땅이 검게 변하고, 어마어마한 독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작은 진천희들이 정보를 속삭인다.
‘역시 짐조야.’
‘독의 신조(神鳥).’
‘짐조의 깃털. 무가지보(無價之寶).’
이 깃털이 그만큼 대단한 물건인 건가.
그리고 ‘나’는 대체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부지불식간에 고서 한 줄이라도 스치듯 본 걸까?
아니면 주술 때처럼 신혈의… 영향 같은 건가?
“오오……. 대적자여. 보아라. 신조가 깃털을 남기고 갔다!”
“잠깐 당아야. 아무리 네가 독인지체라고 해도 저건 위험할 수 있어.”
저걸 어떻게 가져간다?
진천희는 잠깐 머리를 굴렸다.
* * *
‘첫 만남은 역시 카레가 좋겠지?’
만들기도 쉽고 입맛도 안 타고 무난하게 잘 맞는다.
그 위에 반숙 계란까지 올리면 천하일미.
마침 당아가 어디선가 꿩 둥지를 털어온 덕에 꿩알과 꿩고기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여기에 진천희는 토끼를 잡아 와서 토끼까지.
‘그래. 독물이 이리 땅을 덮어도 결국 자연은 다들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긴 하단 말이지.’
대신 독을 축적했기 때문에 일반 양민은 먹을 수 없다.
굳이 먹으려면 피를 빼고 땅에 묻어 독을 중화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고, 또 세 사람 모두 독공을 익힌 덕에 바로 익혀 먹으면 된다.
황구, 뇌진, 칠색영사 같은 영물들은 애초에 독단도 생으로 씹어 먹으니 말할 것도 없고.
‘혜아도 사마현한테 독공을 배웠지.’
사마현은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독공을 일찌감치 동생에게 가르쳐주었다.
금혈방의 소방주에 올라 다른 후계들과 싸워야 하는 운명.
혹여 누군가가 동생에게 마수를 뻗치게 될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사마혜는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는 않지만(애초에 강호인도 아닌데 다치는 걸 좋아할 리가) 그래도 무공을 연구하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빨리 대성했다.
혹시 적성이 그쪽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성취.
하지만 딱 거기까지, 대성하고도 정작 쓰는 건 못 봤다.
그런 의미에서.
‘첫 만남으로 독이 든 카레라니.’
좀 웃음이 나왔다.
어찌 보면 혈편왕을 맞이하는 자리에 딱 맞는 식사 아닌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최고의 독 카레를 만들 생각이다.
진천희는 백린의각에서 굳혀온 고형카레를 꺼냈다.
지구 느낌을 내려고 일부러 각 초콜릿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딱 소리가 나면서 쪼개지는 촉감이 좋다.
‘카레 가루 굳힐 때 버터를 너무 넣었나?’
거기다 카레 가루 특유의 신맛을 싫어해서 오래 볶았던 기억이 난다.
가루를 오래 저을수록 좀 더 고소해지니까.
한마디로 이 카레는 진천희의 취향이 잔뜩 들어간 카레.
좀 애들 입맛이다.
그렇게 카레를 넣고 건조야채와 밑간 잘 밴 토끼고기와 꿩고기가 들어갔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지.’
치이이익-
보존용 소시지.
육포 때문에 미칠 것 같을 때 소시지는 가뭄에 단비다.
빙공으로 아예 얼려버리면 몇 달도 너끈하다.
물론 해동할 때 맛이 좀 줄어드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도 빙공의 고수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해결될 터.
‘요리에 무공이 중요한 이유지.’
진천희가 만든 건 사슴고기 소시지.
잡내를 없애려고 후추와 매운 양념을 잔뜩 넣었는데, 오히려 그게 풍미가 되었다.
‘짐조의 깃털은 일단 당가에 알려 회수하기로 했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사천당가라면, 신수 짐조의 깃털을 다루는 방법을 알 것이라고 판단했으니까.
그사이 밤이 깊었기에 일행은 이렇게 야영 캠핑을 하는 중이다.
물론 오늘의 요리사는 진천희.
“오, 오오오오!”
당아가 진천희의 요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그건 사마혜도 마찬가지.
옆에 동경하는 분이 계시는 것도 까먹고 진천희의 화과만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불맛을 입히려고 소시지 위에 불꽃이 솟구친다.
화르르륵!
“우와아아!”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방금 전에 야채 볶을 때도 저런 소리를 냈는데 역시 요리 불꽃은 봐도 봐도 재미있는 모양.
“완성!”
탕!
거기까지 말하고는 각자의 그릇에 밥과 카레, 소시지, 그리고 반숙 달걀을 얹어주었다.
절임 반찬도 밥그릇 주변에 덜어서 놓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인이니까.
그렇게 분배를 하고는 영물들에게도 전부 나누어주었다.
컹컹컹!
삐이이익!
사람보다 더 많이 먹는다.
영물들은 진천희의 ‘기다려’ 같은 것은 듣지도 않고 곧바로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칠색영사도 눈을 빛내며 소리 냈다.
쉬이이이익!!
얼마나 좋았는지 비늘이 영롱한 빛을 뿜을 정도.
당아가 말했다.
“우와, 칠색영사가 이리 좋아하는 건 또 처음 보는군.”
“입에 맞는 모양이야.”
“그렇지. 내 대적자의 요리는 천하일품이니까.”
사마혜가 말했다.
“그 짐조도 이런 요리를 좋아할까요?”
그렇게 거대한 것에 밥 해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거기다가 깃털 다섯 장으로 대지가 독기에 절여지지 않았던가.
깃털만으로 무림지보라니.
‘그쯤 되면 영물이 아니라 신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육각영독사는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진천희가 만든 카레 향이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당아는 고민하다가 다른 그릇에 카레를 조금 덜어 커다란 바위 위에 놓았다.
“이 동네 사람들이 산신에게 바치는 의식이지. 여기서 산신이란…….”
“…산짐승이나 영물이겠군요.”
사마혜가 답했다. 당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독이 들었으니 일반 짐승은 못 먹을 거고 영물 정도나 먹을 수 있을 거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상상이 안 되는군. 그런 거대한 존재가 카레를 먹을 리가…!’
설마 짐조도 같은 입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