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ummuan RAW novel - Chapter 81
81
[도검무안 81화]
第十三章 진공(眞功) (4)
송림 안에는 십이좌실이 있다. 그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었다.
글 속에 파묻힌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무공을 수련하면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게 무엇보다도 행복했다.
무공과 책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단연 책이다.
그건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책이 없으면 살지 못할 것 같다. 생명처럼 여겨진다.
그토록 적송림 십이좌실이 좋았다.
도주의 아들, 적암도의 사내라는 굴레에 이끌려서 어쩔 수 없이 이십사 무동을 들락거렸지만, 그곳보다는 적송림이 훨씬 마음 편하고 좋았다.
그곳을 다시 찾았다.
비록 상상속이지만 바닷바람하며, 적송림의 맑은 향기며, 옛날의 냄새를 고스란히 맡았다.
‘좋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끼이익!
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묶은 서책에서 풍기는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무리 통풍이 잘된다고 해도 책 특유의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이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가 하면, 십이좌실에서 하루만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몸에 책 냄새가 베여있다.
한 권, 한 권…… 책들을 보면서 지나친다.
심등에 관한 책이 필요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어서 다른 책들을 살펴본다.
이런 작업을 언젠가 한 번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창암도와 싸워야 헸고, 도련에 침입해야 했다. 중원에 나온 이후, 한시도 편안하지 않았다.
련주와 겨뤄본 지금, 심등의 가치를 확실히 알겠다.
이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시라도 서둘러서 해야 한다. 심등을 보완, 발전시켜야 한다. 심등에 관한 비급을 모두 찾아내서 탐독해야 한다.
심등이 없으면 련주와 싸울 수 없다. 도련 앞에 설 수 없다.
그들과 맞서기 전에 자신의 무공을 공고히 다져놓는다. 무공을 정리한다.
적암도를 뛰쳐나올 때는 일단 부딪치기만 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법은 없다.
무공이 절대적으로 약하다면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이기려면 강해져라.
그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자신이 충분히 강했다면 련주를 죽일 수 있었다. 십교두도 자신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게다.
자신이 약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원수를 앞에 두고도, 그를 향해 검을 들었으면서도 오히려 도망쳐 나오기에 급급했다.
이것이 약자다.
복수? 힘이 없다면 복수 이야기는 입에 담지도 마라. 공연한 공염불은 서로 입만 아프다.
십이좌실에 있는 모든 책을 훑어봤다.
심등에 관한 책은 없다. 심등이란 글자를 언급한 책이 단 한권도 없다.
심등과 비슷한 내용을 포함한 책자들은 더러 있다. 하지만 해석이 다르다. 심등에 관해서 자신이 수련한 비급과는 방향이 다른 해석을 내놨다.
무공비급으로서의 해석이 아니라 유불선(儒佛仙)의 입장에서 기술한 책자들이다.
무공비급으로는 딱 한 권, 여여양생술!
여여양생술에서만 심등이란 글귀가 튀어나온다.
적송림 십이좌실을 통틀어서 오직 한 권, 여여양생술 밖에 참조할 책이 없다.
그는 여여양생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봤다.
그 말이 그 말이다.
– 심등은 가슴의 빛이다. 가슴의 빛을 따르는데 이기고 진다는 승부관념은 없다. 오직 밝은 빛만 있다. 유등을 지켜봐라. 그곳에 승부가 있는가. 그곳에 죽음이 있는가. 그곳에 싸움이 있는가. 유등은 불을 밝힐 뿐이다.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그냥 어둠을 밀어내고 밝은 빛을 뿌리는 것으로 만족하라. 그것만 봐라.
심등으로 무엇을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련주와의 싸움에서 그가 했던 것처럼 하지 말라고 말이다.
심등으로 지전을 이끌고 다니거나, 저전들 사이로 숨는 것 또한 심등의 구결과는 배치된다. 원래 심등의 구결에 의하면 그런 행동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마라. 심등만 지켜봐라.
이런!
더 이상 나아질 방법, 발전할 방법이 없다.
한 순간, 절망이 밀어닥쳤다.
상상 속에서 십이좌실로 들어설 때는 상쾌한 마음이었는데, 모든 책을 다 훑어본 지금은 까마득한 절망만 가득하다.
‘이런 식으로는 련주를 이길 수 없어.’
억울한 마음이 치밀었다.
자신이 련주를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이제 갓 무공에 눈을 뜨기 시작한 풋내기가 평생 무공만 수련해 온 초극강고수와 어찌 맞서겠는가.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정도만 해도 놀라운 게다.
그럼에도 분한 마음이 치솟는다. 련주를 눈앞에 두고도 어찌할 수 없어서 도망쳐왔다는 게 한이 된다.
조급해 하면 안 된다.
차분하게 무공을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련주와 싸울 날이 올 게다. 그때까지 수련을 거듭하면 된다. 그 방법 밖에는 없지 않은가. 어설픈 복수는 금물이다.
헌데…… 그런 걸 아는데…… 그런데도 치미는 분기를 억누를 수 없다.
심등이 길을 밝혀 줄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해주지 않으니,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더욱 화가 나서 미치겠다. 이제는 어찌해야 하나?
“우욱!”
그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신음을 쏟아냈다.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역겨운 것이…… 분한 기운이……
그는 입을 벌리고 역한 기운을 쏟아냈다.
“와악!”
뱃속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온 분기가 입을 통해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 순간, 머릿속이 텅 비면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다.
흙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컴컴한 어둠이 밀려온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 마록타가 보인다.
“정신 좀 들어?”
“끄응!”
야뇌슬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신음을 토해냈다.
배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통증이 치민다. 머리도 지끈거린다. 가슴이 답답하다.
“너 자칫했으면 주화입마 당할 뻔했다. 운기 중에 딴 생각을 한 거야? 고수가 뭐 이래?”
“주화입마?”
“저 두 사람이 애 많이 썼다.”
그가 두 노화자를 가리켰다.
‘주화입마……’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생각났다.
한 순간에 치밀어 오른 분노, 분기, 억울함, 원통함…… 그런 것들이 가슴을 쳤다. 심등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무엇인가가 뱃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왔다.
그게 주화입마였다.
순간, 야뇌슬을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먼저처럼 주화입마가 아니다. 퍼뜩 떠오른 깨달음, 무공에 대한 각성(覺醒)이다.
심등은 고요함이다. 고요함 속에서 불을 밝힌다. 촛불을 광풍이 부는 곳에 내놓으면 당장 불이 꺼진다.
광풍……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광풍은 분노, 원한, 살기 이런 것들이다.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정말로 두 손 놓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심등을 유지하라는 소리다. 광풍 앞에 심등을 내놓지 말라는 말이다. 조용히 불길이 타오르는 모습을 봐라.
야뇌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주화입마…… 나쁘지만은 않은데?”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마록타가 어깨를 찍어 눌렀지만 그래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심등을 밝혔다.
“미쳤어……”
취화선개가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방금 주화입마의 위험에서 빠져나왔다. 아직도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운기를 진행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야뇌슬이 그런 행위를 하고 있건만…… 그들이 간여할 일이 아니라서 지켜보기만 한다.
“휴우!”
미록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야뇌슬의 고민을 이해한다. 야뇌슬이 왜 이토록 운기에 몰입하는지 이유를 안다.
– 련주의 무공이 어떤지 겪어봐야겠어. 이긴다는 생각은 안 해. 단지 보기만 할 거야. 그래야 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거 아냐.
야뇌슬이 도련에 침입하기 전에 한 말이다.
그는 련주의 무공을 봤다. 겪었다. 복수할 대상의 무공의 직접 견식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겠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겠나.
마록타를 절룩거리며 독고금에게 걸어갔다.
“계집!”
마록타의 눈에서 녹광(綠光)이 줄줄 뿜어져 나왔다.
‘계집?’
독고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록타를 쳐다봤다.
그녀를 감히 ‘계집’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취화선개와 단황신개가 농담 삼아서, 또 친근한 표시로 모용아에게 계집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도 독고금에게는 계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신분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친근감으로라도 그렇게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마록타가 말했다.
“저놈이 하는 말은 백 번 맞다. 지금까지 저놈이 한 말 중에 어긋난 말을 보지 못했어.”
“그래서요?”
“저놈이 네 아비가 죽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돈을 빌려달라고요?”
독고금이 옅은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녀가 읽기에 마록타는 악의가 없다. ‘계집’이라도 하는 말에도 비하의 뜻은 담겨져 있지 않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부르는 것뿐이다.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금전적인 부분은 역시 동의하지 못한다.
이들의 강북 무림을 모른다. 그러니까 죽니 사니 하는 게다. 제 아무리 시교혈랑대라도 해도 강북 무림을 휘젓고 들어가서 추여룡의 목을 따올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천신도 불가능하다.
천신?
하기는…… 도련 최중심처에 뛰어들어서 자신을 빼내오는 일도 추여룡의 목을 베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인데.
마록타가 숭숭 빠진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키키키! 계집…… 딱 오늘 하루만 기회를 준다. 오늘이 지나면 네 아비를 구하는 일은 없을 거야. 대화금장 전 재산을 준다고 해도. 키키키! 아무래도 넌 추여룡의 목이 떨어진 다음에야 정신 차릴 것 같지만…… 키키키! 잘 생각해라. 오늘 하루다.”
“왜 그렇게 돈을 빌리려는 거죠?”
“키키키!”
마록타는 대답하지 않고 등을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