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ummuan RAW novel - Chapter 3
3
[도검무안 3화]
第一章 기어이 네가 (3)
단언컨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의 결기는 돌이킬 수 없다. 뜻이 너무 굳세다.
부도주가 말했다.
“그런 말씀으로 엿 한 조각이라도 바꿔먹을 수 있다면 도주의 뜻을 따르지요.”
“자네는 그분들의 뜻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아닌가. 백 년 이래 제일 기재라는 말은 아무나 듣는 게 아니지. 그런 자네가 어찌 그분들의 뜻을 모를 수 있는가.”
“망아독(忘我毒)을 준비했습니다. 편하게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소신이 마지막까지 두 분을 보필하겠습니다.”
부도주는 일절 감정을 떠올리지 않았다. 목석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기는 이런 표정이 그의 일상적인 표정이기는 했다.
“오늘…… 얼마나 죽나?”
부도주가 말했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봉화는 올랐다. 적사도회는 시작되었다. 이제 곧 뭇 청년들이 썰매를 타듯이 바다를 질주해 오리라.
사람들은 먼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헉!”
“커억!”
사람들이 느닷없이 비명을 토해내면서 가슴을 움켜잡았다.
“사, 산공독(散功毒)!”
“기, 기습이닷!”
사람들은 고통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최대한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미안하이. 편히들 가시게.”
소름 돋는 말은 뜻밖에도 주위를 에워싼 동료들 입에서 나왔다.
“너, 너희!”
“그럼 너희가 기어이!”
해변에 모인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눴다. 중독된 자와 중독되지 않은 자. 중독되지 않은 자는 주위를 에워싸고 있고, 중독된 자는 한 가운데 뭉쳐있다.
그러고 보니 야뇌슬을 응원하는 사람들만 중독되었다. 노모보를 응원하는 자들 중에도 중독된 자가 나왔지만 극소수에 불과할 뿐, 거의 대부분 야뇌슬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당했다.
“액(液)과 기(氣)…… 훗! 후후훗!”
가슴에서 치민 고통은 피를 역류시켰다. 칠공(七孔)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액은 술이다. 술에 약을 탔다.
무색(無色), 무취(無臭)라서 알지 못했다. 또 모두들 흥겨운 마당인지라 암습 같은 건 조금도 고려치 않았다.
기는 봉화다. 봉화를 피워내면서 독까지 풀어냈다.
액과 기가 만나면 비로소 진정으로 쓰고자 했던 독이 완성된다. 두 개의 독이 체내에서 하나로 합성되며, 산공(散功)과 역혈(逆血) 그리고 마비(痲痹)의 효능을 이끌어낸다.
이들이 쓴 독에 중독되었다면 이미 늦었다.
“그래…… 원 없이 해보라. 하지만 중원의 벽이 두텁다고 칭얼거리지는 마라. 구천에서 듣고 있으마. 그래도 너희들이니……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면 기꺼이 웃어주마.”
“걱정마라. 우린 강하다. 끝내!”
차앙! 창!
언제 숨겨왔던가. 여기저기서 병장기가 튀어나왔다. 검, 칼, 창…… 다양한 병기가 중독된 자들을 겨눴다.
가만히 놔둬도 살지 못한다. 그만큼 지독한 독을 썼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적을 죽일 때는 눈앞에서 확실하게 죽여야 두 발 뻗고 잔다고 배웠다.
죽음을 확인한다.
쒜에엑! 쒜에에엑!
검풍이 일었다. 칼바람이 일어났다. 독에 중독되어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가는 몸에 칼날이 떨어졌다.
쩍! 퍼억!
몸이 갈라지며 피가 튄다. 파육음이 일어나며 손발이 떨어져 나간다. 죽음이 일어난다.
도주는 해변의 참상을 지켜보았다.
어림잡아 오십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척살되었다.
이백여 명의 사내들이 해변을 떠난다. 일 년 중 제일 큰 잔칫날 피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섬으로 들어선다. 죽은 자들의 아낙과 자식들이 부치미도 붙이고, 떡도 만들고 있을 터인데, 그들에게 칼질을 하기 위해 움직인다.
도주가 한탄했다.
“쯧! 너무 적게 죽었어. 겨우 저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여기서 많이 죽어야 중원이 피를 덜 흘릴 텐데.”
“도주께서는 이들이 정말로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했습니까? 힘 있는 자에게 평화는 무력감을 줍니다. 모두 뛰고 싶어 합니다. 도주께서도 언젠가는 이런 일이 터질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다만 그 시기가 빨랐을 뿐.”
“예측하지 못한 기습이네. 훌륭해.”
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송연부인이 몇 번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오물거리다가 끝내는 긴 한숨만 내쉬고 그만두었다.
부도주가 송연부인의 마음을 짐작하고 공손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을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 아이는 보모의 아이를 가졌어요.”
송연부인이 끝내 말하고 말았다.
“아시겠지만…… 야리몌(夜梨袂)는 고양이입니다. 고양이가 호랑이의 씨를 가져서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좋게 끝나도 비극입니다. 같이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송연부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미 정해진 일들이다. 거부할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다. 정해진 대로 쭉 나가는 길 밖에 없다.
“딸만 묻고 아들에 대해서는 안 묻습니까?”
“후후후! 딸까지 정리하는 자네 아닌가. 아들은 더 확실히 끝내겠지. 그놈…… 후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곳을 갔군.”
도주가 무인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덜컹!
문이 거칠게 열리며 장정 넷이 들어섰다.
“어멋! 뭐예요! 지금 뭐하는…… 컥!”
허리에 손을 턱하니 얹고 들어선 사내들을 막아서던 시비 춘아(春娥)가 목에 칼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야리몌는 세 뼘 길이의 끈에 용문(龍紋)을 자수 놓는 중이었다.
적사기는 노모보가 움켜쥘 것이다. 동생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노모보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 노모보는 강하다. 아주 강하다.
용문의 끈은 그가 적사기를 움켜쥐면 기의 끝에 매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불청객이 난입하여 시비를 죽였다. 적암도에서 살상을 벌였다. 도주의 거처에서 살인을 했다.
불청객…… 그들을 봤다. 그들이 누구인지 안다. 같은 섬사람인데 왜 모르겠는가.
모르는 사람이 살육을 벌였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외인의 기습, 해적의 습격…… 모두 다 좋다. 하지만 섬사람이 벌인 살육이다. 골육상잔(骨肉相殘)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한 눈에 사태를 파악했다.
“부도주께서 기어이……”
그녀는 절망을 느꼈다.
예비 시아버지가 일으킨 반란!
여기에는 희망이 없다. 노모보와의 사랑도 끝났다. 뱃속의 아이에게도 불행만이 남는다.
“야리몌, 사감(私感)은 없다!”
쒜엑!
야리몌는 날아오는 검을 보면서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전력을 다해서 반항하면 한두 명쯤은 격살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미 사랑은 끝났다.
퍼억!
검이 심장을 꿰뚫었다.
그 순간에도 그녀는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감싸 쥐고 있었다. 뱃속의 아이만은 검에 맞아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또르륵!
도주는 찻잔에 차를 따랐다.
부도주가 말한 망아독이 들어있는 녹차다.
차를 마시면 순식간에 심장이 멎을 게다.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절명할 게다.
망아독은 적암도에서 연구한 독 중에 가장 치명적이다.
“즐거웠소.”
송연부인에게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저도요. 야리몌도 사랑하고 야뇌슬도 사랑하지만 당신을 제일 사랑해요.”
송연부인이 찻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하하하! 그 놈들 들으면 섭섭해서 어쩌라고 그런 말을 하시오.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마음에만 담아두는 것이오. 내 이미 알고 있지 않소. 하하하!”
두 사람은 찻잔을 들어 올려 입에 댔다. 그리고 동시에 마셨다.
꿀꺽!
찻물이 단숨에 뱃속으로 흘러들었다. 순간,
쒜엑! 퍽!
느닷없이 검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도주의 등에서 살을 찢는 소리가 울렸다. 뼈도 갈라지고, 심장도 꿰뚫린다. 그리고 앞가슴으로 핏빛 파도문양이 새겨진 검날이 삐죽 튀어나왔다.
“…… 왜?”
“도주…… 이건 반란이기 때문이오. 도주의 몸에 검을 댄 것은 강자존(强者存)의 표식이오.”
“허! 꼭 이래야만 했나.”
“강자존은 저들의 희망이오. 누구든 힘 있는 자는 나를 죽이고 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소. 이것이 지금부터 내가 열어나갈 세상이오. 이것이 진정한 무림이오.”
“그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 도축의…… 세상……”
도주의 음성이 희미해졌다.
털썩!
송연부인이 먼저 몸을 눕혔다.
그녀는 도주처럼 심후한 내공을 지니지 못했다. 독기운을 이겨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녀는 검에 꿰뚫린 도주의 모습을 보고 쓰러졌지만 입가에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행복했어요.’
그녀의 얼굴이 말하고 있다.
부도주가 말했다.
“도전을 받을 때마다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게 무인이오. 그런 느낌이 없이 어찌 산단 말이오. 우린 이곳에서 너무 오래 살았소. 살만큼 살았단 말이오.”
도주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송연부인의 얼굴을 보면서…… 살며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떨군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