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ummuan RAW novel - Chapter 54
54
[도검무안 54화]
第九章 독고금 (3)
아버지…… 도련의 련주인 노갹충은 네 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노갹충이 차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는 노모보와 미와빙은 쳐다보지도 않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일지할안에게 달려가 포권을 취했다.
일지할안은 두 손으로 다소곳이 앞에 모으고 허리를 살짝 숙여서 예를 취했다.
“오는 길에 불편하지는 않았소?”
“생포됐다는 자체가 불편한 것이죠.”
“하하하! 그렇군. 이쪽 음식은 상당히 밋밋하던데, 입에는 맞았소?”
“적암도가 상당히 짜게 먹는 모양이군요. 제게는 이쪽 음식도 짰습니다.”
“아! 그렇겠군.”
노갹충은 일지할안을 상당히 편하게 대했다. 가급적 그녀의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소저를 이렇게 모신 건…… 아버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요. 불편하더라도 잠시 참아주시오.”
“아버님은 불의에 굴하실 분이 아닙니다.”
“대쪽 같은 성미라는 말은 들었소.”
“그걸 아시는 분이……”
“아무리 대쪽 같은 성미라도 자식 일에는 뼈 없는 지렁이가 되는 법이오. 후후!”
“그런 뜻에서 소녀를 납치하신 것이라면…… 실망이 큽니다. 도련의 정보망이 상당히 강하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군요. 아버님은 소녀를 버릴 지언즉 불의와 손잡지 않습니다.”
“하하하! 어떤 게 불의요?”
“련주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불의입니다.”
“내가 숨을 쉬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럼 죽어야겠군.”
“그것도 빠를수록 좋습니다. 중원에는 이미 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숱한 생명이 사라졌지요. 결심해 주시겠습니까?”
독고금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울던 아이도 당장 울음을 그친다는 도련 련주 앞에서 감히 그에게 자진하라고 말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녀가 흥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을 하면서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당장 죽음이 내려질 수도 있는 말인데, 태연하다. 겁을 집어먹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만용도 아니라는 증거다.
“역시…… 대화금장(大禾金莊)의 여식답군.”
“저는 저다운데, 련주님은 련주님답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련주님이 행하실 일이 아닌 듯 합니다.”
“그런가?”
“네. 소녀를 풀어주시지요. 련주님께서 차 한 잔 주시면 다회(茶會)에 참석한 것으로 여기겠습니다.”
“차는 얼마든지 주겠네.”
련주는 풀어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소녀를 납치하신데 대한 대가가 혹독하실 겁니다.”
“난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데.”
“……?”
“어디…… 일지할안의 명성 좀 구경시켜 주겠나?”
일지할안이 련주를 쳐다봤다.
련주의 눈은 무심하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차갑다. 뱀의 성정을 지닌 사람이다.
오면서 이런 여인을 봤다. 미와빙!
‘이 사람들…… 너무 차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 자비 같은 것도 없다. 오로지 목적과 투쟁만 존재한다. 얻고 싶은 것과 얻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만 생각한다.
그녀는 투명하리만치 맑고 고운 손을 면사에 댔다.
“일지할안이라는 말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유세가들이 지어낸 말일 뿐이에요. 혹여 련주님의 심기를 불편하게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하하하! 그럴 리 있겠소.”
옥수가 살짝 꽃무늬 면사 끝을 잡아챘다.
사르륵!
면사가 하늘하늘 떨어진다.
“음!”
련주는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얕은 신음을 쏟아냈다.
“음!”
또 한 사람, 노모보 역시 신음을 흘렸다.
띳집에서 여인의 우아한 자태를 보고 미모를 짐작했다.
여인은 섬나라 여인들과는 전혀 달랐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 건강미의 상징이 될지는 몰라도 아름답지는 않다.
그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중원에 들어왔지만 남방 여인들의 모습은 적암도 여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와빙의 미모가 여전히 돋보인다.
그녀는 맑고, 탄력 있다. 무엇보다도 서글서글한 눈에서 쏟아지는 검은 광채가 매혹적이다.
그런데 독고금은 남방 여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귀족적이다. 고귀하다. 성결하다. 피부가 맑고 윤택하다. 뽀얀 살결에서는 분이 묻어날 것 같다. 그녀의 피부에서는 풋풋한 풀 냄새가 아니라 향긋한 꽃향기가 풍긴다.
아름다울 줄은 생각했다.
그녀의 별호가 무엇인가. 일지할안이 아니던가. 그런 별호를 지닌 여인이 추할 리 있나. 그렇다고…… 관심을 쏟을 필요는 없다. 세상 여인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을……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노모보는 여인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 오뚝한 코, 앵두처럼 붉으면서도 투명한 입술, 그 사이로 드러나는 하얀 이……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이 많이 있다.
달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감춘다고 했나? 물속의 물고기가 아름다움에 현혹되어서 자맥질 하는 걸 잊었다고 했나?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날갯짓을 잃고 멍하니 쳐다본다고 했나?
중원 사람들은 허풍이 심하다.
아니다. 허풍이 아니다. 그 어떤 말들도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는 엇다.
꿀꺽!
노모보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하하하! 역시 일지할안. 명불허전이군.”
노격충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독고금의 붉은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갑자기 조그만 움막에서 단내가 풍기는 것 같다. 붉디붉은 입술에서 번져 나오는 향기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인사하지. 내 아들, 노모보요.”
“노모보입니다.”
노모보는 노갹충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권지례를 취하며 말했다.
그와 일지할안은 먼 길을 같이 왔다. 그가 납치해서 데려 온 여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처음 대면했고, 정식으로 처음 인사를 나눈다.
그동안은 무관심했지만…… 이제는 무관심할 수 없다.
처음으로 욕심이 생긴다.
여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온 몸을 불태우기는 처음이다.
독고금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련주가 말했다.
“와빙아.”
“네.”
“네가 일부인(一婦人) 자리를 양보해야겠다.”
‘훗!’
노모보는 깜짝 놀랐다.
설마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이 말의 의미는 뭔가? 일지할안을 자신에게 내주겠다는 뜻이 아닌가. 자신의 여인으로?
그는 부지불식간 미와빙을 쳐다봤다. 그런데,
“알겠습니다. 그러죠.”
알겠습니다? 그러죠?
너무 순순한 대답, 일순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미와빙의 투기는 적암도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 도주의 딸과 정략적인 연인관계를 유지할 때도 들끓는 투기를 참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밝혔다는 그녀다.
그런 여자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이런 상황…… 예측했던 것일까?
노갹충이 일지할안을 보고 말했다.
“혼례는 이달 중순에 치르겠네. 저 놈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잘 봐주게. 고쳐서 쓸 수 있으면 좋고.”
“풋!”
일지할안이 웃었다.
“역시…… 야만인은 어쩔 수 없군요. 혼인을 이런 식으로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련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섬에서는…… 생포되어 온 여자는 노예일 뿐이지. 노예는 주인의 부름에 응해야 하고.”
적암도에는 그런 풍습이 없다.
적암도의 적은 해적밖에 없었다. 해적을 격멸하는 과정에서도 목숨을 구걸하는 자는 살려주었다.
여인? 여인이나 어린아이는 무조건 풀어준다.
그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부린다거나 시중으로 쓰는 일은 전혀 없다.
노예? 주인의 부름?
아버지의 뜻을 알겠다. 아버지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고 강제로라도 취할 생각이시다.
자신은 일지할안의 대장부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이것은 명령이다.
만약 자신이이 거부하면 대장부 역할은 다른 자에게 넘어간다. 아버지는 지금 결혼할 사내가 필요한 것이지, 자식이기 때문에 맺어주는 게 아니다.
련주가 말했다.
“노예가 아니라 일부인 자리를 내주겠다는 건 자네에게는 영광이야.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언제든…… 자진하면 되네. 죽은 자는 건드리지 않지.”
“미안하게 됐다.”
노모보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웃었다.
벌써 그의 마음에는 야뇌슬에 대한 미움이 지워지고 있다. 그라는 존재 자체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건 오로지 한 여인뿐이다.
“예쁜 줄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눈이 튀어나오더라. 요괴 같았어.”
“그래.”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니 좋아 죽겠나봐?”
“투기하지 마라.”
“투기? 호호호! 날 어떻게 보는 거야?”
미와빙은 활짝 웃었다. 이까짓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편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내는 부글부글 타오르는 불길로 재가 되고 있었다.
‘입이 찢어지지? 너무 좋아하지 마. 저 여자…… 네 차지가 될 것 같아? 호호호! 미련퉁이.’
비웃음이 흘러나온다.
련주의 눈빛을 보지 못했나? 그 눈빛은 야망에 들뜬 눈빛이 아니다. 야망을 위해서 대화금장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오로지 한 여자…… 독고금만 노려보고 있었다.
련주의 마음에는 독고금이 자리했다.
자, 노모보! 넌 어떻게 할 것인가!
노모보가 말했다.
“한 가지 묻자. 아까 아버님이 일부인 자리를 양보하라고 했을 때, 순순히 양보한 저의가 뭐야?”
“그래서 그게 안 좋다 이거야?”
“아니, 너 답지 않아서.”
“그래 맞아. 내 본의가 아냐. 련주님이 그런 대답을 강요했잖아. 그러니 련주님 마음에 맞는 대답을 할 수밖에. 몰랐어? 방금 난 협박당한 거야.”
“협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