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ummuan RAW novel - Chapter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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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37화]
第六章 도검무안(刀劍無顔) (5)
쉬익! 쉬이익! 쉬이이익!
일단의 무리들이 폐가로 들이닥쳤다.
“도귀는!”
취화선개, 그는 경공(輕功)까지 써가면서 폐가로 들어선 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물었다.
“가셨습니다.”
“이 바보야! 잡아놓으라니까!”
“저희들이 어떻게…… 창암도 향주 두 명이 급습을 해왔는데, 일검에 베어버렸어요. 그렇게 빠른 검은 처음입니다.”
“쯧!”
취화선개는 혀를 찼다.
야뇌슬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점은 그도 인정한다.
그는 자신을 격퇴시킬 정도로 놀라운 무공을 지녔다. 향주 두 명쯤은 가볍게 처리했을 게다. 그러나 무림은 무공만으로 살 수 없는 곳이다.
그에게는 사람이 없다.
창암도에서는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나올 것이 뻔한데, 무슨 수로 감당하겠나. 설마 사백 명에 달하는 무인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는 혈귀(血鬼)다.
물론 창암도 상주 무인들은 죽어도 싸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적암도 도귀들보다 그 놈들이 훨씬 못 됐다. 그들은 안위를 보존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강한 힘에 빌붙어서 사람들을 핍박한다.
무엇보다도 개방도를 죽이는데 앞장선다.
취화선개가 염려하는 것은 사백 명을 일시에 죽였을 때, 이 땅을 적시는 피다.
시산혈해(屍山血海)!
그가 아무리 정당한 마음으로 검을 들었다고 해도 수백 명의 시신을 그를 정인(正人)으로 만들지 않는다.
단황신개가 오고 있다.
신산여제갈(神算女諸葛)이라고 불리는 모용아도 온다.
물론 그들이 오는 목적은 좋지 않다.
도귀에게 검을 들이대는 도귀!
그들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오제의 무공을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다. 말로 해보고 듣지 않으면 무력이라도 쓸 생각이다.
야뇌슬에게는 무공이 통하지 않는다.
그가 순순히 오제의 무공을 토설할 리도 없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접고, 그를 중원 편으로 받아들여서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신산여제갈 모용아라면 이런 부분들을 단숨에 읽어낼 게다.
야뇌슬의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구상이 딱 잡힐 게다. 요즘 한창 기승을 부리는 시교혈랑대와 붙일 수도 있다. 련주 암살에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 자가 혈귀로 인식되는 것은 득이 못된다.
‘개방이 동참해줘야 해. 혈사(血史)를 같이 쓰면…… 이번 싸움은 야뇌슬을 혈귀로 만드는 싸움이 아니라 도련 심장부에서 놈들의 살점을 도려낸 쾌거로 바뀔 수 있어.’
문제는 창암도의 저력이다.
창암도에 운집한 군웅들도 무섭지만, 창암도주를 비롯해서 이십여 명의 사주들은 정말 무섭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에 비해서 약하지 않다.
개방도를 그들에게 들이미는 것은 불나방이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단황신개는 언제 온다더냐!”
“오늘 안으로 도착하신다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그건 아침에 한 소리고!”
“그 이후로는……”
“알았다! 가자!”
취화선개는 부리나케 신형을 날렸다.
원래 이러려고 잠입한 것은 아니다. 혜주(惠州) 분타의 피해가 너무 심각해서 상황을 살피려고 왔다.
분타주는 노로곤만 처치해주면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했지만…… 노로곤 한 명 죽여서 될 문제가 아니다. 창암도가 본격적으로 색출 작업에 나서면 모두 죽는다.
혜주 분타를 임시적으로 폐쇄할 생각까지 하고 왔다.
그런데 엉뚱한 놈이 툭 튀어나와서 싸움을 전면전으로 이끌고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경우,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느긋하게 뒤에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 도귀 놈이 도귀 놈들을 척살한다는데 굳이 끼어들어서 피를 볼 이유가 무엇인가.
야뇌슬과 손속을 부딪치지만 않았어도, 그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단언하건데 개방이 싸움이 가세하는 일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다.
그는 그 한 판의 싸움으로 야뇌슬의 가치를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놈은 도련 련주나 적어도 시교혈랑대와 붙일 수 있는 고급 재원이다. 그런 놈에게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싸움을 시킨다는 건 전략적인 손해다.
쒜에엑 쒜에에엑!
개방도들이 앞서나간 취화선개를 쫓아서 분분히 신형을 날렸다.
“음……!”
취화선개는 신음을 토해냈다.
폐가를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신 여덟 구를 발견했다.
“모두 단 일격에……”
혜주 분타주가 눈을 부릅뜬 채 말을 잊지 못했다.
반검문은 결코 약한 문파가 아니다.
혜주에서 동북으로 삼십 리 쯤 가면 남령(南岭)이라는 산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반검문의 둥지다.
반검문은 부러진 검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검끝의 날카로움을 포기하고, 무딘 칼로 찔러 죽이는 잔혹함을 선택했다.
잔혹함의 대가는 잔혹함이다.
상대를 잔인하게 죽이면, 상대도 그에 합당한 공격을 퍼붓는다.
그들이 반검을 선택한 것은 꼭 잔혹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반검의 무게와 길이에 특화된 무공을 창안해냈다. 비수는 가볍고 짧다. 장검은 길다. 검이 몸에 바짝 붙어서 움직여야 한다. 육박(肉薄)에 가까운 검공을 펼치는 것이다.
반검문은 그런 무공으로 존재했고, 생존했다.
그들의 문도 수는 거의 삼백여 명에 이른다. 남령 일대의 젊은이들은 거의 모두 반검의 검공을 수련한다.
그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강자 열세 명이 창암도에 상주한다.
죽어서 시신이 된 여덟 명, 이들이 그들이다.
“족적(足跡)이 몇 개 없습니다. 싸움이 길지 않았습니다.”
땅을 살피던 걸개가 말했다.
“반검도 깨끗합니다.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고요…… 검날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검을 살피던 걸개가 말했다.
“일격 즉사. 아주 깨끗합니다. 심장과 폐만 찔렀는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갔을 겁니다. 어휴! 어떻게 했기에 반검문 고수들이 손도 못 써보고……”
시신을 살펴보던 무인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들이 말하기 전에 취화선개는 이미 그런 사실들을 알아냈다.
발밑에 죽어있는 시신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런 점을 알기 위해서 여러 구의 시신을 점검할 필요는 없다.
‘사정을 봐준 건가?’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조차도 반검문 고수들을 이런 식으로 죽일 수는 없다.
이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마치 통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검을 맞았다.
목숨이 끊기는 일이다. 누가 멍청하게 서서 죽겠는가.
이들이 그런 식으로 죽었다. 상대가 너무 빨라서 저항도 못해보고 죽었다. 혹은 초식이 너무 현란해서 변화를 쫓아가지 못했다. 아! 하는 사이에 심장이 뚫린다.
패검은 아니다. 패검이었다면 훨씬 강력한 살상 흔적이 남겨졌을 게다.
쾌(快)이거나 환(幻)이다.
그때, 자신과 겨뤘을 때…… 권을 쓰지 않고 검을 썼다면…… 누가 죽었을까?
“가자.”
취화선개가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안 갑니까?”
“천천히 가도 될 것 같다.”
“네?”
“허어! 어찌 뱁새가 봉황을 쫓아올까.”
취화선개는 서둘지 않았다.
‘혈귀가 탄생하는 것을 막으려 했는데…… 오늘은 혈귀 이상이 탄생하겠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음! 굉장하군.”
“그렇게 굉장해요?”
여인이 물었다.
그녀는 유삼(儒衫)을 입었다. 머리에는 유건(儒巾)을 둘렀다. 활동하는데 썩 편하다고 할 수 없는 유생의 차림새다. 또 남장을 했다고 해서 그녀의 본색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눈동자가 맑고 총명하다. 입술은 붉고 통통하다. 코는 갸름하며, 콧대가 높다.
누가 봐도 한 눈에 여인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녀는 남장을 즐겼다.
그녀는 키가 크다. 웬만한 사내는 눈 아래로 굽어본다. 훤칠하다는 사내와도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유삼을 즐겨 입는 여인, 남장을 즐기는 여인, 키 큰 여인.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 세 가지 조건을 말하면 누구라도 한 여인을 말한다.
모용세가의 신산여제갈 모용아!
그녀는 쓰러진 반검문 무인들을 세밀히 살폈다.
“굉장해. 아주 굉장해!”
허리에 칠결 매듭을 하고 있는 개방 화자(花子)는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이게 무슨 검초죠?”
“여우같은 계집! 다 알고 있으면서…… 혈우마검 탁발천의 신뢰삼검 아니냐!”
“호호호! 높이 띄워드려도 역정이셔.”
“이놈이 도귀의 무공을 쓴다는 말은 맞았어. 그런데……”
개방 화자 단황신개가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뭐요?”
“지금까지 본 신뢰삼검 중에서 가장 강해.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봐라.”
모용아가 허리를 숙여 시신을 쳐다봤다.
시신은 검에 찔렸다. 헌데 들어가고 나온 흔적이 깔끔하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굉장한 쾌검이군요.”
“쾌검도 이런 쾌검이 없지. 이놈들 표정을 봐. 입만 쩍 벌리고 있어. 눈은 경악으로 가득 차있고. 검에 맞은 후에야 당했다는 사실을 안 거야.”
사실 그 정도는 모용아도 짐작했다. 그래서 더욱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신뢰삼검은 섬전처럼 빠르다. 하지만 빠름에만 치중한 검법이 아니다. 빠름과 강함을 동시에 추구한다.
빠르면서도 강한 검!
검사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검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