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ummuan RAW novel - Chapter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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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87화]
第十四章 잠입(潛入) (4)
“우선 앉으시지요. 용건부터 말씀해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호호호! 차분한 척 하기는…… 마차 세 대. 특상(特上)으로.”
“허! 특상……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중(中) 밖에 안 되는 데요. 특상은 정주(汀洲)에나 가야……”
“표국주.”
미와빙의 음성이 한기가 실렸다.
그녀는 시교혈랑대와 함께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지 알게 되었다.
적암도에서 해적들을 상대하던 것과는 다르다.
그래도 해적들은 뼈대라도 굵다. 중원인들은 뼈대도 가늘어서 약간만 겁박해도 사색이 되어서 벌벌 떤다.
“두 번 말 안 해. 그리고…… 한 번 말한 것은 ‘반드시’라는 단서가 붙어. 이의제기하지 마. 귀찮으면 죽어.”
“아, 네.”
표국주는 즉시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왜 시교혈랑대를 모르겠나. 시교혈랑대에 사갈(蛇蝎) 같은 여인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여자가 남방미인 특유의 탄력 있는 피부에 조각 같은 외모를 지녔다는 말도 들었다.
이 여자가 틀림없다.
가벼운 경장 차림에 유협도를 찼는데, 그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보기 좋다는 말은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유협도가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칼을 많이 써봤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표국은 물건을 상대하는 곳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운송하는 것은 물건이지만, 그 이전에 사람부터 상대해야 한다.
표국주는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 사갈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인식했다. 입 한 번 잘못 벙긋하면 이 자리에서 죽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내가 뭐라고 했지?”
“특상 마차 석 대. 저녁까지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머리를 부산하게 움직였다.
인근에 특상 마차는 없다. 특상은 고사하고 상(上) 정도 되는 마차도 없다. 그런 마차를 구하려면 대도읍인 정주에나 가야 한다. 그래야 하루 대여료가 쌀 열 섬인 특상 마차를 구할 수 있다.
특상이 없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차를 특상으로 개조한다.
사두마차를 팔두마차로 개조하고…… 마차 몸체는 있는 것에서 조금 더 손보고……
여인이 말했다.
“저녁은 늦어. 점심까지 준비해.”
“네. 점심까지.”
그는 ‘반드시’라는 말을 항시 염두에 두었다.
이들은 있는 것을 달라는 게 아니다. 없어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못 만들면 죽이겠다는 거다. 또 실제로 죽인다. 그러고도 남을 흉신악살이다.
“저…… 목적지는……?”
“숭산.”
“네? 하북까지요?”
“기한은 나흘.”
“나, 나흘!”
‘그건 어림도 없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쳤다.
그 말을 하면 죽는다. 나흘만에 가지 못해도 일단은 간다고 해야 한다.
“갈 수 있어? 없으면 없다고 해. 다른 데 알아보게.”
갈 수 없다고 하면 죽이려고?
강남 무림 사람이 강북 무림에 와서 일을 시킬 때는 정말로 ‘반드시’라는 말이 붙는다. 그 말을 어길 때는 반드시 죽는다. 이건 믿어도 좋다.
“말씀하신 것……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수임료는 주셔야겠습니다.”
표국주가 눈치를 보면서, 그러나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시교혈랑대가 숭산으로 간다.
이건 좋지 않은 일이다. 아주 좋지 않다. 자칫하면 표국의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표국 문은 닫혔다. 미와빙이 찾아오는 순간부터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들의 말을 거부하면 그 순간이 문을 닫는 시간이 된다.
이들의 말을 따르면 결국 시교혈랑대를 강북 무림 한 복판에 내려놓는 꼴이 된다. 이들이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나쁜 일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고.
강북 무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다.
결국 자신들은 설 땅이 없다.
그나마 살 길이라면 이들을 숭산에 데려다 주고 그 길로 냅다 강남무림까지 도주하는 길밖에 없다.
지금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가서 새 터를 닦아야 한다.
돈이 필요하다.
“값?”
“저 그게…… 하북까지 가는데 경비가 만만치 않아서……”
“호호호!”
미와빙이 웃으면서 엄지손가락 두 개 합친 정도의 보옥을 내놨다.
“헉!”
표국주는 물건의 진가를 알아봤다.
호목야광주(虎目夜光珠)!
밤에 촛불을 밝히지 않아도 빛을 발산하는 야광주다.
야광주는 크기 불문하고 값이 높다. 헌데 그녀가 꺼낸 야광주는 정중앙에 호목 무늬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인위적으로 각인 시킨 것이 아니다. 천연 문양이다.
밤에 호목야광주를 보면 밝음 속에서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런 호목야광주는 부르는 게 값이라서 임자도 별로 없다. 하지만 물건 팔 데가 없을까.
그는 호목야광주를 조심스럽게 챙겼다.
호목야광주 한 알!
이 정도라면 처자식들은 평생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잘 살 수 있다.
그가 말했다.
“지금부터 나흘 안에 숭산까지 모시겠습니다. 그 전에…… 제 식솔들은 강남으로 보내려 합니다.”
“호호호호!”
미와빙이 크게 웃었다.
***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특상 마차 세 대가 질주한다.
팔두마차 세 대가 일렬로 나란히 관도를 질주해 나간다.
표기(鏢旗)에는 표사(鏢師) 대신에 정봉대부(正奉大夫)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종이품관(從二品官)의 행차라는 뜻이다.
이럴 경우, 표행(鏢行)에는 표국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이 어느 표국인지 알려면 의복이나 깃발의 형태 등으로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첫째 마차에는 수행원이 탄다. 둘째 마차에 정이품관원이 타고, 마지막 세 번째 마차에 가족이 탄다.
마차 세 대가 운용되는 것은 상례다.
팔두마차 세 대가 질주하면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어당기지만, 또 모든 사람의 허리를 굽히게도 만든다.
“국주!”
미와빙이 마차 밖에서 말을 타고 호위하는 표국주를 불렀다.
표국주가 옆에 와서 섰다.
“객잔을 수소문해.”
“나흘 안에 숭산에 도착하려면……”
표국주가 난색을 표했다.
사실 성나에서 하북 숭산까지 나흘 만에 주파한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도 열두 명이 보표가 매 시진마다 교대해서 말고삐를 잡고 있다. 나머지는 어자석에 앉아서 선잠을 잔다. 밤에도 달릴 것에 대비해서 지옥 같은 잠을 잔다.
이렇게 해도 나흘 만에 도착할지 못할지 의문이다.
중간에 편히 쉴 틈이 없다.
그래도 미와빙은 단호했다.
“잡아. 잠은 편하게 자야지. 작은 객잔을 잡되, 통째로 빌려. 시선은 전부 차단하고.”
사실 시교혈랑대는 마차에서 자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풍찬노숙을 밥 먹듯이 하는 차에 이슬을 막을 수 있는 데서 자니 객잔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쫓아다닌 것 중에서 가장 편하게 이동하고 있다.
관원의 행차는 보안을 최우선으로 한다. 위험이 예상되면, 마차에서 데려오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니 마차에서 숙식을 해결해도 의심을 살 우려가 없다.
그런데 굳이 객잔을 잡다니…… 그래도 종이품관의 품위는 지켜야 하나?
앞서 나갔던 보표가 돌아와 보고했다.
“한적한 곳에 객잔이 있어서 통으로 빌렸습니다. 시선 차단 완벽하고, 몇 군데만 지키면 통행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조건이다.
노모보가 말했다.
“목욕할 건가?”
“할 거야.”
“이번에도 거부야?”
“요즘 왜 이래? 정신집중!”
“후후후! 그냥 해본 소리다. 저놈들 눈치 때문이라도 같이 못 자. 그런데 너야말로 요즘 왜 피해?”
“아이 갖고 싶어? 난 아직은 싫어. 며칠만 기다려. 그럼 사나흘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미와빙이 요염하게 웃었다.
객잔에서 쉰 것은 한 시진에 불과하다.
그동안, 미와빙은 목욕을 했다.
생각할 것이 많다. 숭산에 도착만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추여룡을 찾아야 하고, 그를 죽여야 한다.
헌데 지금 당장은 추여룡이 숭산에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면? 볼일이 있어서 다른 지방으로 갔다면?
숭산에 있어도 문제다.
소림사는 무림의 태산북두다. 숱한 절기가 있고, 패배를 모르는 무승들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곳 중에 하나다.
추여룡이 소림사 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면 잡아올 방법이 없다.
그 일을 생각해야 한다.
마차를 타고 달려가는 동안…… 어떻게 해야 추여룡을 죽일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뛰어드는 건 무리야.’
그런 생각은 누구라도 한다.
소림사 안으로 들어가서 추여룡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제발로 걸어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제 발로 걸어나오게 사건을 만든다…… 어떤 사건?’
어떤 식으로 사건을 만들어야 그가 나올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목욕을 했다. 뜨듯한 물에 몸을 담그면 비상한 수단이 홱하고 스쳐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정보가 너무 없다. 그야말로 완전히 빈손이다. 추여룡에 대한 정보는 고사하고, 소림사에 대한 정보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정보를 캐내는 것도 우습다.
‘앞으로 이틀…… 이틀 안에 방책을 세워야 해!’
그녀는 목욕을 끝냈다.