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ummuan RAW novel - Chapter 23
23
[도검무안 23화]
第四章 중원(中原)으로 (3)
검푸른 기운이었다.
병장기 끝에서 살랑거렸다가 소멸되는 기운이었다.
그런 기운을 야뇌슬보다 더 강하게 뿜어내는 자를 보게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싸움을 말려야 한다.
야뇌슬을 죽게 할 수 없다.
이것이 그가 할 일이다.
염왕은 다른 자의 손에 죽을 수 없다. 혹여 그가 죽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야복의 결정이 그렇게 내려졌기 때문이리라.
‘염왕의 무공은 아니었는데…… 염왕의 무공은 언제쯤 나타날까? 일광불심…… 다른 건 다 종이호랑이야. 오직 일광불심만이 진정한 무적인데……’
마록타는 두 사람의 주검을 땅에 묻었다.
“여기서 겨울을 나자.”
야뇌슬의 말은 뜻밖이었다.
“왜? 이제 거추장스러운 사람도 없는데?”
“조금 더 배워야 할 게 있어.”
“그래, 그럼. 뭐 급할 건 없지. 뭘 더 배우려고?”
야뇌슬은 왕린을 죽인 수련장에서 천천히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오제의 무공이 줄줄이 풀려나온다.
신뢰삼검을 시작으로 천왕구참도(天王九斬刀), 백이십구신창술까지 한 달음에 달려간다.
병기를 바꾸지는 않았다. 검으로 도법을 펼쳐내고, 창법을 시전했다.
그는 오제의 무공을 처음부터 다시 수련했다.
‘하나!’
마록타는 눈빛을 빛냈다.
‘하나! 그렇지!’
이제는 확실하다. 야뇌슬은 오제의 무공에 푸른빛을 심기 시작했다.
헌데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검 끝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릴 때마다, 미간에는 금빛 광채가 소용돌이친다.
푸른빛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일광불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 점이 매우 좋다.
동굴 안에 있을 때는 그나마 있던 빛마저 소진되어 갔는데, 이제는 다시 커지고 있다.
일광불심도 푸른빛과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신안을 수련한 사람만이 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불을 켠 것처럼 너무도 뚜렷한데 어떻게 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 둘! 그렇지! 또 깜빡였어!’
마록타는 푸른빛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이 절정 무인 두 명을 죽인 절공이라고 할지라도 염왕의 무공이 아닌 이상 언젠가는 버려야 할 것이다.
염왕은 무적이다. 다른 자의 무공 따위는 필요 없다.
금빛 광채, 일심불광…… 오직 그것만 본다.
‘흐흐흐! 오제의 무공에 푸른빛을 심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일광불심을 건드리고 있으니…… 흐흐흐! 좋군. 좋아. 그럼 나는 타고나갈 배나 수리해 볼까.’
마록타가 휘파람이라도 불듯 상쾌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심등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심등은 꺼지지 않는다. 진기를 일으키기만 하면 어느 새 가슴의 불이 켜지고, 불 켜진 등잔은 미간에 달라붙는다.
무인은 의념(意念)으로 진기를 이끌어야 한다. 이를 운기행공이라고 한다. 진기도인이라고도 하고, 진기 유통, 진기 유전(流轉)이라는 말도 같이 사용한다.
그는 진기를 행공할 필요가 없다.
단전 진기를 일으키기만 하면 심등이 알아서 유전시킨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난다.
십이묘환법을 쓰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맥으로 진기를 유통시켜야 한다. 심등에 달라붙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심등을 꺼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심등이 모든 무공에 응용되는 것은 안다.
심등에 융합된 진기로 오제의 모든 무공을 펼쳐낼 수 있다. 하지만 십이묘환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십이묘환법은 단전에서 일어나 각 경맥으로 번져가는 유통법을 사용한다.
당연하다. 모든 진기 운행이 그러한 순서를 밟는다. 단전 진기를 가슴으로 끌어올리고, 다시 미간 상단전에 상주시킨 후, 그제야 유통시키는 운기법은 없다.
진기가 단전에서 각 경맥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지난 필 개월간 야뇌슬은 이 부분에 주력했다.
동굴을 몰래 기어 나와 왕린의 수련모습을 훔쳐봤다. 그리고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만의 수련을 했다.
심등을 꺼야 한다.
헌데 심등은 꺼지지 않는다. 불길을 약간 죽일 수는 있지만, 이미 심지에 불이 붙은 후인지라 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등은 목숨이 끊어질 때나 꺼진다.
그는 심등을 꺼야 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와 죽기 전에는 꺼지지 않는 심등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론은 하나, 심등은 꺼지지 않으니 십이묘환법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방법 밖에는 없다.
그가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두 손을 드는 순간, 십이묘환법을 포기하는 순간, 빠른 복수를 포기하고 차분히 무공을 닦아서 십 년이나 이십 년 쯤 후에 복수하자고 생각한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심등의 역할을 알았다.
심등이 바로 진기다.
진기는 꼭 단전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다. 중단전에도 진기가 고여 있고, 상단전에도 고여 있다.
그릇 세 개를 놓고 그 속에 물을 담는 식의 분배가 아니다.
그릇은 하나다. 몸통이라는 그릇 밖에 없다. 거기에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라는 무형의 그릇이 건네진다. 그릇에 가득 담긴 물이 하단전이 필요로 하면 그곳으로 이동하고, 상단전이 필요로 하면 또 그곳으로 옮겨간다.
육신이 죽으면 삼단전의 진기가 일시에 소멸된다.
하단전이 빨리 소멸되고 상단전이 조금 늦게 소멸되고…… 그런 게 아니다. 일시에 소멸된다. 여러 개의 그릇이 아니었다. 그릇은 원래부터 하나였다.
단전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심등만 봐도 된다.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를 심등으로 끌어올리는 짓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심등이 있는 곳에서 바로 진기가 피어나게 하라.
그 이치를 깨달은 순간, 그는 동굴 생활을 마쳤다.
마록타에게 고기를 굽게 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수련을 통해서 시험해 볼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무도 확실해서 확인할 필요가 없다.
진기를 의식하지 않는다. 심등만 쳐다본다. 그러면 어느 새 진기가 깃들어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십이묘환법의 운기 순서를 재조립하는 것이다.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가 양 갈래로 나눠진다. 한 갈래는 중완혈(中脘穴), 중정혈(中庭穴)을 거쳐서 임맥(任脈)을 타고 백회혈(百會穴)로 치솟는다. 다른 한 갈래는 회음혈(會陰穴)을 거쳐서 독맥(督脈)을 뚫고 척추를 따라 올라간다.
이 두 갈래의 진기는 십이경맥(十二經脈)과 만나면서 진기를 흩뿌린다.
기둥은 임독이맥(任督二脈)이다. 이를 십이경맥이 보조한다.
십이묘환법의 각 법은 십이경맥 중 어느 혈들을 중점적으로 취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운기법을 바꾼다.
심등에서 일어난 진기를 똑 같은 순서로 분배한다.
한 갈래는 곧장 백회혈로 치솟게 한다. 다른 한 갈래는 임맥을 따라서 내려간다. 단전을 지나고 회음혈을 거쳐서 독맥을 타도록 만든다.
한쪽은 매우 긴 여정이고, 다른 한쪽은 상성혈(上星穴), 신회혈(顖會穴), 전정혈(前頂穴)만 거치면 그 다음이 바로 백회혈이다.
완급 조절을 매우 잘해야 한다.
긴 여정은 달리는 마차처럼 치달리게 하고, 다른 한쪽은 산책이라도 하듯이 느리게 운기한다.
한 몸에 두 진기가 각기 다른 속도로 운기된다.
이런 운기법은 무림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기를 둘로 나눌 수는 있다. 그런 운기법은 존재해 왔다. 많을 경우에는 수십 가닥으로 분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속도는 똑같아야 한다. 빠르거나 늦거나 한 가지만 할 수 있다.
왜? 한 사람이 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등의 위대한 점이 이것이다.
심등은 불가능해 보이는 완급조절을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심등에서 번져 나온 십이묘환법이 왕린의 십이묘환법보다 강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너무 확실해서 두 번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심등 진기.
야뇌슬은 그것을 완전히 몸에 붙였다. 손과 발에 붙였다. 생각이 일어나면 법도 따라서 일어나야 한다. 십이묘환법이든 오제의 무공이든 생각이 일어나면 번쩍이게 만든다.
야뇌슬은 오제의 무공을 하나의 틀에 솎아 넣고 있었다.
***
겨울이 지나갔다.
겨울이 끝났고 봄이 왔다고 바다바람이 말해준다.
바람 속에 매서움이 섞여있지 않다. 차가움, 살을 에는 한기가 사라졌다. 그 대신에 솜털을 어루만지는 듯 온 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지나간다.
야뇌슬과 마록타는 왕린이 타고 온 배에 몸을 실었다.
“육지가 어딘지는 아는 거야?”
“낄낄! 계속 그 따위로 말하면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버린다. 노나 잡아.”
“눈대중으로 짐작하는 거라면 관두고.”
“저놈이 끝까지 날 무시하네.”
“어디 가보자고. 가다보면 어딘가에는 닿겠지.”
야뇌슬이 노를 잡았다.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겠어?”
“뭘?”
“정말 괜찮냐고!”
마록타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야뇌슬은 누이의 무덤에 인사를 하지 않았다.
높은 언덕 위에 묻혀서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데,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괜찮아. 누이도 이제 자기가 혼자라는 걸 알아야지. 애까지 가진 임산부를 언제까지 돌봐주라고.”
야뇌슬이 산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말했다.
“그래, 돌아올 거니까.”
마록타가 힘껏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아이 체구 밖에 되지 않는다. 거가에 꼽추다. 살갗은 ‘마록’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푸르뎅뎅하다. 얼굴도 엉망이다. 오관(五官)이 빼틀빼틀 제멋대로다.
그래서 그는 항시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다닌다.
가급적이면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허리를 숙이기도 한다. 꼽추라서 허리가 굽었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랴.
두 다리는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물속에서는 물고기보다 빨리 움직이지만 땅에서는 오리가 걷는 것처럼 뒤뚱거린다.
육지에 올라서면 참 많이 놀림 받을 게다.
그래도 그는 희망에 들떴다. 난생 처음으로 섬을 떠나서 육지로 들어선다는 기대감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야뇌슬도 노를 저었다.
쓰윽! 쓰으윽! 쓰윽!
배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